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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33화 (33/210)

흑막의 신! 33화

“어떻게 하기는. 갈 데까지 가 보는 거지.”

“갈 때까지?”

“배에 칼 안 들어가는 새끼 없다. 뒤에서 찌르든 다구리로 찌르든 한 방이면 되는 거야!”

“다구리 깐다고?”

광명은 놀라 눈이 커졌다. 지금 유철이 말하고 있는 것은 학교 양아치들이 벌일 일이 아니라는 것을 광명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자꾸 그 새끼가 너 물고 늘어지는 거야?”

광명은 그게 궁금했다.

“뭐?”

“이상하게 자꾸 그 새끼가 너 물고 늘어지고, 너도 그 새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잖아.”

광명의 말에 유철은 광명을 노려봤다.

“몰라도 돼.”

툭툭! 저벅! 저벅!

“왜 이렇게 더러워! 양아치들 노는 곳 하고는. 쯔쯔쯔!”

폐쇄된 체육관 창고 앞에서 남자애 목소리가 들렸다.

끼익!

문이 열렸고 최상혁이 들어왔다.

“여기네!”

“뭐야 너, 너 최, 최상혁?”

유철은 최상혁을 보고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다. 유철이 최상혁을 본 것이 일 년이 넘었다. 같은 기억이 있는 사람, 그것도 남이 알아서는 안 되는 기억이 있는 사람을 본다는 것은 절대 유쾌한 일이 아닐 것이다.

“너 뭐야? 너 왜 여기 온 거야?”

“좀 깨끗한 곳에서 살아라.”

최상혁은 주변을 둘러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뭐라고?”

광명이 최상혁을 노려봤다.

“가만히 좀 있어.”

유철은 최상혁이 어떤 집 애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일 년 전에는 함부로 마구 두들긴 놈이지만 지금 그렇게 했다가는 자신도 은성이 꼴이 난다는 것을 이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유철이었다.

“하여튼 오랜만이다. 유철아!”

“이게 미쳤나?”

“너 보는 거, 거의 일 년 만이다.”

사실 최상혁은 스토커이기는 했지만, 학교에서는 제법 모범생 축에 끼는 놈이었다. 그래서 유철은 최상혁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박은진을 그날에도 유철은 죽을 만큼 최상혁을 때렸다. 하지만 오늘, 자신의 앞에 있는 최상혁은 무척이나 당당해 보였다.

“뭔 소리야?”

“잊었나 보네? 일 년 넘었지. 그날 밤 이후! 킥킥킥!”

최상혁의 말에 유철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렇게 최상혁은 가은이 나서지 말라고 충고까지 했는데 자기 성질에 못 이겨서 유철을 찾아왔다. 정말 가은이 진행하는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는 것 같았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소리 지를 처지가 아닐 건데.”

“뭐?”

“지금 중요한 거는 너랑 나랑 적이 같다는 거야.”

최상혁은 다시 웃었다. 그리고 유철은 최상혁의 말의 뜻을 몰라 그저 최상혁만 노려봤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나도 은성이 그 새끼가 학교에 있는 거 싫거든.”

“그래서?”

“너는 주먹! 나는 돈!”

최상혁은 안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돈뭉치를 유철 앞에 던졌다.

“뭐야 이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유철은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이걸로 은성이 그 새끼 제대로 깔 방법 좀 찾아봐.”

유철은 바닥에 떨어진 돈뭉치를 봤다. 딱 봐도 200만 원은 되어 보였다.

“그 새끼가 아무리 쌈질을 잘해도 50명쯤 다구리를 까면 뒤지는 거지.”

최상혁은 차갑게 웃었다.

“그래서?”

“그 돈으로 우선 다른 학교 짱들 좀 모아 보라고. 부족하면 더 줄게.”

“너 왜 그래?”

유철은 최상혁이 지금 왜 이러는지가 궁금했다.

“너랑 같아.”

최상혁은 그렇게 말했다.

“친구 왔는데 이렇게 세워 둘 거야?”

“어? 어 그래. 앉아!”

유철은 바로 광명을 봤다. 광명은 바로 의자를 최상혁에게 내어 줬다.

“야! 너 유철이 꼬봉이지? 담배 하나 줘 봐.”

“뭐야?”

광명이 최상혁을 노려봤다. 당장이라도 한 대 후려칠 기세였다.

“아하, 요즘에는 꼬봉이라 안 부르고 셔틀이라고 부르지?”

“이 새끼가!”

광명은 참다가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섰다.

“앉아.”

유철은 차갑게 광명에게 지시했다.

“유철아!”

“앉으라고.”

“맞네! 셔틀.”

“으음!”

다시 한번 광명이 최상혁을 노려본다. 하지만 이 순간 광명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게 전부였다.

“광명아! 담배 줘라! 스폰서잖아. 우리 스폰서! 하하하! 이러니까 우리 형님들처럼 된 것 같네. 스폰서도 생기고 말이야!”

“스폰서?”

“그럼 뭐니? 돈 주고받으면 스폰서지.”

그렇게 새로운 유대 관계가 성립됐다. 역시 뒤가 구린 놈들은 이렇게 뭉치나 보다.

* * *

새벽 6시.

나는 수련 겸 언제나 학교 정문에서 불철주야 학생 선도에 나서고 있는 빡돌 체육 선생도 피할 겸 해서 조기 등교를 결심했다. 겨울 문턱에 들어서니 새벽 공기는 찼다.

“으라싸싸! 좀 춥네.”

난 기지개를 쫙 켰다.

“지가 이 시간에 나와 있겠어?”

난 휘파람을 불며 유유자적하게 학교로 갔다. 겨울이 찾아오는 문턱이라 아직도 어둡기만 했다. 공원 입구에는 노숙자들이 웅크리고 자고 있었고, 난 그 모습을 보고 남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만약 시간을 돌리지 않고 계속 마약 중독 의사로 살았으면 나 역시 멀지 않은 훗날에 저 꼴이 되어 있었을 거다.

‘희망이 없으니 저러겠지!’

조금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원래 처음부터 노숙자로 태어난 사람은 없을 거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노숙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1998년 IMF가 터지고 나서 그다음에 카드 대란이 터진 후부터 부쩍 노숙자가 생겨났다.

IMF가 터졌을 때, 많은 회사가 부도가 났고 공장이 문을 닫았다.

그래서 많은 직장인이 직업을 잃고 몇 푼 되지 않는 알량한 퇴직금을 받고 퇴사를 해서 개인 창업을 했다. 그때 대여점이라는 것이 생겼고, 많은 사람이 대여점이나 치킨 가게 문을 열었다.

하지만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곧바로 카드 대란이 터져서 가지고 있던 자본을 다 까먹고 저렇게 노숙자가 된 사람이 많아졌다.

어쩜 이 대한민국이 노숙자를 만드는 걸 거다.

“좀 불쌍하네.”

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어 노숙자를 봤다. 그런데 술에 취해 잠들어 있는 노숙자 하나가 맨발로 오들오들 떨며 자고 있었다.

“이 겨울에 신발도 없네!”

난 노숙자들의 생활 습성을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한 거다. 물론 대부분의 초보 노숙자들은 신발을 신고 잠이 든다. 하지만 그런 초보 노숙자 중 대부분이 아침에 신발이 사라진다. 다른 노숙자들이 벗겨 가는 거다. 그래서 가끔 보면 신발을 벗어서 품에 안고 자는 노숙자들이 제법 있다.

그들은 노숙의 고수인 거다. 그것을 나는 그때 몰랐다.

나는 신발이 없는 노숙자를 보며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신고 있던 운동화를 벗어서 신발도 신지 않고 자는 노숙자에게 신발을 신겨 줬다. 역시 난 오지랖이 넓다.

‘학교 가면 슬리퍼 있으니까.’

참, 그러고 보니 돌아가신 할머니의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쓸데없이 마음만 착해서…….

난 그 할머니의 환청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좋은 곳에 가 계시죠? 저도 잘살고 있습니다.”

신발을 벗으니 추워지기 시작했다. 사람은 이래서 뭐든 다 갖춰 입어야 하는 모양이다. 난 이렇게 맨발의 청춘이 됐다.

“그럼 이제 신체 단련을 해 볼까?”

오늘은 정말 발바닥 단련은 잘 될 것 같다. 나는 어두운 새벽 학교를 향해 뛰었다. 정말 누가 보면 미친놈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거다.

내가 학교 정문에 도착했을 때도 여전히 해는 뜨지 않아 어두컴컴했다.

“역시 없겠지. 있으면 사이코다.”

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아직 닫혀 있는 정문을 휘파람을 불며 통과했다.

“사이코 맞다.”

순간 난 오금이 저렸다.

“거기 신발 벗고 다니는 미친놈!”

어디선가 빡돌 체육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젠장!’

난 인상을 찡그리며 돌아섰다.

“예.”

역시 빡돌이 날 보며 씩 웃고 있다.

“신발은 어디가 팔아먹었냐?”

“오다가 잊어먹었습니다.”

“뭐? 네가 애냐? 신발을 잊어먹고 다니게.”

빡돌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죄송합니다.”

난 빡돌의 성격을 알기에 꾸벅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허리를 숙였다.

‘저게 선생의 탈을 쓰고 있지. 사이코야!’

난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

“신발 안 신으면 복장 불량이다.”

“예. 시정하겠습니다.”

“여기가 군대냐? 시정을 하게.”

“죄송합니다.”

“너 정말 나한테 죄송할 짓 하면 뭐라고 할래?”

빡돌이 물끄러미 날 봤다.

“예?”

“별로 죄송할 거 없다고? 나중에 너는 잘못한 게 있으면 죽여 달라고 해라!”

“예.”

“뭘 그렇게 봐?”

“선생님은 매일 이 시간에 출근하십니까?”

난 사실 그게 궁금했다.

“박봉에 이 시간에 출근해서 뭐하게?”

“그럼 왜?”

“너 잡으려고 왔지?”

난 순간 황당하다 못해 당황스러웠다.

“절 잡으시려고 이렇게 출근을 일찍 하셨다고요?”

“물론이지.”

난 순간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정말 선생의 탈을 쓴 사이코가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왜요?”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네가 나를 피하고자 일찍 올 것 같아서.”

역시 사이코다.

누구도 이런 생각은 못 한다.

“절 잡아서 뭐하게요?”

“당연히 농구부 입단시켜야지.”

“저 농구 싫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좋아지게 만들면 되지. 넌 내가 이 학교에 있는 이상 농구를 꼭 해야 해.”

“싫습니다.”

“그건 나중 문제고, 우선 복장 불량이니 운동장 열 바퀴다.”

난 어이가 없었다. 분명 날 괴롭히려고 일찍 출근한 게 분명했다.

“알겠습니다.”

“너 언제 농구부에 들어올래?”

“저 농구 안 한다니까요.”

“넌 농구를 하게 되어 있어.”

“싫습니다.”

“애들을 위해서 네가 희생해라.”

“무슨 말씀이세요?”

내 물음에 빡돌은 날 물끄러미 다시 봤다.

“올해 3학년들 단 한 명도 농구해서 대학 못 갔다.”

“실력이 없으니까 그렇죠.”

“아니, 스타플레이어가 없었지.”

“예?”

“농구는 다섯 명이 하는 경기지만 한 명이 특별하게 잘하면 나머지 4명이 잘하는 놈 치켜 주면서 이기는 게임이다.”

참 이상한 소리를 하는 농구 코치다. 단체 경기에서 한 명이 잘해서 지속해서 이기는 경우는 난 못 봤다.

“단체 경기지 않아요.”

“그렇지. 협동심이 아주 중요한 운동이지. 그래서 우리 농구부에는 스타플레이어가 있어야 해. 스타플레이어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이번에 3학년 올라가는 애들, 난 대학 보내고 싶다.”

“저한테 왜 그런 말씀 하시는 겁니까?

“넌 딱 스타플레이어가 될 자질이 있어 보인다.”

“잘못 보셨습니다. 농구 선수 중에 저만큼 키 큰 애들 많습니다.”

“키야 너보다 더 큰 애들은 우리 농구부에도 몇 있다.”

“그럼 그 선수들 스타 만드세요. 전 관심 없으니까.”

난 처음으로 빡돌 선생에게 빈정거렸다.

“하지만 넌…….”

빡돌 선생이 나를 뚫어지게 봤다.

“거리 판단이 탁월하다. 슛 감각도 타고났고,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중요한 게 뭔데요?”

“넌 깡이 있다. 하고자 하는 깡!”

“소년원 가 보면 없던 깡도 생깁니다.”

“너 계속 이죽거릴래?”

빡돌의 눈깔이 변했다. 이제 슬슬 돌고 있다는 증거다. 피하는 게 상책이다.

“열 바퀴라고 하셨죠? 전 돕니다.”

난 맨발로 운동장을 향해 뛰어갔다.

아침부터 빡돌을 만났으니 오늘 하루 일진도 사나울 게 분명하다. 난 그렇게 빡돌이 지켜보는 앞에서 새벽부터 운동장을 돌았다.

“내일은 언제 등교를 해야 저 화상을 안 보지?”

난 운동장을 돌면서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운동장을 다 돌고 나서 빡돌에게 가자마자 빡돌은 내려놨던 가방을 들고 그림자처럼 옆에 붙었다.

“아침 먹어야지?”

“아침 먹고 왔는데요?”

“그럼 또 먹어.”

“싫은데요.”

하지만 내가 어디 이 학교에서 싫다고 안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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