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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31화 (31/210)

흑막의 신! 31화

‘빡돌이 수업 끝나고 체육관에 오라고 했지.’

난 인상이 절로 찡그려졌다. 선생이 부르니 어쩔 수 없이 가야 한다. 난 마지못해 체육관에 갔다.

체육관에는 농구부가 죽어라 연습을 하고 있다. 죽어라 연습을 하면 뭐 하는지. 매년 지역 예선도 통과하지 못하는 찌질한 농구부가 우리 학교 농구부다.

체육 선생 빡돌이 농구부를 지도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체육 선생 빡돌이 농구 선수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물론 별로 유명한 선수는 아니었다. 겨우 대학 농구단에서 식스맨을 할 정도라고 들었다. 그런데 성격이 지랄 같아서 그마저도 방출됐다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있다.

“선생님, 저 왔습니다.”

툭!

빡돌이 내게 농구공을 던졌다.

“던져 봐.”

“예?”

“그 키에 성격도 있으니 잘하는지 보자.”

난 키가 185정도 된다. 이제 고 1이니 더 클 수도 있을 테니, 농구 선수이면서 현 농구부 코치인 빡돌의 눈에 든 거다. 하지만 첫 만남이 별로 유쾌하지 않아 오늘에서야 내게 체육관에 오라고 한 거였다.

“저 농구 안 해 봤는데요.”

“귀 빠질 때부터 농구한 놈 있어? 던지라면 던져!”

빡돌이 날 노려봤다.

던지라고 하니 던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나중에 무슨 꼬투리를 잡아서 지랄할지 모른다.

“예.”

난 멀찍이 떨어진 농구 링을 봤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농구공을 던졌다.

슛!

철컹!

통! 통!

링을 통과한 농구공은 그물을 한 번 흔들고 나서 바닥에 통통 튀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빡돌 선생이 놀라 나와 농구 골대를 번갈아 봤다.

툭!

“다시 던져 봐.”

빡돌은 농구공을 내게 툭 던졌다.

“다시요?”

“그래. 다시 던지라고.”

빡돌은 약간 흥분한 것 같다.

“예.”

난 마지못해 다시 농구 골대를 보고 공을 던졌다. 이번에도 역시 농구공은 링을 통과해 바닥에 떨어졌고, 아이들도 놀라서 하나둘 모여들었다.

“다시 던져!”

빡돌은 이제 인상까지 찡그리고 있었다. 난 그렇게 5번 정도 농구공을 던졌다. 사실 빡돌만 표정이 굳어진 것은 아니었다. 다른 농구부 애들도 놀라 눈이 커지고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왜 저래?’

난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사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공을 던진 곳이 바로 중앙선 근처라는 것 때문이었다.

사실 빡돌이 내게 공을 줬을 때는 드리블을 해서 슛을 하라는 거였다. 그냥 나처럼 멍하니 서서 공을 던지라는 것이 아니라.

“너 농구 해 봤냐?”

“전 조금 전에 농구해 본 적이 없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정, 정말이지?”

“예.”

빡돌은 날 한참이나 봤다. 그리고 학생들 역시 날 한참이나 봤다.

“너 농구해라.”

“예?”

“너 농구하라고. 너는 농구해야 해.”

빡돌이 막무가내로 나보고 농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싫은데요.”

“왜 싫어? 그 키에, 그 슛 비거리에. 넌 죽어도 농구를 해야 해.”

“저 대학 가야 해요.”

“농구 잘하면 연세대나 고려대 그리고 중앙대 같은 명문대 갈 수 있어.”

빡돌은 슬슬 날 유혹했다. 누구나 다 아는 소리를 하는 빡돌 체육 선생이다. 그래. 농구만 잘해도 명문대 갈 수 있다. 하지만 농구라는 것이 개인이 하는 운동이 아니고 단체가 하는 운동이다.

나 하나 잘한다고 해서 내가 명문대 간다는 보장이 없다. 물론 내가 농구를 잘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냥 키가 크고 슛을 좀 넣기는 하지만 죽어라 대학 가기 위해서 하는 운동과 프로가 되기 위해서 운동하는 선수들에 비하면 난 아직은 아마추어 수준이다.

그런데 기존에 있는 우리 학교 선수들은 딱 봐도 나보다 잘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럼 볼 장 다 본 거다.

이 농구부에는 희망이 없다. 그리고 우리 학교에서 농구해서 명문대 간 놈은 아직 없다. 어떻게, 어떻게 농구부가 해체되지 않고 있지만, 학교의 지원은 거의 없다.

축구부처럼 버스도 없고, 야구부처럼 일정한 후원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이 농구부는 그냥 구색 맞추기로 있는 것 같았다.

“전 그런 대학에 관심 없는데요.”

“뭐?”

“대학 간다며? 이왕이면 명문대 가야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선생님이 거짓말을 하신다. 마치 자신이 명문 대학 보내 줄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게 난 어이가 없다.

“예. 전 명문대 갈 겁니다.”

“농구하면 명문대 갈 수 있어. 그리고 돈도 받을 수 있고.”

“대학교 스카우트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그거! 뒷돈으로 1억까지 받는 애들도 있다.”

물론 있다. 그런 선수들은 모두 고교 스타급이다. 서장훈이 그랬고, 김주성이 그랬을 거다. 하지만 우리 학교 농구부 중에 그럴 가능성이 있는 선수는 내가 보기엔 없다.

“그렇죠. 잘하면 돈 받고 가겠죠.”

“그래. 너도 돈 받고 명문대를 가면 좋잖아. 집안 형편도 썩 좋지 않다며.”

참 꿈같은 이야기만 하신다. 그리고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조사를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 좀 그렇습니다.”

“그러니 농구하라고. 명문대도 가고 좋잖아.”

“예. 전 공부해서 서울대 갈 건데요.”

순간 체육관이 조용해졌다. 사실 우리 학교가 서울대를 아주 많이 보내는 학교는 절대 아니다. 사실 가끔 서울대를 보내면 학교 정문에 서울대 입학이라는 현수막이 걸릴 정도의 학교다. 그러니 나 같은 놈을 두 번이나 복학을 시켜 준 걸 거다.

“서, 서울대?”

빡돌도 놀라 말까지 더듬었다.

“예. 서울대 갈 겁니다. 누구랑 내기했거든요.”

난 일 년 전 내기를 잊지 않았다.

“뭐? 하하하! 히히히! 킥킥킥! 네가 서울대?”

빡돌은 날 비웃는 것인지 어이가 없어서 웃는 것인지 배를 잡고 박장대소를 했고, 아이들 역시 빡돌을 따라 웃었다.

“예. 저 서울대 갈 겁니다.”

“너, 농구나 하라니까!”

순간 빡돌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정말 감정 기복이 이렇게 큰 사람도 없을 거다.

“싫습니다. 우리가 썩 유쾌한 사이도 아니고 전 농구하기 싫습니다.”

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우리가 무슨 사이인데?”

“잊으셨습니까?”

그제야 빡돌은 며칠 전 자신이 죽어라 나를 때린 것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원래 사내새끼는 맞고 크는 거야.”

이게 어느 시대적 발상인가? 난 순간 어이가 없었다. 이래서 체육 하던 놈들은 끝까지 체육 해야 한다.

“저 귀하게는 못 컸어도 맞고 다니라고 크지는 않았습니다.”

“뭐야, 임마?”

빡돌은 날 노려봤다. 하지만 지금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빡돌이 소리를 지르고 있지만 어떻게든 나를 자신의 농구부에 넣으려고 안달이 난 눈빛이었다.

“어떻게 하면 농구할래?”

역시 칼자루는 내가 쥐고 있다.

“농구 싫어합니다.”

사실 이건 거짓말이다. 난 돈 버는 방법 중 농구 선수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나도 싫었어.”

“전 선생님하고는 상관없습니다.”

“농구 하라니까.”

“싫다니까요. 저 식당 가서 일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 죽어도 농구 안 합니다.”

이건 꼬장의 발동이다.

난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넌 절대로 내가 이 학교에 있으면 농구해야 해!”

돌아서 가는 나를 향해 빡돌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난 돌아보지 않을 거다. 날 죽어라 때렸으니 애가 좀 타 봐야 한다.

“뭐하는 거야? 연습하지 않고. 이번에도 지역 예선 통과 못 하면 3학년 애들 대학 못 간다는 거 몰라?”

“열심히 하겠습니다. 코치님!”

“잘 들어 새끼들아! 운동하던 새끼들은 끝까지 운동해야 해. 운동 못 하고 접으면 폐인 된다고. 죽어라고 해! 대학 가고 싶으면 죽어라고 하라고. 씨발!”

빡돌은 소리를 질렀다.

‘칫! 틀린 말은 안 하네.’

난 체육관을 나서며 쩌렁쩌렁 울리는 빡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농구 안 해.”

역시 이건 오기의 발동이다.

***

유철과 똘마니는 다시 자신들의 아지트인 폐쇄된 체육관 창고에 모였다. 유철은 화가 치미는지 담배를 꼬나물고 뻑뻑 담배를 피웠다.

은성이 활개를 치고 있으니 초조해지는 유철이었다. 분명 유철은 은성이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학교에 온 것을 알고 있었다. 은 실장이 그렇게 말했기에 믿을 수 있는 정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유철은 가은이 쓰고 있는 도구에 불과했다.

“광명아!”

유철이 광명을 부르자 광명은 유철의 눈치를 봤다.

“왜? 시킬 게 있어?”

저번에 뒤지게 맞아서인지 광명은 무척이나 고분고분했다.

“학교 나간 애들 중에서 폭주족 애들 있지?”

“왜?”

“걔네들 좀 모아!”

유철은 다시 한번 인상을 찡그렸다가 피식 웃었다.

“알, 알았어.”

“왜 쫄고 그래! 친구끼리. 그 새끼들 좀 모아서 와라. 쇠파이프랑 그딴 거 챙겨서 좀 오라고 해.”

“왜, 어디 까게?”

“기고만장한 새끼 한 번 까 줘야지.”

“은성이 새끼 깐다고?”

광명이 유철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지가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달리는 오토바이에서 후려치는 거 어떻게 피해!”

드디어 유철이 행동을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학교에서는 은성을 상대하기 버겁다는 생각이 드는 유철이다. 은성의 실력을 보지 않았으면 모르겠는데, 본 이상 쉽게 자신이 나설 수는 없었다.

은성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만에 하나 자신이 지게 되면 이 학교 통합 짱을 내려놔야 하기에 유철은 모험하고 싶지 않았다.

“깔 방법은 많지.”

유철은 지금 뻑치기를 생각했다.

“날래고 간 큰 새끼 두 놈만 섭외해!”

유철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20만 원 정도를 꺼냈다.

“이거 그 새끼들 주고.”

정말 태어날 때부터 조폭이 되고 싶어 태어난 놈이 유철인 모양이다. 유철은 지금 청부 폭력을 시도하고 있는 거다.

“좀 더 필요할 건데…….”

광명의 말에 유철은 피식 웃었다.

“그 새끼들 일 끝나고 또 볼 일 없어. 그거면 충분해. 나중에 준다고 그래.”

“알았어.”

광명은 여전히 유철의 눈치를 봤다. 이래서 맞고 살면 주눅이 드는 법이다.

* * *

수업이 끝났다. 난 언제나 그랬듯 대로로 다닌다.

“이 꼴 저 꼴 보기 싫으니 그냥 돌아가자.”

오늘 새벽에 난 과감하게 영약을 우거지 국밥에 넣었다. 당장에 효과가 날 일은 없지만, 오늘 우리 국밥집에 와서 국밥을 먹은 사람들은 며칠이 지나면 우리 국밥을 먹겠다고 줄을 설 거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나면 우리 집 우거지 국밥은 없어서 못 팔 거다.

‘좀 아깝기는 한데…….’

처음 영약을 발견했던 그 고대인이 이 사실을 안다면 죽었지만, 벌떡 일어날 거다. 아마 둘도 없는 영약을 아무렇지도 않게 우거지 국밥에 넣는 놈은 나밖에 없을 거다. 난 그만큼 우리 어머니가 중요하다.

내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 주신 분. 그분이 웃는다면 무슨 짓이든 한다.

“저 새끼야!”

광명이 오토바이에서 내리며 손가락으로 최은성을 가리켰다.

“무슨 일이야? 학교에서 못 조지고.”

“나야 모르지. 하여튼 저 새끼 좀 조져 줘.”

“조지는 거야 뭐 어렵지는 않지만, 괜히 유철이 꼬봉 같아서 찜찜하네.”

오토바이를 탄 놈의 말에 광명은 인상을 찡그렸다. 마치 자기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부탁하는 처지라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좀 부탁해.”

“알았어. 그런데 유철이가 저 새끼한테 무슨 약점이라도 잡힌 거야?”

“약점?”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한테 뻑치기를 시킬 이유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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