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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18화 (18/210)

흑막의 신! 18화

윤 경장이 저렇게 웃는 것은 30% 정도 나를 믿고 있다는 의미다.

“너, 정말 죄 없어야 한다. 아니면 내가 사람한테 또 실망하는 꼴이 생긴다.”

“정말 저는 무죄입니다.”

“그런데 왜 아가씨 팬티는 벗기려고 했어?”

어떻게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 장면이기도 했다.

“입히려고 한 겁니다.”

“입혀?”

“예.”

“누가 벗겼는데?”

“남자 새끼인데, 유철이가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유철이가 누군데?”

“우리 학교 일진입니다.”

윤 경장은 고개를 돌려 김 순경을 봤다.

“아침에 바로 학교에 가서 유철이라는 학생 참고인으로 데리고 와!”

“예, 알겠습니다.”

그때 윤 경장의 책상에 있는 전화가 울렸다.

따르릉! 따르릉!

“윤 경장입니다.”

-서장이오.

“충성! 무슨 일이십니까? 서장님!

-내 방으로 좀 와요.

“예, 알겠습니다.”

윤 경장은 전화를 끊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서장님이 왜 나를 보자는 거지?”

* * *

정원이 넓은 집.

구석에 작은 연못이 있고, 현관 앞에는 박은진의 어머니가 근심 어린 얼굴로 박은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박은진과 자신 남편의 모습이 보이자, 곧장 뛰어가 박은진을 살폈다.

“네가 경찰서에 왜 간 거야?”

박은진의 모친이 박은진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많이 놀랐어. 들어가 좀 눕혀요.”

“엄, 엄마…….”

“은진아. 너, 왜 이래? 밖에서 무슨 일 있었어?”

“그냥 아무것도 묻지 말고 눕히라고.”

“여보.”

“눕히라니까!”

은진의 부친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곧바로 돌아서서 밖으로 나가려 했다.

“지금 어디 가요? 애가 이 지경인데?”

“몰라도 돼.”

“어디 가는데요?”

“갈 곳이 있어. 애나 잘 보고 있어.”

은진의 부친은 돌아서려다가 몸을 돌려 박은진에게로 다가가 그녀의 뺨을 살짝 어루만져 줬다.

“아빠가 올 때까지 엄마하고 잘 있을 거지?”

“아, 아빠! 그, 그게…….”

박은진은 이제 정신이 드나 보다. 그리고 은성이 죄가 없다고 말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부친이 그냥 쉬라고 계속 말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중에 다녀와서 이야기하자.”

“아빠! 그래도…….”

“다녀와서.”

박은진의 부친은 박은진의 손을 한 번 꼭 잡아 주고 현관 철문을 쾅하고 닫으면서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경찰서에 가기 전에 걸려 왔던 한 통의 전화 목소리가 떠올라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박 사장이시오? 늦게 전화해서 미안하오. 요즘 박 사장 공장이 자금 압박을 받는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그래서 말인데 내가 좀 할 이야기가 있는데. 차 보내겠소.

곧장 전화를 뚝 끊었다. 바로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누구라고 밝히지도 않았다. 그냥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정말 문 앞에 체어맨 한 대가 서 있었다.

은진의 부친인 박 사장이 정문에서 나오자 체어맨 운전기사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모시겠습니다.”

“무슨 일이오?”

“저는 잘 모릅니다. 가시겠습니까?”

“내가 갈 이유가 있소?”

“가시려고 나오신 것 아닙니까.”

맞는 말이다.

* * *

“지금 무슨 말씀입니까?”

윤 경장은 경찰서장의 말에 이해가 되지 않아서 되물었다.

“그 미수 사건 현행범이니까. 참고인 같은 거 소환하지 말고 잘 마무리를 해요.”

“예? 하지만 피의자가 사건 일체를 부정하고 있어서 참고인 조사가 필요합니다.”

윤 경장의 말에 경찰서장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 사람 참 답답하네. 내가 왜 자네를 불렀겠는가? 나도 전화 받고 자네를 부른 거야. 그러니 잘 마무리해서 덮어.”

서장의 말에 윤 경장은 기겁했다.

“전화를 받으셨다고요?”

“그래! 받았어. 쪽팔리지만 내 선에서 막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이건 간단한 사건 아닙니까?”

“자네가 처리하기에 따라서 아주 간단하지.”

“하, 하지만…….”

“자네 같은 젊은 사람이 왜 그래? 빨리 진급해야지. 경사 빨리 달아야 흰머리 나기 전에 경위 다는 거 몰라?”

경찰서장의 말에 윤 경장은 인상을 찡그렸다.

“젊은 사람이니까. 무슨 말인지 잘 알 거야. 현행범이라며. 그러니 어서어서 검찰에 송치시켜!”

“알, 알겠습니다.”

진급을 빌미로 사건을 마무리하라는 서장의 말에 윤 경장은 힘없이 알았다고 대답을 했다.

“나가보겠습니다.”

“그래요. 나가서 일 잘 처리해요.”

“충성!”

윤 경장은 힘없이 경례했다.

* * *

남자애가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고개를 처박은 채로 웅장한 거실에 앉아 있고, 그의 조부인 최 회장이 남자애를 노려보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 긴 생머리의 여자가 아무 말 없이 둘을 보고 있다.

최 회장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더니 거실 구석에 있던 골프채를 꺼내 남자애를 내리치려 한다. 급하게 여자가 최 회장을 막아선다.

“참으세요. 아버지.”

여자의 만류에 들었던 골프채를 다시 내려놓고 남자애를 노려봤다.

“최상혁! 네놈은 이 할아비를 계속 실망하게 할 거냐?”

“죄, 죄송합니다.”

“방구석에 처박혀 지내더니 이제는 뭐? 성폭행 미수를 해! 네놈이 애지중지 키워놨더니만 이 할아비의 얼굴에 똥칠해!”

남자애의 이름이 최상혁인가 보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참으라고 했던 여자가 최상혁을 차가운 눈으로 노려봤다. 저런 눈빛은 무언가 숨기면서 노리는 게 있는 눈빛이다.

“참으세요.”

다시 옆에 있던 여자가 최 회장을 말렸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내리치려는 듯 최 회장은 골프채를 다시 한번 치켜들었다.

“저, 그 누나 좋아한다고요.”

“뭐야?”

“그 누나 좋아한다니까요.”

최상혁은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말했다.

“미친 새끼!”

“그건 잘못했어요. 할아버지. 하지만 그만큼 좋아한다고요.”

사실 최상혁은 은성에게 오지게 두들겨 맞고 도망치다가 경찰차를 봤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찰의 뒤를 밟았고, 우연히 은성이 오해를 받아서 수갑을 차는 모습을 보고 바로 자신의 조부에 이실직고하고 뒤처리를 부탁했다.

사채업계의 큰손.

자금력을 이용해서 여기저기 수많은 뇌물을 뿌리고, 로비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최상혁을 그의 할아버지가 보지 않을 때 여자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조롱하듯 봤다. 물론 최상혁도 그런 눈빛을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은밀히 자신을 조롱했다.

박은진이 올바른 진술을 하게 되면 분명 자신이 걸려들어 갈 거라는 것을 최상혁은 분명 알고 있었다.

“잘못했어요. 할아버지.”

“네가 뭘 잘못했는지는 아느냐? 이 썩을 놈의 손자 녀석!”

최상혁은 최 회장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았다.

“무조건 잘못했어요. 다시는 사고 안 칠게요.”

“아버지, 진정하세요. 우선 수습부터 하셔야죠.”

“가은이 너는 가만히 있어.”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최가은이 60대 최 회장을 아버지라 부른다.

“말리지 마라! 저 개망나니 오늘 죽여 버려야 집안이 안 망한다.”

최 회장이 소리를 지르자 최상혁이 더욱 최 회장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늘어진다.

“살, 살려 주세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저, 교도소 가기 싫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최 회장은 자신을 향해 애걸복걸하는 최상혁을 한참 노려보다가 골프채를 휘둘러 옆에 있던 도자기를 깨 버린다.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깨지는 도자기.

딱 봐도 진품 고려청자 같다.

깨진 도자기를 한참이나 보던 최 회장이 눈썹을 실룩거리다 골프채를 집어 던진다.

“바꿔 태어나야 했는데. 가은이하고 저 망나니하고…….”

무릎을 꿇고 있는 상혁이 최 회장의 말에 가은을 노려보지만, 가은은 그냥 아무 말 없이 최 회장을 부축하고 있다.

조심스럽게 가정부가 거실로 들어오고, 가정부 뒤를 따라 박 사장이 들어온다. 최 회장이 힐끗 은진의 부친을 본다.

“불쑥 전화해서 미안하오. 나 명동 최 회장이오. 아실지 모르지만, 사채업을 좀 크게 하고 있소.”

최 회장의 말에 박 사장은 기겁했다. 사실 그 역시 최 회장에게 공장과 집을 담보로 돈을 끌어 쓰고 있었다.

“저, 저번에 한 번 뵈었습니다.”

“그랬나요?”

“예.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우리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가은아! 상혁이 데리고 올라가거라.”

“예. 아버지.”

그리고 최 회장은 박 사장에게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고, 그때마다 박 사장의 얼굴은 굳어졌다.

“한 번만 눈감아 주면 내가 빚은 없던 것으로 하겠소.”

“그,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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