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47화
그때 재래시장 한구석이 시끄러웠다.
우당탕! 우당탕!
“일수 못 찍을 거면 돈은 왜 빌려 갔어!”
그 소리에 채소 가게 아줌마부터 인상을 찡그렸다.
“저놈들 또 왔네. 나쁜 놈들!”
나와 수정도 요란한 좌판이 있는 곳을 봤다. 그곳에는 건장하게 생긴 청년 몇이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하는 할머니의 좌판을 이미 엎어 놓은 상태였다.
난 인상을 찡그렸다.
“내일은 꼭 줄 꼬마. 그만해라.”
“내일, 내일. 우리가 일수 찍지 월수 찍소?”
“미안하다 안 카나. 그만해라.”
우당탕탕!
다시 청년 하나가 좌판을 들었다가 놨다. 할머니는 그럴 때마다 놀라 바들바들 떨었다.
“나쁜 놈들이야! 저놈들.”
“정말 나쁜 놈들 같아요. 어떻게 나이 드신 할머니한테 저럴 수가 있어요?”
수정은 딱 봐도 동네 조폭 같아 보이는 청년들을 노려봤다. 하지만 난 그것을 못 본 채 돌아섰다. 하지만 내가 돌아선다고 해서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쌈닭 수정은 이미 성큼 걸어가 조폭들 앞에 서 있었다.
“나이 드신 할머니한테 뭐 하는 거예요?”
수정은 정말 겁도 없나 보다. 아니면 나를 믿고 있던지.
“뭔데?”
조폭 하나가 수정을 째려봤다. 보통 평범한 아가씨라면 바로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수정은 달랐다.
“넌 뭔데? 넌 엄마 아빠도 없어?”
반말에는 반말이 나가는 법이지만 상황 파악이 정말 안 되는 수정이다. 이미 수정은 조폭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수정의 말에 조폭이 피식 웃었다.
“엄마! 아빠! 있으면 내가 이 시장통에서 이러고 있겠냐? 확 이걸 그냥!”
조폭이 수정을 때리려고 하는지, 손을 들어 올렸다. 수정도 조폭이 손을 올리자 겁이 나 눈을 찔끔 감았다.
“그 손 안 내려놓으면 부러뜨린다.”
난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지게를 다시 내려놓고 빠르게 수정에게 달려갔다.
“넌 또 뭐냐?”
“뭘까요?”
난 조폭을 보며 씩 웃었다.
“이 새끼 뭐냐?”
“상관없는 일이면 그냥 가라. 우린 빌려준 돈 받는 거다.”
두목같이 보이는 조폭이 나와 수정을 보며 말했다. 사실 조폭들도 대놓고 시비를 거는 법은 없다. 수정처럼 막무가내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 나도 나선 가오가 있잖아.”
“뭐야?”
조폭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봤다. 아마 조폭들은 가소로운 걸 거다. 아무리 내가 키가 커도 저놈들의 눈에는 겨우 17살쯤으로 보일 거다.
애가 의협심에 나섰다고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요즘 학교에서 영어 수학 안 가르치고 의협심 가르치냐?”
“학교 안 다니거든.”
“미친 새끼! 입만 살아서. 확 이걸 죽여 버릴까?”
내가 이죽거리자 조폭들이 흥분한 것 같다.
“됐다. 오늘은 그냥 가자.”
조폭은 애들인 나와 수정과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는지 가자고 말했다. 지금이 딱 좋다. 아무런 충돌도 없이 일을 해결하니 좋은 거다. 하지만 수정이 일을 꼬이게 했다.
“물건값은 계산하고 가야지. 이 양아치들아!”
난 수정의 외침에 인상을 구겼다.
원래 도둑에게 도둑놈아 하면 제일 열 받고, 화냥년한테 화냥년아 하면 빤스 벗고라도 덤벼든다. 조폭에게 양아치라고 하면 참을 조폭 없다.
“뭐라고 했어?”
지금까지 참고 있던 조폭이 수정을 노려봤다.
“양아치라고 했다. 왜? 가려면 물건값 물어내고 가.”
“이 미친년이.”
드디어 조폭이 폭발했다. 그저 난 답답할 뿐이다. 수정은 저렇게 조폭만 흥분시켜 놓고 물건을 살 때처럼 결정적인 순간에는 뒤로 쏙 빠질 거다.
결국, 땀을 흘려야 하는 건 나다.
조폭이 수정을 노려봤다. 이미 눈에는 불똥이 튀고 있었다.
“다시 말해.”
“양아치라고 했다. 왜?”
조폭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다른 조폭들을 봤다.
“우리보고 양아치란다.”
“죄송합니다. 형님!”
“조져!”
정말 조폭들이 화가 난 거다. 그리고 수정에게 성큼 걸어왔다. 물론 이제 수정은 뒤로 쏙 빠질 거다.
“요즘 세상 애들 겁 없다.”
조폭은 여전히 어이가 없는 듯했다.
“너희들 그러다 부러진다.”
내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수정은 정말 뒤로 쏙 빠졌다. 이제 난 4명의 조폭에게 포위가 됐다.
“너도 겁대가리 없냐?”
“좀 있었는데 크다 보니 없어지네.”
“뭐야? 이 새끼가!”
조폭 하나가 내게 주먹질을 했다. 난 가볍게 주먹을 피하고 나서 그놈의 무릎을 발로 찍고 돌아서면서 다른 놈을 뒤돌려 뺨 차기를 해서 한 번에 두 명을 쓰러트렸다.
퍽퍽!
“으악!”
“아악!”
쿵!
두 명이 동시에 쓰러지자 다른 조폭 둘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만하면 봐 준다.”
내 말에 조폭은 인상을 찡그렸다. 이곳은 저놈들 세력권일 거다. 이런 곳에서 절대 꼬리를 빼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뭐해! 조져!”
그와 동시에 다시 조폭 둘이 덤벼들었다.
퍼퍼퍽! 퍼퍽!
“으악!”
쿵!
조폭들이 다시 내 발차기에 쓰러졌다. 딱 4명을 끝장내는 동안 1분도 안 걸렸다. 수정도 입이 쩍 벌어졌다. 난 쓰러진 조폭의 머리채를 잡고 들었다.
“물어내라고. 물건값!”
“이, 이 새끼가.”
퍽!
난 조폭의 면상에 주먹을 날렸다.
“으악!”
조폭은 창피하게 바로 쌍코피를 흘렸다.
“물건값!”
“너 가만두지 않는다.”
퍽!
“으윽!”
내 손에 피가 묻었다. 역시 싸움을 하면 피를 묻히게 된다.
“물건값 물어내라니까!”
내 말에 이번에는 조폭이 어쩔 수 없이 주머니를 열었다. 오늘 수정의 오지랖 때문에 할머니는 들고 온 물건을 전부 팔았다.
“할머니 얼마예요?”
“응? 뭐?”
“그릇값요.”
“오, 오십팔만 원!”
“예? 백오십팔만 원이라고요?”
난 조폭을 봤다.
“할머니가 백오십팔만 원이라시는데?”
조폭은 날 노려봤다.
퍽!
저렇게 반항할 기색이 있으면 기를 꺾어 놔야 한다.
“으윽!”
“백오십팔만 원이다.”
“돈, 돈 없다.”
조폭이 날 노려봤다.
“그럼 일수로 찍자.”
“뭐?”
“일수 장부 내놔.”
내 말에 조폭은 더 맞기 싫어서 어쩔 수 없이 일수장을 꺼냈다.
“니가 찍어라. 하루의 얼마지?”
“삼만 원! 바드득!”
조폭이 이를 갈았다.
“그럼 백오십팔만 원이니 반올림해서 백오십구만 원 잡고 53개 찍어라.”
내 말에 조폭이 다시 날 노려봤다.
“그, 그런 억지가 어디에 있냐?”
“찍을래? 맞을래?”
내가 조폭을 노려봤다. 난 분명 눈으로 두 번 말하면 또 때린다는 눈빛을 전달했고, 조폭도 정확하게 알아먹었다.
그리고 조폭은 떨리는 손으로 일수를 찍었다.
“야!”
“왜?”
“너희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할머니한테 이번 일로 행패를 부리면 찾아가서 죽인다. 그리고 신고를 해도 죽인다.”
난 무섭게 살기를 담아 조폭에게 말했다.
“우, 우리 양아치 아니다.”
“하여튼 좋게 끝내자.”
난 다시 조폭에게 확답을 받았다.
“알, 알았다.”
조폭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난 조폭의 귀에 대고 다시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다.
“난 오늘만 사는 놈이다. 너희들은 내일도 생각하지. 하지만 난 오늘만 보고 산다. 명심해!”
내 말에 조폭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건 내가 예전에 본 아저씨라는 영화의 명대사다. 시간을 돌려서 오니 저런 명대사도 내가 한 말이 되는 거다.
그렇게 재래시장 푸닥거리는 끝이 났다.
어쩜 나와 수정이 상도덕 없이 저들 장사를 방해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이 벌어졌으니 어쩔 수 없는 거다.
난 다시 조폭을 노려봤다.
“착하게 살자! 응?”
내가 마지막 협박을 할 때 수정은 또 사고를 쳤다.
“저희는 세 할머니 식당에서 일해요. 잘 부탁드립니다. 우거지 국밥이랑 해장국이 각각 사천 원이고요. 배달도 됩니다.”
난 순간 어이가 없었다. 이 순간에 그걸 광고라고 하는 꼴이 참 어이가 없다.
저게 어떻게 서울대를 갔는지 궁금했다. 역시 공부하는 머리랑 잔머리랑 생각하는 머리는 다른가 보다.
조폭은 수정의 말을 듣고 눈빛을 빛냈다.
“가자!”
난 수정을 째려보고 손을 잡고 걸었다.
“왜 소리를 질러?”
“너 아이큐 낮지? 서울대 가려고 그냥 죽어라 공부만 했던 거지?”
“뭐?”
“휴우……. 말을 말자.”
난 지게를 메고 재래시장을 나왔다.
“세 할머니 식당이라고 했습니다. 형님!”
아직도 피를 질질 흘리고 있는 조폭이 말했다.
“그래서?”
“복수해야죠. 가서 확 엎어 버리겠습니다.”
“니가?”
“예?”
“아니면 내가?”
“무,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 같은 실력으로는 턱도 없다. 10명, 아니 20명이 덤벼도 나가떨어지는 건 우리야!”
“그럼 그냥 이렇게 넘어갑니까?”
“조폭인데 실력 없는 우리가 잘못이지.”
조폭 두목은 인상을 찡그렸다. 저러니 재래시장 조폭이지만 두목을 하는 걸 거다.
난 저 조폭이 하는 이야기를 정신을 집중해서 다 듣고 있었다.
‘다행이네! 귀찮지는 않겠다.’
그런데 왠지 난 저 조폭들을 자주 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 *
“정말 그냥 넘어갑니까?”
부하 조폭이 다시 분통이 터지는 듯 두목에게 다시 물었다.
“아니. 그냥은 못 넘어가지.”
“그럼 애들 불러 모읍니까?”
“아무리 모아도 안 된다고 했지.”
“그럼 어찌합니까? 조폭이 맞고 삽니까?”
“그럴 수는 없지.”
조폭 두목은 모르는 말만 했다. 재래시장 조폭 두목은 뭔가 따른 생각이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의 뇌리에는 아직도 강렬한 은성의 발차기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 같았다.
“맞지 않으려면 계속 찾아가서 맞아야지.”
“예?”
“언제까지 이런 재래시장 조폭으로 살래?”
“무슨 말씀입니까?”
“그 발차기! 그것만 배우면 우리도 말만 조폭이지 더 양아치 짓 안 해도 된다.”
역시 두목은 달라도 뭔가 다르다.
“뭘 배우자는 겁니까?”
부하 조폭은 분통을 터트렸다.
“발차기!”
“정말 미치겠네. 그 어린놈 꼬봉이라도 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받아만 준다면 부하가 아니라 그 이하도 할 수 있다.”
조폭 두목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형님!”
“싫으면 넌 그만두면 돼. 그 대신 양아치 짓만 하지 마라.”
“무슨 짓 말입니까?”
“삥 뜨는 거 하지 말라고.”
“예?”
“폭력으로 고소하지 말라는 말이다.”
조폭 두목이 부하를 노려봤다. 그리고 마치 조폭 부하는 자신의 마음을 들킨 것처럼 눈을 피했다.
“건달은 못 돼도 깡패 양아치는 되지 말자.”
건달!
조폭들이 무척이나 낭만적으로 자신을 부를 때 부르는 단어다.
“형, 형님!”
“우리 이 재래시장 먹는데도 3년 걸렸다. 여기서 끝낼 순 없다.”
“알겠습니다. 저도 형님 따라가겠습니다.”
역시 재래시장 조폭은 다른 생각이 있었다. 그 생각을 은성이 들어줄지가 문제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