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의 신-35화 (35/210)

흑막의 신! 35화

난 한숨을 쉬고 나서 창권의 싸이월드 방명록을 봤다. 역시 악플에는 약이 없다는 말이 맞나 보다. 피가 거꾸로 서는 것이 미칠 것 같았다.

-조작된 동영상이다. 성폭행범이라는 소문이 있음.

-저 돼지가 찍고 그 새끼가 신발을 신겨 준 거다.

-조작해서 좋냐? 이 파렴치한들아.

-누워 있는 노숙자가 너무 뚱뚱하지 않나요? 저 돼지인 것 같아요.

대부분의 댓글은 모두 나와 창권을 욕하는 댓글이었다. 좋은 일 하고도 욕먹는 사람은 이 대한민국에 나뿐일 거다.

나야 그렇다지만 창권도 나랑 싸잡아서 욕을 먹으니 난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

“으응.”

창권의 표정도 굳어져 있었다.

“나 때문에 괜히 너까지 욕먹고 미안하다.”

난 창권의 어깨를 두들겨 줬다.

“그래도 좋은 댓글도 많네.”

창권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 성격인 모양이다.

그 많은 악성 댓글 중에서 나와 창권이를 칭찬하는 댓글을 끝내 찾아냈다.

-과거는 과거! 열심히 사세요.

-어리신 것 같은데 실수할 수도 있죠. 그렇게 착하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사세요. 파이팅!

-무섭게 봤는데 좋은 면도 있네.

난 그 좋은 댓글 중에서 나를 아는 사람이 보낸 것 같은 댓글을 하나 찾았다.

“창권아, 이 댓글 쓴 사람 어떻게 찾냐?”

“무슨 댓글?”

“마지막에 있는 거.”

“파도 몇십 번 타면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럼 파도 타 봐라.”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내 친구 창권이는 무척이나 컴퓨터를 잘했다. 그렇게 창권이가 몇십 번 파도타기를 해서 좋은 댓글의 주인공을 찾았다.

“그 댓글 주인의 싸이야.”

창권은 내게 모니터를 보여 줬다.

난 싸이월드 안에 있는 대문 사진을 보고 씩 웃었다.

‘수정이네! 까칠한 아줌마께서 웬일이니.’

수만 개의 악성 댓글에 상처 입은 내 마음을 수정의 따듯한 댓글이 풀어 줬다.

‘우선 유철이 놈을 굴복시켜서 진술받아야겠다.’

난 다시 이 학교에 복학한 이유를 마음에 새겼다.

“우리 꿀꿀한데 바나나 우유 한잔하러 갈까?”

난 창권의 어깨에 어깨동무했다.

“대한민국 파렴치한끼리?”

“하하하! 그래. 가자.”

난 악성 댓글에 상처를 입은 마음을 훌훌 털었다. 하지만 학교 어머니회 쪽에서는 나처럼 이번 사건을 훌훌 털지는 못한 모양이다.

* * *

최 회장의 서재.

최 회장은 의자에 앉아있고 가은이 가만히 서서 최 회장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상혁이가 나쁜 애들하고 어울리고 있다는 소리 들었냐?”

“예. 보고를 받았습니다.”

“들었으면서 넌 고모가 돼서 가만히 보고 있는 거냐?”

“죄송해요. 아버지.”

“상혁이가 아직 어려서 그렇지 우리 가문을 이끌어 갈 아이다.”

“예.”

“난 사람들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 돈이야 충분히 모았어.”

최 회장은 갑자기 돈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가은도 최 회장이 얼마나 많은 돈을 가졌는지 정확한 액수를 모르고 있었다.

단지 하루 동안 현금화해서 동원할 수 있는 자금력으로만 따진다면 대한민국 최고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이야. 난 상혁이가 정치했으면 좋겠다. 돈을 가지고 있어 보니 돈보다야 명예고 권력이 욕심이 나.”

“그래서요?”

“난 상혁이를 아주 능력 있고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 만들고 싶다.”

이건 가은이 처음 듣는 이야기다.

“그런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상혁이는 티끌만큼도 흠집이 있어서는 안 된다.”

결국, 최 회장이 무리하게 은성에게 누명을 씌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난 왜 상혁이가 질이 떨어지는 아이들과 어울리는지 모르겠구나.”

“그 아이 때문일 거예요.”

“그 아이?”

“예. 상혁이 대신 누명을 쓰고 소년원에 간 아이요.”

“내 손자를 그렇게 망가트려 놨으니 당연히 벌을 받는 거다. 그 정도로 끝을 낸 것은 내 자비다.”

은성을 떠올리자 최 회장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저건 살기다. 어떤 면에서는 최 회장 역시 정신병자 같았다.

“그래서 상혁이 나쁜 아이들과 어울린다는 거냐?”

“자기 스스로 어떻게든 그 아이를 처리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학교에서 쫓아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나쁜 방법은 아니구나. 한 번 악연이라고 판단하면 절대 재기할 수 없게 만드는 것도 방법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러다가 상혁이가 몹시 나쁜 아이로 자랄까 봐 걱정이에요.”

“혹시 그 아이가 지난 일을 들추고 다니는 거냐?”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괜히 상혁이가 긴장하는 것 같기도 해요.”

가은의 말에 최 회장은 인상을 찡그렸다.

“학교에 다니면 학교 아이들이 좋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되지. 그리고 내가 이사장으로 있는 학교라면 그런 아이가 다녀서는 안 되지.”

“아버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 데요?”

“그 아이가 학교에 못 다니게 해야겠다. 우리 상혁이를 위해서도.”

“하지만…….”

“우리 상혁이는 소중한 아이다.”

최 회장은 가은의 말을 잘랐다.

“어떻게 하실 건데요?”

“요즘 학부모들이 다 극성스럽지 않니?”

“예?”

“어머니회에서 다 알아서 할 거다.”

최 회장은 차갑게 말했다. 역시 은성의 생각대로 은성이 잊는다고 해서 다 잊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 * *

교장실에 성난 물소처럼 살만 찐 여자들이 핏대를 세우며 이제 정년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교장을 몰아붙이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흉악한 범죄자를 복학시킬 수가 있어요?”

“남자 학교도 아니고 남녀 공학인 학교에서 어떻게 무서워서 우리 딸을 학교에 보낼 수가 있겠어요.”

“당장 퇴학이라도 시키세요.”

“진정 좀 하십시오. 제가 잘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교장은 학교 발전 어머니회들이 거세게 몰아붙이자 진땀을 빼고 있었다.

“설명이고 자시고 다 필요 없고, 당장 퇴학시키세요.”

“맞아요. 당장 퇴학시키지 않으면 교육청에 진정을 넣겠어요.”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흉악범이랑 우리 애가 같이 학교에 다녀요.”

“서류상 착오가 있는 모양입니다.”

“착오가 있었으니 바로 잡으셔야죠.”

“그, 그게…….”

“그게 뭐요?”

“설마 퇴학 조치 못 시킨다는 겁니까?”

학교 발전 어머니회의 입김은 상당한 것 같았다. 어디를 가나 여자 치맛바람이 거세기 마련이다.

“꼭, 꼭 못 시킨다는 것이 아니라…….”

“그럼 뭐예요?”

“이미 학적이 등록되어 있어서 학교 자체로 퇴학 조치를 할 수가 없습니다.”

교장의 말에 어머니회 여자들의 눈깔이 성난 물소처럼 벌겋게 변했다. 그리고 씩씩거리는 모습이 정말 살진 물소 같다.

“없다고요? 하! 이게 무슨 개 껌 씹는 소리세요. 그럼 우리 애가 그런 흉악범이랑 같이 학교에 다니라는 건가요?”

“어, 어쩔 수 없습니다.”

교장은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 가만히 어머니회의 성난 발언을 듣고 있던 가은이 교장을 봤다.

“교장 선생님! 정말 퇴학시킬 방법이 없는 건가요?”

“현, 현재는 그렇습니다. 부회장님.”

가은은 젊은 나이에 학교 발전 어머니회 부위원장이었다. 원래 이 학교가 사립학교고 사학재단 역시 최 회장이 운영하는 재단이기에 가은이 부위원장인 거다.

“난처하네요.”

“저 역시 난처합니다.”

사실 은성의 과거사는 바로 은성의 생각 없이 한 선행에서 비롯됐다. 처음 100만 네티즌들은 좋은 의미에서 신상털기를 했다.

자신의 신발을 벗어 준 맨발 남이 누굴까 하는 궁금함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신상털기 중 은성의 과거가 하나씩 드러났고, 인터넷 여론은 점점 더 은성에게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갔다. 이렇게 인터넷 여론은 가변성이 컸다.

교장은 식은땀을 닦으며 가은의 눈치를 봤다. 사실 가은은 어떻게든 은성이 학교에 남아 있어야 했다. 그래야 자신의 조카인 최상혁이 문제를 일으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상황에서 은성을 편들고 있을 수는 없었다.

‘선행해도 궁지에 몰리네. 인생 참 꼬였다. 정말!’

가은은 다시 교장을 봤다.

“그래서 지금은 방법이 없다는 거죠?”

“예.”

“학교 측에서 일방적인 퇴학이 되지 않는다면 자퇴를 종용해 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자퇴요? 그 방법이 제일 좋은 방법일 겁니다.”

“그래 퇴학이 안 된다면 자퇴라도 시켜!”

“맞아! 자퇴하라고 교장 선생님이 압력을 넣으세요.”

“우리 애는 예뻐서 위험하다고요. 성범죄자랑 어떻게 학교를 같이 다녀요.”

“자퇴시켜요. 자퇴!”

“그래도 선행을 했는데 지금 자퇴를 시키면 학교 이미지가 나빠지지 않을까요?”

가은은 슬쩍 교장과 어머니회가 들으라고 돌려 쳤다.

“그렇기도 합니다. 요즘 여론이 반반이라 좀 그렇습니다.”

“아무리 선행을 했다고는 하지만 과거가 문제가 있어서 아무 상관 없을 거예요.”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얼굴을 한 못생긴 어머니 하나가 말했다.

“여론이라는 게요. 조석으로 바뀌는 거잖아요. 학교에서 자퇴를 강요해서 자퇴하면 그게 또 어떤 방향으로 튈지 모르잖아요. 학교 이미지가 나빠지면 학생들 이미지도 나빠져요.”

가은의 말에 어머니회들은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재단 이사장님께서 명문 고등학교로 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고 계시는지 아시죠? 그런데 까딱 잘못하다가는 모든 게 엉망이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거예요?”

“우선 잠시 여론을 주시하고 있다가 잠잠해지면 자퇴를 종용해야 할 거예요.”

“그게 언제인데요?”

“말씀드렸잖아요. 여론이 잠잠해질 때라고요. 금방 여론은 식을 거예요. 그때 학교에서 퇴학을 시키든 자퇴를 하게 하면 되잖아요. 은성이라는 학생이 자퇴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가은은 교장을 씩 웃으며 봤다.

“예. 맞습니다. 제가 꼭 자퇴를 시키겠습니다.”

가은의 말도 있어서 그런지 성난 물소 같던 어머니회 여자들은 조금은 누그러진 것 같았다.

“정말이죠? 교장 선생님!”

“예. 제가 꼭 자퇴를 시키겠습니다.”

“저희들은 그렇게 믿고 갑니다.”

가은은 여전히 미덥지 않은지 계속 확답을 받는 어머니회 여자들을 보며 씩 웃었다.

‘너희가 아무리 그래도 나한테 필요한 애야.’

그렇게 은성은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학교에서 잘릴 위기를 한차례 넘겼다.

“그럼 저희는 교장 선생님만 믿고 갑니다.”

대장 물소인 어머니회 회장이 일어서자 나머지 어머니들도 주르륵 일어섰다. 역시 물소 떼 같다.

철컥!

문이 열렸다.

“박인후 선생님은 왜 여기 계세요?”

박인후 선생은 빡돌 체육 선생의 본명이다.

“아 그게 지나가다가 언성이 높아져서 잠깐…….”

빡돌은 말꼬리를 흐렸다. 하지만 은성의 약점을 잡았다는 듯 밝은 표정이 역력했다.

“그럼 지나가세요. 요즘 애들한테 원성이 자자한 거 아시죠?”

빡돌은 주야장천 아이들을 때렸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쪼르륵 달려가서 자기들 엄마에게 고자질했다.

“다 명문대 하나 더 보내기 위한 제 노고라는 것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빡돌은 야자를 거의 책임지고 있다.

“알긴 알지만, 애들을 너무 잡는 것 같네요.”

“자제분들 좋은 대학 보내야죠.”

이게 바로 빡돌이 그렇게 지랄을 해도 교육청에 진정이 올라가지 않는 이유였다. 사이코 같은 빡돌이지만 은근히 어머니회의 비호를 받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대학 한 명 못 보내는 농구부는 언제 해체하실 건가요?”

다른 어머니 하나가 빡돌에게 따지듯 물었다.

“곧 좋은 선수 하나 스카우트가 될 겁니다. 저희도 연대, 고대, 중앙대 보낼 수 있습니다. 기다려 보세요.”

“그게 언제요?”

“곧 입니다. 곧!”

“괜히 어머니회 자금만 들어가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지원이 거의 없는 농구부지만 그래도 지원을 해 주는 곳은 어머니회였다. 물론 그건 어머니회 임원 중 회장과 다른 임원 아들들이 농구 선수이기 때문이었다.

“전 선생님만 믿겠어요. 벌써 2학년인데…….”

다소 걱정이 된다는 듯 어머니회 회장이 빡돌을 봤다. 그의 아들 역시 농구 선수다. 중학교 때부터 공부에는 소질이 없어서 농구를 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명문대를 보내기는커녕 거의 지역 예선조차 통과도 못 하는 학교 농구부였다.

“제가 어떻게 하든 꼭 중앙대 이상 보내겠습니다. 저만 믿으세요.”

“으음.”

어머니회 회장은 빡돌을 한번 째려보고 복도를 횅하니 걸어 사라졌다.

그 모습을 빡돌이 보며 씩 웃었다.

“넌 농구를 해야 해! 반드시.”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