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48화
할머니들을 고용한 후부터 우리 집 음식 맛이 달라졌다.
마산댁 할머니가 주방을 맡고 난 후로 온 손님들은 우리 집 음식 맛이 좋다며 난리가 났고, 전부터 오던 사람들은 처음 한 수저를 뜨고 나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정말 내가 끓인 게 그렇게 맛이 없었나?’
하여튼 우리 집 우거지 국밥을 먹고 나서 이제 더는 인상을 안 찡그려도 됐다. 그리고 영등포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물론 장사가 잘되니 수익도 부쩍 늘어났다. 매상이 다섯 배로 뛴 것이다. 이제 우리 집 우거지 국밥과 순댓국을 먹기 위해 줄을 서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대박이다.”
난 월 결산을 보고 입이 쩍 벌어졌다.
“한, 한 달 수익이 3천이다.”
이렇게 음식점은 맛이 좋아야 한다. 우리 식당은 대박으로 가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가지게 됐다.
값싸고 맛있고 몸에도 좋은 음식.
그 세 박자를 이룬 거였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들도 이곳에서 일한 지 한 달이 됐다.
오늘은 월급날.
할머니들은 저녁 장사를 끝내고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들, 이거요.”
난 조심스럽게 테이블 위에 묵직한 봉투를 내밀었다. 최대한 공손하게 어린놈이 사장이라 돈을 드릴 때도 조심스럽다.
“월급?”
“예. 조금 더 넣었어요.”
내 말에 할머니들은 웃었다.
“아! 그 스톡옵션 그거?”
“예. 스톡옵션이요.”
“세어 봐도 되나?”
마산댁 할머니가 날 보며 물었다.
“당연하죠.”
사실 난 처음 할머니들 월급을 육십만 원으로 계약 아닌 계약을 했다. 하지만 내가 봉투에 넣은 것은 이백만 원이다.
마산댁 할머니는 돈을 다 세고 나서 인상을 찡그렸다.
“애기 사장 돈 모으기는 힘들겠다.”
“예? 적으세요?”
“그게 아니라 이렇게 장사 좀 된다고 종업원한테 많이 주면 뭐가 남나? 모일 때 악착같이 모아야지. 정 많은 사람은 장사해서 돈 못 벌어.”
역시 마산댁 할머니는 크게 식당을 한 분이 확실했다.
“마산댁은 더 줘도 애기 사장 무안하게 핀잔을 주네.”
“그렇다는 거지.”
“많이 벌면 많이 드려야죠. 하하하!”
“그래도 적당히 넣어. 우리가 돈 많이 받아서 쓸 데도 없어.”
이번에는 다른 할머니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저 할머니들은 돈보다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은 것 같았다. 물론 돈을 많이 받으니 좋기도 할 거다.
“그리고 손님들이 더 늘어났으니까. 종업원 좀 더 구해 줘.”
마산댁 할머니가 말했다.
“더요?”
“응! 3명은 더 써야겠어. 밖에 비닐하우스라도 쳐서 테이블을 깔아야 할 판이야.”
우린 그렇게 장사가 잘됐다.
“예.”
“그럴 줄 알고 양로원에 벌써 말해 놨어. 호호호!”
서빙 담당을 하는 할머니가 씩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러세요. 잘하셨어요.”
장사가 잘되니 종업원들이 느는 것은 당연하다. 아마 다음 달이면 매상이 더 늘 거다.
정말 비닐하우스라도 설치해서 손님을 받아야 할 판이다.
이렇게 내 첫 사업은 성공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만 모으면 종잣돈은 금방 모일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5억 정도는 있어야 했다.
지금 내 손에 들어오는 돈은 한 달에 이천만 원 정도다. 그럼 25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앞으로 손님이 더 많아질 것 같지만 그래도 일 년 정도 걸릴 것 같았다.
‘늦어. 늦어.’
내게 최고의 무기이면서 축복은 미래에 대한 기억이 있다는 거다. 비술이나 기공은 그냥 나를 지키고 내 가족과 사람들을 지키는 데에 쓸모가 있을 뿐이다.
비술을 가르쳐서 돈을 벌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리고 내 적은 물리적인 힘으로만 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 역시 충분한 재력이 있어야 한다.
‘할아버지를 만나 봐야겠다.’
난 드디어 결심이 섰다. 마음을 먹었으니 바로 실행에 옮겨야 한다. 난 그렇게 마음을 먹고 하루를 마감했다.
그때 수정이 늦은 밤에 가게로 왔다.
“애기 사장, 애인 왔네.”
할머니들은 또 날 놀린다.
“친구예요. 친구!”
“친구가 애인 되고 아빠 되는 거다.”
“우린 가자고. 눈치 없게 더 있다가는 잘려요. 잘려!”
할머니 둘은 그렇게 항상 날 놀리신다. 그에 반해 마산댁 할머니는 내게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요즘 배추가 영 안 좋아. 그리고 무도.”
“그런가요?”
“단골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단골 속이는 가게는 정리하는 게 좋아.”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야채가 질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참이었다.
“예. 제가 다시 좋은 것으로 넣으라고 할게요.”
“그렇게 장사해서는 돈 못 모아.”
다시 마산댁 할머니의 장사 교육이 시작됐다.
“예. 제가 따끔하게 말해 놓을게요.”
“쯧쯧! 저리 마음만 좋아서. 하여튼 따끔하게 하려면 정신이 쏙 빠지게 해 놔.”
마산댁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나가셨다.
“수정아!”
“왜?”
“우리 산책가자.”
“이 추운 날에 산책은 무슨 산책.”
“오늘 할머니들 월급날이야. 산책 겸 데이트 겸 따라가자.”
요즘 세상이 무섭다는 것을 난 절실히 느낀다. 원래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 비슷한 것만 봐도 놀란다.
수정이 날 잠시 봤다.
“너 생각보다 마음 씀씀이가 따뜻하다.”
“그럼. 나 사나이잖아.”
“아이고 사나이 다 얼어 죽었다.”
“하하하! 춥기는 춥다.”
난 그렇게 멀리서 할머니들의 뒤를 지켜드렸다. 저분들이 없으면 내 장사에도 지장이 크다. 뭐 그게 이렇게 뒤를 지켜드리는 것에 대한 변명 아닌 변명이다.
***
이미 난 사업 구상을 완료했다. 앞으로 짧은 미래에는 웰빙 식품이 대세를 이룰 거다. 헛개나무 차라든지 숙취 해소 음료도 인기를 끌 거다. 나는 식품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그리고 위해서는 가공 공장을 세울 돈이 필요하다.
물론 지금도 19살짜리가 벌 수 없을 만큼의 돈을 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벌어서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내 최고의 무기를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다.
난 그 할아버지가 준 명함 한 장을 들고 할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갔다.
서울 중심가에 있는 고층 빌딩.
딱 봐도 그 할아버지의 것 같았다.
난 빌딩 로비 앞에 있는 안내대 앞에 섰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미인 축에 낄 것 같은 안내 담당 여직원이 날 맞이했다. 웃는 얼굴이 조금은 가식적으로 보였지만 미인이 웃어 주니 기분이 좋다.
“김용팔 회장님 만나려고 왔는데요?”
“김용팔 회장님 말씀입니까?”
안내 담당 여직원은 날 빤히 봤다. 역시 여전히 입가에는 미소가 그려져 있다.
“예.”
“사전 미팅 약속은 잡고 오셨습니까?”
“그런 거 안 하고 왔는데요.”
내 말에 안내 담당 여직원이 살짝 눈썹을 실룩거렸다. 사실 내 입에서 김용팔 회장이라는 말이 나올 때부터 여자의 웃음이 약간 불편하다고 느꼈다.
“사전 미팅 약속을 잡고 오시지 않았으면 만나기 어려우실 것 같습니다.”
안내 담당 여자는 친절하게 웃으며 말했지만 결국 안 된다는 소리다.
“비서실에 연락이라도 한 번 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돌아가 주세요.”
다시 한번 여자가 눈썹을 씰룩거렸다. 마치 바쁜데 왜 자꾸 앞에서 알짱거리냐는 눈빛이다.
“비서실에서 한 번만 연락해 보라니까요.”
“죄송합니다. 계속 이렇게 소란을 피우시면 저흰 경비원을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여전히 웃고 있지만 내게 은근히 위협을 했다. 그리고 난 내가 소란을 피웠다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런 게 소란이면 할 말이 없다.
“소란이요?”
“그렇습니다. 어서 돌아가 주세요.”
“그러다가 후회하실 거예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안내 담당 여직원은 날 한 번 봤다. 그리고 살짝 뭔가 누르는 것 같았다.
그녀가 누른 것이 비상벨 같은 것이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앞에 경비 복장을 한 건장한 청년 셋이 섰다.
“이런 곳에서 소란 피우면 안 된다.”
경비원 하나가 내게 대놓고 반말을 했다. 우리나라는 이게 문제다. 어리다고 다짜고짜 반말한다. 저가 날 언제 봤다고 반말을 하는지 참.
“소란 안 피웠는데.”
내 반말에 경비원도 안내대 여직원처럼 눈썹을 씰룩거렸다. 역시 자기도 반말은 듣기 싫은 모양이다.
“여기서 이러는 자체가 소란이다.”
“문의하라고 있는 안내대 아닌가?”
역시 난 싹수없을 때는 한없이 없어진다.
“너 같은 애 궁금한 거 물어보라고 있는 곳은 더욱 아니지.”
정말 꽉 막힌 사람들이다. 왜 저렇게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얼마나 잘 나가는 회사인 거야? 참!’
사실 어린 내가 다짜고짜 찾아와서 이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기업 회장쯤 되는 사람을 만난다고 하면 ‘예 알겠습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하는 곳은 없을 거다.
하지만 이렇게 소란이라고 정의하고 빌딩 밖으로 쫓아내려는 회사는 없을 거다.
“스스로 안 나가면 잡상인으로 간주한다.”
이제 날 잡상인으로 정의했다.
“보는 눈이 그렇게 없으니 경비하는 거야.”
“뭐?”
“당신하고 또 옆에서 웃고 있는 아가씨 짐이나 챙겨 둬. 소지품 잘 챙겨야 할 거야. 금방 잘릴 거니까.”
내 말에 경비원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말이 경비원이지 무척이나 젊은 것을 봐서 경호원처럼 보였다.
“밖으로 정중히 모셔 드려.”
경비원의 말에 나머지 두 경비원이 내 팔짱을 꼈다.
순간 욱하는 마음이 생겼지만 이런 곳에서 쌈질할 수는 없다.
“잠깐!”
“자기 발로 걸어 나가 주면 남들 보기도 좋다.”
“전화 한 통만 쓰면 안 돼요?”
내가 존댓말을 하니 경비원은 피식 웃었다. 역시 누구나 존댓말을 듣고 싶은 모양이다.
“전화?”
“예. 그래도 전화 한 통만 하고 갈게요.”
“그래! 한 통만이다.”
경비원은 더 분란을 만들기 싫었는지 안내대 여직원을 봤다.
“최 양! 전화 한 통 정도는 괜찮지?”
“으음! 더 귀찮게만 안 하면 그 정도야 괜찮죠.”
순간 욱하는 게 밀려왔다. 왜 저렇게 고압적으로 일을 하는지 난 도통 이유를 모르겠다. 그리고 또 휴대전화가 얼마나 필요한지 새삼 느꼈다.
‘공짜 휴대전화라도 하나 해야지. 참!’
그런 생각을 할 때 안내대 여직원이 내게 퉁명스럽게 전화기를 줬다.
“빨리하시고 가셔요. 고객님!”
여자가 다시 웃는다. 아마 웃는 게 직업병인 모양이다. 하지만 저런 웃음을 보고 난 하나도 즐겁지 않다.
난 지갑에서 할아버지가 준 휴대전화 번호를 전화기에 눌렀다.
-한 백 년 살고 싶네~
새장가를 가셔서 기분이 좋은지 할아버지 컬러링도 ‘님과 함께’다.
“정말 새장가를 가셨나?”
난 피식 웃었다. 한참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직도 멀었나요? 고객님!”
안내대 직원은 자꾸 내게 고객이라고 말했다. 뭘 사려고 온 것도 아닌데 왜 자꾸 고객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잠깐만요.”
내가 살짝 인상을 찡그리자, 안내대 여직원의 웃음이 썩소로 바뀌었다. 그냥 통화 안 되면 끊으라는 눈치다.
딸깍!
드디어 전화를 받았다.
“김이오.”
묵직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 뭔가 있는 사람들은 저렇게 자신의 성만 밝힌다. 그냥 전화하는 사람이 알아서 내 목소리 기억하라는 거다.
“할아버지! 저 국밥인데요.”
“국밥! 어 그래? 왜 전화를 한 것이냐?”
할아버지는 내 황당한 대답에 찰떡같이 알아먹었지만 나를 뚫어지게 보는 저 경비원과 이제는 미소가 정말 재수 없게 느껴지는 여직원은 뭐냐? 하는 눈빛으로 날 봤다.
“여기 안내대인데요. 여기 여직원이랑 경비원이랑 자꾸 잡상인 취급을 하네요.”
“뭐야?”
할아버지는 내 귀가 찢어지도록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그냥 돌아가려고요.”
“야! 아니 젊은이! 잠깐만 기다려. 내가 바로 내려갈 테니까!”
역시 급한 사람이 똥줄이 타는 법이다.
“5분 드릴게요. 그때까지 안 오시면 저 그냥 가요. 저!”
“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