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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13화 (13/210)

흑막의 신! 13화

“먹고 살려고 합니다.”

“뭐?”

선생님은 다시 황당한 표정을 했다.

“개똥 같이 말하지 말고 또박또박 말을 해. 임마! 난 도저히 내가 하는 말이 이해가 안 된다.”

“예. 죄송합니다. 제가 알바를 해야 학교에 갈 수 있습니다.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 집에서 더부살이하는데 그냥 있을 수도 없고 해서 일을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밤에 일합니다.”

“그런 거였냐?”

선생님은 측은하다는 표정으로 날 봤다.

“예.”

“그래서 피곤해서 시험 시간에 대충 찍고 잠을 잔 거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열심히 살아.”

선생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예.”

그렇게 작은 해프닝은 마무리가 됐다. 물론 그게 마무리되는 동안 여자 선생님이 교무실에서 난리를 떨었고, 난 여자 선생님의 손이 그렇게 맵고 매섭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구타가 난무하는 교무실.

사랑의 매는 어디에도 없었다. 처절한 응징!

나는 정말 뺨에 불이 나도록 따귀를 맞았다.

‘젠장! 도대체 내가 무슨 죄가 있다는 거야!’

여자 선생이 얼마나 난리를 떨었는지 다른 남자 선생님은 말리지도 못하고 슬슬 자리를 피했다.

정말 욕구 불만 때문에 정신이 이상해진 여자 선생님인 모양이다.

오늘 하루는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하지만 그게 다 끝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돌아왔을 때 교실은 거의 폭탄을 맞은 분위기였다.

‘왜 저래?’

난 아이들을 봤다.

“또 돈 잃어 줘야 하는 거야?”

같은 반 애 하나가 인상을 찡그리며 짜증을 부렸다.

“그럼 어떻게 하냐? 이기지도 못하는데.”

“안 하면 되잖아.”

“안 하면? 그 뒷감당은 네가 할래?”

“젠장! 보호비 내고 축구해서 돈 뜯기고. 내가 학교에 그 새끼들 돈 주려고 오는 거야?”

짜증을 부리던 남자애가 한숨을 쉬었다.

‘뭐지?’

난 아이들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짜증을 부리던 애가 날 봤다.

“거기 복학생 형!”

누군가가 부른다고 대답할 이유는 없다.

“말 좀 씹지 말고.”

난 그냥 여선생한테 맞은 것도 짜증 나고 피곤도 해서 책상에 머리를 처박고 잠을 청했다.

“거기 복학생 형! 말을 걸면 대답 좀 해요.”

날 불렀던 놈이 다시 나를 불렀다.

“왜?”

난 그제야 남자애를 봤다.

“복학생 형 축구 좀 해라.”

“축구?”

“그래. 키도 크니까. 운동 좀 할 것 같은데?”

“됐다. 난 바쁘다.”

“해라! 너도 우리 반이잖아. 학교에 와서는 매일 자면서 뭐가 그렇게 바빠?”

반 아이 하나가 겁도 없이 내게 소리를 질렀고 난 고개를 돌려 그 아이를 봤다.

“너희들끼리 놀아! 난 할 일이 많다.”

난 그렇게 말하고 가방을 챙겨서 교실을 빠져나 왔다.

사실 난 한가한 애들처럼 공이나 차고 놀 때가 아니다.

우선 나를 거둬 주신 아주머니를 도와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을 이용해서 나만의 스펙도 쌓아야 한다.

새롭게 시작한 삶은 후회 없이 미련 없이 승승장구하고 싶다.

“오늘의 땀이 내일의 기쁨이 되게 만든다.”

난 다시 한번 다짐을 했다.

***

정말 오늘은 일도 많고 탈도 많은 하루다. 난 교무실 사건 때문에 늦어서 지름길인 공원을 질러 식당으로 달렸다. 내가 없으면 아줌마 혼자 힘들게 일해야 한다. 요즘 아줌마의 미모가 살아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저씨 손님들이 부쩍 늘었기 때문에 내가 가게에 있어야 한다.

‘쳇! 과부 꾀려고 홀아비들이 줄을 서니, 참!’

뭐 장사가 잘되니 아줌마는 좋아했다. 그리고 모든 여자는 남자에게 관심을 받을 때가 정말 살맛 날 때인 모양이다.

요즘 들어 아줌마는 매일 웃는다.

아줌마가 웃으면 좋은 거다.

착한 사람이시니 매일 웃는 일만 있었으면 좋겠다.

아줌마는 조금씩 내게 어머니처럼 느껴졌다.

생모에 대한 기억도 없는 내게 어쩌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분이다.

그럼 되는 것이다.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그래도 행복한 거다.

그건 내가 정말 잘 안다.

고아였던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이 가족이고, 난 조금씩 가족을 만들어 갔다.

“빨리 가서 도와드려야지.”

저녁 일곱 시밖에 안 되었지만 겨울 근처에 와서인지 금방 해가 졌다. 사실 이 공원은 밤이 되면 사람의 인적이 없다.

한마디로 우범 지대가 바로 이 공원이다. 비행 청소년들의 놀이터이면서 주 활동 무대이며 노숙자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니 탈도 많은 공원이다.

지난달에는 이곳에서 묻지 마 살인 사건이 났고, 지지난달에는 아가씨 하나가 이 공원 으슥한 풀숲에서 당했다.

이쯤 되면 경찰서에서 CCTV 카메라 하나 정도는 달 법도 한데 그냥 경찰들은 손을 놓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공원이 영등포구와 구로구 딱 중간에 있으므로 자신들의 담당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경찰들이 욕을 먹는 거다. 담당이 겹치면 아니라고 하지 말고 순찰을 더 강화하면 좋을 텐데. 정말 월급 값이 아까우신 분들이다.

하여튼 이 공원은 그렇다.

‘바쁘다, 바빠!’

난 공원을 가로질러서 뛰었다. 사실 무서울 것이 없다. 바람처럼 빠른 몸에 암석도 뚫어 버리는 가공할 무력이 있으니 뭐가 무섭겠나.

까악!

가로등만 켜져 있는 공원을 급히 달릴 때 공원 풀숲에서 여자의 비명이 들려왔다.

난 여자의 비명을 듣고 풀숲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분명 또 사고가 난 것이 분명할 거다.

“살, 살려 주세요.”

여자 하나가 건장한 남자 셋에게 포위되어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살려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이미 여자의 상의는 거의 다 찢어져 있다. 분홍빛 유두가 살짝 보이는 것이 마구잡이로 다뤄진 것 같다.

“제발! 살려 주세요.”

여자를 포위한 남자 셋은 더러운 눈깔로 여자를 금방이라도 덮칠 것 같은 기세를 보였다. 그런데 남자 셋은 약간 뜸을 들이는 것 같았다. 그게 이상했다. 그리고 그 셋 중 둘은 뭔가를 기다린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뭐지?’

“킥킥킥! 누가 죽인대?”

깍두기 머리를 한 사내 하나가 여자를 놀리듯 이죽거렸다.

“그냥 놀자고. 같이 즐기면서 서로서로 어떤지 연구를 해 보자고. 킥킥킥! 빨간 젖꼭지를 봐서 벌써 흥분한 것 같은데!”

“살, 살려 주세요. 제발! 돈은 다 드릴게요.”

가로등에 비친 여자의 눈은 위태롭게 떨렸고 사내들의 눈은 더럽기만 했다.

‘겁탈을 당할 것 같아!’

그리고 정말 이곳은 우범 지대인 모양이다.

부스럭!

그때 반대편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기 수련을 한 다음부터 내 귀도 밝아졌다.

‘저 풀숲에 한 놈 더 있다.’

저 풀숲에 숨은 놈은 망을 보는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얼굴을 찡그리고 풀숲을 봤다.

아주 미세하게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집중했다. 반대편 나무숲에 몸을 숨긴 남자애 하나가 뭔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 얼굴로 놈들을 보고 있었다.

‘저놈은 또 뭐야?’

그리고 이상하게 남자 둘이 자꾸 소년이 있는 곳을 힐긋힐긋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있다.’

“살, 살려 주세요.”

여자는 다시 애원했다. 그리고 난 여자를 포위한 남자 셋을 봤다. 그런데 그 세 남자 중 하나가 우리 학교 일진 중에 짱인 유철이라는 것을 알았다.

‘쟤는 유철이 같은데.’

난 다시 한번 놀랐다. 몸을 숨기고 관찰을 하니 많은 것이 보였다.

유철!

아무리 불량 서클의 일진, 유철이지만 이런 짓까지 하는 줄은 난 정말 몰랐다.

내 눈에 비친 유철 역시 이미 무척이나 흥분했는지 인상을 찡그리며 더러운 눈으로 여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정말 금방이라도 여자를 향해 덤벼들 것 같은 표정이다.

“오늘 조지는 거다. 그래야 우리 밑에 올 수 있는 거야.”

“예. 형님!”

난 유철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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