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46화
“어머니, 이거.”
난 묵직한 돈뭉치를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어머니와 아저씨는 돈뭉치를 보고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뭐니?”
“이번 달 번 돈이요.”
“얼마니?”
“삼백만 원 조금 넘어요.”
매상이 두 배 이상 늘어난 거다.
“오호! 은성이 장사 수완 좋네.”
아저씨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아니에요. 그냥 손님이 좀 많았어요.”
“그래. 다행이구나. 그냥 넣어 둬라.”
“예?”
“다음 달에 손님이 또 줄어들 수 있잖니. 그리고 너도 검정고시 준비하면서 쓸 돈도 있을 거고.”
역시 돈 욕심은 태어날 때부터 없었을지도 모르는 양어머니다.
“저 이런 큰돈 못 가지고 있어요.”
“이제 가지고 있어.”
뭐 양어머니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도…….”
“그래! 은성아, 네가 가지고 있어라. 어머니랑 나랑 두어 달 길게 여행을 갈까 한다.”
“두어 달이나요?”
“그래. 네 어머니가 해외여행을 한 번도 못 가 봤다네.”
“예?”
난 놀라 아저씨를 봤다. 두 달 정도 해외여행을 마음대로 갈 정도면 아저씨의 재력이 상당하다는 소리다.
그러고 보니 난 아저씨 직업도 모른다.
“왜 그렇게 놀라?”
“아니에요. 그런데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뭐가 궁금해?”
“아저씨 뭐 하시는 분이세요?”
내 물음에 아저씨는 피식 웃었다.
“나 책 쓴다.”
“예?”
“작가라고.”
난 그때 알았다. 유명한 작가는 돈을 무척 많이 번다는 것을.
그렇게 양어머니와 아저씨는 해외여행을 떠나셨다.
* * *
손님이 많아지니 이제 혼자서는 도저히 가게를 운영할 수가 없었다.
“손님이 늘어서 미치겠다.”
수정은 가게 문을 닫았지만 가지 않고 날 보고 있었다. 아마 난차를 얻어 갈 목적일 거다.
“장사 잘 돼도 걱정이야?”
“혼자 하기가 벅차서 그렇지.”
“그럼 종업원을 써.”
아주 간단한 말이다. 그리고 맞는 말이기도 했다.
“누굴 쓰지?”
그때 수정이 날 빤히 봤다.
“할머니들 쓰는 거 어때?”
“할머니?”
“응. 양로원에서 노시는 할머니들 일자리 드리는 것도 괜찮잖아.”
수정의 말에 난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양로원 할머니들이 무슨 힘이 있어서.”
“왜 그래? 그래도 다들 요즘 얼마나 정정해지셨는데.”
그 역시 영약의 효능을 본 것일 거다.
“그래도 어린애가 할머니들을 어떻게 부려. 싸가지 없게.”
“할머니들은 좋아하실걸.”
“그럴까?”
“그럼. 일자리가 없어서 얼마나 심심해하시는데. 시켜만 주면 기뻐하실 거야.”
“정말 그럴까?”
“물론 힘쓰는 일은 네가 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국밥 맛은 훨씬 좋아질걸.”
역시 수정도 내가 만든 국밥이 맛이 없다는 소리였다.
“그렇게 맛이 없니?”
“그냥 먹을 만은 한데 돈 주고는 먹기 좀 그렇다.”
“그 정도야?”
“응.”
이제 고민할 것도 없다. 우리 집 국밥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 할머니들을 고용해야 한다.
“몇 명이나 모시고 올까?”
수정은 이미 내 마음을 읽고 있는 것 같았다.
“우선 주방에서 요리하실 할머니 한 분하고 서빙하실 할머니 한 분이면 되겠네.”
“두 명이면 힘드셔.”
“정정하시다고 네가 말했다.”
“그래도 할머니잖아.”
수정은 괜한 거로 열을 올렸다.
“그럼?”
“그래도 3명은 써야지.”
난 어이가 없었다. 3명 인건비면 적게 잡아도 한 달에 80만 원씩 해서 240만 원이다. 지금 한 달 매상이 600만 원 정도다. 그중 재료비가 200만 원 정도다. 그럼 내 손에 쥐는 돈은 160만 원이다.
“왜 그렇게 인상을 써? 육십만 원씩 드리면 세 명을 써도 180만 원이야. 맛만 좋아져 봐라. 손님은 더 늘지.”
난 수정의 말을 듣고 씩 웃었다.
“60만 원?”
“응. 그 정도면 일하실 수 있다고 하셨어.”
수정은 이미 할머니들에게 말을 해 놓은 모양이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지금까지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좋아. 그렇게 하자.”
내가 결정을 하자마자 수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니 바로 일어선다. 하지만 이미 밤이었다.
난 밤에 안 좋은 기억이 있다.
“집에 가려고?”
“응. 가야지. 여기서 자고 가니?”
“데려다줄게.”
“됐네요. 혼자 갈 수 있네요.”
하지만 내가 안심이 안 된다. 난 수정을 따라나섰다.
“누가 보면 애인인 줄 알겠네.”
수정은 힐끗 날 보며 말했다.
“손이라도 잡아야 애인이지.”
내 말에 수정은 내 허락도 없이 스윽 내 손을 잡았다.
쿵!
난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이건 뭘 하자는 거지?’
난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제 손잡았으니 애인인가? 호호호!”
수정의 그 말에 난 다시 심장이 내려앉았다. 이렇게 기분 좋게 심장이 내려앉은 적은 처음이다. 하지만 좋은 생각도 잠시뿐이다.
난 스르륵 수정의 손을 놨다.
“왜?”
그리고 수정을 빤히 봤다.
“나 안 무서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수정도 나를 빤히 봤다.
“알잖아. 내가 어떤 애인지.”
저번에도 수정은 내가 안 무섭다고 했다. 그런데 난 다시 이렇게 확인하고 싶었다.
“아니라며.”
“나 믿어?”
“널 어떻게 믿니?”
역시 수정도 날 못 믿는 거다.
“우리 아빠가 사내는 다 늑대라고 하더라. 호호호!”
그리고 다시 수정이 내 손을 잡았다. 이 감정이 애인의 감정인지 좋은 친구의 감정인지는 지금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나쁘지 않은 감정일 거다.
* * *
다음날.
수정을 필두로 해서 할머니 세 분이 식당으로 오셨다. 모두 다 표정이 무척이나 밝았다. 아마 일자리를 얻었다는 것 때문에 즐거운 걸 거다.
“이 애가 사장이고요.”
수정은 할머니들에게 날 소개했다.
“우리 사장님이네.”
“사장님한테 반말하면 어떻게 해? 호호호!”
“애기 사장님, 잘 부탁해요. 호호호!”
역시 일자리를 얻은 할머니는 기분이 좋은 모양인가 보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요즘 40대에 명예퇴직을 걱정해야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60이 훌쩍 넘어서 일자리를 다시 얻으니 마치 새로운 인생을 찾으신 것 같은 표정이셨다.
“주방에서 일하실 할머니 한 분하고요. 두 분은 서빙하고 주방일 도와주세요.”
“주방일이야 마산댁이 최고지! 예전에 식당도 크게 했잖아.”
할머니 하나가 곱게 파마를 한 할머니 한 분을 봤다.
“예전에 식당을 크게 하면 뭐해? 아들놈이 사업한다고 다 들어먹고 제 어미도 안 챙기는데.”
마산댁 할머니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중에 수정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정말 마산댁 할머니는 마산에서 순댓국집을 크게 하셨던 분이었다.
하지만 아들 하나 있는 게 이것저것 사업에 실패하다가 끝내 순댓국집까지 들어먹고 잠적을 해 버린 거였다.
“그럼 마산댁 할머니가 주방을 맡아 주세요.”
“나야 고맙지.”
마산댁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분 할머니들도 서빙과 주방 보조, 서빙 보조 일을 맡았다. 물론 돌아가면서 주방 일도 하실 거다.
“그리고 지금은 월급을 조금밖에 못 드리지만, 나중에 장사가 잘되면 더 드릴게요.”
“말이라도 고맙네. 호호호!”
“아니 정말요. 가게 잘되면 스톡옵션처럼 많이 드릴게요.”
“스톡옵션? 그게 뭔데?”
할머니 하나가 수정을 보며 물었다.
“할머니 수당요. 수당! 성과 수당.”
“호호호! 그래. 더 주면 좋지.”
“그럼 일해 보자고.”
식당 서빙을 보는 할머니는 바로 걸레를 잡고 식탁을 닦았다.
“할머니 제가 할게요.”
어린놈이 앉아있고 나이 드신 할머니가 걸레질하는 것을 난 볼 수가 없었다.
“이건 내 일이야. 애기 사장! 사장은 계산대나 봐.”
“그래도…….”
“그렇게 할 일이 없으면 시장 가서 무랑 배추나 좀 사와.”
“예?”
“국밥집에 깍두기랑 김치가 맛있어야지 손님이 오지.”
역시 마산댁 할머니는 크게 식당을 하신 분이라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예. 금방 사 가지고 올게요.”
“수정이도 같이 가. 그러고 보니 잘 어울리네. 호호호!”
서빙을 담당한 할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이름도 바꿔야 하는 거 아냐?”
“왜 이름을 바꿔?”
“원래 국밥집은 오래된 것처럼 보이고 원조처럼 보여야 하잖여. 안 그래 마산댁?”
“그렇지.”
역시 할머니들은 말씀이 많았다. 하지만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식당 이름을 바꿔요?”
“바꾸면 좋지?”
“뭐로 바꿀까?”
수정이 날 봤다.
“으음……. 그래, 세 할머니 집! 어때?”
난 할머니들을 보며 말했다.
“좋네. 애기 사장 똑똑하네. 호호호!”
“그러게. 세 할머니 집! 뭐가 오래된 가게처럼 보이네.”
“이바구 그만하고 어서 배추랑 무나 사와요. 애기 사장! 손님 받으려면 벌써 담가도 담갔어야 했어.”
“예. 할머니!”
난 수정과 함께 시장으로 갔다.
“요즘 내가 많이 한가하긴 한가한 모양이네.”
수정은 시장을 둘러보며 내게 말했다.
“뭐?”
“너랑 시장을 다 다니고. 나도 월급 받아야 하는 거 아냐?”
“출근하면 주지.”
“학생이 무슨 출근이니?”
“그럼 주말에만 출근하든가. 예쁘장한 애가 카운터를 보면 장사가 더 잘되겠지.”
이건 진담이다.
“호호호! 미인계를 쓰려고?”
“미인계까지는 안 되고. 내가 보는 것보다 네가 보는 게 좋다는 거지.”
“뭐야?”
수정은 내게 눈을 흘겼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채소 가게 앞에 도착했다.
“아줌마! 배추 한 포기 얼마예요?”
수정이 아줌마에게 물었다.
“한 포기에 삼천 원.”
“열 포기 살 테니까 이만칠천 원에 주세요.”
꼴에 지도 여자라고 시장에 와서 물건값을 깎으려고 한다.
“에이 그렇게 주면 안 남아.”
“에이 남으시잖아요. 그리고 무는요.”
“무는 천 원.”
“그것도 열 개요.”
난 수정을 빤히 봤다.
“그 많은 것을 어떻게 다 들고 가?”
“힘 좋은 남자 있는데 왜 못 들어?”
자기가 안 들 거라고 수정은 막 샀다.
“아줌마 저희가요. 저 위에서 세 할머니 집이란 가게에서 일하는데요. 채소 여기서만 살 테니까 좀 깎아 주세요.”
“세 할머니 집? 처음 듣는 식당 이름이네.”
“오늘 개업했어요.”
수정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했다.
“그래?”
“예. 그러니까 싸게 주세요.”
“으음. 좋다. 그래요. 아가씨가 예뻐서 준다.”
“그럼 저 예쁘니까. 삼만육천 원에 주세요.”
“이 아가씨 서서 사람 코 베어 갈 아가씨네. 호호호.”
아줌마도 웃었다. 그럼 흥정이 된 거다.
“좋다. 그 대신 꼭 우리 집 야채 써.”
“물론이죠.”
수정은 날 봤다.
“뭐해? 돈 드려야지.”
“응!”
난 아줌마에게 돈을 드리고 내 앞에 놓인 배추 열 포기와 무 열 개를 보고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차는 있어 총각?”
“없는데요.”
“그걸 어떻게 들고 가려고?”
“그러게요.”
난 처음으로 수정을 째려봤다. 여전히 수정은 날 보며 웃고 있다. 그러다 내 어깨를 강하게 후려쳤다.
짝!
수정은 원래 손이 무척이나 맵다.
“아야!”
“이렇게 튼튼한 장정이 있는데 차는 무슨 차요. 호호호! 뭐해? 안 들고.”
“이걸 어떻게 다 드니?”
“남자가 그것도 못 들어?”
여자는 항상 저런다. 꼭 무슨 일이 있으면 남자가 그것도 못 하니? 그것밖에 안 되니? 이러면서 약을 올린다. 물론 난 들 수는 있다. 하지만 무게보다 부피가 너무 컸기에 들기 불편한 거다.
“진짜 들고 가려고?”
아줌마도 걱정이 되는지 다시 물었다.
“예. 들고 가야죠.”
“지게 있는데.”
역시 난 아줌마들이 좋다.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아마 식당 개업을 했다는 수정의 말에 단골로 만들고 싶어서 아줌마가 선심을 쓰는 것 같았다.
“물론이지. 단골이라는데 그 정도는 해 줘야지.”
“고맙습니다.”
난 그렇게 배추와 무를 지게에 지고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여자들은 어디를 가나 흥정만 하고 물건만 사지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물론 오늘은 내 식당의 재료를 사는 거라 조금은 틀리지만, 여자는 물건을 사고 남자는 계산을 한다.
백화점을 가든 재래시장을 가든 인터넷 쇼핑을 하든, 여자는 물건만 사고 계산은 남자가 한다. 참 그런 것을 보면 한국 여자들은 얌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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