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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26화 (26/210)

흑막의 신! 26화

“안 때려.”

“고, 고마워.”

뿔테 안경은 바로 자리를 비켰다. 그리고 혹시나 내 마음이 변할까 뒷걸음질을 치며 매점을 빠져나가려 했다.

“야!”

난 다시 소리를 지르며 뿔테 안경을 불렀다.

딸꾹!

내가 소리를 지르자 뿔테 안경은 기겁해서 딸꾹질까지 했다.

“왜, 왜?”

“너 이리 와 봐.”

내가 오라고 하자 뿔테 안경은 울상이 돼서 마지못해 머뭇거리며 내 앞에 섰다.

“왜? 내가 뭐 더 잘못했어?”

“잔돈 받아가야지.”

“잔돈?”

“그래 잔돈.”

짤랑! 짤랑!

난 뿔테 안경을 보며 환하게 웃어 줬다.

“너 친구 없지?”

“으응.”

“나도 친구 없다.”

“뭐?”

뿔테 안경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멀뚱멀뚱 날 빤히 봤다.

“나도 친구 없다고. 너 내 소문 들었냐?”

내 물음에 뿔테 안경은 인상을 찡그렸다. 들은 모양이다.

“나, 나보고 친구 하자고? 너 형이잖아.”

“1살 정도는 친구 해도 돼.”

뭐 사실 나도 친구가 없다. 그리고 창성을 깨고 나서 이 학교에 있는 것들은 모두 뿔테 안경처럼 날 대한다. 무서워서 피하는 건지, 더러워서 피하는 건지 구분이 되지는 않지만 난 분명 본의 아니게 왕따가 되어 버렸다.

“정, 정말 나랑 친구 하자고?”

“그래. 싫어?”

“그, 그게…….”

“...미수범이라는 소문 때문이라면 친구 안 해도 되고.”

“그건 아. 아니고.”

“친구 해 놓고 돈 뜯어내려면 친구 같은 거 하지 마.”

그때 뒤에서 앙칼진 계집애의 목소리가 매점 안에 쩌렁쩌렁 울렸다. 난 고개를 돌려 계집애를 봤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다.

‘어디서 봤지?’

난 기억을 더듬어 봤다.

‘수정이다.’

3학년 킹카! 수정이다. 난 옛 추억이 떠올랐다. 자꾸 이상하게 부딪친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 년 만에 본다.

첫 만남은 복도에서 시비!

이번에는 매점에서 시비를 건다.

그런데 예전과 다르게 성장 발육이 너무나 좋아졌다. 그것도 일 년 만에.

‘여전히 째려보는 건 안 달라졌네.’

눈이 얼굴의 반이고 키도 167cm쯤 되어 보이는 수정이 날 째려보고 있다.

“뭐? 뭔 소리야?”

“너희 같은 것들은 다 그렇게 말하고 애들 돈 갈취하잖아.”

“그래. 그러니 가서 빵 먹자.”

난 뿔테 안경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그때 유철이 마치 조폭처럼 자신의 나와바리를 살펴보는 듯 거드름을 피우며 매점 입구로 들어왔고, 그 뒤에는 창성이 얼굴에 피떡이 된 상태로 유철을 따라왔다.

유철은 매점으로 들어와서 나를 보자 찰나의 순간 인상을 찡그렸다가 다시 지켜보고 있는 아이들을 의식했는지 화통하게 웃었다.

“야! 은성아!”

유철은 마치 집 나간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게 내게 다가왔다.

“잘 있었나? 이게 얼마 만이냐?”

“우리가 이렇게 반가워야 할 사이인가?”

“친구끼리 왜 그래.”

“누가? 내가?”

난 당장이라도 유철의 면상을 후려갈기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참아야 한다. 내가 이곳에서 유철에게 주먹을 뻗으면, 여전히 날 째려보고 있는 저 발육은 우수하지만, 쌈닭 같은 수정이 날 저런 것들과 동급으로 분류해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복수와 응징은 아주 천천히 잔혹하게 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리고 난 유철의 자백도 받아야 한다.

‘분명 내가 모르는 엄청난 음모가 있을 거야!’

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친구끼리 왜 이래! 추억도 공유하고 있으면서.”

“이죽거릴 수 있을 때 많이 이죽거려라.”

난 분노를 참고 돌아섰다.

“친구야! 가자.”

난 뿔테 안경을 봤다. 그러자 뿔테 안경이 나와 유철을 번갈아 보며 어떻게 할지 몰라 망설였다. 힘없는 아이의 당연한 행동이다.

원래 고래 싸움에 터지는 것은 새우 등이니 지금 딱 뿔테 안경이 그 짝이다.

“너, 그러다 졸업할 때까지 친구 없다.”

내 마지막 말에 뿔테 안경은 뭔가 결심을 했는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내 옆에 섰다.

“내 이름은 창권이야!”

“창권이라……. 이름 좋네. 가자!”

난 다시 창권에게 어깨동무했다.

그런데 내게 시비를 걸었던 수정이 나와 유철을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유철 역시 내게 등을 돌리고 수정을 보며 방긋 웃었다.

“수정아! 더 예뻐졌네.”

유철의 말에 수정은 대답도 없다. 하지만 유철은 수정이 대답하든 말든 상관이 없다는 듯 수정 옆에 바짝 달라붙었다.

“왜 그래. 내가 잘해 준다니까.”

아마도 유철은 수정에게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수정이는 유철에게 차갑기만 했다. 난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리고 난 유철을 무시하며 매점을 빠져나가는 수정의 팔짱을 과감히 꼈다.

“수정이 누나! 가서 빵 먹자.”

이건 유철에 대한 내 도발이다. 내가 갑작스럽게 자신의 팔짱을 끼자 수정은 화들짝 놀랐다가 유철을 의식했는지 내 팔을 뿌리치지 않았다.

“너 뭐 하는 거야?”

수정은 살짝 내게 속삭였다.

“너도 유철 싫지? 나도 저 새끼 싫거든.”

“너 그러다가 유철에게 죽어.”

수정은 살짝 날 걱정해 줬다.

“유철에게 죽을 정도면 복학도 하지 않았어.”

난 그렇게 말하고 수정의 팔짱을 더 꽉 꼈고, 그 순간 물컹한 수정의 가슴이 팔에 느껴졌다.

‘역시 요즘 여자애들은 발육이 너무 좋다니까.’

정말 딱 봐도 C컵은 될 것 같았다. 내가 더욱 팔짱을 꽉 끼자 수정은 살짝 인상을 찡그릴 뿐 팔짱을 풀지 않았다. 정말 저런 것들의 대빵인 유철이 아주 싫은 모양이다.

“야! 최은성!”

내 돌발 행동에 유철은 꼭지가 돈 듯 매점이 울리도록 쩌렁쩌렁 소리를 질렀고 그 순간 매점은 남극처럼 얼어붙었다.

이럴 때 반응을 하고 돌아서면 지는 것이다. 난 유철의 말을 무시하고 매점을 빠져나왔다.

“야! 최은성! 넌 내 손에 죽는다.”

역시 유철은 수정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에 나와 유철, 둘 중 하나는 이 학교를 떠날 거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나와 수정, 그리고 창권이 매점을 나오자 수정은 바로 내 팔을 뿌리쳤다.

짝!

난 바로 따귀를 맞았다. 물론 눈이 보배기에 수정의 손이 보였지만 그냥 맞아 주기로 했다. 과도한 스킨십에 대한 값 정도라고 하면 될 것이다.

“너 같은 거 끼라고 있는 팔짱 아니거든.”

정말 확실한 쌈닭이다.

“너 사람 묘하게 자극하는 매력 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예쁘다고.”

난 그냥 피식 웃고 돌아섰다. 그리고 수정에게는 관심이 없다는 듯 창권에게 장난질을 쳤다.

“앞으로 형이라고 불러라.”

“형?”

“그래.”

“친구라며?”

“형 싫어?”

창권이 잠시 망설였다.

“친구가 더 좋은데?”

“그럼 친구라고 부르던가. 그런데 너, 뭐 좋아하냐?”

“나 농구 좋아해.”

“나도 농구 좋아하는데.”

창권과 내게 공통분모가 하나 생겼다. 이제 정말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

사용하지 않는 체육관 창고에 유철과 창성, 그리고 똘마니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유철은 수정과 팔짱을 끼고 나간 은성 때문에 똥 씹은 표정으로 담배 필터를 자근자근 씹고 있었고, 창성은 유철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직 눈치 없는 3학년 부짱인 광명만 다른 똘마니들이랑 킥킥거리고 있다.

“킥킥킥! 잘근잘근 잘 씹어 먹었겠다.”

광명이 눈치 없이 유철을 봤다.

광명의 말에 유철이 광명을 봤다.

“닥치고 있어라.”

“왜 그래! 친구끼리.”

“너 요즘 내 말을 씹는다.”

“어?”

조금 전까지 깔깔대던 분위기가 냉기 서린 정적으로 변한다.

“나 소년원에 있는 사이에 너 간이 부었지?”

“그게…….”

“왜 그래요. 형들. 별것도 아닌 거에.”

창성이 유철과 광명의 심각한 분위기를 중재하려는 듯 끼어들었다.

“나쁜 놈아! 넌 언제부터 선배 앞에서 담배 꼬나물었어.”

불똥이 이제는 창성에게 튀었다. 유철의 말에 창성은 바로 담배를 껐다.

“죄송합니다.”

창성이 죄송하다고 말했는데도 유철은 찰싹 창성의 뺨을 때렸다.

“죄송하지.”

“예.”

“그만해. 정말 별것도 아닌 일로 왜 그래?”

이제 광명이 나섰다.

“별것도?”

유철이 광명을 노려봤다.

“그, 그게…… 그러니까.”

“너 씨발! 같은 3학년이라고 좀 봐줬더니 마구 기어오른다?”

“그, 그게 아니고.”

퍼어억!

말까지 더듬는 광명을 향해 유철이 발로 힘껏 내질렀다.

“으윽!”

“꿇어, 개새끼들아!”

유철이 흥분을 하자 바로 똘마니들은 슬슬 서로의 눈치를 봤다.

“두 번 말하게 하네.”

유철은 점심시간에 짜증 났던 일들은 모두 광명에게 푸는 듯했다.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지?”

“응.”

“그럼 맞아야지.”

유철은 바로 무릎을 꿇고 있는 광명의 머리를 마치 축구공인 양 힘껏 발로 사커 킥을 날렸다.

퍼어억!

“으악!”

광명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쫙 뻗어 버렸다.

“야 씨발 놈들아! 함부로 씨불이지 마라. 나 유철이다. 유철.”

“알겠습니다.”

“야! 창성이!”

“예.”

잔뜩 긴장한 창성이 바로 무릎으로 기어 유철 앞으로 기어갔다.

“너 나한테 얼마나 충성해?”

“예?”

갑작스러운 질문에 창성은 이유를 몰라 유철의 얼굴을 빤히 봤다.

“이 새끼도 두 번 말하게 하네.”

유철이 인상을 찡그렸다.

“뭐든 유철 형이 시키면 다 합니다.”

“좋아! 너 며칠 안으로 수정이 따 와.”

“예?”

“씨발! 정성으로 안 되면 몸으로 조진다.”

유철은 인상을 찡그리며 다시 물고 있던 담배를 잘근 씹었다.

* * *

스르륵!

내가 문을 열고 교실로 들어가자 교실 분위기는 순간 다시 얼어붙었다. 정말 이럴 때는 기분이 더럽다.

내가 뭐 호환마마도 아니고 저렇게 눈치를 보며 다른 의미로 왕따를 하니 영 기분이 찝찝했다.

그런데 내가 자리에 앉으려고 할 때 두 놈이 내게로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저, 저기…….”

말까지 더듬는 것을 봐서 내가 정말 호환마마인 모양이다.

“왜?”

난 비딱하게 고개를 돌려서 내게 다가온 두 놈을 봤다.

“저기 이, 이거…….”

두 놈 중 하나가 주머니에서 묵직해 보이는 돈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뭐야 이거?”

“돈……. 받, 받아 줬으면 좋겠어.”

순간 난 어이가 없었다.

“뭐? 왜 주는데?”

“다 이렇게 줘. 아까 창성이도 이렇게 받아갔어.”

“창성이도?”

“응! 보호비.”

난 한 놈의 말에 기가 막혔다. 어린놈의 새끼들이 별짓을 다 하고 다니는 것이다. 마치 창성은 조폭이 되고 나머지 것들은 조폭에게 보호비를 상납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나한테 주는 거야?”

“응. 우린 일주일마다 이렇게 줬어.”

“얼마인데?”

“한 명당 만 원.”

우리 교실에 학생 수가 40명이니 이 교실에서만도 40만 원이나 되는 보호비가 거둬지는 거다. 2학년 남자 반이 총 10개 반이니 일주일에 수금되는 돈이 무려 400만 원이다. 절대 적은 돈이 아니다.

“다른 반에서도 이렇게 하나?”

“응.”

한 놈이 주저 없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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