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41화
자퇴하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 제법 멀게 느껴졌다. 쏟아지는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내 옷을 적시더니 몸을 적시고 마음을 씻어 내렸다.
아마 그 옛날 그 할머니와 아들 역시 지금의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난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소처럼 곱씹으며 천천히 식당 문 앞에 섰다.
양어머니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난 차마 양어머니가 일하고 계신 식당 문을 열 수가 없었다.
그때 식당 안에서 양어머니와 아저씨의 이야기가 쏟아지는 빗소리와 함께 내 귀에 흘러들어 왔다.
“장사 너무 안되지?”
아저씨는 여전히 양어머니의 식당을 걱정하고 계셨다.
“그렇죠. 어쩔 수 없죠.”
양어머니의 목소리도 풀이 죽어 있는 듯했다.
“참! 젠장! 사람들 참 야박하다.”
“그런 소리 말래도요.”
“죽은 은성 때도 그러더니 지금도 그러네. 정 없는 것들.”
아저씨는 양어머니의 친아들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내 형이라고 할 수 있는 진짜 최은성은 교도소에서 죽었다. 살인범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기도 전에 병을 얻어 죽었다는 소리를 지나가면서 나를 보고 쑥덕이던 동네 사람들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난 아저씨가 죽은 진짜 은성이의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그의 이야기 뒤에 내 이야기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양어머니와 아저씨의 이야기를 식당 문 앞에서 귀를 집중하며 들었다.
“사람들이 다 그렇지 뭐.”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은성이는 누명을 쓴 것인데 흉악범이 있는 집이라고 식당에 발걸음을 뚝 끊는 건 너무하잖소.”
“은성이 올 시간 됐네. 그런 소리는 입 밖에도 내지 마요.”
“없으니 하는 소리지. 정말 마음도 착한 놈인데 왜 그렇게 일이 안 풀리는지 참…….”
“그런 소리 은성이가 들으면 상처받아요. 그래도 불쌍한 앤데…….”
“참 그놈도 지지리 복도 없지. 어찌 하는 일마다 그렇게 일이 꼬이는지. 쯧쯧!”
아저씨는 영등포 맨발남에 대한 일도 알고 있는 듯했다. 인터넷을 들끓게 한 일을 아저씨도 알고 계신다는 것은 아저씨 역시 여론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다는 방증일 거다.
“또 무슨 일이 있수?”
“그런 게 있어.”
난 아저씨와 양어머니의 대화를 듣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건 어머니에 대한 하늘 같은 미안함이었다. 내가 지금 양어머니를 어렵게 만들고 있는 거였다.
‘그, 그냥 조용히 사라져야 하나…….’
난 문득 비겁한 생각을 했다.
그때 다시 양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돈이 좀 없으면 어때요. 난 아들이 생겨서 참 좋아요. 죽은 우리 은성이가 돌아온 것 같아요. 어찌 그리 닮았는지…….”
난 어머니의 말을 들고 돌리려고 했던 발걸음을 멈췄다.
‘어, 어머니…….’
저런 양어머니가 계시는데 내가 그냥 양어머니를 위한답시고 도망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
돈도 싫다고 하시며 나만 있으면 된다고 말씀하시는 양어머니에게 이제 내 힘으로 돈을 마련해 드리고 싶었다.
내겐 미래의 기억이 있다. 알량한 복수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앞으로만 달렸지만, 이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미래의 기억이라는 능력을 사용할 때라고 생각을 했다.
‘웰빙 국밥을 만들어 주지.’
난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섰다.
지금 이대로 식당 안에 들어가면 양어머니는 혹시나 아저씨와 자신이 한 대화를 내가 듣지나 않았을까 걱정을 하실 거다.
난 이제 누구도 걱정시켜 드리고 싶지 않다. 한 30분쯤 다른 곳에 가 있으면 될 거다.
‘그래! 양어머니부터 챙긴다. 그리고…….’
그리고 보니 참 나는 무심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으면 은혜부터 갚아야 하는데 그저 나만 잘되려고 학교에 가서 공부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누명을 썼다. 또 모든 것을 망각하고 누명만 벗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 모든 일이 우습기만 했다. 이래서 사람의 마음가짐이 중요한 모양이다.
‘나보다 그들부터 챙길 거다.’
이제 난 마음가짐부터 달라졌다. 그렇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하루가 지났다.
* * *
내가 자퇴를 했다는 말에 양어머니는 약간 충격을 받으신 듯했다. 하지만 원래 없이 살던 분이셔서 그런지 포기가 빠르셨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아쉬움보다 나의 마음을 먼저 생각해 주신 건지 아무런 말 없이 그저 내 등을 쓰다듬어 주셨다.
“그래, 이제 뭘 할 거니?”
“어머니를 도우려고요.”
“나를 돕는다고?”
“예. 국밥집 어머니 혼자 하시기는 너무 힘드시잖아요.”
“검정고시는 어쩌고?”
자퇴했다고 해도 검정고시를 준비하라는 말씀이다.
“어머니 도우면서 할게요.”
“돕지 않아도 돼. 너는 공부만 하면 좋겠는데.”
“아니에요. 제가 돕고 싶어요.”
“사실 요즘 도울 것도 없단다. 그냥 공부만 해라.”
이미 우리 국밥집은 파리 천국이다. 하루에 겨우 10명 정도가 올까 말까 할 정도다.
그러니 내가 돕고 자시고 할 것이 없다.
하지만 난 이대로 국밥집이 망하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도울 것이 있게 만들고 싶어요.”
“뭐?”
“장사가 잘되게 하고 싶어요.”
어머니는 내 자신감에 흐뭇한 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저 웃음 속에는 너는 아직 세상살이를 잘 모른다는 걱정이 포함된 듯했다.
“그게 말이 쉽지, 쉬운 게 아니란다. 사실 싼 맛에 단골손님들이 제법 왔는데 요즘은 통 안 오시는구나! 가게 목도 안 좋고 경기도 안 좋고.”
어머니의 웃던 얼굴이 침울해졌다.
“새로운 손님이 올 수 있게 해 볼게요.”
내 말에 어머니는 잠시 고민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결심이 섰는지 날 봤다.
“그래. 해 보렴. 아니 우리와 같이해 보자.”
“예.”
난 어머니를 위해 밝게 웃었다.
난 사실 자신이 있었다. 음식이라는 것이 그렇다. 맛이 있거나 몸에 좋거나 싸거나 이 요소 중 2가지 이상만 충족시키면 대박이 난다.
난 맛은 모르겠으나 몸에 좋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원래 우리 식당은 싸다고 소문이 난 곳이다.
그럼 2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다.
‘내게는 영약과 미래의 기억이 있다.’
이제야 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활용할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일 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인 게 내가 생각을 해도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재료비를 최소화시켜야 해.’
우리 같은 영세한 식당은 홍보할 돈도 없고 목이 좋은 곳에 있지도 않다. 그럼 인건비와 재료비를 아껴서 판매마진을 남겨야 한다.
‘멧돼지야 좀 잡으면 되고.’
돼지 뼈 육수로 만든 우거지 국밥!
가장 많은 재료비를 차지하는 것은 돼지 뼈였다. 그리고 다음이 우거지, 그다음이 국산을 고집하는 김치다. 어머니는 항상 국산 김치와 국산 돼지 뼈를 사용해서 국밥을 끓이셨다. 그럼 나도 그것만은 지켜야 한다.
재료비를 아끼려고 양심 없이 믿고 먹을 수 없는 수입산을 쓸 수는 없는 거다.
‘우리 국밥에 웰빙의 날개를 단다.’
난 그렇게 식당 발전 추진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그 추진 방향의 핵심은 영약이다. 내게는 아직 상당량의 영약이 있다. 물론 200g도 안 되는 양이지만 한 번 육수를 끓일 때 1g 정도 넣으니 200번 육수를 끓일 수 있는 양이니 일 년 정도는 너끈히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부족해지면 가져오면 되지.’
영약이야말로 내게 가장 소중한 보물일 거다.
“앞으로 육수는 제가 끓일게요.”
“육수를?”
돼지 뼈 육수로 만든 우거지 국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육수를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제일 손이 많이 가는 일이기도 했다.
“예, 새벽에 일어나시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어요. 제가 일어나서 육수 끓여 놓고 운동 다녀올게요.”
양어머니는 내가 새벽마다 운동을 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힘든 일인데, 손도 많이 가고.”
“제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 체력 하나는 좋잖아요.”
육수를 내가 끓여야 영약을 넣을 수 있다.
난 양어머니에게 꼭 내가 하고 싶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래, 알았다.”
드디어 난 어머니에게 승낙을 받았다.
난 이제 새벽에 일어나 수련 겸 운동 겸해서 북한산까지 뛰어가 멧돼지를 업어 와서 육수를 끓이면 된다.
그럼 재료비를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그럴싸한 수육도 팔 수 있다. 물론 사람들에게 들키지 말아야 한다. 밀렵은 원래 범죄니까.
‘우거지 국밥으로만은 안 돼.’
사실 요즘 우거지 국밥을 먹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음식도 유행을 타는 법이다. 2년 정도 지나면 고추장 삼겹살이 유행할 거고, 다시 일 년 정도가 지나면 파 삼겹살이 홍대를 중심으로 대박을 칠 것이다.
찬찬히 생각해 보니 미래의 기억은 도움이 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마지막은 매운 등갈비로 여기에 빌딩 올린다.’
난 씩 웃었다.
그리고 난 바로 재료를 구하기 위해 이른 새벽에 식당 문을 열고 나섰다.
“이야야아아아!”
난 기지개를 쫙 켰다. 이제 겨울이라 입에서 하얀 김이 뿜어져 나왔다.
“겨울이라 먹을 것이 없을 테니 더 빨리 찾겠지.”
난 바로 뛰기 시작을 했다.
비술 경공.
지치지 않고 빠르게 뛸 수 있는 능력 수련에도 이만한 것이 없어 보였다. 난 그렇게 북한산으로 가서 멧돼지 새끼를 잡아 우선 피를 빼고 뼈를 바른 다음 몇 등분으로 잘라서 가지고 왔다.
‘내 덕분에 서울 인근에는 몇 년 후에 멧돼지가 폭주하는 일은 없겠군.’
역시 이것도 내 미래의 기억이다.
가끔 뉴스를 보면 천적이 없어 개체 수가 늘어난 멧돼지들이 먹이를 찾아 도심까지 내려와 사고를 친다는 게 종종 뉴스거리가 됐다.
어쩜 이 서울에는 멧돼지의 천적인 내가 있는 거다. 그러니 몇 년 후에 일어날 멧돼지 폭주는 없을 거다.
난 우선 기본 재료를 구했다.
그리고 빠르게 식당으로 돌아왔다. 내게 오늘을 벅차게 살라고 떠오르는 태양이 나를 반기는 것 같았다.
“역시 겨울이라 해가 늦게 뜨네.”
난 이제 육수 준비를 해야 한다. 우선은 살이 많이 남은 돼지 뼈의 핏물을 빼야 한다. 그리고 막 잘라 몇 등분이 된 돼지고기 덩어리를 최대한 분리를 해야 한다.
삼겹살은 삼겹살대로, 목살은 목살대로, 갈비는 갈빗대로 분리를 해서 고기 맛이 섞이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난 돼지 뼈를 빨간 대야에 담고 나머지 고깃덩이들을 봤다.
“저거 다 어쩌냐?”
부위별로 고기를 잘라야 한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어떻게 자르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고기를 부위별로 분리하는 것은 기술자들이나 하는 거다. 아무리 내가 비술 검법이 있다고 해도 그건 깊이 베어내는 게 전부다.
역시 아는 거랑 몸으로 할 줄 아는 거랑은 다른 법이다.
‘배워야겠네.’
앞으로도 난 신선한 재료를 내가 직접 구할 거다. 그러니 돼지고기의 부위를 나누는 법을 반드시 배워야 한다.
정말 뭐 하나 쉬운 일이 없다.
그리고 바로 빨간 대야에 들어 있는 돼지 뼈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