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28화
최상혁의 방.
최상혁은 한껏 멋을 내고 있었다.
지금 최상혁은 박은진을 만나러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하하! 이런 것을 전화위복이라고 하지.”
최상혁은 요즘 무슨 일을 해도 기분이 좋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박은진을 옆에 둘 수 있으니 뭐를 해도 즐겁기만 한 최상혁이었다. 그런 면에서 최상혁 역시 상당한 사이코였다.
똑똑! 똑똑!
최상혁이 들어오라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가은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가은의 모습을 보자, 웃고 있던 최상혁의 표정이 찡그러졌다.
“내가 내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지?”
가은은 고모를 떠나서 최상혁보다 10살은 많았다. 그런데 최상혁은 가은에게 함부로 말했다. 역시 가은에게는 뭔가 있는 것이 확실했다.
“알려 줄 게 있어서.”
“알고 싶지 않은데?”
“알아야 할 것 같은데?”
가은은 최상혁을 야릇하게 봤다. 그 눈빛에 최상혁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빨리 말하고 가.”
“너 최은성이라는 학생 알지?”
최은성의 이름이 거론되자 최상혁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새끼가 왜?”
“어제 네가 다니는 학교에 복학했다고 하더라.”
“뭐?”
최상혁은 표정이 더 굳어졌다.
“정, 정말 그 새끼가 복학을 했다는 거야?”
“그래.”
가은의 단 한마디에 최상혁은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최상혁은 은성의 싸움 실력을 몸소 느낀 사람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은성이 같은 학교에 복학한 이유는 딱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한 복학. 최상혁은 점점 더 초조했다.
“왜 그렇게 초조한 표정이야?”
“지금 나 놀리는 거야?”
“내가 방법을 알려 주면 나한테 좀 고분고분해질래? 그래도 내가 고모인데.”
가은은 최상혁을 조롱하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방법? 방법이 있어?”
“어떻게 할래?”
“좋아. 좋은 방법이면 고모라고 불러 주지.”
이만큼 최상혁은 급했다.
“넌 나서지 말고 가만히 있어.”
“어떻게 가만히 있어?”
“넌 우리 회사를 앞으로 이끌어 갈 사람이잖아. 그런 사람은 사람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해.”
“사람을 이용하라고?”
“너만큼 은성이라는 애가 학교로 오는 것을 싫어하는 애가 있잖아.”
가은의 말에 최상혁은 씩 웃었다.
“그렇지. 있었지.”
“그래. 그 애가 다 알아서 할 수 있게 넌 뒤에서 조종만 하면 돼.”
가은의 말에 최상혁은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고마워! 고모.”
처음으로 최상혁이 가은에게 고모라는 말을 했고, 가은은 그런 최상혁을 보며 차갑게 웃었다.
“데이트 가니?”
“응. 나 다녀올게.”
최상혁은 그렇게 다시 태평해졌고 쏜살같이 자신의 방에서 나갔다. 그런 최상혁을 보면서 가은은 싸늘하게 노려봤다.
“네 성격에 절대 가만히 안 있지. 호호호!”
역시 가은은 무서운 여자다.
“일이 처음부터 착착 잘 진행되고 있네.”
* * *
“그래도 고등학교는 졸업해야지.”
난 인상을 찡그렸다.
고등학교 졸업.
그게 어머니의 바람이니 어쩔 수 없다.
부모의 뜻을 따르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내 형이 되는 죽은 은성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을 거다.
그래서 어머니는 고등학교 졸업장을 원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원하니 드려야지.’
이게 바로 효도의 첫 길일 거다.
난 그렇게 생각했다.
난 수업을 마치고 어머니가 일하시는 식당으로 갔다. 예전의 기억 때문에 난 이제는 큰길로만 다닌다.
‘누명이든 뭐든 전과자가 살기에는 이 세상은 너무 힘들다.’
난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것을 알아 버렸다. 이제 나 같은 전과자들은 사업을 하든 장사를 하든 개인적으로 할 것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이 공부다.
‘누명을 벗고 의사가 된다. 이번에는 정말 좋은 의사가 될 것이다.’
난 마약에 취한 미래의 나를 떠올렸다. 그리고 부르르 온몸을 떨었다.
그렇게 세상이 무섭다는 것을 난 알았고, 이제는 되도록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내게 능력이 있으니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난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섰다.
요즘 들어 국밥집은 파리만 날린다. 처음 내가 왔을 때 어머니의 미모에 혹해서 왔던 홀아비들이 아무리 어머니를 찍어 봐도 넘어오지 않으니 하나둘씩 빠져나갔고, 이렇게 예전처럼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식당으로 변했다.
어머니의 식당을 찾는 것은 요즘 파리뿐이다.
그래도 어머니는 괜찮은 모양이다.
원래 처음부터 돈 욕심 따위는 없는 분이었으니까. 하지만 어머니의 근심이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무슨 수를 내야 해.’
난 가게 안을 봤다. 이곳은 이제 내 집이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든 해 봐야 하는 거다.
“국밥도 좀 웰빙이 되면 좋을 텐데…….”
그 순간 난초 모양의 영약이 떠올랐다.
‘영약으로 승부를 보자.’
난 씩 웃었다.
뭐 웰빙이 좋은 생각이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 집 국밥은 4천 원이다. 재료비 빼면 인건비도 남을까 말까 할 정도의 국밥집이 바로 우리 집이다.
“은성이 왔니?”
어머니의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다. 우리 두 식구 먹고사는 터전이기도 한 이 식당이 장사가 안되니 근심이 많으신 게 틀림없다.
“오늘도 손님이 없었어요?”
“그러게. 요즘 거의 없네. 조금 있으면 영등포 시장 근처에 큰 공사가 있다는데. 그럼 좀 좋아지겠지.”
요즘 우리 식당 근처에는 재개발 붐이 불어 난리다. 건물주들이야 신이 나서 웃을 일이지만 세입자들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바로 재개발 발표다.
재개발을 위해서는 장사를 접어야 했고, 이전비 같은 것은 쥐꼬리보다 작았다. 역시 있는 놈들 더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재개발이다.
다행히 우린 그래도 허름하기는 해도 우리 건물이라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됐다.
“그렇죠.”
공사가 시작되면 인부들이 늘어난다. 그럼 조금은 장사가 잘될지 모른다는 희망을 걸어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영등포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우리 국밥집은 장사가 잘 안되기 때문이다.
서울 구로나 영등포는 약간 다른 특색이 있다.
그건 바로 사람들이 다르다는 거다. 구로나 영등포에는 인천 차이나타운보다 더 많은 조선족과 한족 그리고 나머지 외국인들이 산다. 그들은 일용직으로 일을 하고 있고 하루 벌어서 그 하루 번 것을 다 송금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4천 원 하는 우리 집 국밥을 먹으러 오지 않는다는 거다.
그리고 돈이 있는 사람들은 4천 원짜리 우리 집 국밥을 먹지 않으려고 했다. 이래저래 손님이 없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요즘 사람들은 몸에 좋은 음식을 찾는다. 몸에 좋다는 소리가 있으면 돈이 얼마든 상관하지 않고 사 먹는다. 하지만 우리 집 식당 주메뉴가 우거지 국밥이다. 그건 저급해 보일 것이다.
그래서 더 손님이 줄고 있었다.
분명 이제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정말 가게가 망할 판이다.
“설거지 제가 할게요.”
“할 것도 없다. 들어가서 공부나 해.”
이제 정말 내 어머니처럼 말씀하셨다.
“제가 말했잖아요. 공부가 제일 쉽다고요.”
“그러니. 호호호!”
어머니는 웃었지만, 근심이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장사가 잘 안 되어서 그렇겠지. 하지만 그것보다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나로부터 시작됐다.
성범죄자가 사는 집.
사람들이 그 소문을 듣고 우리 국밥집에 오지 않는다는 것을 난 예전에 우리 어머니를 걱정하셨던 아저씨를 통해 나중에, 그것도 아주 나중에 들었다.
끼이익!
“국밥 한 그릇 말아 주소.”
저 인간 또 왔다. 물론 나도 그를 반긴다.
저 아저씨는 어머니를 위해 주는 사람이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참 잘 어울리기도 했다.
그리고 난 아저씨를 봤다.
역시 아저씨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왔다. 정말 국밥 마니아인지, 아니면 어머니의 팬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아저씨다.
“예. 제가 말아 드릴게요.”
“됐다. 나는 우리 지선 씨가 말아 주는 국밥이 좋다.”
‘진도 좀 나가려고 하네.’
순간 난 어이가 없었다.
이제 아저씨는 노골적으로 어머니를 지선 씨라고 불렀다. 아마 정말 저 아저씨는 어머니가 좋은가 보다. 그렇게 들락거리던 홀아비 중에 이제 남은 건 저 아저씨가 전부다.
나한테는 유독 잘 웃으시는 어머니였지만, 식사하려고 온 홀아비들한테는 차갑게 굴었다. 그러니 더는 올 턱이 없다.
“창피하게 이름을 부르고 그래요.”
“원래 여자는 자기 이름 불러 주면 좋다면서.”
정말 저 아저씨는 지고지순한 면이 있다. 난 아저씨를 봤다. 그러고 보니 썩 잘생긴 얼굴이다. 입은 옷도 그리 허름해 보이지 않는다. 넥타이에 양복만 입지 않았지 노가다 같은 것을 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난 다시 아저씨의 손을 봤다.
굳은살 하나 없는 손. 정말 노가다 같은 것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손이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난 저 아저씨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
‘뭐 하는 분이지?’
내가 이 집에 오고 나서부터, 아니, 내가 오기 전부터 저 아저씨는 우리 식당 단골이었을 것이다. 난 아저씨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하지만 뭐 하시는 분이냐고 물어보기도 참 그렇다.
“난 그냥 은성이 엄마 소리가 더 좋아요.”
어머니는 날 보며 웃었다. 나 역시 웃었다. 그리고 아저씨도 웃었다. 문득 아저씨는 언제부터인가 아버지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요즘 장사는 어때?”
“뭐 그렇죠. 손님이 자꾸 줄어드네.”
어머니는 아저씨의 자리에 앉았다.
“요즘 다 ‘웰빙’ 해서 그러는가 보네.”
“먹고 배부르면 그게 웰빙이지…….”
어머니는 아직 시대 흐름을 읽지 못했다.
“뭐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요즘은 육식보다 채식을 선호해. 포화지방인가 뭔가 하고 콜레스테롤 때문에 사람들이 육식을 안 좋아해.”
“우리가 뭐 고기 파나?”
“돼지 뼈로 국물 우려내는 곳은 순댓국밥집하고 이 집뿐일걸.”
“그래도 예전에는 장사가 곧잘 됐는데…….”
어머니는 처음으로 넋두리를 했다. 그러다 힐끗 아저씨를 봤다.
“장사도 파할 때 됐는데 소주 한잔하시려오?”
“주면 좋지. 하하하!”
그렇게 오붓한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참 오래 알고 지낸 사이 같았다. 소주가 한두 잔 오고가고 나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사람들이 참 야박하지?”
기분 좋게 취한 아저씨가 말했다.
“뭐 다 그렇지요.”
“그래도 알고 지낸 지가 몇 년인데 참, 쯔쯔쯔!”
아저씨는 힐끗 나를 봤다.
“취했네. 그만해요.”
어머니는 아저씨에게 눈치를 줬다.
“알았어. 알았어. 은성아 너도 와서 한잔해라.”
“전 고등학생인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난 정신적으로는 이미 30대다. 물론 몸은 18살쯤이지만 말이다.
이건 사양의 의미다. 난 뭐든 중독되는 것은 입에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