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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14화 (14/210)

흑막의 신! 14화

‘형님? 뭐야, 조폭도 아니고.’

난 문뜩 유철의 옆에 있는 녀석들이 조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 둘은 어디서 많이 본 얼굴처럼 느껴졌다.

‘저 새끼들, 어디서 봤지?’

정말 어디서 본 얼굴이다.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서 해! 그래야 우리 파에 들어온다.”

“예. 형님!”

유철은 천천히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자애 옆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그때 사내놈 하나가 주머니에서 디지털 카메라를 꺼냈다. 유철 역시 디지털카메라를 보자 당황하는 것 같았다.

“찍, 찍는 겁니까?”

“그럼 찍어 둬야지. 저년이 신고하지 못하게 대비를 해 둬야지.”

사내놈은 더럽게 웃었다. 그리고 다시 힐끗 소년이 있는 풀숲을 봤다.

저 정도로 계속 본다는 것은 놈들도 저 풀숲에 뭔가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다는 거다.

그게 난 이상했다.

“신고하려면 해라. 신고하는 순간, 이 야동을 확 인터넷에 풀어 버릴 거다. 그럼 한국에서 시집은 다 간 거고, 어디든 얼굴 들고 못 다닌다. 스타 되는 거지. 킥킥킥!”

“살, 살려 주세요. 제발 찍지 마세요. 제발!”

“제기랄! 계속 살려만 달라네. 누가 죽인대?”

사내놈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사내놈이 여자에게 이죽거리는 동안 유철은 인상을 찡그렸다.

“살, 살려 주세요.”

여자는 다시 애원했다. 그 애원에 돌아오는 답은 사내놈의 모진 구타였다.

퍽!

“아악!”

사내놈 하나가 다시 풀숲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살살 해라! 가스나 상한다.”

“예. 형님!”

사내놈이 유철을 째려봤다. 그리고 다시 풀숲을 봤다. 그 모습이 마치 무슨 신호를 하는 것 같았다.

난 그렇게 느껴졌다.

“자꾸 뜸을 들이니까 미친년이 앵앵거리잖아. 그렇게 깡이 없어서 어떻게 건달을 해! 우리 조직이 그렇게 만만해 보여?”

“죄, 죄송합니다.”

난 사내놈을 봤다.

‘조폭? 설마 그 조폭?’

나를 산 채로 땅에 묻은 조폭 놈과 저 사내놈이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시간을 역행해서 어려졌다면 저놈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정말 그 새끼인가?’

난 갑자기 분노가 치밀며 복수심이 끓어올랐다.

“어서 조지고 가자니까. 이제 슬슬 춥다.”

“예. 형님!”

그 순간 사내놈 둘의 눈이 이상했다. 마치 풀숲에 숨어 있는 소년에게 지금이라고 신호를 하는 것 같았다.

‘뭐지?’

난 다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돼! 뭐 하는 거야!”

역시 힘보다 용기가 더 중요한 거였다. 난 스스로에게 부끄러웠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을 했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내 모든 이상한 생각을 접어 둔다면 정말 남자애는 용기 있는 행동을 한 것일 거다. 하지만 그런 용기는 힘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여전히 눈빛이 이상하다.

살기라고 할까? 그런 것이 남자애의 눈에 느껴졌다.

“뭐야?”

처음에는 유철을 비롯한 사내 둘이 눈이 커져 뒷걸음질을 치는 듯했다. 하지만 그렇게 겁을 먹고 도망칠 놈들이라면 이런 곳에 여자를 끌고 오지도 않았을 거다.

겁먹은 눈으로 ‘안 돼!’ 라고 소리가 난 곳을 집중했다. 그리고 끝내 그들은 남자애 혼자 있는 것을 발견했다.

“뭐야, 제기랄!”

퍽!

사내놈이 용기 있게 나선 남자애의 면상을 후려갈겼다. 그런데 뭔가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심은 없던 귀신도 만드는 법. 난 자꾸 이 상황이 의심됐다.

“으윽!”

남자애는 숨이 막혔는지 바로 무릎을 꿇었고 사내놈은 남자애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개처럼 끌고 나왔다.

“네가 소리쳤어? 미쳤구먼? 정의의 사도가 되고 싶어서 미친 거야!”

남자애는 여자의 다급함에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앞으로 나섰지만, 사내놈의 구타에 잔뜩 겁에 질린 것 같았다. 역시 용기만 있는 남자애인 것 같았다.

난 바로 인상을 찡그렸다.

‘왜 나선 거야!’

조금만 더 지켜보기로 했다. 정말 뭔가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남자애를 본 유철은 인상을 찡그렸다. 딱 봐도 저 표정은 남자애를 알고 있다는 눈빛이다.

“유, 유철아!”

남자애는 다급한 마음에 유철을 불렀다. 남자애가 유철을 부르자 유철은 인상을 찡그리며 앞으로 나섰다.

“이 병신 같은 새끼가 왜 남의 이름을 부르고 지랄이야!”

퍼퍼퍽!

“으악!”

유철은 남자애의 복부를 자신의 발로 마구 걷어찼다. 그 순간 사내놈 둘이 인상을 찡그렸다. 마치 소년이 맞는 것이 안타깝다는 표정이었다.

‘뭐야?’

난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는 새끼야?”

사내놈 하나가 유철에게 물었다.

“예. 조금 압니다.”

“어떻게 아는데?”

“조금 압니다.”

유철의 말에 사내놈은 인상을 찡그렸다.

“너 참 여기저기 엮인 거 많다.”

“죄송합니다. 형님!”

“이제 어떻게 하냐?”

사내놈은 남자애와 여자를 번갈아 봤다.

‘비슷해! 아주 비슷해!’

자꾸 난 저 두 놈이 나를 산 채로 묻었던 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저 두 놈은 아무리 봐도 조폭 같았다.

‘확실해! 저놈들이다.’

확신이 들자 분노가 끓어올랐다. 하지만 아직은 나서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내가 저놈들을 응징하기에는 보는 눈들이 너무 많다.

우선 여자가 있고 남자애가 있다. 유철이야 잘못을 했으니 혼쭐이 나야겠지만 그래도 학교 짱이니 내 학교생활이 귀찮아질 것 같았다.

난 이렇게 힘이 있으면서도 이것저것을 생각할 만큼 비겁했다. 사실 이런 곳에서 위기에 처한 여자를 구하는 것은 영화에나 있는 일일 거다.

난 보통 사람이라고 자부한다.

보통 사람은 대부분 나처럼 어쩔 수 없이 비겁할 거다. 그리고 난 힘이 조금 더 강하니 그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더 비겁한 것뿐이다.

“뭐가 어떻다는 거야?”

깍두기 머리의 사내놈이 남자애를 봤다.

“몰라서 물어? 이 병신아!”

“뭐가?”

“저 빙신 같은 새끼가 유철 새끼 이름 불렀잖아. 저년도 들었을 거고. 그리고 저 새끼도 우리가 하는 짓을 봤고.”

“그래서?”

“그래서 뭐? 이 병신아, 아직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서 물어?”

“어쩌지?”

“이럴 때는 입막음이 최고지.”

사내놈이 남자애와 여자를 보며 피식 웃었다. 남자애는 덜컥 겁이 나는 눈치였다. 그런데 그 겁먹은 눈빛이 거짓처럼 느껴졌다.

‘왠지 가짜 같다.’

분명 뭔가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뭔가 있어.’

그리고 난 두 놈의 얼굴에 집중했다. 저놈들이 나를 산 채로 묻었던 놈들이 맞는다면 저놈들은 무척이나 잔인한 놈들이다. 남자애와 여자애를 나처럼 정말 산 채로 묻을 수도 있는 놈일 거다.

“어떻게 하시려는 겁니까? 설, 설마 죽이려는 겁니까?”

유철이 놀라 사내놈들에게 물었다.

“야 너 저 새끼 죽일 수 있어?”

“예? 그, 그게 조직이 명령하시면…….”

“미친 새끼!”

“죄, 죄송합니다.”

“죽이고 교도소 가서 평생 썩을래?”

“그, 그게…….”

학교 일진인 유철이 말까지 더듬었다. 정말 남자애는 끼지 말아야 할 일에 끼어든 거다.

“씨발! 둘 다 싫지. 그러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돼.”

“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유철은 사내의 얼굴을 뚫어지게 봤다.

“저 새끼가 먼저 하게 만들면 하나는 해결되는 거지. 킥킥킥!”

“그, 그럼 저년은 어떻게 합니까?”

유철은 여자를 봤다.

“유, 유철아!”

남자애는 애원하듯 유철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유철 역시 사내놈들의 말에 동의하고 있는 눈빛이다.

“조용히 해, 이 병신새끼야!”

퍼퍼억!

정말 유철이라는 놈은 나쁜 놈이 분명할 거다.

‘휴우. 나설까? 말까?’

난 이 순간에도 고민했다. 정말 행동하지 않는 힘은 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쉽게 행동을 하기에는 여전히 보는 눈이 많다.

‘어떻게 하지?’

계속 고민을 했지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밑바닥까지 굴러떨어졌을 때 은혜를 입고 새 삶을 찾았는데 내가 저들을 도와주지 않으면 난 예전처럼 개새끼다.

‘그래. 이제 개처럼 살지 말자.’

난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때까지 남자애는 유철에게 무릎을 꿇린 상태로 가슴과 얼굴을 맞고 있었다.

“으윽!”

“그러니까. 학원 끝났으면 집으로 가지, 왜 이 길로 오고 지랄이야!”

“유, 유철아! 살, 살려 줘.”

남자애는 여자가 애원했던 것처럼 애원을 했다. 하지만 그 애원이 먹힐 리는 절대 없을 것 같았다. 그 애원도 약간 거짓 같았다.

유철은 남자애를 내려 보다가 천천히 무릎을 꿇고 있는 남자애 앞에 무릎을 꿇고 남자애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살고 싶지?”

“으응!”

“그럼 저년이랑 해. 저 형님들 정말 무서운 형님들이야.”

유철의 말에 남자애는 여자를 봤다. 긴 생머리에 청바지를 입고 있는 것이 고딩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여자는 남자애가 바라보자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살려 달라고 애원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남자애는 이 순간 누구를 살려 주고 말고 할 여력이 없었다.

“유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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