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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34화 (34/210)

흑막의 신! 34화

“따라와!”

빡돌은 내 귀를 잡아서 숙직실로 끌고 갔다.

“아아아! 아픕니다. 선생님!”

“내가 선생으로나 보이냐?”

“그럼 선생님이 선생님으로 보이지 뭐로 보입니까?”

“너도 날 빡돌로 보잖아. 하하하!”

난 순간 어이가 없었다.

‘아니 다행이다.’

난 그렇게 교직원 숙직실로 끌려갔다.

“저기 냄비 있으니까. 라면 끓여!”

정말 학생이 종이다.

“예.”

난 살짝 인상을 찡그리고 냄비에 물을 받아 라면을 끓였다. 그리고 힐끗 빡돌을 봤다. 빡돌은 묵직한 가방에서 옷가지를 꺼내 정리하고 있었다.

“선생님 여기 사세요?”

“앞으로 여기 살려고.”

“예?”

“네놈은 아마 내일이면 새벽 5시쯤에 올 것 같아서.”

빡돌은 날 보며 씩 웃었다.

‘확실한 사이코다.’

난 순간 겁까지 났다.

“넌 내가 있는 한 농구 안 하면 이 학교 못 다녀!”

빡돌의 말에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이런 게 바로 공포라는 거였다.

“두고 보죠.”

“그래 두고 보자.”

빡돌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리고 빡돌 체육 선생은 집요했다. 쉬는 시간마다 옆에 와서 떡하니 앉아있는 것이 영 거슬려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좋은 점도 있다. 유철 그 개새끼가 빡돌이 내 옆에 있으니 시비를 걸지 못하는 것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좋은 게 하나도 없다.

그리고 체육 시간은 더 가관이었다.

툭!

빡돌은 체육 시간이 되자마자 내게 농구공을 던졌다.

“뭡니까?”

“넌 저기 가서 슛 연습이나 해.”

“예?”

“체육 시간이잖아. 그러니 체육을 해야지.”

“오늘은 축구하는 날 아닙니까?”

나머지 아이들은 축구를 하기 위해 몸을 풀고 있었다. 하지만 나 혼자 왕따처럼 농구공을 잡고 있다.

“넌 내 체육 시간에 농구만 한다.”

“그런 게 어디에 있습니까?”

“여기에 있다.”

역시 막무가내다.

“전 축구가 하고 싶습니다.”

“너 자꾸 그렇게 말 안 들으면 체육 실기 점수 없다.”

정말 할 말이 없다.

“예. 하죠. 하겠습니다.”

“그래! 넌 해야 해. 슛은 손목의 힘으로 하는 거다. 한 손으로 공을 잡고 나머지 손은 그냥 거드는 거다.”

“저도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아는 거하고 할 줄 아는 거하고 달라!”

“예. 알겠습니다.”

난 그렇게 체육 시간에 슛 연습만 했고, 다른 아이들은 영문을 몰라 저 녀석은 뭐 하고 있느냐는 눈빛만 보였다.

그렇게 빡돌은 집요하게 나를 농구부에 넣지 못해 안달을 냈다.

하지만 이제 곧 1학년 내신을 결정하는 기말고사다. 난 어떻게든 서울대를 갈 거고, 또 의대를 갈 거다. 그래서 좋은 의사가 될 거다.

‘농구 선수? 그런 거 안 해!’

나 역시 의지가 확고해졌다. 이젠 오기와 오기의 대결이다.

* * *

“우리보고 너 좀 도우라고?”

다른 학교 짱들을 불러 모은 유철은 은성을 조지기 위한 계략을 꾸미고 있었다.

“그래! 나 좀 도와줘.”

“우리가 서로 도울 만큼 친했나?”

다른 학교 짱들은 유철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학교 짱들은 모두 열 명이다. 그중 5명은 이미 전국구 조직에 스카우트가 된 상태였다.

“앞으로 친해지면 되지.”

유철은 처음으로 비굴하게 웃었다. 사실 유철은 학교 짱들 중에서도 제일 잘 나가는 일진이었다. 그래서 거만했고 원래 성격도 더러웠기에 다른 학교 짱들이 무척이나 싫어하는 놈이었다.

이래서 잘 나갈 때 사람들에게 잘해야 하는 거다.

툭!

유철은 안주머니에서 이백만 원이나 되는 돈뭉치를 꺼내서 테이블 위에 던졌다.

“이건 착수금이다.”

학교 짱들이 돈을 보자 눈이 커졌다.

“얼마냐?”

“두당 20이다.”

“겨우 20 먹고 우리보고 움직이라고? 그것도 한 놈 까기 위해서?”

학교 짱 하나가 어이가 없다는 듯 이죽거렸다.

“일 잘 끝나면 10배씩 더 주지.”

지금까지 유철의 뒤에 있던 최상혁이 나섰다.

“넌 뭐야?”

학교 짱 하나가 유철을 봤다.

“내 친구!”

“친구? 돈 좀 있어 보인다.”

그 말에 최상혁은 씩 웃었다.

“그래 나 돈 좀 있다.”

최상혁이 자기 주머니에서 조금 전 유철이 내놓은 돈뭉치보다 3배는 더욱 커 보이는 돈뭉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5백이다. 이거면 착수금으로는 충분할 거다.”

500만 원이라는 말에 아이들은 눈이 커졌다.

“왜, 무슨 이유로 그 새끼를 조지라는 거지?”

이렇게 돈까지 주는 일이라면 절대 쉬운 일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 학교 일진 하나가 최상혁에게 물었다.

“난 맞고는 못 살거든.”

“뭐?”

“내가 그 새끼한테 빚이 좀 있어.”

“그래서 이 돈을 준다?”

“물론이지.”

“그 새끼 조지는 놈이 이 돈 다 먹는 건 어때?”

덩치가 곰 같은 학교 짱 하나가 나섰다.

“열이 조지든 하나가 조지든 난 상관없어. 그 새끼가 학교만 안 나오면 돼.”

최상혁의 말에 유철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한다. 그 돈 다시 넣어 둬.”

“진태야! 그 새끼 장난 아니다.”

곰같이 생긴 학교 짱의 이름이 진태인 모양이다.

“나도 장난이 아니거든.”

사실 진태는 전국체전 유도 우승자였다. 어깨를 다쳐서 더는 운동을 할 수 없게 돼서 양아치로 전락을 했을 뿐이지, 정말 다치지만 않았다면 잘 나가는 꿈나무 이상은 되었을 놈이었다.

“그건 알지만, 괜히 혼자 나갔다가 깨지면 일만 복잡해진다.”

“그런 일 없어. 나도 맞다이에 져 본 적 없다.”

“뭐 여기 일대일에 져 본 적 있는 놈 있어?”

다른 학교 짱이 나섰다.

“왜 너도 하게?”

“돈 700이면 형님들 보수다. 형님들도 히트맨 할 때 이 정도는 안 받는다더라. 괜히 나눠서 푼돈 만들지 말고 순번 정해서 까자.”

700만 원을 혼자 먹으면 큰돈이다. 하지만 열 명이 나누면 푼돈이 되는 거다. 어쩜 틀린 말도 아니었다.

“순번이라?”

최상혁은 그들을 잠시 봤다.

“그래! 아르바이트하는 셈 치고 하는 거지.”

“난 상관없다. 누가 어쨌건 그 새끼만 학교에 안 나오면 돼.”

최상혁은 다시 그 말을 했다.

“좋아! 우선 내가 먼저다.”

진태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쩜 이건 최은성에게 위기일 거다. 모든 싸움에서 많은 적이 가지고 있는 쪽이 지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최은성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적이 생겨나고 있었다.

최은성이 생각하고 있는 적이던 유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적, 최상혁의 등장으로 날이 가면 갈수록 최은성은 적이 늘어났다.

***

“혹시 쟤 아니야?”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여자애들이 힐끗 나를 봤다.

“저 녀석이라고?”

“키도 비슷하고 얼굴 윤곽도 비슷하잖아.”

“저놈이 영등포 맨발 남이라고? 더러운 사건 미수범이야.”

여자애의 말에 난 인상이 찡그려졌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잖아.”

“그래도 과거는 못 속이는 법이야.”

“확실하다니까.”

여자애들은 그렇게 나를 두고 쑥덕거렸다. 그 애들 외에도 오늘따라 나를 보는 시선들이 더욱 많아졌다.

‘왜 저러는 거지?’

난 누가 내게 관심을 보이면 짜증이 난다.

그렇게 나를 두고 쑥덕거리는 애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뭔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때 복도로 내 유일한 친구 창권이가 지나갔다.

“창권아!”

내가 창권을 부르자 창권은 아무런 사심 없이 나를 보며 웃어 줬다. 이래서 친구가 좋은 거다. 그런데 창권도 나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 그래?”

“너 아니야?”

“뭐?”

“네가 영등포 맨발남 아니야?”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알아먹을 수 있는 소리를 좀 해라.”

“너다. 딱 너 맞다. 내가 처음 그 동영상 봤을 때 넌 줄 알았다. 근사한데?”

창권이는 끝까지 내가 모를 소리만 했다.

“무슨 소리인데?”

내 질문에 창권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몰라?”

“당연히 모르니 묻지?”

“넌 인터넷도 안 하냐?”

“우리 집에 인터넷 없어.”

“헉!”

창권은 인터넷이 없다는 말에 놀라 눈이 커졌다. 아마 이 대한민국에 인터넷이 안되는 집은 우리 집뿐일 거다.

“그럼 모를 수도 있지.”

“정말 뭔데?”

“너 때문에 인터넷이 아주 난리가 났다.”

난 순간 어이가 없었다.

“왜 나 때문에 난리가 났다는 거야?”

창권이는 날 영등포 맨발남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착한 일 해 놓고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친구야!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창권은 나를 껴안았다.

“자랑스러운 것은 나중에 하고, 인터넷에서 왜 나 때문에 난리가 났는지 이야기해 봐. 답답해서 죽겠다.”

“백번 말하면 뭐하냐? 한 번 보는 게 좋지. 가자 인터넷 실로.”

창권은 내 손을 잡아끌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창권이는 신이 나 있는 것 같았다. 난 그렇게 창권을 따라 인터넷 실로 갔다. 그리고 인터넷에 퍼져 있는 동영상을 보고 기겁을 했다.

“놀라는 것을 봐서 너구나! 역시 너였어.”

“이거 어떻게 인터넷에서 뜬 거야?”

모니터 안에서는 신발을 벗어 노숙자에게 신겨 주는 내 모습이 자세하게 찍혀 있었다.

“새벽 조깅을 하던 여대생이 찍어서 인터넷에 올렸다던데.”

“그런데 왜 이게 난리가 날 일이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 내 친구나 되니까 하는 거지. 하하하!”

창권은 마치 자기 일처럼 좋아했다. 저런 게 친구인 거다.

“너 이제 스타야 스타!”

“스타는 무슨 개뿔.”

난 피식 웃었다.

내가 웃자 창권은 자신의 말을 내가 못 믿는다고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아니야 정말. 인터넷에서는 네가 누군지 궁금해서 신상털기를 한다는 소리도 있어. 백만 네티즌들이 너 찾고 난리야.”

창권의 말에 난 표정을 굳혔다.

신상털기를 하게 되면 내 모든 신상이 나오게 된다. 그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성폭행 미수범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누명을 썼다는 것은 나만 알고 있다. 물론 내게 누명을 쓰게 만든 미친 대학생 년도 알고 있고 유철이 놈도 알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상이 모른다는 거다.

“왜 그래?”

“너도 알잖아.”

“내가 뭘? 맞다.”

창권도 바로 표정이 굳어졌다.

“내 신상털기 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게 내가 누명 쓴 그 성폭행범이라는 거야.”

내가 인상을 구기고 있을 때 창권이는 벌써 울상이 되어 있었다.

“왜 그래? 네 신상이 털리는 것도 아니고 내 신상이 털리는데 네가 울상인 거야?”

“내 싸이에 너랑 같이 찍은 사진 올렸거든. 나 때문에 너 신상 털리게 생겼어.”

“뭐?”

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난 그냥 네가 자랑스러워서 그런 것뿐이야! 내 친구가 이렇게 좋은 놈이라고 자랑하고 싶어서.”

창권의 말은 진심인 것 같았다.

“미안해 소리쳐서. 싸이부터 열어 봐.”

난 어떤 댓글이 올랐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학교에 못 다닐 수도 있는 문제였다.

창권이 급하게 자신의 싸이를 열었다.

“방, 방문자가 폭발하네.”

창권은 눈이 커졌다.

“몇, 몇 명인데?”

“7만 명.”

난 지그시 눈을 감았다. 저 7만 명이 악성 댓글 하나씩만 올렸어도 욕이 7만 개가 달린 거다. 창권은 떨리는 손으로 방명록을 열었고 아니나 다를까.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방명록 댓글이 엄청나?”

창권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것으로 봐서 욕이 대부분인 모양이다.

“욕이 많냐?”

“엄청 많아.”

“그렇겠지. 휴우!”

난 절로 한숨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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