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17화
소란스러운 경찰서 안.
나는 정말 죄인이 된 것처럼 수갑을 차고앉아 있었다. 난 지금 조사를 받고 있다. 물론 내 옆에 있는 어떤 남자도 조사를 받고 있었고, 여기저기 조사를 받는소리가 들리고 고함과 접대부들의 앙칼진 목소리도 간혹 들려온다.
바른 자세로 앉아 있는 나를 보며 그 앞으로 경찰 한 명이 서류철을 탁! 하고 책상에 던지며 내 앞에 앉는다. 그의 옆에 김 순경이 따라와 섰다.
“현행범이라고?”
“예. 여자의 팬티를 벗기려는 것을 잡았습니다.”
“그럼 미수네.”
“꼭 따지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피해자의 다리에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건 정황증거잖아.”
“그렇습니다.”
내 앞에 앉은 경찰의 계급이 경장인 모양이다. 윤 경장은 날 보면서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현행범이니까 질질 끌지 말고 빨리 끝내자.”
이미 난 이들에게 있어서 성폭행 미수범이나 성폭행범에 불과했다.
“오해가 좀 있는 것 같은데 저 그렇게 나쁜 놈 아닙니다.”
내 말에 윤 경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다가 김 순경을 봤다.
“이 피의자, 현행범이라면서?”
“그렇습니다. 분명 성폭행범입니다.”
“정말 오해가 있는 겁니다. 그 아가씨 불러 주면 금방 오해가 풀릴 겁니다.”
“오해고 육회고 난 상관없고. 처음에 그렇게 말해. 알았어? 이름이나 빨리 말해!”
난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러자 윤 경장이 앞에 있던 서류철로 내 머리를 후려쳤다.
팍!
그래도 선생님이 때리는 출석부보다는 안 아프다. 이런 상황에서 한가하게 이런 생각이나 하는 것은 여자가 오면 오해가 금방 풀릴 거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름! 아, 짜증 나네! 이름이 뭐냐고, 개새끼야!”
“은성입니다.”
난 마지못해 대답했다.
“성은?”
“최은성입니다.”
난 아줌마가 지어 준 이름을 부끄럽게 경찰서에서 처음 말했다.
“나이?”
조사는 형식적이면서도 무미건조했다.
“17살입니다.”
“고삐리?”
윤 경장은 인상을 찡그렸다.
“예. 고 1입니다.”
“어린놈의 새끼가 벌써! 아휴! 확 이걸.”
윤 경장이 다시 서류철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넓은 면이 아니라 모서리로 내 머리를 세차게 내려찍었다.
탁탁탁!
난 인상을 찡그렸다. 이번에는 출석부보다 더 아프다.
“아프지, 새끼야!”
“예.”
“여자는 더 아파! 가슴이! 성폭행이 어떤 것인 줄 알아?”
“피해자도 와 있으니까. 속 시원하게 삼자대면해 보면 진실이 밝혀지잖습니까.”
“닥쳐!”
윤 경장은 날 노려봤다.
“억울합니다. 피해자가 없는 것도 아니고 왜 물어보지 않는 겁니까?”
“닥치라고 했다.”
윤 경장은 다시 서류철을 들었다. 그러다 휴~ 하고 한숨을 쉬며 서류철을 내려놓았다.
“너같이 아니라고 지랄을 하는 놈 중에 아닌 놈 난 못 봤다.”
“전 그런 놈들하고 다릅니다. 분명 전 아닙니다.”
정말 난 억울했다.
“오해가 있는 겁니다. 제가 조금 의심스러운 행동을 했지만, 그건 분명 오해입니다. 아까 그 아가씨한테 한 번만 물어봐 주십시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강변을 해도 윤 경장은 귀를 막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자기가 할 질문만 했다.
“학교?”
“그, 그게…….”
“학교?”
“영등포 고등학교요.”
“1학년이지?”
“예.”
“담임 전번 불러 봐. 그리고 부모님 전번도 부르고.”
“그, 그게……. 정말 오해라니까요. 한 번만 그 아가씨 만나게 해 주십시오. 그럼 오해가 시원하게 풀릴 겁니다.”
“만나서?”
“만나서 차근차근 이야기하면 아가씨가 다 증언을 해 줄 겁니다.”
“너, 눈으로 협박하려고 그러는 거잖아. 이래서 친고죄가 폐지되어야 한다니까.”
* * *
아담한 경찰 숙직실.
박은진은 여전히 넋이 나간 상태로 숙직실 구석이 앉아 눈물만 흘리고 있다.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정말 충격이 큰 모양이었나 보다. 그 옆에서 여경이 박은진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리고 또 진술을 받기 위해 박은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같이 있었다.
철컥!
“여깁니다.”
숙직실 문이 열리고 중년의 남자 하나가 심각한 얼굴로 들어왔다. 남자는 박은진을 보자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아, 아빠!”
그리고 다시 박은진은 울음을 터트렸다.
“은진아!”
“따님께서 충격이 크십니다.”
“으음.”
“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성폭행 미수 사건인 것 같습니다. 아직 따님께서 진술하지 않았지만…….”
경찰의 말에 박은진의 아버지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딸에게 다가가 박은진을 조심히 안아 줬다.
“집에 가자. 다 잘 될 거야! 그러니 집에 가자.”
“아, 아빠!”
“울지 마. 응. 다 괜찮을 거다. 그러니 울지 마.”
울지 말라고 말을 하는 박은진의 아버지였으나 그 역시 목소리가 먹먹해지고 있다.
“아, 아빠 그게, 그게…….”
“그래! 알았다. 아무 말도 할 필요 없으니까. 그냥 우선 집에 가자.”
그렇게 부녀는 숙직실을 빠져나갔다. 정말 박은진은 아무 진술도 없이 경찰서를 나가려 했다.
* * *
경찰서 안. 여전히 어수선하고 시끄럽다. 멀리서 윤 경장과 나는 여전히 책상에 앉아 조사를 받고 있고, 숙직실 문을 열고 박은진과 그의 부친이 박은진을 안고 걸어 나왔다. 그 뒤를 여경이 따르고 있다.
여경이 급하게 윤 경장에게 걸어왔다. 그리고 귀에 속삭였다.
“선배님. 피해자 가족이 진술 없이 그냥 데리고 가겠다는데요.”
“뭐?! 진술도 아직 안 했는데 데리고 가면 어떻게 해. 설득해야지. 설득! 친고죄인 거 몰라?”
“아는데…….”
경찰이 말꼬리를 흐렸다. 여경의 모습에 윤 경장은 인상을 찡그리며 일어나 급하게 경찰서 밖으로 나가려는 박은진과 그의 아비를 불렀다.
“저기 죄송합니다.”
“뭡니까?”
“그게 죄송한 말씀인데 현행범이라 피해자 아가씨가 진술만 해 주시면 입건이 되거든요?”
“우선 치료부터 하고요.”
“부모님 마음은 제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성폭행이든 미수든 지금 상태가 가장 확실한 증거거든요. 치료하시고 오면 증거가 없어지기도 합니다.”
윤 경장의 말에 박은진의 부친은 윤 경장을 노려봤다.
“내가 치료부터 한다고 분명히 말했소. 그리고 진술을 하겠습니다.”
단호하다.
“임의 동행을 48시간 이상 할 수가 없어서.”
“현행범이잖습니까?”
“으음. 알겠습니다.”
피해자 가족이 단호한 모습을 보이자 윤 경장은 한발 물러섰다.
그리고 윤 경장은 정중하게 박은진의 부친에게 인사를 하고 박은진은 떨리는 눈동자로 힐끗 나를 봤다. 물론 나 역시 그녀를 봤다.
그리고 박은진은 내게 그 어떤 진술도 하지 않고 경찰서를 나갔다. 윤 경장은 인상을 찡그리며 내게 걸어왔다.
“박 형사. 이 새끼 철창에 우선 넣어 둬.”
“무슨 말씀입니까? 저 아가씨 진술은 받아야죠. 저, 죄가 없습니다. 없다고요!”
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소리 지르지 마, 새끼야! 경찰서가 네 집 안방이야? 죄가 없으면 내일 저 아가씨가 와서 진술을 해 주겠지.”
“그때까지 제가 여기에 있어야 하는 게 억울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억울하면 죄를 짓지 말던가.”
경찰은 내게 소리를 질렀고 나 역시 경찰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어서 저 아가씨 잡아요. 어서!”
“시끄럽다고. 그리고 죄가 없다 치고, 아까 그 아가씨 치료받고 오면 진술하겠지. 정말 죄가 없으면 풀려나는 거고, 아가씨 안 와도 풀려나는 거고. 더럽게 말이야!”
“저, 집에 가야 합니다.”
“너희 집? 생각해 보니까 집에 연락하는 것을 깜박했네. 참, 내 정신 좀 봐. 집이 어디야. 연락은 해야지.”
그리고 끝내 내가 구해 준 아가씨는 경찰서를 빠져나갔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발악을 해도 안 되는 일은 있나 보다.
“집이 어디냐고?”
난 잠시 고민을 했다. 하지만, 알리지 않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놔두세요. 괜히 걱정하시니까요. 별일도 아닌데.”
난 사실 그때까지 모든 일이 잘 해결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대한민국은 법치 국가다. 그리고 내가 한 행동은 여자를 도우려고 한 일이다. 그러니 죄가 없었다. 물론 참 애매한 타이밍에 걸린 상황이지만 말이다.
“어라? 정말 죄가 없는 거야?”
“예. 없다니까요. 없습니다. 저, 사나이라고요. 사나이!”
“사나이 다 죽었다.”
윤 경장은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