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36화
난 모처럼 책상에 앉아 교과서를 폈다. 이제 시험이 코앞이다. 일 년 내신 성적을 결정하는 기말고사가 일주일 남았다.
그때 내 뒤에서 놀란 얼굴로 창권이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은성아! 은성아!”
“왜 놀란 돼지처럼 뛰어와? 무슨 일 있어?”
“너한테 무슨 일 있어.”
“나한테? 내가 무슨 일이 있는데?”
“학교 발전 어머니회가 학교에 와서 교장실을 발칵 뒤집어 놓고 갔어!”
“그게 왜?”
난 창권이 왜 저렇게 놀란 얼굴을 해서 내게 말하는지 이유를 몰랐다. 내가 이 학교에 오래 다니지는 않았지만, 시시때때로 오시는 분들이 바로 어머니회 임원들이다. 뭐 거의 출근 도장을 찍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그래서 아이들은 학교 발전 어머니회를 성난 물소 떼라고 부르기도 한다.
“너, 너 그거 있잖아…….”
창권은 말꼬리를 흐렸다.
“그거 뭐?”
“그거 누명 쓴 거 때문에 와서 난리를 피웠다고 해.”
창권의 말에 난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왜 이렇게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모르겠다. 이래서 누명을 쓰는 사람 중에 화병에 걸려 죽는 사람이 있나 보다. 딱 내가 그럴 판이다.
“왜. 날 학교에서 자르기라도 하겠대?”
“응. 너 자르라고 난리야!”
창권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날 자르겠다는 거야?”
“우린 남녀 공학이잖아. 어머니회에서 아주 난리를 쳐서 교장실이 발칵 뒤집혔데.”
“시발! 내가 뭘 잘못했다고 지랄이야!”
난 절로 욕이 나왔다.
“이 모든 게 다 영등포 맨발남 신상털기 때문인 것 같아. 미안해, 괜히 나 때문에…….”
그래. 사실 내가 아무 제약 없이 복학된 게 신기했다. 보통 나 같은 소년원 출신은 같은 학교에 복학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덜컥 복학 허락이 떨어졌고, 사실 그것부터 영 찜찜하긴 했다. 하지만 내가 안 가는 것 하고 학교에서 잘리는 것 하고는 기분부터가 다르다.
“난 항상 좋은 일을 하고 나면 뒤끝이 안 좋네.”
정말 나처럼 재수 없는 놈도 없을 거다. 이상하게 선행을 하면 안 좋게 돌아온다.
“이제 어떻게 해?”
“내가 어떻게 아냐? 잘리면 그냥 우스워지는 거지. 씨발! 기분도 더럽네.”
“좆 되기 전에 농구부 들어와야지.”
언제 와 있었는지 빡돌이 말했다.
“예?”
“네가 이 학교에 꼭 필요한 학생이면 자르라고 해도 절대 안 잘라.”
“퇴학당하는 거랑 농구랑 무슨 상관인데요?”
“농구를 하면 퇴학 안 당한다.”
빡돌의 말에 난 잠시 빡돌을 뚫어지게 봤다. 난 어떻게든 이 학교에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유철에게 자백을 받아야 하고, 그 남자 새끼가 어떤 놈인지도 알아야 한다. 처음에는 그 남자 새끼를 찾기 위해 학교를 뒤졌다. 그런데 이 좁은 학교에서 그 새끼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젠장! 어떻게 하지?’
내가 고민을 하자 빡돌은 나를 보며 웃었다.
“네가 우리 농구부를 지역 예선을 통과시키고 전국 4강에만 들게 만들어 놓으면 어머니회가 오히려 나서서 널 보호해 줄 거야.”
빡돌의 말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성난 물소 떼의 파워는 이사장 다음이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난 항상 이렇게 엉뚱한 곳에서 일이 터진다. 참 할 일도 많은데 자꾸 이상한 쪽으로 끌려다니니 할 말이 없고 어이가 없다.
“할 거야? 말 거야?”
빡돌 선생은 날 몰아붙였다.
“잠깐만요.”
“네가 생각할 여유가 있나? 당장 여론이 잠잠해지면 넌 퇴학을 당하든 자퇴를 하라고 압력을 받든 둘 중 하나다. 그러니 여유 같은 것은 없을 거다.”
“그, 그렇죠.”
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렇게 새롭게 시작한 인생이 이리도 꼬일 줄은 몰랐다. 미래의 기억도 있고 힘도 있고 영약이라는 영약도 있는데 왜 일이 잘 안 풀리는지 모르겠다.
‘이게 다 내가 뜸을 들이기 때문이야! 생각하고 고민하고 그렇게 하므로 일이 안 풀리는 거야.’
난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만 봐도 어머 한다고, 모든 행동에 신중에 신중을 구했다.
그것이 패착이 된 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된 거다.
“2년만 고생해라. 그럼 졸업은 내가 보장한다.”
솔직히 난 고민할 것도 없다. 사실 내가 이 학교에 붙어 있는 이유는 유철에게 올바른 진술을 받아내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진술을 토대로 내가 누명을 썼다는 것을 밝혀내야 서울대 의대를 가서 의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내 미래의 기억을 가지고 내가 원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면서 나도 멋지게 살 수 있다.
결국, 엉망진창으로 꼬인 이 실타래는 유철과 그 남자 새끼로부터 시작해서 풀어야 하는 거였다.
‘좀 서둘러야겠어!’
지금까지 내가 너무 안일하고 여유롭게 움직인 것 같다.
‘좋아! 이제 움직인다.’
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최은성!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는 거야? 정말 학교에서 잘리고 싶어!”
빡돌 체육 선생은 다시 확답을 재촉했다. 난 그런 빡돌 체육 선생을 봤다.
“하죠. 농구부 하겠습니다. 그 대신 저 학교에서 잘리는 거 선생님이 막아 주십시오.”
난 다부지게 빡돌 선생을 보며 말했다.
“그럼! 누가 우리 농구부 스타플레이어를 학교에서 잘라? 그런 일은 절대 없다.”
“예. 하겠습니다. 어디 한번 해 봅시다.”
난 드디어 농구부에 입단했다. 아무리 내가 오기를 부려도 현실은 나를 농구부로 이끌었다.
그리고 상황은 내게 시간이 없으니 서두르라고 재촉을 했다.
‘이제 정면 돌파다.’
* * *
가은은 차 안에서 은 실장에게 전화했다.
“무슨 일이죠? 은 실장님!”
-도련님이 아이들에게 은성을 정리하라고 청부를 한 것 같습니다.
은 실장의 보고에 가은은 씩 웃었다.
“청부요? 어린 게 별짓을 다 하네요.”
-그렇습니다. 누구라도 다치게 된다면 일이 커질 수도 있습니다. 전 그걸 막을 의무가 있습니다.
“우선 지켜보죠. 전 아직 제가 얻으려는 것을 손에 넣지 못했어요.”
-회장님이 아시면 문제가 커질 수도 있습니다. 아가씨!
“제가 다시 말씀드리죠. 은 실장님은 이번 일은 그냥 모르시는 겁니다. 은 실장님은 제 지시대로 은성이라는 아이를 잘 살피시기만 하면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은 실장은 대답은 했지만, 목소리가 그리 밝지 않았다.
가은은 전화를 끊고 웃었다.
“내 계획대로 되고 있어. 유철이든 은성이든 둘 중 누구 하나가 상혁이를 정리해 주면 그만이야! 그 반대여도 난 괜찮고.”
가은은 혼잣말을 하며 차를 몰고 학교를 벗어났다.
***
마음을 먹었으니 이제 움직여야 한다. 사실 너무 안일하게 생각을 했다. 소리소문없이 치밀하게 움직여서 유철을 압박한 후 놈에게 자백을 받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은 암초에 걸려 버렸다.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다.
‘농구도 해야 하고 자백도 받아야 하고, 정말 미치겠네!’
이래서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도 못 할 판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움직이기로 했으니 실행에 옮긴다.
어쩜 유철에게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 제일 쉬울 거다.
난 집으로 돌아가면서 최대한 빠르게 유철에게 자백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유철에게 자백과 함께 그 남자애가 어떤 놈인지 파악도 해야 한다.
모든 실마리는 유철에게 있다.
그때 내 앞에 남산만 한 놈이 길을 막고 섰다. 그리고 놈의 뒤에는 딱 봐도 양아치 같아 보이는 놈들이 6명 서 있다.
“너, 나랑 이야기 좀 하자.”
요즘 나한테 이렇게 시비를 거는 놈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할 이야기 없는데.”
“난 있어.”
“뭔데?”
“여기서 하긴 좀 그런데.”
딱 봐도 놈은 나와 싸우기 위해 온 것 같았다.
“여기서 해! 나 지금 머리 복잡하거든.”
정말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놈이 시비를 거니 짜증이 밀려왔다.
“여기서 할 이야기가 아니거든.”
진태는 공원 안을 봤다. 저 공원은 내가 극도로 싫어하는 바로 그 공원이다. 저 공원에 들어가고 나서 문제가 생겼다.
“나 공원 무지 싫어한다.”
“난 좋거든.”
“싫다니까. 여기서 이야기하려면 하고, 싫으면 꺼져.”
내 말에 진태는 피식 웃었다.
“좋아! 너, 손 좀 봐 주란다.”
진태의 말에 그 누구가 유철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또 유철이냐?”
“너 학교 다니는 거 싫어하더라. 그래서 학교 못 다니게 해 주라네.”
진태는 차갑게 나를 봤다. 나 역시 진태를 봤다. 유철이 개입된 일이라면 분명 말로 끝날 일은 아닐 거다.
난 진태의 말에 화가 치밀었다.
“왜 이렇게 내가 학교 다니는데 불만인 사람이 많아?”
“나야 모르지.”
이미 싸움은 정해져 있었다. 그럼 빨리 끝내야 한다. 난 다시 한번 유철을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 난 이렇게 귀찮은 것은 정말 싫다.
“덤빌 거지?”
“물론. 최소한 병신 만들어 놓는다.”
어린놈이 참 말하는 거 살벌하다.
“가자, 공원!”
그래도 이놈은 유철보다는 괜찮은 놈 같다. 뒤에서 후려까지 않고 앞에서 당당히 싸움을 거는 것이 제법 폼에 사는 놈이 분명할 거다.
난 그렇게 진태와 그의 똘마니들과 함께 가기 싫은 공원으로 가기 위해 걸었다.
“너 유철이 똘마니냐?”
“시킨다고는 하지만 똘마니는 아니다. 나 그 새끼 양아치 같아서 싫어해.”
“그럼 넌 양아치 아니고?”
“반쯤 양아치지.”
진태는 피식 웃었다. 저런 생각하는 놈이라면 자력갱생이 가능할 것 같았다.
‘혼자 움직일 수는 없겠지.’
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누명을 벗고 나면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해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 달릴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고 부릴 수 있는 부하들이 있어야 한다. 최소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놈들이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진태는 그게 가능할 것 같다.
‘비술로 우선 겁 좀 줘야지.’
이제 정말 움직이는 거다.
누가 보면 나와 진태는 친구처럼 걷고 있다. 정말 날 병신 만들려는 놈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분명 놈은 날 조지려고 온 놈이다. 그러니 내가 저놈을 완벽하게 굴복시켜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며 걸으니 공원 으슥한 곳까지 도착했다. 무슨 삼류 액션 영화도 아니고 이런 그곳에서 쌈질해야 하는 내가 한심했다.
“시간 없다. 바로 다 덤벼라.”
내 말에 진태는 피식 웃었다.
“좋지. 시간 끌 거 없고.”
진태는 정말 삼류 영화 악당 두목처럼 뒤로 빠졌다.
“조져!”
역시 말투도 삼류 영화 악당 두목이다.
“적당히 병신 만들어 줘라!”
진태의 말에 똘마니 하나가 주먹을 휘두르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난 그놈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퍼퍼퍽!
“으아악!”
달려든 놈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내 주먹이 복부를 연속으로 적중한 거다. 난 일어서는 놈을 향해 발로 복부를 내려찍었다.
바지직!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내 귀를 자극했다. 난 싸움을 할 때는 물불을 안 가리고 싸운다. 갈비뼈 두어 대 부러진다고 해서 사람 안 죽는다.
내 행동에 진태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나머지 똘마니들은 일제히 두꺼운 커터 칼을 주머니에서 꺼내 내게 겨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