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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30화 (30/210)

흑막의 신! 30화

“어머니한테 뭐라고 하지.”

욕심이 잔일을 만드는 법이다. 난 고민을 했다.

“여기 두면 안 되겠어.”

난 욕심 때문에 가지고 온 돼지고기를 어떻게든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그곳이 있지.”

우리 식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사설 양로원이 있다. 나는 문뜩 그곳에 가져다 놓으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돼지를 죽였으니 돼지가 죽은 것이 부끄럽지 않게 해 줘야 했다.

난 묵직한 고깃점 한 덩이만 남기고 멧돼지 고기를 다시 들고 사설 양로원 입구에 가져다 놨다.

‘좋은 일을 하고 나니 기분이 좋네.’

난 누가 볼까 겁이 나 바로 식당으로 돌아왔다. 이미 돼지 뼈는 잘 고아지고 있다.

“이제 그럼 어머니처럼 기름을 건져 내야겠지.”

난 뜰채로 기름을 조심스럽게 건져 냈다. 그리고 다시 약한 불에 끓였다. 어느 정도 끓었다는 느낌이 들자 난 영악을 정말 눈곱만큼 넣었다.

“이제 웰빙 돼지국밥이다.”

난 국밥 육수를 다 끓이고 나서 시계를 봤다.

“벌써 4시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학교에 가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잠을 자면 더 피곤해진다. 난 그래서 내공 수련이나 더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내공 수련을 하고 나면 피곤이 싹 가신다. 그래서 아마 무협 영화에서 나오는 고수들이 오래 사나 보다.

난 식탁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건 무협 영화에서 본 자세다.

난 천천히 몸에 흐르는 기를 한 곳에 집중시켰다. 그리고 모인 기를 혈을 통해 한번 완벽하게 몸 안에서 돌렸다. 일주천이 끝난 거다. 난 이렇게 몇십 번을 할 생각이다.

어쩌면 난 정말 고수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

아침이 되자마자, 난 언제나 그렇듯 우리 집에서 제일 빨리 일어나 식당 청소부터 했다.

‘오늘 팔리는 만큼 입소문이 날 거야!’

난 잔뜩 기대했다.

“벌써 일어났니?”

어머니가 일어나셨다. 그리고 청소를 하는 날 보며 웃어 줬다.

“예.”

“내가 어제 육수를 얼마나 끓였더라?”

어머니는 정말 몰라서 내게 묻는 거다. 요즘 건망증이 무척이나 심해지신 어머니다. 아마 폐경기가 오고 있다는 증거일 거다.

“가득 끓이라고 하셔서 제가 끓여 놨어요.”

“네가?”

“예.”

난 웃으며 막둥이처럼 대답했고 어머니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정말 내가?”

“예. 육수가 상할 일도 없는데 많이 끓여서 진국으로 만든다고 하셨어요.”

하얀 거짓말도 있는 법이다.

“그랬나?”

“저 이제 학교 가요.”

“밥은 먹고 가야지.”

“우거지 국밥 떠서 먹었어요.”

난 가방을 메고 학교로 뛰었다. 난 버스 같은 것은 타지 않는다. 그냥 이렇게 학교를 왔다 갔다 하면서 비술 경공도 익히는 것이다.

‘오늘은 아무 일도 없어야 할 건데. 쯥!’

난 입맛을 다셨다. 어제 미친 선생한테 맞은 붓기가 아직 빠지지도 않았다.

“젠장!”

내 입에서 욕이 나왔다. 학교 정문에 어제 나를 죽일 듯이 때렸던 체육 선생이 떡하니 복장 점검을 하고 있었다.

“정면 돌파지.”

난 당당히 정문으로 걸어 들어가 체육 선생을 보며 반갑게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체육 선생이 날 봤다.

“너 점심시간에 나 좀 보자.”

“예?”

“하여튼 체육관으로 와.”

난 체육 선생의 말을 듣고 인상을 찡그렸다.

“예.”

난 마지못해 대답하고 교실로 들어갔다.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 반 급훈이 보인다.

급훈

남들보다 1분만 더 열공해라! 마누라 사이즈가 달라진다.

A컵에 만족할 것인가?

참 노골적인 급훈이다.

난 자리에 앉았다.

‘우리 어머니가 편히 사시는 방법은 세 가지다.’

난 교과서를 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열심히 웰빙 국밥을 팔아서 대박을 치는 거.’

난 교과서를 읽어 내려갔다.

‘내가 서울대 의대를 가서 돈 좀 버는 거.’

마지막 하나는 내가 운동선수가 되는 것이다.

비술 검법을 알고 있으니, 야구 선수가 되어도 날아오는 공을 힘껏 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강인한 육체가 있으니 투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멍하니 서 있는 야구가 싫다.

두 번째 축구 선수가 될 수도 있다.

지치지 않는 체력!

그리고 16각 발차기를 할 수 있으니 공도 잘 다룰 것이다. 하지만 난 개떼처럼 뛰어다니는 것이 싫다. 물론 비술 경공을 익힐 때는 예외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돈이 된다는 마지막 종목이 있다.

농구!

‘점프력이 좀 되고 손도 둔하지 않고.’

사실 난 농구를 좋아하기도 한다.

지금 내가 하는 것은 그냥 아침 수업 전에 하는 잡생각일 거다. 우선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이 유철과 그 남자 새끼에게 자백을 받는 일이고, 운이 좋다면 조폭이었던 다른 놈의 진술도 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진술을 가지고 내가 구해 준 년에게 죄를 물을 거다.

‘어떻게 되었는지 난 잘 모르지만 어떻게 되었던 네가 결정한 거야. 그러니 책임도 네게 있어.’

난 어금니를 깨물었다.

수업 종이 울렸다. 이번 시간에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내 뺨을 빨간 애플로 만들어 준 그 욕구 불만 여선생의 수업이기 때문이다.

“좋은 아침!”

여선생은 기분 좋게 교실로 들어섰다. 여선생은 과학 선생이다. 예쁘지도 않은 게 성질만 더럽다. 난 최대한 선생에게 걸리지 않으려고 교과서에 집중했다.

수업은 시작됐다.

저번처럼 밤일을 좀 했기에 피곤했다.

하지만 또 졸거나 잔다면 여선생에게 걸릴 거고, 일 년이 지났지만 날 기억할지 모른다. 이래서 사람은 안 좋은 기억이 오래간다.

난 힐끗 여선생을 봤다.

오늘은 웃는 것으로 보아선, 어젯밤 일(?)이 잘된 모양이다. 남의 애정 생활까지 신경 써야 하는 이 학교가 나는 싫다.

그렇게 긴장한 수업 시간이 끝이 났다. 며칠만이지만 우리 교실 분위기는 무척이나 밝아졌다. 다른 반과 다르게 유철이 패거리들이 오지 않는다는 점이 첫 번째 이유다.

그리고 애들은 겁이 없어졌다.

그럼 된 것이다.

“며칠 있으면 시험이지?”

난 영어 시험 감독을 하시던 선생님이 떠올랐다. 그리고 새침하면서도 막 나가던 수험생 수정이 떠올랐다.

‘예쁘기는 한데…….’

난 입맛을 다셨다.

그때, 어수선하던 교실이 찬물을 끼얹은 듯 차가워졌다.

쫘아악! 쾅!

“비켜!”

그 이유는 누구도 반기지 않는 놈들이 교실에 왔기 때문이다.

유철이다. 난 힐끗 유철을 봤다. 뒤에 똘마니들을 제법 데리고 온 것을 봐서 오늘은 뭔가 크게 한 건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유, 유철 선, 선배!”

“이 교실만 요즘 따로 논다며?”

“유철 선배! 그, 그게 아니고.”

“이 반 짱 누구야!”

아마 유철은 보호비 비슷한 것이 걷히지 않는 것 때문에 왔을 것이다.

1학년 학급은 총 열 개 반이다. 거기서 들어오는 돈이 400만 원. 2학년이 다시 열 개 반이니 전 학년을 고려해 보면 팔백만 원 이상 기본 수입을 거둬들이고 있는 거였다.

‘새끼! 우리 식당보다 수입이 좋네. 좆같게!’

난 인상이 절로 찡그려졌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유철은 무슨 기념일이 있으면 특별금이라는 것을 거둬들였다. 정말 싹수가 노랗다 못해 커서 뭐가 될지 딱 보이는 놈이다.

이 학교의 리틀 조폭!

그게 바로 유철이다.

아마 유철의 꿈도 조폭일 거다. 그러니 일 년 전, 그 조폭들의 조직에 가입하기 위해 그 짓을 감행한 것일 테니까.

“이 반 짱이 누구냐고?”

정말 몰라서 물어본 걸까? 유철은 분명 내가 이 반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저건 분명히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유철의 말에 우리 반 아이들이 모두 아무런 말 없이 나를 봤다. 아이들은 겁이 난 모양이다. 아무리 달라졌다고 해도 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때 유철이 내게 돈을 건넸던 학생의 멱살을 잡았다.

“너, 내 말 씹냐?”

“그, 그게 아니라 유철 선배!”

“뭐가 아니야!”

유철은 학생의 멱살을 잡고 마구 흔들었다.

“선, 선배!”

그리고 바로 주먹질을 하려고 했다. 유철이 주먹을 학생에게 휘두르려는 순간, 난 유철의 팔을 잡았다.

“왜 이래? 시끄럽게.”

“너냐?”

“몰랐어?”

졸지에 난 이 반 짱이 된 것이다. 유철은 알면서 왔을 거다. 개 같은 새끼!

“반 짱이면 통합 짱에게 승인을 받아야지.”

“지랄을 한다.”

내가 유철을 노려봤다. 내가 노려보자 유철은 찔끔 놀랐다. 난 눈빛만 봐도 안다. 사람이라는 것은 기억의 동물이고, 아무리 뒤에 병풍들을 많이 쳐서 왔다고 해도 일 년 전 그 공원에서의 내 힘을 무시할 수는 없을 거다.

그래서 아마 이 교실로 직접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유철이 활개를 칠 수 있는 시간은 10분이다. 나랑 싸움질한다고 해도 내게 주어진 시간은 이제 6분 정도 남았다.

정말 약은 놈이다.

“반 짱이면 보호비 걷어라!”

“걷어서?”

내 말에 유철은 씩 웃었다.

“너 활동비로 써!”

유철은 선심이라도 쓰는 듯 말했다.

“여기 정말 조폭 한 분 나셨군.”

내 이죽거림에 유철은 인상을 구겼다. 내가 아닌 다른 놈이 이죽거렸다면 유철은 바로 주먹을 날렸을 거다. 하지만 유철은 그러지 못했다.

내가 두려운 것이다. 어쩌면 유철의 평온한 학교생활에 내가 한없는 걸림돌일 수도 있다. 그리고 불안한 시한폭탄인 셈이고.

“네 반만 따로 놀면 내 법이 깨지잖아.”

“그 법, 내가 다 깨 주지.”

“뭐야?”

유철은 내게 소리를 질렀다.

“야! 양아치. 무슨 일을 할 생각이면 절대 하지 마라. 내가 널 시시때때로 지켜보고 있으니까. 으슥한 곳은 나한테만 위험하지는 않아. 너한테도 위험하지. 참! 네놈이 형님으로 모시는 그 새끼는 잘 있냐?”

“뭐?”

아마 내 예상이 맞는다면, 힘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허수아비가 됐을 것이다.

“왜 모른 척을 해? 형님! 형님! 하면서 잘 따르던데.”

이건 유철이 기억하기 싫은 과거일 거다. 그 과거는 나와 유철이 공유하고 있는 유일한 기억이다.

“잘 계신다.”

“어련하시겠어. 너도 그렇게 되고 싶지 않으면 깝죽거리지 마라.”

난 유철을 노려봤다.

“개새끼! 너 밟히고 싶어?”

“밟아 보시지.”

난 여유롭다. 아무리 유철이 병풍을 저렇게 많이 치고 왔다고 해도 저놈들은 유철만 쓰러지면 아무것도 아닌 그냥 병풍이다.

“다구리에 장사 없다.”

“뒤에 세워 놓은 병풍 믿고 설치면 너야말로 학교생활 힘들어질 거다. 이 반은 네 말대로 내 반이다. 다시 기어들어 오면 발목 잘라 버린다.”

일촉즉발의 순간이다.

하지만 나라고 해서 당장 유철 일파랑 한판 뜰 수는 없다.

그리고 난 우리 어머니 국밥집도 살려야 한다.

그래서 난 참아야 한다. 당장에라도 모가지를 비틀어 버리고 싶지만, 우선은 참는다.

유철이 날 보고 웃었다.

“너나 밤길 조심해라. 가자!”

유철은 돌아섰다.

딱 정확하게 수업 종이 울리기 전에 돌아선 거다.

이것 역시 유철의 예상에 있었다. 어쩜 유철은 싸우려고 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싸움이 일어나는 순간 뒤로 빠져서 날 궁지로 몰았을지도 모른다. 난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싸움이 일어난다고 해도 우리 반 아이들이 도와줄 일은 절대 없다. 왜 싸움이 일어났는지 증언을 해 줄 아이도 없을 거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다. 하여튼 오늘은 조용히 넘어갔다. 하지만 내일도 조용히 넘어갈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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