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21화
“나중에, 정말 나중에 네가 나쁜 일을 하다가 나한테만 잡히면 그때 정말 딱 한 번 너의 편에서 주마.”
순간 어이가 없었다.
“그게 윤 경장님이 저에게 해 주실 수 있는 최선인가요?”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제가 죄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시죠.”
“몰라, 그건.”
“앞으로 살면서 비겁하게 굴지 마세요.”
“그렇게 사는 게 참 힘드네.”
윤 경장은 그렇게 인상을 찡그렸다.
“다음에 볼 때는 좀 더 경찰다워지세요.”
난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내 억울한 사건에 한 명은 내게 용서를 구했다.
저기 내 앞에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사는 윤 경장은 평생 죄책감을 느끼고 살게 될 것이다.
“경, 경찰답게…….”
“예.”
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때 문득 난 그날 조폭 놈들이 디카로 현장을 찍고 있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윤 경장을 빤히 봤다.
‘윤 경장을 믿을 수 있을까?’
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어…….’
난 다시 윤 경장을 봤다.
“나한테 뭐 할 말이 있니?”
“없습니다.”
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저, 저기. 증거가 있으면 어떻게 되는 거죠?”
“증거?”
“예.”
“증거가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지. 왜, 증거가 될 만한 것이 있니?”
“그, 그게…….”
“그게 뭐? 말해 봐. 증거가 있다면 정말 네가 말한 것처럼…….”
순간 윤 경장의 눈빛이 빛났다.
저런 눈빛은 먹잇감을 쫓는 하이에나의 눈빛이다.
‘아니다. 절대 내 편이 아니야!’
난 순간 그런 생각을 했다.
“아니요. 없습니다.”
난 디카 생각을 했다가 인상을 찡그렸다. 어쩌면 그게 내 누명을 벗겨 줄 마지막 증거일 수도 있다. 그러니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다음에 뵙죠. 지금은 제가 죄인이 되겠지만, 아주 나중에는 윤 경장님이 죄인이 될 겁니다.”
내 말에 윤 경장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윤 경장은 은성을 다시 철창에 집어넣고 경찰서에서 나와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접니다.”
휴대전화를 잡은 손이 살짝 떨렸다.
-뭐 알아내신 것이 있으십니까?
중저음의 남자 음성이 휴대전화에서 들렸다.
“없습니다.”
-마무리를 잘해 주시기 바랍니다.
* * *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증거는 없었다.
물론 유철이라는 놈을 증인으로 법정에 세웠지만, 유철이는 거짓된 알리바이를 만들어 가지고 왔다.
아줌마, 아니 엄마는 나 때문에 변호사 선임 비용에 많은 돈을 써야 했다.
보통 이럴 때는 합의를 하는 것이 보통인데, 박 사장이라는 피해자의 아버지는 합의도 해 주지 않았다.
그럼 형량이 무거워진다.
그렇게 난 죄인이 되어 있었다. 유철의 알리바이도 법정에서 받아들여 졌다. 이상할 만큼 허술한 알리바이였지만 그냥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그리고 유철은 자신이 때린 남자애 역시 모른다고 했다. 아니, 남자애 자체가 없었다고 했다.
“정말 아닙니다. 전 저 여자를 성폭행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난 법정에서 끝까지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난 아무런 반항 없이 박은진의 얼굴과 박 사장의 얼굴을 머릿속에 각인시키며 소년원으로 끌려갔다.
“절대 너희들의 얼굴을 잊지 않는다.”
난 조용히 중얼거리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
호텔 커피숍.
가은이 호텔 커피숍 창가에 차분히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가은의 빼어난 미모 때문인지, 커피숍 안에서 유독 가은의 존재가 돋보인다. 또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 역시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가은을 힐끗 보고 있었다.
물론 남자와 여자가 가은을 보는 이유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남자는 가은의 빼어난 미모에 넋이 나가 있었고, 여자들은 가은이 몸에 두르고 있는 명품에 넋이 나가 있었다.
그때 커피숍 입구에서 제법 날렵해 보이는 사내 하나가 천천히 가은이 있는 테이블 쪽으로 다가와 깍듯하게 묵례했다.
“앉으세요. 은 실장님.”
“예. 아가씨.”
“부탁드린 것은 잘 알아봤나요?”
“예.”
은 실장은 짧게 대답을 했다.
“어떤가요?”
“우선 아가씨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도련님은 박은진 양을 스토커 한 것이 맞습니다.”
“그게 중요하지는 않죠. 누가 같이 있었나요?”
“예. 우선 도련님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3명의 인물이 있었습니다.”
“3명이나요?”
“그렇습니다. 우선 법정에 섰던 유철이라는 학생이 있습니다. 물론 회장님께서 회사 직원을 시켜 입막음했습니다.”
“회사요? 웃기네요. 요즘 사채업도 회사라고 하나 보네요.”
가은의 조롱에 은 실장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미안해요. 좀 웃겨서. 계속해 보세요.”
“예.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은 조폭이었습니다.”
“조폭? 설마 상혁이가 동원한 조폭인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세 명은 서로 아는 사이고, 도련님께서는 그날도 박은진 양을 스토킹하다가 우연히 같은 장소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요? 전 그게 이해가 되지 않네요.”
“그런데 먼저 무슨 이유로 회장님 모르게 조사를 하시는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은 실장의 물음에 가은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살짝 웃었다.
“은 실장을 회사의 중역으로 만들어 드리려고요.”
“예?”
“아버지가 하시는 사채업이 돈이 많이 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저희가 하는 일과 은행이 하는 일이 뭐가 달라요. 전 좀 더 밝은 곳으로 나가려고요.”
가은은 야망이 큰 여자였다.
“그거하고 도련님의 일하고 무슨 연관이 있는지…….”
“상혁이가 개망나니라는 것을 아실 거예요.”
가은의 말에 은 실장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제가 판단할 부분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네요. 하던 이야기부터 마저 하죠.”
“예. 아가씨! 제가 조사한 바로는 유철 군과 두 명의 조폭들이 박은진 양을 겁탈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도련님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최은성 군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죠?”
“최은성 군은 말 그대로 박은진 양을 구하려고 했습니다.”
가은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 왜 상혁이가 잔뜩 겁을 먹고 아버지에게 달려와서 살려 달라고 애원을 한 거죠? 그냥 지켜만 봤으면 죄가 되지 않잖아요.”
“그렇습니다. 제가 알아본 결과로는 어떤 계기로 도련님 역시 박은진 양을 구하는 처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요?”
“최은성이 유철 군과 나머지 두 조폭을 물리치고 박은진 양을 구하고 나서 도련님이 실수하신 것 같습니다.”
“실수라? 그게 실수하고 표현이 되는군요.”
가은이 차갑게 말했다. 역시 가은은 최상혁을 궁지에 몰아넣을 계략을 꾸미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네요. 왜 최은성이라는 애가 우리 상혁이를 때린 걸까요?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제가 아는 것은 확실히 도련님께서 박은진 양에게 나쁜 짓을 하려고 했다는 겁니다.”
“누구한테 들은 이야기입니까?”
“조폭에게 들었습니다.”
“그럼 결론은 약간의 시간적 공백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은 실장은 매우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차차 상황을 지켜봐야겠네요.”
“회장님이 아시면 저 죽습니다. 아가씨!”
“사실 저번에 죽었을 것을 제가 구해드렸잖아요. 그러니 이제 은 실장님은 제 사람입니다.”
은 실장은 자금 회수를 하는 조폭이었다. 물론 완벽한 조폭은 아니지만, 조폭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리고 최 회장의 측근이기도 했다. 이렇게 가은은 은밀히 아버지의 측근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어, 어떤 일을 하시려는 겁니까?”
“전 저축은행을 설립할 생각입니다. 돈 벌면서 욕먹을 필요는 없잖아요.”
가은의 말에 은 실장은 눈이 커졌다.
“물론 사장은 제가 되어야 할 겁니다. 호호호.”
은 실장은 가은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최은성이라는 애 출소 후에 잘 좀 지켜보세요. 어떻게 움직일지 궁금하네요.”
“알겠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