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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50화 (50/210)

흑막의 신! 50화

난 똑 부러지게 말했다.

“정말 믿어도 되는 건가?”

“대안이 있으십니까?”

“대안이라고?”

“예. 저 말고, 그리고 이 생명수 말고 대안이 있으시냐고 여쭙는 겁니다.”

“으음. 어려 보이는데 이럴 때는 승부사 기질이 있군.”

“과찬이십니다.”

“그 나이 또래의 말투도 아니고.”

“그렇게 보이십니까?”

“그래. 으음…….”

할아버지는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차를 담아온 병들을 봤다.

“항상 결정은 직접 하시는 거라고 배웠습니다.”

“다부지군. 역시 요즘 젊은이들 같지 않아.”

“저도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난 그렇게 말하고 최상혁과 은 실장, 그리고 긴 생머리의 여자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들의 위에 있는 최 회장의 이름도 떠올렸다.

‘복수를 위한 종잣돈이다. 돈이 있어야 움직인다.’

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런가?”

“예.”

할아버지는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진 유리병과 나를 빤히 봤다.

“좋네.”

“고맙습니다.”

난 짧게 묵례를 했다.

이렇게 해서 난 담판에 성공했다. 뭐 사실 담판이라고 할 것도 없다. 그냥 내가 가진 것을 주고 할아버지가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받은 것뿐이다.

“돈은 어떻게 주면 좋겠나?”

“무기명 채권으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기명 채권?”

“예. 20억이라는 돈이 적은 돈은 아니잖습니까? 바로 현금화해야 하지만 제가 돈을 받았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알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 20억 플러스알파가 되는 거군.”

“그럴 겁니다.”

원래 무기명 채권은 1억이라고 해도 구매할 때 웃돈을 주고 사는 것이 보통이다. 그건 아마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부자들의 술책일 거다. 하지만 난 증거가 없는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무기명 채권을 원하는 거였다.

“1억 단위로 주면 더 좋겠지?”

“예. 제 편의를 봐주시면 고마울 따름입니다.”

역시 할아버지는 내 의도를 정확하게 아는 것 같았다.

“말투가 요즘 젊은이 같지 않군.”

사실 난 학교에서는 최대한 아이들처럼 말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식당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담판을 할 때는 그럴 필요가 없다.

분위기와 상황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좋고 지금은 내 말투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더 좋다.

“현금 1억과 무기명 채권 19억이면 좋겠습니다.”

난 당장 투자비용이 필요했다. 그래서 1억은 현금으로 받을 생각을 했다. 여기까지가 내가 이곳에 온 1차 목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미 세워 놓은 2차 목표도 이루고 싶다. 물론 그건 김용팔 회장의 절대적인 지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어쩜 가능할지도 몰라. 투자 전문 회사잖아. 물론 기업 사냥꾼이시지만.’

난 잠시 김용팔 회장을 봤다.

“현금이 내게는 더 편하지.”

“그러십니까?”

“좋네. 잠깐만 기다리게.”

할아버지는 바로 경리부 부장 정도 되는 중년의 직원을 불러서 지시했고, 30분도 되지 않아서 묵직한 가방 하나와 그 가방 위에 황색 봉투 하나를 가지고 왔다. 정말 현금 동원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1억의 현금은 바로 구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19억이나 되는 무기명 채권을 바로 가지고 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김용팔 회장은 내가 보란 듯 가지고 왔다.

“여기 있네.”

난 다시 한번 놀랐다.

정말 대단한 자금 동원력이다.

“세어 보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내 말에 할아버지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더 들어갔으면 더 들어갔지. 덜 들어가지는 않았을 거네. 나중에 알아보면 알겠지만 나, 김용팔이네. 김 엔 동방 회장 김용팔이야!”

“죄송합니다.”

난 이렇게 20억이라는 거금을 손에 넣었다.

“또 필요하면 연락을 해도 되나?”

“많이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어디서 얻었는지 물어봐도 되나?”

“기연이 있다고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게 비밀이군.”

김용팔 할아버지는 날 보며 씩 웃었다.

“좋네. 그럼 하나만 묻지?”

“예. 제가 대답해 드릴 수 있는 것은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그 돈으로 뭘 할 생각인가?”

김용팔 할아버지의 질문에 뭐라고 말문을 열어야 할지 고민을 했다. 사실 저 질문은 예상한 질문이다. 저 질문의 첫 번째 답은 복수하겠다는 거다. 그리고 두 번째 답은 바로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업 이야기다.

난 지금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이곳은 투자 회사다.

나도 충분히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두 번째야!’

“제가 가지고 있는 생명수의 성분을 분석해서 대중적인 건강 음료 사업을 해 볼 생각입니다. 건강식품 껍데기만 쓴 게 아니라 진짜 몸에 좋은 음료를 만들고 싶습니다.”

내 답변에 김용팔 할아버지는 잠시 놀란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사업?”

“예.”

“자네는 분명 자네가 가지고 있는 것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네.”

“그렇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대중적인 건강 음료 사업을 한다는 건가?”

“자연산 송이를 보고 새송이버섯을 개발한 것과 비슷한 일이 될 겁니다.”

“대체 식품을 연구한다는 건가?”

역시 투자 전문가이다 보니 이해가 빨랐다.

“예. 투자하시고 싶으십니까?”

“훗훗훗! 투자라?”

“원하시면 투자를 받아들이겠습니다.”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다.

“성공률이 1%는 될 것 같은가?”

“보장해 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공을 한다면 태어나실 아드님은 최고의 기업인이 되실 수 있을 겁니다.”

내 말에 김용팔 할아버지, 아니 이제 김용팔 회장이라고 불러야겠다. 난 이제 저분과 사업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니 김용팔 회장이라고 불러야 하는 거다.

“하하하! 자네가 아부할 줄도 아는군.”

“그렇게 들리셨습니까?”

“그렇다네. 하지만 듣기는 좋군. 내 아들을 위해 투자를 한다? 나쁘지는 않군. 그래 좋네! 얼마를 내놓고 얼마의 지분을 자네는 줄 건가?”

“20%를 드리겠습니다.”

“겨우 20%?”

김용팔 회장은 인상을 찡그렸다.

“부족하십니까?”

“아직 얼마를 내놓으라는 말을 자네는 하지 않았네.”

“다다익선입니다.”

“다다익선?”

“예. 20%의 지분이지만 성공을 하면 그 20%가 회장님께서 이룩하신 것보다 더 많을 거라고 전 생각이 됩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게 상품화될 게 많지 않습니까?”

“그, 그렇지.”

“비아그라 한 알만 개발해도 그렇게 많이 벌지 않습니까?”

“그렇군.”

“또 미용용품으로도 개발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화장품이라…….”

“예.”

“좋네! 다다익선으로 하지. 우선 100억을 지원하지.”

역시 통이 큰 김용팔 회장이다.

“그것보다 작은 제약 회사 하나부터 인수해 주시고, 종균 연구학자랑 지표 식물 연구에 권위가 있는 학자를 섭외해 주십시오. 그들을 팀으로 하는 연구팀까지 구성해 주시면 됩니다.”

“나보고 얼굴마담을 하라는 건가?”

역시 많은 인수 협상을 해 봐서인지 이해가 빨랐다. 내가 전면에 나서는 것보다 저명한 기업 사냥꾼이 전면에 나서는 것이 좋다. 나중에 주가적인 측면에서도 더 많은 이익을 새로 마련할 수 있는 거다. 그리고 난 철저히 날 숨기고 싶었다.

“전 아직 19살입니다.”

“이제 곧 무서운 20살이 되겠지.”

그러고 보니 12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80%의 지분을 가지고 내 뒤에 숨는다. 하하하! 재미있군. 자네는 아주 무섭게 재미있는 젊은이야!”

“그리고 전 51%만 가지고 있을 겁니다.”

내 말에 할아버지는 날 빤히 봤다.

“나머지 29%는 어떻게 할 셈인가? 설마 국민주 공모라도 할 생각인가?”

“나중에 김용팔 회장님께서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물론 그 29%의 지분으로 현금화한 금액도 자네가 소리소문없이 챙기는 것도 도와야 하고.”

“그리 해 주시면 더 고맙겠습니다.”

“자네는 마귀군.”

“예?”

“나도 딱 그랬지. 자네처럼. 좋네! 내가 오늘 마귀한테 단단히 홀리게 됐군. 하하하!”

난 내가 원하는 이상의 성과를 얻었다.

이제 구두로 약속한 것을 문서화시킨 계약서만 만들면 된다. 이 계약은 내가 손해 볼 것은 없는 거다.

하지만 분명히 해 둘 게 있다.

“제가 아직 어려서 의심이 많은 편입니다.”

“뭘 말하고 싶은 건가? 파트너!”

“연구팀을 이용해서 정보를 빼내지 말았으면 합니다.”

다시 한번 김용팔 회장이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사람은 모두 다 욕심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 욕심은 탐욕이 되어 파트너를 배신한다.

“나 김용팔이네.”

“예.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제가 약간의 기연을 얻어서 잔재주를 몇 가지 부릴 수 있다는 겁니다.”

난 힐끗 방에 들어오면서 봐 두었던 분재 소나무를 봤다.

딱 봐도 1억 이상은 되어 보이는 분재다. 그리고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나 분재 소나무를 살짝 건드렸다.

비술 발동!

딱 일주일이 지나면 저 분재 소나무는 말라죽을 거다. 이만큼 완벽한 경고는 없다.

“뭘 하는 건가?”

“일주일 후가 되면 아실 겁니다.”

“왜. 자네가 건드린 소나무가 그냥 말라 죽기라도 한다는 건가?”

역시 눈치가 빠르다.

“일주일 후면 아실 겁니다.”

이건 확실한 경고다.

“좋네! 일주일 후에 보도록 하지. 그런데 자네 어리지만, 협박에 능통하군.”

“그것도 재주 중 하나일 겁니다.”

“그럼 이제 딱딱한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하지. 그리고 자네도 나한테 거부할 수 없는 마귀의 선물을 줬으니 나도 하나 주지.”

난 잠시 김용팔 회장을 봤다.

‘역습인가?’

내 표정에 김용팔 회장은 씩 웃었다.

“청솔제약이라는 회사가 있네.”

“청솔제약이라고요?”

“주식을 사 두면 괜찮아질 거네.”

이건 다시 말해서 청솔제약을 인수하겠다는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기업 인수를 하면 주식이 오른다는 말이기도 했다.

“3배 반 쯤 남기고 팔면 될 거야.”

“1억이 3억 5천이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게 되겠지.”

역시 자신만만하다. 그리고 난 절대 김용팔 회장이 내게 한없이 휘둘릴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예. 할아버지.”

난 김용팔 회장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난 김 엔 동방의 투자 양해 각서에 사인했다.

이건 예상하지 못한 성과다.

이제 이번 사업만 성공을 하면 단번에 최상혁의 할아버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재력을 이룰 거다.

아니 그 이상이 될 거다. 물론 성공 확률은 김용팔 회장의 생각대로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난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래야만 내 복수의 발판이 마련되니까.

그리고 내가 생각한 대로 김용팔 회장의 소나무 분재는 딱 일주일 후에 푸른빛이 모두 사라지고 미라처럼 말라 죽어 가고 있었다.

“분재가 말라 죽었군.”

김용팔 회장의 말에 뒤에 있던 여비서가 바들바들 떨었다. 여비서 역시 저 분재 소나무가 1억이 넘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거다.

물을 주는 것은 자신의 책임이니 겁을 먹은 거다. 지금 떨고 있는 여비서에게는 1억이라는 돈은 없었다. 신체 포기 각서를 써도 1억이 만들어질지도 의문이었다. 그러니 죽기 살기로 저렇게 비는 거다.

“죄, 죄송합니다. 회장님!”

“역시 죽었어.”

“잘못했습니다. 회장님!”

여비서가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소나무가 죽었어.”

김용팔 회장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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