흑막의 신! 8화
“어서 오세요.”
중년의 아줌마가 보지도 않고 어서 오라는 말을 했다가 나를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오늘 영업 끝났어.”
역시 꼴이 이러니 안 팔겠다는 말이었다. 애초에 나는 돈이 없을 거라는 판단을 한 모양이다. 또 어려 보이니 반말을 했다. 지금 나는 딱 봐도 17살이다.
“정말 배고파서 그러는데 국밥 한 그릇만 주세요.”
“영업 끝났어.”
“제발요. 아줌마.”
꼬르륵! 꼬르륵!
배에서 울린 꼬르륵 소리를 아줌마도 들은 것 같았다. 나는 아줌마에게 국밥 한 그릇만 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에이 그래! 거기 앉아. 나도 너만 한 아들이 있었는데 박정하게 그냥은 못 쫓아내겠다. 내 후딱 국밥 한 그릇 잘 말아 줄 테니까, 후딱 먹고 가.”
아줌마는 내가 불쌍해 보였나 보다. 거지꼴을 하고 있으니 그렇게 보이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그 꼴이 뭐니? 부모님은 안 계시니?”
정말 아줌마는 나를 노숙자 취급을 했다. 아니면 고아라든지.
“예.”
나는 사실 부모님이 다 일찍 돌아가셨다.
“쯧쯧쯧! 불쌍한 것. 아이고, 내 정신 좀 봐라. 배고프다고 했지. 금방 국밥 말아 줄게.”
아줌마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국밥을 가지고 나왔다.
나는 국밥을 빠르게 먹어 치웠다.
꺼억!
죽다 살아나서 그런지 국밥 맛이 꿀맛이었다.
나는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됐다. 그냥 가.”
정말 정이 많은 아줌마 같았다.
“그래도…….”
“가서 열심히 살아.”
“예.”
나는 속으로 어이가 없었지만, 그냥 ‘예’라고 대답을 했다. 분명 나를 걱정해 주는 말이니 뭐라고 반박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줌마를 잠깐 봤다. 참 순박하게 보였다.
‘안색이 좋지 않네.’
난 개 같은 의사였지만 그래도 의사였다. 저렇게 혈색이 안 좋은 것을 봐서는 작은 병은 아닐 것 같았다.
‘저런 혈색은 위암 같은데…….’
물론 혈색만 보고 암이라는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어이가 없는 순간이지만 난 이상하게 저 아줌마의 병이 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그런 생각을 하며 아줌마를 빤히 보니 아줌마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왜 그러니? 아저씨 금방 올 거다.”
아줌마는 내가 배가 부르니 훔칠 것이 있는지 보는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 역시 어이없는 일이지만 나의 몰골이 이러니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예. 그런데 어디 아프세요?”
“뭐?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안색이 안 좋아 보여서요.”
“아픈 데 없어. 그냥 어서 가,”
아줌마는 약간 불안해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줌마의 몸을 다시 뚫어지게 봤다.
“왜 그렇게 봐?”
아줌마는 뒷걸음질을 쳤다. 늙어도 여자인 모양이다. 불안한 마음에서 저런 행동이 나온 것이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줌마는 계속 나를 의식하며 몸을 움츠렸다.
‘왜 자꾸 위암이라는 생각이 들지.’
그 순간 다시 놀라운 일이 생겼다. 아줌마의 몸 안이 내 눈에 훤히 보이는 게 아닌가. 마치 투시력이 생긴 것처럼 말이다.
‘뭐지? 내가 왜 이러는 거야?’
믿어지지 않고 믿을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났다.
몸 안에 있는 암 덩어리가 보이니 말이다. 하지만 또 못 믿을 것도 없다. 내가 이렇게 어려졌고, 또 영적인 존재를 봤고, 그리고 죽음에서 살아났으니 이제 믿지 못할 것은 없었다.
“아줌마! 내일 병원 꼭 가 보세요.”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어서 가.”
“꼭 가 보셔야 해요. 꼭!”
“아프지도 않은데 왜?”
내가 간곡하게 몇 번이고 병원을 가라고 하니 아줌마가 호기심이 들었는지 이유를 물었다.
“꼭 암 환자 같아서요.”
“암?”
“예.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어서 가!”
아줌마는 이제 짜증까지 부렸다. 어쩌면 내 말을 믿는 것도 이상할 것이다. 저러다가 병을 키워서 죽을 것 같았다. 은혜를 입었으니 갚아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을 했다.
‘맞다. 영약’
나는 영약이 생각났다.
하지만 아무리 영약이라고 해도 잘못 복용을 했다 가는 사람이 죽는다. 내가 장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껴 봐서 안다.
‘아주 소량이면 괜찮을 거야!’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고 검은 봉지에 싼 난초 모양의 영약 가루를 조금 꺼내서 냅킨에 올려놨다.
‘벌써 이렇게 검은 가루가 된 거야?’
하지만 이건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또 말랐으니 썩지는 않을 거다. 그럼 보관하기 편하다.
“아줌마가 돈을 안 받으신다고 하시니까 이거라도 드리고 갈게요.”
“그런 거 필요 없으니 어서 가.”
“이거 못 믿으시겠지만, 상황버섯 말린 건데 아주 큰 주전자에 물 많이 넣고 조금씩 넣어서 드세요.”
“상황버섯?”
다시 여자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상황버섯은 아주 비싼 버섯이다. 나는 그렇게 거짓말을 했다.
“예. 예전에 삼마니 따라다니면서 땄어요.”
“너 고생 많이 했구나.”
“예. 하여튼 꼭 물 많이 넣고 우려내서 드세요. 속이 따뜻해질 거예요.”
“이거 정말 상황버섯 가루니?”
“예. 제가 거짓말해서 뭐 하겠어요.”
아줌마는 나의 말에 반신반의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냅킨을 조심히 들었다.
“꼭 드세요.”
“알았다. 그런데 갈 곳은 있니?”
“예.”
나는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 식당을 나섰다.
‘저것을 조금씩 끓여서 먹으면 암세포 덩어리가 죽을 거야.’
물론 다른 효력도 있을 거다.
은혜를 입었으면 아무리 작더라도 갚아야 하는 거다. 그것이 이제 내 철칙이 됐다. 그리고 앞으로의 내 삶은 나를 위해 희생한 할머니의 영혼을 무한지옥에서 건져 내는 것에 쓸 생각이다.
‘다른 효력도 있겠지만 암세포 덩어리는 반드시 죽는다.’
나는 그래도 의사였다. 난초 모양의 영약의 정확한 효능을 알지는 못했지만, 장기를 보호해 주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럼 쓸데없는 암세포는 죽을 게 분명했다.
‘꼭 병원에 가셔야 할 텐데.’
밥을 먹고 나니 벌써 밤이 됐다.
“이 몰골로 다니다가는 노숙자 대접만 받겠는걸.”
나는 옷을 갈아입어야겠다는 생각에 지하상가 비슷한 곳을 찾았다.
“저기 있네.”
그리고 나는 지하상가로 내려갔다. 가는 곳마다 처음 들어섰던 식당처럼 내가 들어오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
“이거 얼마예요?”
“2만 4천 원!”
옷가게 점원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여기요.”
나는 바로 돈을 지급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거울 속에 비친 나는 새 옷을 입은 거지꼴이었다.
“목욕탕에 가야겠어.”
* * *
풍덩!
그리고 때를 불려 밀었다. 국수가 이보다는 덜 밀릴 거다. 검을 때가 정말 국수 가락처럼 밀렸다.
“이러니 그 대접을 받지.”
한 시간을 넘게 때만 밀었다. 그리고 개운한 기분에 거울 앞에 섰다.
“오! 대단한걸.”
식스팩! 초콜릿 복근이라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완벽한 몸매가 눈에 가득 들어왔다.
“와! 정말 환골탈태 맞네!”
나는 흐뭇했다.
“그런데 오늘이 며칠이지?”
나는 날짜가 궁금해 달력을 찾았다. 벽 구석에 야릇한 비키니를 입고 맥주를 손에 든 아가씨 사진이 달린 맥주 광고 달력이 보였다.
“요즘도 저런 촌스러운 것을 거나? 6월 24일이네. 헉!”
순간 나는 다시 한번 내 눈을 의심해야 했다.
“2004년? 뭐야?”
그때 때밀이 아저씨가 나의 옆으로 걸어와 달력을 쭉 찢었다.
“왜 아직도 옛날 달력이 걸려 있어?”
나는 때밀이 아저씨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달이 지났으면 달력을 찢어야지.”
때밀이 아저씨가 찢은 달력을 나는 다시 봤다. 7월 달력이다.
‘뭐야? 정, 정말 2004년인 거야?’
나는 TV를 켰다.
역시 TV 화면에 보이는 사람들 역시 촌스러운 머리를 하고 촌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다.
-끝 곡으로 부활의 네버 엔딩 스토리를 인사드리겠습니다.
“네버 엔딩 스토리? 부활!”
감미로운 이승철의 목소리가 나의 귀에 들려왔다. 그리고 나의 심장은 마구 요동쳤다.
손 닿을 수 없는 저기 어딘가~ 오늘도 넌 숨 쉬고 있지만
너와 머물던 작은 의자 위엔 같은 모습의 바람이 지나네.
정말 부활의 노래다.
“부활! 저걸로 정말 부활했지.”
“그럼. 정말 돈 많이 벌었을 거다.”
목욕탕에 있는 남자들이 노래를 들으며 이야기를 했다.
“이승철 노래 참 잘 부른다.”
“그렇지. 걔 새장가 갔다며?”
“그래? 좋겠다. 킥킥킥!”
너는 떠나며~
나는 감미로운 노래를 들으며 다리에 힘이 풀려 목욕탕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려진 이유가 있었어.’
그때 그냥은 살게 해 줄 수 없다던 저승차사의 말이 떠올랐다.
그 저승차사가 시간을 돌린 것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면 저승차사에게 명령한 존재가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하지?’
그렇다고 이렇게 마냥 앉아 있을 수는 없다.
‘우선 오늘은 여기서 자자.’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잠이 올 턱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날을 꼬박 새웠다.
주머니에 있는 돈은 58만 원이다. 그래도 약을 사기 위해 현금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 다행이다.
그러나 이내 화들짝 놀라서 옷가지가 있는 사물함 쪽으로 뛰어갔다.
‘지금은 2004년이잖아.’
나는 급하게 사물함 문을 열고 바지 주머니에 있는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사우나 구석으로 가서 돈의 발행 연도를 살폈다.
‘이것도 못 써! 이것도, 이것도!’
내가 가지고 있는 58만 원 중 32만 원이 현금의 구실을 하지 못하는 어음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