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9화
‘이건 2005년도 발행이고 이건 2006년도야!’
시간이 지나면 다시 쓸 수 있는 돈이지만 지금 나에게는 단돈 만 원이 훗날의 몇백만 원보다 귀하고 아쉬웠다.
‘그래도 26만 원은 쓸 수 있다.’
당분간 이렇게 사우나에서 자고 싼 음식을 찾아 먹을 수 있는 최소한의 돈인 거다.
‘시간이 돌려졌다, 시간이!’
난 인상을 찡그렸다.
돈 몇 푼 없는 고아에, 까딱 잘못하다가는 무적자가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내가 지금 궁지에 몰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일이라도 해야 하나?’
‘어쩌지? 젠장! 정말 큰 일이다.’
결국,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을 자지 못했다. 그리고 일자리를 찾기 전에 든든히 먹기 위해 내게 공짜 국밥을 준 아줌마의 식당으로 갔다.
“어서 오세요.”
아침이라 그런지 어제와는 다르게 아줌마의 목소리가 밝아 보였다.
“국밥 주세요.”
“어 그래요.”
사람이 말쑥해져서인지 아줌마는 단번에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너 혹시 어제…….”
“예. 좀 씻으니까 사람 같죠?”
“어제는 어디서 잤니?”
“목욕탕에서요.”
아줌마는 내가 측은한 마음이 드는 모양이다.
“기다려라. 국밥 좀 가지고 올 테니까.”
“예.”
역시 때깔 좋은 거지가 잘 얻어먹는 법인 모양이다. 잠시 후 아줌마는 국밥을 가지고 나와서 나의 앞에 내려놓고 앞자리에 앉았다.
“많이 먹어라.”
“예.”
나는 빠르게 국밥을 먹으며 힐끗 아줌마를 봤다. 어제보다 혈색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았다. 그리고 주방 안을 쭉 둘러봤다. 가스버너 위에 커다란 주전자가 놓여 있었다.
‘드셨구나!’
아줌마는 내가 먹는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천천히 먹어. 부족하면 더 줄 테니까.”
“예.”
나는 아줌마를 보며 방끗 웃었다. 아줌마는 내가 국밥을 다 먹을 동안 계속 나만 보고 있었다. 때로는 웃고 때로는 길게 한숨을 쉬고 그러고 있었다.
“잘 먹었습니다.”
나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테이블에 놓았다.
“돈 필요 없어. 상황버섯 물도 잘 먹고 있는데 그냥 가.”
“아니에요. 돈을 드려야 제가 또 오죠.”
“괜찮다니까.”
“여기가 제일 싸요. 저 이러면 여기 못 와요.”
“너 이 근처에서 살 거니?”
“모르겠어요.”
“갈 곳은 있고?”
“그게…….”
예전에도 고아였던 나는 원래부터 갈 곳 따위는 없었다.
“없구나!”
“학교는 어디까지 다녔니?”
나는 순간 중학교라고 해야 할까 고등학교라고 해야 할까 고민이 됐다. 지금 대충 17살처럼 보인다. 중학교 졸업이 좋을 것 같다.
“중학교까지만 졸업했어요.”
“그래! 불쌍한 것.”
아줌마는 이상할 정도로 나에게 친절했다.
“저, 저기…….”
“예. 왜요?”
“너 갈 곳이 없으면 우리 집에서 배달이나 하면서 학교 다닐래?”
역시 마음이 좋은 아줌마다. 겨우 두 번 본 나한테 이런 친절을 베푸는 것을 보니 말이다.
“정말요?”
“그래도 고등학교는 나와야지.”
나는 사실 고등학교까지가 아니라 서울대 의대도 나온 수재였다. 물론 죽어라 공부를 해서 간 의대지만 간판은 그랬다. 그놈의 약 때문에 인생이 꼬였지만 그랬었다. 다시 새롭게 사는 인생, 이제는 허튼짓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리라. 그리고 할머니를 무간지옥에서 구제하기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면목이 없어서요.”
“괜찮아. 죽은 우리 아들 닮아서.”
역시 과거형의 결과는 아들의 죽음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을 했다.
‘사실 갈 곳도 없잖아. 여기서 다시 시작하는 거다.’
나는 결심을 했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고맙습니다.”
이 말은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나는 이렇게 정착하게 됐다. 그리고 나는 내 앞날을 생각해 봤다. 우선 나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17살쯤 되는 것 같다.
‘17살이 되는 거야!’
마음을 먹으니 이제 17살이 된 것 같았다. 정신은 아니라도 분명 몸은 17살처럼 보였다.
그럼 고등학교에 가든 검정고시를 치든 둘 중 하나는 해야 할 것이다. 물론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이제 같이 사는 식구도 생겼으니 물어봐야 했다. 물론 나는 식구라고 생각을 했지만, 아줌마는 어떻게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고등학교에 가렴.”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학교에 가면 배우는 게 많을 거야. 사람이랑 지내는 법도 배우고.”
아줌마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나는 그렇게 해서 다시 고등학교에 가게 됐다. 그리고 아줌마는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 졌다는 것에 매우 만족하는 눈치였다.
그럼 된 거다.
‘이제 어떻게 하지?’
나는 우선 나를 돌아봤다.
내 머릿속에는 엄청난 지식이 있고, 난 환골탈태를 한 몸이다. 또한, 미래의 기억도 있었다. 착실히 시간을 보내면 이 세상은 내 세상이 될 것 같았다.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은 무공이 분명해! 그리고 이 무공은 기 수련과 같다.’
난 내 머릿속에 있는 기억을 떠올렸다.
‘비술!’
내가 알고 있는 무공이라는 것이 비술이라고 기억됐다.
어쩜 무술의 다음 단계가 비술일 것 같다.
그리고 기 수련을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기로 사람을 어떻게 치료하는지도 터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에게는 난초 모양인 희대의 영약도 있었다.
‘참 신비한 스펙은 많네.’
이것들이 다시 사는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사실 비술만 해도 그렇다. 어디 누구랑 싸움할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번에 얻은 삶을 거칠게 살지 않는다면 나에게는 아마 비술을 쓸 일이 없을 거다.
그리고 기 수련 역시 나의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 말고는 쓸 곳이 그리 많지 않을 거다. 그러니 좋은 스펙이기는 하나 돈이 되는 스펙은 아닐 거다.
‘돈이 되는 게 뭐일까? 내가 알고 있는 미래의 기억뿐이다.’
돈이 삶의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가지고 있으면 행복한 삶을 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내 기억이 있지.’
나에게는 10년 정도 미래의 기억이 있다. 이건 확실히 돈이 되는 요소다.
‘난초 모양의 영약이랑 기 수련이랑 내 기억이랑 잘 섞어서 이용하면 돈이 되겠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복수도 어느 정도는 해야지.’
아직도 그날만 생각하면 손발이 저리고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사람이 산 채로 묻히는 것, 그것만큼 두려운 것은 없을 거다.
‘조폭이지. 가만두지 않아.’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나는 그 조폭들도 나처럼 되어 있으면 어떻게 하냐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젊어졌잖아. 그럼 그놈들도 과거로 돌아갔을지 몰라.’
그게 시간의 흐름상 공평해 보였다. 그럼 그 조폭들의 죄는 나만 알고 있는 죄가 된다. 내가 만약 그들에게 지금의 내 기억만 가지고 복수를 하면 이제 억울해지는 것은 그들이 되는 거다.
‘곤란하네.’
나는 고민을 해야 했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내가 하지도 않은 짓을 미래의 내가 했다고 주장하며 복수를 한다면 나는 무척이나 억울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옛날 일들은 모두 묻어 둬야 하나?’
그래. 지금은 새롭게 시작하는 인생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복수는 과거도 아닐 거다.
‘새롭게 시작하자. 새롭게! 평범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시작해 보자. 꼭 착한 일 많이 해서 할머니를 무간지옥에서 빼내는 거다.’
나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그런데 문뜩 내가 이렇게 시간을 돌렸으면 할머니도 아직 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 할머니는 아직 안 돌아가신 거야!’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난 시간을 돌려 나를 위태롭게 하려던 저승차가가 고마워졌다.
‘그래. 할머니는 지옥에 가 계신 것이 아니야!’
가슴 속에 꽉 막힌 것이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좀 더 적응한 후에 할머니에게 보답하자.’
그리고 다시 조폭들이 떠올랐다.
‘어쩔 수 없잖아!’
오금이 저리고 손발이 떨렸던 일이지만 지금 이 상태에서는 복수의 대상이 없으니 포기할 수밖에 없다.
‘학교생활이나 잘 적응해 보자.’
이게 내가 내린 우선적인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