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의 신-44화 (44/210)

흑막의 신! 44화

“뭘 잘 빠는데?”

난 씩 웃으며 물었다.

“당연히 빨래지.”

“남자 옷…… 도 잘 빠나?”

난 이 말을 하면서 옷의 발음을 작게 말했고 그냥 들으면 남자도 잘 빠나? 처럼 들렸다.

“그럼 잘 빨지. 뭐?”

잘 빤다고 대답을 했다가 내 농담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았는지 수정은 날 째려봤다.

“너, 어린 게 까불래?”

“어리기 개뿔이 어려. 그리고 옷 잘 빠냐? 는데 왜 눈을 흘기고 그래.”

사실 난 기억으로만 따지면 수정보다 몇 년은 더 살았다. 그리고 여자 경험도 무척이나 많다.

“그런 의미가 아니었잖아.”

다시 수정이 눈을 흘겼다. 귀엽다. 정말 귀엽다.

“그럼 무슨 의미인데?”

이럴 때는 당당해야 한다.

“그게, 그게 무슨 의미냐면…….”

수정이 말을 하면서 부끄러운지 얼굴이 빨개졌다. 역시 이런 농담은 이렇게 둘이 있을 때 해야 재미가 있다. 그러고 보니 수정은 무척이나 순진했다.

“무슨 의민데?”

“그게…….”

수정은 말꼬리를 흐리다가 다시 날 째려봤다.

“어서 빨래나 빨아!”

수정이 내게 소리를 쳤다.

“응! 나도 잘 빨아.”

난 바지를 걷어 올리고 탕으로 들어갔다.

콸콸콸! 콸콸콸!

목욕탕 수도꼭지를 틀었다. 그리고 수정도 탕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수정은 이미 허벅지가 훤히 보이는 짧은 핫팬츠를 입고 있었다. 만약 내가 오지 않았다면 이 많은 빨래를 혼자 할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난 그런 생각을 하다가 수정은 내가 무섭지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왜 그렇게 날 봐?”

순간 오해가 생길 것 같았다. 내가 뚫어지게 봤으니 말이다.

‘이런…….’

난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너 안 무섭거든. 넌 그럴 애 아니라는 거 알거든.”

수정은 내 마음을 아는 듯 대답했다. 그리고 난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 머리를 만지며 수정을 보며 씩 웃었다.

“고마워.”

“뭐가?”

“날 믿어 줘서.”

“믿기는 개뿔을 믿어? 아닌 거 아니라고 아는 건데.”

“그래도 세상 사람들은 다 안 믿거든.”

내 말에 수정이 날 잠시 봤다.

“사람이 크게 되려면 시련이 많은 거야.”

“뭐?”

“넌 이상하게 커 보이네.”

수정이 날 보며 말했다.

“내가?”

“그래. 이상하게 넌 어른스러워. 물론 장난칠 때는 애지만.”

이 순간 수정도 내게 호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호감은 오늘 하루 봉사를 나온 것에 대한 호감이지만 말이다.

‘못 올라갈 나무는 쳐다보는 게 아니지.’

수정은 내게 그런 존재일 거다.

“그런데 이걸 다 혼자 할 생각이었어?”

“그럼 어쩌니? 요즘 봉사 나오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데.”

수정은 물이 차오르는 탕에서 발로 빨래를 밟으며 내게 말했다.

“오래 봉사활동 했어?”

“그러고 보니 쭉 했네.”

수정은 다시 씩 웃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세제를 가지고 오려는지 탕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삐직! 미끌!

원래 목욕탕 바닥이 미끄럽다. 수정이 발을 잘못 디뎌서 몸이 휘청거렸다. 이런 곳에서 저렇게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 크게 다치는 법이다. 난 빠르게 몸을 움직여 슬라이딩해서 수정의 몸을 받았다.

쿵!

“어머!”

수정은 놀라 소리를 질렀고 난 겨우 수정을 안전하게 받았다. 그런데 넘어지면서 나와 수정의 자세가 이상하게 됐다. 마치 수정이 나를 덮치는 것 같이 올라탄 자세가 된 거다. 내 몸 위에 겹쳐진 수정의 몸이 내 중요한 부분을 자극했다.

그리고 수정의 가슴이 내 가슴에 느껴졌다.

물컹한 것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리고 작았던 것이 커지니 수정도 금세 내 몸의 변화를 느낀 것 같다. 수정은 화들짝 놀라서 팔을 뻗어 목욕탕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 했다.

미끌!

역시 목욕탕 바닥은 좀 미끄럽다. 지탱하고 있던 팔이 미끄러지자 수정의 몸이 다시 내게 더 밀착됐다.

“어머!”

이럴 때는 또 농담할 때다.

“계속 그렇게 있고 싶어? 안 할 거야? 빨래?”

내 말에 수정이 다시 얼굴이 빨간 사과처럼 달아올랐다.

“어서 빨자. 어서!”

난 수정을 빤히 보며 씩 웃었다.

“뭐, 뭐?”

“어서 일어나야 빨지.”

“으응.”

수정은 조심스럽게 일어섰다.

“너 자꾸 야한 농담 할래?”

수정이 눈을 흘겼다.

“내가 무슨 야한 농담을 해?”

“뭐? 지금 하는 게 뭔데?”

“난 그냥 빨래 빨자고 한 건데? 그게 야해?”

내 말에 수정은 할 말이 없을 거다. 여자 입으로 내 말의 뜻을 말하기는 좀 그럴 거다.

“그래 빨자! 빨아! 너도 빨고 나도 빨고.”

수정은 민망했는지 소리를 질렀고 목욕탕 안이 울렸다.

난 그런 수정을 보며 씩 웃었다.

“그렇게 같이 빨자. 하하하!”

난 크게 웃으며 수정을 봤다.

수정은 빨래를 빨겠다는 생각이었기에 핫팬츠와 얇은 티를 입고 탕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티가 물에 젖어 수정의 몸에 쫙 달라붙었다.

정말 모처럼 좋은 눈요기를 하고 있다.

‘보기보다 몸매 좋네.’

난 수정을 보며 다시 씩 웃었다.

“어머! 어디를 보는 거야?”

수정은 그제야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았다는 듯 다시 눈을 흘겼다. 그리고 팽하니 돌아서서 목욕탕 밖으로 나갔다.

“휴! 몇 분 눈요기에 이 많은 빨래 내가 다 빨아야 해?”

난 한숨을 내쉬며 세제를 풀고 빨래를 했다. 한 20분 정도 지나니 수정이 옷을 갈아입고 다시 왔다. 그렇게 다시 만난 수정과 난 2시간 넘게 빨고 또 빨았다. 옷을.

난 그렇게 오후 내내 수정에게 잡혀 봉사하고 식당으로 돌아왔다. 물론 난 수정의 휴대전화 번호를 얻었다.

그래도 수정은 내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전화번호를 먼저 주는 것을 봐서.

“그래도 오늘 많은 것을 얻네.”

난 이제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지 알았다.

“영약으로 돈을 벌 수 있겠다.”

난 나도 모르게 씩 웃었다. 그리고 내게 명함을 주고 간 할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다.

‘영약을 좀 넘기고 종잣돈을 받아?’

이건 내 첫 고민이다.

뭐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종잣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고 힘든 법이다.

‘한 30억은 줄 것 같은데…….’

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그때 식당으로 아저씨와 양어머니가 들어오셨다.

“가게 잘 보고 있었어?”

양어머니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예.”

난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주머니에 넣어 둔 100만 원짜리 수표 두 장을 드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했다. 어떤 할아버지가 국밥 한 그릇 먹고 가시면서 주셨다고 하기에는 액수가 너무 컸다.

“오늘 가게 문 닫았니?”

밖에 써 붙인 종이를 어머니가 본 거다.

“예. 육수부터 진하게 끓이려고요. 그래야 진한 맛이 날 것 같아서요.”

양어머니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은 생각이야.”

어머니는 그렇게 말을 했다.

“그냥 은성한테 가게를 맡기는 건 어때?”

아저씨가 어머니를 보며 말했다.

“은성이 혼자 가게를 하라고?”

어머니도 아저씨를 봤다.

“고생할 만큼 했잖아. 나랑 같이 이제 좋은 곳이나 다니면서 지내자.”

요즘 아저씨가 무척이나 씩씩해졌다.

아마 정말 아저씨는 양어머니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은성이는 공부해야지. 내가 뒷바라지도 못 해 주는 데 가게까지 맡기면 어떻게 해.”

“저 혼자 할 수 있어요.”

난 자신 있다는 표정으로 크게 말했다.

“혼자 못해.”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저 혼자 할 수 있어요. 검정고시도 혼자 하잖아요. 그러니까 어머니는 아저씨랑 여행이나 좀 다니세요.”

“봐! 은성이가 효자네. 하하하!”

“안 된다니까. 은성이가 무슨 음식을 할 줄 알아?”

“며칠 알려 주면 되지.”

아저씨는 집요하게 밀어붙였다. 그리고 나 역시 아저씨를 도왔다.

“맞네요. 며칠 어머니의 비법을 전수해 주시면 되겠네요. 저 잘할 수 있어요.”

“그래도…….”

“한 달만 맡겨 봐 주세요. 제가 잘하면 완전하게 식당을 맡기시고요. 아니면 어머니가 다시 복귀하시면 되잖아요.”

내 말에 양어머니는 날 빤히 봤다.

“정말 할 수 있겠어?”

“비법만 잘 알려 주시면 할 수 있어요. 하하하!”

“봐! 요즘 애들은 똑똑해서 알려 주면 잘해.”

아저씨가 이제 나를 거들었다. 역시 아저씨는 아줌마랑 같이 있고 싶은 걸 거다.

“저 잘할 수 있어요.”

다시 양어머니가 날 봤다.

“그래. 너도 회사 같은 곳에는 다닐 수 없을 테니까 혼자 해 봐.”

어머니가 끝내 아저씨와 내게 설득이 됐다.

“그럼 이제 당신은 나랑 여행이나 다니는 거다.”

지금 이 순간 아저씨만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여행을 다닐 만큼 아저씨는 여유가 있는 거였다.

난 그렇게 어머니에게 며칠 우거지 국밥을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가게를 맡았다. 내가 가게를 맡고 나서도 달라진 것은 없다.

손님도 그대로. 매상도 그대로다. 영약을 넣은 국밥의 효능을 아는 사람은 나와 그 할아버지뿐이다.

‘참 대놓고 광고를 할 수도 없고.’

이게 내 고민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손님을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리고 난 바로 멧돼지 사냥을 포기했다. 정말 내가 단순했다. 돼지면 다 돼지라는 내 생각을 그 할아버지는 여실히 깨 줬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을 재료비 몇 푼 아끼려고 무리할 필요는 없다.

밀렵은 죄니 안 하는 게 좋다.

우선 그 할아버지에게 받은 200만 원을 가게 재료비로 쓸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딱 돈이 필요할 때 돈이 들어왔다.

이건 앞으로 내 일이 잘될 거라는 암시 같았다.

‘어떻게 하지?’

정말 이게 고민이다.

어떻게 하면 손님을 끌어모을까 하는 생각만 했다.

“입소문을 타게 할 방법이 뭘까?”

그때 문을 열고 수정이 들어왔다.

“장사하고 있어?”

난 수정을 보고 방긋 웃었다. 사실 수정이 오늘 우리 집 국밥을 먹는다면 첫 개시다.

“하지 그럼. 국밥 먹으려고?”

“응.”

수정은 방끗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식당 밖을 봤다.

“어서 들어와. 여기 끝내주는 국밥집이다.”

수정의 말에 남자 몇과 여자 서넛이 마지못해 들어왔다.

“여기 국밥 7그릇.”

수정은 다른 아이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주문을 했다.

난 그런 수정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하하하! 귀여운 것.’

정말 수정은 쌈닭만은 아니었다. 난 손님으로 온 사람들을 봤다. 남자들은 딱 봐도 수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끌려온 것 같고, 여자 중 몇은 또 수정 때문에 끌려온 남자들 때문에 온 것 같았다.

“무슨 조선 시대도 아니고 국밥이니?”

여자 하나가 어이가 없다는 듯 수정에게 말했다.

“국밥이 왜? 여기 국밥 정말 몸에 좋아.”

“아무리 그래도 국밥은 국밥이야.”

역시 사람들이 모이면 저렇게 시비를 거는 애들이 있다.

난 저런 애들이 밉다.

“너 몰라서 그렇지. 내 피부가 왜 이렇게 탱탱한 줄 아니?”

수정의 말에 남자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고, 여자들은 재수가 없다는 듯 수정을 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