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40화
“몸은 괜찮은 거냐?”
은 실장이 유철을 보며 말했다.
“괜, 괜찮습니다.”
“쉽게 당했구나.”
“죄, 죄송합니다. 워낙 갑작스럽게 들이닥쳐서…….”
유철은 구차한 변명을 했다.
“앞으로 우리가 널 보호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
“예. 감사합니다.”
유철은 은 실장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비밀을 발설한다면 나도 너를 보호해 줄 수 없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우리가 널 보호해 준다.”
“감, 감사합니다.”
“놀랬을 것 같은데 집으로 가라.”
“예.”
유철은 짧게 말하고 자신이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 쪽으로 갔다. 그리고 멀어지는 유철을 은 실장이 보다가 뒤에 있는 부하를 봤다.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마라.”
“예.”
부하 하나가 짧게 대답을 하며 묵례했다. 그리고 유철은 저 멀리서 자신의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은 실장의 부하 역시 사라졌다.
다음날. 은성은 모르고 있었지만 두 명의 조폭들이 아무도 모르게 이 대한민국 땅에서 사라졌다. 뭐 누구 하나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없었다.
사라진 그 둘은 바로 미수 사건과 관련이 있던 바로 그 두 조폭이었다.
최상혁에 대한 모든 증거가 지워지고 있었다. 그 사실을 최은성만 모르고 있었다.
* * *
며칠 후, 난 엄청난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내가 상대해야 할 존재가 유철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처음 나를 놀라게 했던 한 가지는 창권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은성아! 은성아!”
그때 창권은 헐레벌떡 내게 뛰어왔다.
“헉헉! 은성아!”
난 학교 정원 벤치에 앉아 은 실장이 누구일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하늘은 마치 내 답답한 마음처럼 한껏 먹구름을 머금고 있었고, 금방이라도 때늦은 겨울비를 토해 낼 것 같았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호들갑이냐?”
“유철이가! 유철이가 죽었어.”
“뭐?”
난 내 귀를 의심했다. 난 며칠 전에 유철을 봤다. 아니 자백을 받아냈다. 그러니 유철이 죽었다는 창권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 새끼 내가 며칠 전에도 봤는데 왜 죽어?”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데.”
“오토바이 사고?”
난 점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유철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오토바이가 위험한 탈 것이기는 했지만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다는 것이 석연치 않았다.
“그래! 덤프가 커브를 트는 오토바이를 못 봤데. 그리고 유철의 혈액에서 알코올이 다량 나왔데.”
결국, 창권이 내게 하고 싶은 말은 유철이 술 처먹고 운전을 하다가 트럭에 부딪혀서 죽었다는 거다.
그리고 이제 자신과 내게 시비를 거는 사람이 없어서 좋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난 좋을 리가 없다.
이제 겨우 작은 실마리 하나가 풀렸는데 갑작스러운 죽음이라 뭔가 찜찜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뜩 은 실장이란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곧 한없이 겁먹었던 유철의 얼굴도 떠올랐다.
‘설, 설마…….’
순간 소름이 돋았다.
방금 떠오른 생각이 맞는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비술만으로는 절대 누명을 벗을 수가 없다. 거대한 것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나 역시 모든 면에서 거대해져야 했다.
‘난 도대체 어떤 것들과 싸우는 거지?’
두려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비록 지랄 같은 성격에 분명 커서 사회의 악이 될 거라 생각되는 유철이지만, 어쩌면 내가 그를 죽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상혁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지금 난 그렇게밖에는 유추할 수 없다. 그리고 내 유추는 분명 확실할 거다.
그때 창권이 멍하니 학교 건물 현관 쪽으로 걸어 들어가는 학생을 보고 피식 웃었다.
“쟤가 웬일이냐? 학교를 다 나오고?”
“무슨 소리야?”
“상혁이 말이야! 이 학교 설립한 사람의 손자. 황태자지. 황태자.”
난 내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창권을 봤다.
“저 애 이름이 뭐라고?”
“몰라 너?”
“저 새끼 이름이 뭐냐고?”
“최상혁! 우리 학교 황태자.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소문에는 저 새끼 서울대 보내려고 이 학교를 세웠다는 소리도 있어. 그것도 저 새끼 기어갈 때부터.”
창권은 재수 없다는 듯 말했다.
“저, 저 새끼 이름이 최상혁이라고?”
“그래. 몰랐어?”
최상혁을 모른다는 말에 창권은 도리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난 분노에 차 벌떡 일어나 학교 건물 현관으로 뛰었다. 이미 최상혁은 사라진 후였다.
‘어디 간 거야? 어디?’
난 흥분을 했다. 내가 그렇게 찾고 있던 최상혁이 눈앞에서 사라지니 미칠 것 같았다.
“왜 그래? 은성아!”
“최상혁이 어디에 있어? 어디에 있냐고?”
“뭐 그야 교장실이나 이사장실에 있겠지.”
창권의 말에 난 우선 이사장실로 뛰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난 다시 교장실로 미친 듯 뛰었다. 그리고 겁 없이 교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간절히 찾고 있던 최상혁을 드디어 찾았다. 내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니 교장실에 앉아있던 교장 선생님과 최상혁, 그리고 긴 생머리의 아가씨 한 명이 놀라 날 빤히 봤다.
“무슨 일이지, 학생?”
교장이 날 봤다.
“아, 아닙니다.”
우선 교장실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럼 이제 나올 때까지 복도에서 기다리면 된다.
“오랜만이다. 은성아!”
최상혁은 마치 날 무척이나 잘 알고 있다는 듯 내 이름을 불렀다.
“저 학생이 은성?”
교장은 날 잠시 봤다.
“예. 교장 선생님!”
최상혁은 그렇게 말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교장 선생님은 나를 보며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자네 이름이 최은성인가?”
“예,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나가 보겠습니다.”
“아니야. 자네 부르려던 참인데 잘 왔네.”
“예?”
“미안한 말을 좀 해야겠네. 입학 서류에 착오가 있었던 모양일세. 자네가 스스로 자퇴를 해 줬으면 하네. 그게 싫다면 학교 측에서는 어쩔 수 없이 퇴학 조처할 수밖에 없네.”
교장의 말에 최상혁은 킥킥거렸다. 하지만 난 웃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미 예상하였던 일이다. 그게 내가 생각했던 때보다 좀 더 빨리 왔다는 것이 문제였다.
“자, 자퇴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 학교는…….”
교장은 말꼬리를 흐리며 생머리 아가씨를 힐끗 봤다.
“자네 같은…….”
“예. 알겠습니다. 자퇴하죠.”
이 상황에서 내가 아무리 안 된다고 버텨도 달라질 것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내가 순순히 자퇴하겠다고 말한 것은 내 앞에 최상혁이 있기 때문이었다.
“순순히 받아들여 줘서 고맙네.”
“저 이제 이 학교 학생 아닌 겁니다.”
“미, 미안하네.”
난 성큼 앞으로 걸어 나가 최상혁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내가 너 얼마나 찾은 줄 알아?”
“킥킥킥! 왜, 치려고? 여기 증인 많아.”
“왜 그래? 최은성 군.”
“전 이 학교 학생 아닙니다.”
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쳐! 아예 평생 교도소에서 썩게 만들어 줄 테니까.”
“그 손 놓는 게 좋을 거다.”
그때 뒤에서 음산하지만 담담한 목소리가 내 귀를 자극했다.
‘은 실장?’
난 고개를 돌렸다.
“말했을 건데. 살고 싶으면 잊는 게 좋을 거라고. 나라면 그냥 다 잊고 산다고.”
은 실장과 최상혁을 한곳에서 만나니 그동안 궁금했던 모든 것이 한 번에 풀렸다. 결국, 모든 것은 최상혁의 죄를 감추기 위한 음모였다.
“으음!”
“킥킥킥! 치라니까. 쳐 보라고.”
은 실장이 나타나니 최상혁은 더욱 이죽거렸다.
난 최상혁을 노려봤다. 정말 크게 한 대 후려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한 대 후려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난 이제 내 적이 누군지 확실히 알았다.
그리고 내 적이 내가 상상한 것보다 거대하다는 것 역시 알게 됐다.
“하하하! 하하하!”
난 나도 모르게 크게 웃었다. 그리고 최상혁의 가랑이 사이 고환 바로 옆을 꾹 눌렀다.
비술의 발동!
이번 비술로 인해 최상혁은 남자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할 거다. 하지만 완전히 고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비술이 인간의 신체적 능력을 극대화할 수도 있고 극소화할 수도 있지만, 아예 소멸시킬 수는 없다.
한마디로 최상혁은 밤일할 때 성질만 급하고 더러운 토끼가 될 것이다. 날 보며 웃고 있는 저 악당들이 말하는 것처럼 내 비술에는 어떠한 증거 같은 것을 남기지 않는다.
난 그렇게 비술을 발동하고 최상혁을 잡고 있던 멱살을 스스로 풀었다.
내가 갑자기 웃자 최상혁이 인상을 찡그리며 날 봤다.
“왜 웃는 거야?”
“그래. 이제 알았으니 됐다.”
난 그렇게 말하고 교장실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리고 출입문 앞에 서 있는 은 실장을 보며 작게 속삭였다.
“당신이면 그렇게 잊고 산다고? 좆 까! 기다려.”
그리고 당당히 교장실을 걸어 나왔다.
사실 내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꾹꾹 눌러 참으며 은 실장에게 경고만 하고 나온 것은 일차적으로 최상혁에게 비술을 발동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내게 좋은 말로 자퇴를 요구한 교장을 비롯한 은 실장까지, 그저 하찮은 나뭇가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저들을 힘으로 응징한다고 해서 내 복수가 끝날 순 없다.
물론 최상혁도 마찬가지다.
그저 그들은 거대한 것의 나뭇가지에 불과하다. 저런 나뭇가지는 아무리 쳐 내도 다시 자라기 마련이다. 새로운 악의 나뭇가지는 계속 자라날 것이다. 그러므로 뿌리 깊은 거대한 나무를 뿌리째 뽑아내야 한다.
아마 그 거대한 나무는 최상혁의 할아버지일 거다. 그리고 그 그늘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악의 싹이 최상혁일 거다. 그러니 저들을 건드릴 필요는 없다.
‘내가 어리석었다. 새롭게 얻은 삶은 과거를 잊고 새롭게 시작했어야 했어.’
약간의 후회도 밀려온다.
어쩜 멋지고 훌륭한 의사가 되겠다는 과거의 반성이 나를 학교로 이끌고 이런 복잡한 사태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를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다.
완벽한 적!
그 적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나 스스로 악의 근원보다 더 깊은 뿌리를 내리는 거목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오늘 한발 물러선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잊을 때쯤 당당히 그들 앞에 설 것이다.
이렇게 내 학교생활은 끝이 났다.
빡똘 체육 선생이 말한 농구 스타플레이어는 시작도 못 해 봤다. 학교에 남아 있기 위해서 농구를 하려고 한 것이기에 미련 따위는 없다.
이제 어쩜 난 평생, 누명을 벗지 못하고 살지도 모른다. 의사 따위는 이제 꿈도 꾸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있다.
내 적이 누구고, 또 그 적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알았다. 그리고 물리적인 힘만으로는 절대 나를 조롱했던 내 적을 부숴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반드시 부숴 버린다.”
바드득!
난 거대해져야 한다. 그래야 저 개 같은 놈들을 부숴 버릴 수 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적을 부수기 위해 완벽하게 성장할 것이다. 내 미래의 기억과 내 능력을 갖추고.
난 그렇게 당당히 학교 건물을 걸어 나와 운동장 한가운데에 섰다.
두두두! 두두두!
언제부터 왔는지 장대비가 쏟아졌다.
그 옛날 몇 년 전처럼 비가 그렇게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난 그 비를 맞으면 천천히 돌아섰다. 그리고 최상혁과 은 실장, 그리고 그를 두둔하는 모든 것들이 들어 있을 것 같은 저 학교를 보며 소리쳤다.
“세상 참! 좆같다!”
그리고 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정의롭게 싸워서는 절대 악을 응징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난 테러리스트가 된다.’
난 학교를 노려봤다.
내 외침이 얼마나 컸던지 수업을 받고 있던 아이들이 모두 창 쪽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내 귀에는 들리지 않지만 무슨 일인가 해서 웅성거렸다.
멀어서 잘 안 보였지만 창권은 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날 위해 울어 주는 사람이 하나는 있다.
창권은 이미 내가 퇴학을 당했다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역시 학교는 소문이 빠르다.
‘새끼. 울기는.’
날 위해 울어 주는 친구. 그럼 된 거다.
그래 이 학교에서 그거 하나는 건졌다.
이제 누구도 날 위해 울지 않게 할 것이다.
난 다시 어금니를 깨물며 돌아섰다. 장대 같은 비에 이미 내 옷은 젖었다. 아니 마음이 젖어 있는지도 모른다. 몇 년 전, 비 오던 날 아들과 보건지소를 나서던 그 할머니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기다려! 이 좆같은 세상아! 난 반드시 다시 온다.”
난 다시 울분을 토하듯 소리를 질렀다.
이제 내가 가야 할 길이 정해졌다. 처음부터 이렇게 정해져 있었는지도 몰랐다.
쏟아지는 빗속에 나는 비를 한없이 맞으면 학교를 노려봤다.
그래. 이제 나는 내 길을 간다.
악을 응징하는 테러리스트!
난 그게 될 것이고 그것을 위해 세력을 키우고 힘을 키울 거다.
난 쏟아지는 빗속에서 학교를 보며 그렇게 맹세를 했다.
‘악이 있는 세상을 다 부순다.’
난 그렇게 다짐을 했다.
“난 흑막의 신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