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29화
“나중에 술 잘못 배우지 말고 아저씨한테 배워.”
어른이 두 번이나 권하니 난 마다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저 아저씨는 어머니의 친구다.
“예.”
난 조심스럽게 어머니의 눈치를 보고 자리에 앉았다.
“그래. 아저씨한테 술 배워라.”
“예.”
아저씨는 내게 술을 따라 줬다. 그리고 난 조심스럽게 술을 마셨다. 하지만 그것을 내 몸에 흡수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난 비술의 달인이고, 술 같은 것은 기와 비술의 능력으로 몸 밖으로 증발시킬 수 있다.
“오! 잘 마시네. 한 잔 더 해라.”
“나도 한 잔 주오.”
“하하하! 그러지.”
아저씨는 어머니에게 먼저 술을 따라 주고 나서 내게 다시 술을 따라 줬다. 난 물론 기와 비술을 이용해 술을 증발시켰다.
하지만 어머니와 아저씨는 그런 능력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소주가 한두 잔 많아지고 아저씨는 어느 순간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
“은성아! 아저씨 방에다가 조심히 눕혀 드려라.”
우리 집에는 방이 두 개 있다.
“예.”
약간 놀라웠다.
난 아저씨를 내 방에 눕히고 나왔고, 어머니는 이미 자신의 방에 들어가셨다.
“정말 장사가 안되는 모양이네. 어쩌지?”
난 주방을 둘러봤다. 사실 어머니의 음식 솜씨는 그리 탁월한 편이 아니었다. 그러니 우리 국밥집은 맛으로 승부를 겨룰 수 있는 그런 식당은 아니다.
“이렇게 파리를 날릴 수는 없는데…….”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때 문득 영약이 생각이 났다.
“좀 넣을까?”
난 식당을 둘러보며 말했다.
효과는 탁월할 것이다.
영약은 정력과 미용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주 조금만 넣는다.’
영약의 효능은 이미 어머니를 통해 확인했다. 분명히 몸에 좋은 영약이고 아주 조금만 넣어도 탁월한 효과를 보는 것이 바로 영약이다.
“입소문을 타면 대박일 건데.”
난 씩 웃었다.
일단 1g도 되지 않는 양을 가지고 나왔다. 정말 파리 눈곱만큼만 가지고 나온 거였다.
‘육수를 끓여 볼까?’
원래 국밥이라는 것은 육수를 오래 미리 끓인다. 그리고 손님이 올 때마다 다른 뚝배기에 담아 밥과 함께 담아 내주는 거다.
그리고 우리 국밥집의 주메뉴는 돼지 뼈 육수로 만든 우거지 국밥이다.
난 커다란 가마솥을 열었다.
“정말 장사가 안되시나 보네. 육수가 아주 바닥이네.”
이건 내일 장사할 양이다. 그런데 커다란 가마솥에 겨우 밑바닥을 가릴 만큼만 육수를 준비하셨다.
“좀 더 끓여야겠지.”
난 영약의 효능도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을 많이 복용하면 장이 타는 고통이 동반된다는 것도 안다.
난 예전에 어머니가 육수를 준비할 때처럼 돼지 뼈를 찾아 더 끓일 생각을 했다.
“냉장고 어디쯤 돼지 뼈가 있을 건데?”
냉장고를 아무리 뒤져도 돼지 뼈가 보이지 않았다.
“없나?”
돼지 뼈가 없으니 오늘은 육수를 더 끓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난 포기할 수가 없었다.
“없으면 구하면 되지.”
난 씩 웃었다.
사실 난 뉴스에서 요즘 산에 멧돼지의 개체 수가 부쩍 늘었다는 뉴스를 봤다.
“몸도 근질근질한데 운동도 좀 할 겸 하나 때려잡아 볼까?”
난 부엌에서 식칼 하나를 꺼내 허리춤에 찼다.
서울 주변에는 제법 이름 있는 산이 많다. 난 어머니가 깰지 몰라 식당 문을 조심히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비술을 이용해서 힘껏 앞으로 달려나갔다.
비술 중 경공이라는 것도 있고 난 바람처럼 빠르게 달렸다. 모든 수련은 하면 할수록 느는 법이다. 내 경공 역시 무척이나 늘었다.
* * *
난 1시간 정도 밤길을 달려 야산에 도착했다. 요즘은 야산에도 멧돼지가 많이 출몰했다. 이제 산에는 멧돼지의 천적 따위는 없기 때문일 거다. 온 산이 멧돼지 세상이 된 거다.
난 숲을 두리번거렸다.
사실 내가 멧돼지를 잡겠다고 이 밤에 미친놈처럼 뛰어 왔지만, 멧돼지를 잡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우선 멧돼지를 잡기 위해서는 멧돼지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멧돼지를 찾는다고 해도 그놈을 죽여야 한다. 그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성난 멧돼지는 호랑이도 피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멧돼지는 돼지지만 무서운 산짐승이다.
“어디에 있나?”
난 멧돼지를 찾으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여기가 무슨 강원도 오지도 아니고 멧돼지를 찾겠다고 이곳에 뛰어온 내가 우습기도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지. 산도 깊은데 한두 마리쯤은 있겠지.”
난 눈을 부라리며 멧돼지를 찾았다. 요즘 들어 밤에도 눈이 잘 보인다. 시력도 좋아졌고, 청력도 무척이나 좋아졌다.
바작! 바작!
그때 뭔가 움직이는 발소리가 들렸다.
“뭐지?”
난 발소리가 난 곳에 집중했다. 그리고 바람처럼 달렸다. 난 발소리를 내지 않고 달릴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비술 때문이다. 정말 바람처럼 난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발소리를 따라 도착한 곳에서 발견한 것은 야생 삵이었다.
뭐 정확하지는 않다.
내게 삵이나 야생 고양이 같은 것을 구분할 정도의 식견은 없다. 지금 날 빨간 눈으로 노려보고 있는 놈은 집 고양이었다가 도둑고양이로 발전해서 야생 고양이가 된 놈일지도 모른다.
저런 놈들을 강원도 부대에서는 짬 타이거라고 부른다.
하여튼 크기는 크네!
“야옹!”
놈이 나를 보며 울었다. 저렇게 공격적이지 않게 우는 놈은 분명 집고양이였던 놈일 것이다.
“버려진 고양이네!”
그러고 보니 요즘 반려동물을 버리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개들을 버리면 보신탕집에서 잡아다가 죽여서 끓인다. 물론 그건 중형견 이상이 되는 놈들의 운명이다. 작은 애완견들은 몇 년이고 로드 킬을 당하거나 병들어 죽기 전까지 주인을 그리워하다가 죽는다.
고양이도 마찬가지일 거다.
난 돌아섰다. 지금 내가 찾는 것은 멧돼지다.
원래 뛰어난 사냥꾼은 사냥감이 오는 곳에 덫을 놓고 평범한 사냥꾼은 사냥감을 찾아다닌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난 아예 초보 사냥꾼이다. 하지만 비술과 기 수련을 통해 내 감각은 아주 발달해졌다.
“옛날 고수들도 나처럼 이렇게 감각이 탁월했을 거야!”
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감각이 탁월한 것은 모두 영약의 영향이 컸다.
그리고 다시 난 정신을 집중했다.
저벅! 저벅!
조금 전보다 발소리가 크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덩치가 있는 놈이 분명할 거다.
‘멧돼지다.’
난 직감적으로 이 발소리가 멧돼지라는 것을 확신했다.
꿀꿀! 켁! 케엑!
그리고 이제 울음소리까지 내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좌측 30m다.”
난 땅을 박차고 달렸다. 아니, 정확하게 날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한번 크게 땅을 차고 도약을 하면 15m 이상 날아간다. 난 몇 초 만에 내 목포에 도착했다.
“있다.”
정말 서울의 야산에도 멧돼지가 산다. 난 멧돼지를 노려봤다.
멧돼지 역시 내가 뿌린 살기에 긴장을 해서 날 노려봤다.
‘새끼! 겁도 없이 노려보네!’
난 그런 생각을 했지만, 멧돼지로서는 내가 겁도 없는 인간이리라 생각된다. 지금까지 자신의 앞에 나처럼 당당히 서 있는 사람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꿰에엑! 꿰에엑!
멧돼지는 나를 위협하기 위해 거칠게 울었다. 하지만 난 저런 돼지 멱따는 소리로 위협을 당할 위인이 아니다.
“죽을 놈이 깝죽거리기는!”
난 멧돼지를 노려봤다.
“네놈이 할 수 있는 공격은 그냥 정면 돌격에 충돌이잖아. 와라! 꼴통을 부숴 줄 테니까.”
멧돼지의 공격은 단순하다.
정면 돌격!
그 돌격에 사람이 당하면 죽을 수도 있다. 그리고 성난 멧돼지는 범도 공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얼핏 들은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서 씩씩거리는 놈은 우리 국밥집 육수가 될 놈이다.
그러니 난 고맙게 저놈을 한 방에 고통 없이 보내 줘야 한다.
난 다시 한번 놈을 노려봤다.
꿰에엑! 뀅엑!
멧돼지는 크게 한 번 울고 나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우선 힘을 좀 빼야지.”
난 슬쩍 멧돼지의 돌격을 피했다.
아마 이런 것은 스페인 투우 경기에서나 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보다 지금 대결이 더 박진감이 있다는 것은 내가 보장한다.
최소한 내가 상대하고 있는 멧돼지는 야생 멧돼지지, 죽이기 위해 며칠을 굶긴 비실거리는 소는 아니니까.
내가 슬쩍 피하자 멧돼지가 몸 자체를 돌려 다시 돌진했다. 그리고 난 다시 여유롭게 놈을 피했다.
“멍청한 놈!”
꿰에엑!
멧돼지는 화가 났는지 거칠게 다시 울었다. 정말 성질이 더러운 놈이 분명할 거다. 아무리 사나운 야생 짐승이라고 해도 한두 번 공격하고 나면 도망치는 것이 본능인데 놈은 끝까지 죽으려고 덤벼들었다.
힉! 힉!
놈은 거친 콧김을 뿜어냈다. 침을 질질 흘리는 것이 이제 슬슬 지쳐가고 있다는 증거다.
“됐다. 한 방에 보낸다.”
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난 멧돼지를 향해 달려들었다. 내가 빠르게 멧돼지에게 덤벼들자 멧돼지도 내게 돌진을 했다.
쾅!
내 주먹과 멧돼지의 대가리가 부딪치자 돌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바지지직!
이 소리는 내 주먹이 깨어지든 멧돼지의 골통이 깨어지든 둘 중 하나가 깨지는 소리일 가능성이 크다.
“퀘에엑!”
멧돼지는 거친 비명을 질렀다. 멧돼지가 비명을 지르는 것을 봐서 놈의 골통이 부서지는 소리다.
꿰에엑!
쿵!
놈은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눈깔과 코, 입에서 피를 흘리며 단번에 죽었다.
“대가리가 완전히 돌이네.”
난 멧돼지를 내려 봤다. 사실 손이 얼얼하기는 했다. 하지만 최배달 할아버지 이후로 짐승을 손으로 때려잡은 사람은 내가 유일할 거다.
바람의 파이터는 되지 못해도 왕주먹 최은성은 될 것이다.
“소도 되려나? 하하하!”
나는 기분이 좋아 농담을 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식칼로 멧돼지를 해부했다. 뼈를 바른다는 말은 옳지 않을 거다. 사실 난 멧돼지 뼈를 어떻게 바르는지도 몰랐다.
난 내 미래(?)의 기억이라고 할 수 있는 의대 해부 실습 기억을 더듬어 멧돼지를 해부했다. 물론 칼질은 비술에 있는 검법을 사용했다.
서걱!
무딘 칼이기는 했지만, 비술에 적혀 있는 검법이 대단한지 돼지가죽이 술술 잘 벗겨졌다.
‘뭐 어렵지 않네.’
사실 내가 필요한 것은 돼지의 뼈다. 하지만 멧돼지를 잡아서 그냥 뼈만 발라간다면 멍청한 짓이다. 그래서 난 최대한 멧돼지를 여러 등분으로 나눴다. 나중에 알았지만 정말 멍청한 것은 내가 쓸개를 버렸다는 거였다. 멧돼지 쓸개가 멧돼지 값의 절반 이상인데 말이다.
하여튼 난 미리 준비한 쌀 마대에 담았다.
“이 정도면 한 달은 쓰겠다.”
난 쌀 마대를 들쳐 메고 빠르게 산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비술 경공을 이용해 식당으로 달려왔다. 원래 경공이라는 것이 그렇다.
영화에서 나오는 빠른 경공들은 다 뻥이다.
나뭇잎을 차고 도약을 하는 것도 뻥이고 물 위를 걷는 것처럼 뛰는 것도 뻥이다. 경공은 그냥 빠르게 달릴 뿐이다. 하지만 빠르게 달리는 중에도 쉽게 지치지 않아 처음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게 경공의 핵심이다.
물론 축지법이라는 환상의 도술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어떤 놈은 조금만 뛰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데 어떤 놈은 몇 시간을 뛰어도 끄떡없으면 그게 바로 축지법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축지법을 쓴다.
난 1시간을 조금 더 달려 식당에 도착했고, 미리 발라 놓은 돼지 뼈를 가마솥에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난 아까운 마음에 가지고 온 돼지고기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