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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49화 (49/210)

흑막의 신! 49화

“예. 벌써 10초 지났네요.”

뚝!

난 바로 전화를 끊었다. 정말 난 싸가지가 없을 거다. 하지만 무시당한 게 있으니 풀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난 뒤끝이 참 길고 넓은 모양이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싹수없이 행동하는 것은 조금 후에 있을 담판을 준비하는 거다.

난 할아버지가 얼마나 영약을 원하는지 알고 싶었다. 땀을 흘리면서까지 뛰어온다면 내가 다음 담판에 칼자루를 쥐는 거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 내 값이 올라간다. 무슨 담판이든 기선 제압이 중요하다.

‘얼마나 불러야 하지?’

난 행복한 고민을 했다. 그리고 이번 담판으로 사업 밑천을 마련하겠다고 결심을 했다.

내가 전화를 끊자 안내 여직원과 경비원이 날 봤다.

“이제 나가 주면 고맙겠는데.”

“5분만 기다리고요.”

“뭐?”

다시 경비원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그리고 다른 경비원을 봤다.

“저거 치워!”

이제 아예 날 물건 취급을 한다. 그리고 경비원 둘이 내 팔짱을 끼고 힘으로 날 들어 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쉽게 들릴 사람이 아니다. 난 아랫배에 꾹 힘을 줬다.

“으윽!”

“으으윽!”

경비원 둘이 안간힘을 썼지만 날 들 수는 없었다. 물론 내가 저들보다 키가 10㎝ 정도 더 크니 땅에서 발을 떼게 만드는 것도 힘들 거다.

“뭐 하는 거야? 어서 치우라고.”

경비병은 낮게 명령을 내렸다.

‘넌 꼭 내가 자른다.’

나 역시 뒤끝이 하늘이다.

경비원 둘이 날 끌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 끌려나갈 위인인가. 난 그 자리에 버티고 섰고 그 순간 급하게 엘리베이터 정지 소리가 들렸다.

띵!

스으윽!

승강기에서 문이 열리고 땀을 삐질 흘리며 달려오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역시 목마른 분이 똥줄이 타는 거다.

“뭐 하는 거야? 내 고객에게!”

할아버지는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고, 할아버지를 본 여직원과 경비원들은 바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 저 왔어요.”

난 마치 할아버지를 무척이나 잘 아는 척을 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안내대 여직원의 표정은 마치 썩은 벌레를 씹은 표정을 살짝 보였다가 불편한 웃음을 지었다.

역시 저 웃음은 직업병이다.

“미리 전화하고 오지. 그럼 이렇게 내가 뛰어 내려오지 않아도 되잖아.”

할아버지의 말에 경비원들과 여직원은 기겁한 눈빛이다. 아마 요즈음에 저 할아버지를 뛰게 만든 건 내가 처음인 모양이다.

“회, 회장님!”

“자네들은 왜 귀한 손님 팔짱을 끼고 있는 거지?”

이제 할아버지의 눈썹이 씰룩였다. 그와 동시에 경비원 둘은 빠르게 내 팔짱을 풀었다.

“아, 아닙니다.”

“뭐가 아니야?”

“죄송합니다. 잡상인인 줄 알고.”

“쯧쯧! 그렇게 보는 눈이 없어서.”

할아버지는 경비원들에게 핀잔을 줬다.

“죄송합니다.”

“올라가지. 괜히 오늘 뛰기만 했군.”

“예.”

난 안내대 직원을 보며 씩 웃었다. 그 웃음을 받은 안내대의 여직원은 오늘 하루 내가 나갈 때까지 마음이 불편해 죽을 거다.

난 힐끗 할아버지를 보다가 여전히 썩은 미소를 짓고 있는 안내 여직원의 귀에 살짝 속삭였다.

“잘해요. 좀! 비실비실 웃지만 말고. 그리고 오늘 잘릴지 안 잘릴지 고민 좀 하세요.”

난 씩 웃었다.

“이런 웃음 기분 나쁘죠? 나도 나빴어요.”

내 말에 여자가 부들부들 떨었다.

물론 난 저 여자와 경비원을 자르라고 말하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마음이 불편할 정도로는 만들어 줘야 한다. 그게 전부다.

아무리 내게 막 대했다고 해도 남의 밥줄을 끊을 수는 없다. 그리고 요즘 같이 실업난이 하늘을 찌를 때 기분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남의 밥줄을 끊는 사람은 살인자보다 더 나쁠지도 모른다.

“죄, 죄송합니다.”

여직원은 할아버지의 눈치를 힐끗 보며 어색한 미소를 보이며 내게 사정했다. 역시 이제야 분위기 파악이 되는 모양이다.

“잘하세요. 그러니까. 낮에도 잘하고 밤에도 잘하고 친절하게 성심을 다해서 친절 봉사 몸으로 마음으로 한결 정성을 다해서.”

“알, 알겠습니다.”

난 다시 씩 웃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할아버지를 따라 이 빌딩 최고층으로 올라갔다. 역시 돈 많은 사람은 높은 곳을 선호하는 모양이다.

* * *

난 약간의 소란 끝에 준 재벌처럼 보이는 할아버지와 마주 보고 앉았다. 누가 보면 할아버지와 손자처럼 보이지만 이건 엄연한 담판 장이며 이익을 챙기기 위한 협상의 장이다.

난 할아버지의 사무실을 둘러봤다.

한마디로 돈을 처바르신 느낌이 가득하다. 원래 돈 있는 분이니 그럴 거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책상 위 명패를 봤다.

‘김 엔 동방 컴퍼니?’

할아버지의 회사는 투자 회사인 모양이다. 김은 아마 할아버지의 성을 딴 걸 거다. 그럼 동방은 뭘 의미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젊은이. 그 비법을 내게 넘겨 줄 건가?”

할아버지의 눈에는 간절함이 가득 담겨 있다. 아무리 돈이 많으면 뭐하나. 늙으면 다 죽는 것을.

그래서 아마 진시황도 불로초를 구하려고 여기저기 사람들을 파견했을 거다.

“제 이름은 최은성입니다.”

“아 그런가. 은성 군!”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은 당당함을 의미하는 거고 이런 담판에서는 내가 어린아이만은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고자 하는 마음 때문일 거다. 역시 할아버지도 그런 마음을 아는 것 같았다. 피식 웃는 것을 봐서 ‘이것 봐라!’ 하는 눈빛이다.

“예.”

“그런데 왜 부모님이 오시지 않고?”

이건 무시이면서 나이 어린 네가 뭘 알겠냐는 압력용으로 던진 말이다. 분명 할아버지는 나와 담판을 지어야 할지 알고 있다.

“꼭 부모님이 아시는 것은 아니죠. 애도 아니고 부모님 손 잡고 올 건 없잖습니까?”

“그런가? 허허허! 그렇군.”

할아버지는 애써 태연한 척했다. 하지만 눈빛은 어떻게든 내게 남자의 그것을 반드시 살리는 비법을 알아내고 싶은 눈빛이다.

“건물이 무척 크네요.”

난 빌딩을 건물이라 깎아내렸다. 아마 서울 중심가에 이만한 고층 빌딩을 세우려면 수백억 이상은 있어야 할 거다. 아무리 미래의 기억이 있다고 해도 정확한 부동산 지가를 알 수 없으니 난 그렇게 짐작을 했다.

“하하하! 그래. 빌딩도 건물이기는 하지.”

애써 태연한 척 웃는다.

“할아버지 회사는 뭐 하는 회사죠?”

난 대충 이곳이 투자 회사라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물었다. 본론을 내가 먼저 말을 꺼내는 것보다 상대방이 먼저 말을 꺼내야 협상을 할 때 편하다.

“음! 이해할지는 모르지만 싼 회사 사들여서 비싸게 파는 일을 하지. 장사꾼이야.”

적대적 기업 인수 투자 회사. 기업 사냥꾼이란 말이다.

남들 피땀 흘려서 만들어 놓은 회사를 공격해서 싸게 사고, 그것을 포장해서 아주 비싸게 팔아먹는 그런 일을 하시는 분이 바로 할아버지인 거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자. 할아버지는 날 빤히 봤다. 그리고 눈썹을 한 번 씰룩거리다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얼마를 내놓으면 그 비법을 내게 공개하겠나?”

시작을 할아버지가 했으니 이제 난 협상이 편해진다.

“어디다 쓰실 거죠?”

“비법만 내게 공개를 한다면 난 그걸로 대형 식당 체인점을 크게 한번 해 볼 참이네.”

난 잠시 할아버지를 봤다.

아무리 봐도 저건 구라다. 아마 단 한 번도 자신의 손으로 기업 같은 것을 설립해 본 적이 없을 거다.

“여기저기 다 뿌릴 만큼 흔한 게 아닌데요. 또 그만큼 없어요.”

내 말에 할아버지는 날 빤히 봤다.

“그런가?”

“예. 효능을 보셨잖아요. 아무나 드실 수 있을 것 같지만 또 아무나 드시지 못하는 거죠.”

“으음.”

“혼자 드실 거면 모를까 그런 쪽이면 전 못 드리겠어요.”

사실 난 영약을 이용해서 차 사업을 할 생각이다. 물론 영약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서는 골머리를 썩여야 한다.

난 영약을 마치 버섯이나 이끼처럼 생각해 볼 참이다. 자연산 버섯을 양식할 수만 있다면 돈이 되는 것처럼, 어떻게든 영약을 배양할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 연구비가 지금 필요한 거다.

그리고 또 사람들의 대리 만족을 자극해 볼 참이다.

송이가 하도 비싸고 자연산뿐이라 사람들은 자연산 송이의 양식을 시도했다. 물론 전부 다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 연구 및 재배 과정에서 새송이버섯이라는 새로운 종의 버섯이 나왔다.

물론 향도 맛도 자연산 송이에 비교도 되지 않지만, 사람들은 새송이버섯을 즐겨 먹는다. 물론 대리 만족은 아니다. 먹을 만하니 먹는 거다.

영약도 양식에 성공하면 그 효능이 현저하게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효과는 있을 거다.

한 번 먹고 사내로 다시 거듭나고 건강해지면 돈이 안 된다. 지속해서 꾸준히 복용해서 어느 정도 효과를 봐야 장사꾼에게 돈이 되는 거다.

“내가 모르는 게 있나?”

할아버지는 날 뚫어지게 봤다.

“없으실 것 같으세요?”

“으음.”

잠시 고민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저 고민은 이미 계산된 고민일 거다. 내가 이렇게 여유로운 것은 내가 칼자루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좋네. 사실 난 돈은 벌 만큼 벌었네. 그리고 최고의 의료진에게 검진을 받고 치료를 받으니 오래 살 것 같네.”

역시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그러시겠죠.”

“하지만 아무 즐거움 없이 그냥 죽을 날을 기다리기 위해서 살고 싶지 않네.”

“…….”

“일 년을 살아도 사는 것처럼 활력 있게 살고 싶네. 그리고…….”

할아버지는 품에서 작은 사진 한 장을 꺼내 내게 보여 줬다.

그 사진은 산부인과에서 신생아 초음파를 찍은 사진이었다. 사람인지 아닌지 구분도 되지 않는 것이 이제 겨우 12주 정도 된 것 같았다.

“이번에 얻은 아이라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를 아이라고 표현했다. 물론 태아도 사람이다.

“그래서요?”

“이 아이가 자라서 자기 앞가림을 할 때까지는 활발하게 활동하고 싶어. 난 지킬 것과 이 아이에게 물려 줄 것이 많다네.”

이것은 욕심이다. 하지만 할아버지로서는 당연한 바람일지도 몰랐다. 난 할아버지가 한마디 한마디를 할 때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충분히 할아버지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하지만 그건 마음으로 이해하는 거다. 머리는 내 이익이 우선이다.

‘최대한 많이 받아야겠군.’

어쩜 저 할아버지에게 제일 쉬운 것은 돈일 거다. 이제 줄 것 주고, 받을 거 많이 받으면 된다.

“난 자네가 뭔가를 분명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네.”

할아버지가 날 봤다. 난 지금까지 저렇게 간절한 눈빛을 본 적이 없다. 역시 가진 게 많은 사람은 좀 더! 좀 더! 하면서 자신의 욕심을 채워 나가는 것 같다.

이제 본론을 말할 차례다.

“날 도와주겠나?”

“뭘 주실 건가요?”

난 차갑게 말했다.

“뭔 원하는가?”

“할아버지께서 하시기 제일 쉬운 것을 원합니다.”

뭔가를 요구할 때는 솔직하면 좋을 때가 있다.

“돈인가?”

“물론입니다.”

난 들고 왔던 작은 가방에서 유리병으로 된 영약 우려낸 물을 꺼냈다. 모두 20병이다. 우리 식당에서 마시던 차보다 영약 성분이 3배 정도 많이 들어간 거다.

“이게 뭔가?”

할아버지는 나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유리병을 번갈아 봤다.

“이게 할아버지께서 원하시던 겁니다.”

“비법을 전수해 줄 수는 없다는 건가?”

할아버지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비법 따위는 없습니다. 그냥 제가 가진 게 전부입니다. 병당 1억씩 주십시오.”

“1억?”

“그렇습니다. 그럼 그 태아가 성인식을 하시는 모습을 편히 보실 겁니다.”

“성인식이라고…….”

“예. 이 생명수의 성분 함유의 비밀은 저만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원액 역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어쩌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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