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51화
“정말 내가 마귀를 만난 건가?”
김용팔 회장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죄, 죄송합니다. 회장님!”
“그래도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지.”
“예?”
“이 말라비틀어진 소나무 분재를 보내야겠어.”
“예?”
“영등포에 가면 세 할머니 식당이라는 곳이 있네.”
“예?”
여비서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계속 ‘예?’라는 물음만 했다.
“그곳에 가져다주게.”
“알겠습니다.”
여비서는 조심스럽게 소나무를 들고 회장실을 나갔다.
“다시 살아오면 더 무서워질 것 같아.”
역시 김용팔 회장도 예사 사람은 아니었다.
***
딱 일주일 후, 바짝 마른 소나무 분재를 가지고 다급한 얼굴을 한 여비서가 세 할머니 식당으로 달려왔다. 초조한 눈빛과 함께 소나무 분재를 잡은 손이 바르르 떨리는 것이 영락없는 겁먹은 고양이 같아 보였다.
“최은성 씨 있나요?”
목소리에 다급함이 가득 묻어나온다. 난 여비서가 든 소나무 분재를 봤다.
역시 김용팔 회장은 확인사살까지 해야 사람을 믿는 성격인 모양이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일을 믿지 못하는 성격이거나.
‘가져올 것 같더니 정말 왔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난 살짝 인상을 구겼다. 날 못 믿는다는 증거나 의심하고 있다는 거에 대한 표현일 거다.
여비서는 날 봤다.
“이거 회장님이 최은성 씨에게 가져다드리라고…….”
난 죽어가는 분재 소나무를 봤다. 그냥 확 줄기를 꺾어 보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렇게 되면 김용팔 회장은 자꾸 날 의심하고 확인하려고 할 거다. 그럼 나만 귀찮아진다. 확신을 달라고 보낸 거면 그냥 확신을 주면 된다. 괜한 고집 부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 잠깐만 들고 계세요.”
“예.”
다시 비술을 발동할 때다.
비술 발동!
비술은 능력의 극대화와 극소화의 양극을 달리는 거다. 난 살짝 비술로 소나무의 비혈을 찔렀다.
“다시 가져다드리세요.”
“다시요?”
“일주일만 기다리라고 하세요.”
“예?”
“그렇게 말씀하시면 아실 거예요.”
“예.”
여비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가 조심히 소나무 분재를 다시 들고 갔다.
“이제 일주일 후면 준비를 하겠지.”
난 멀어지는 여비서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이제 본격적인 시작인 거다.
소나무가 살아나면 내 복수 준비도 시작된다.
* * *
“형님. 정말 갈려고 그럽니까?”
“단단히 입었지?”
재래시장 조폭 두목은 곰처럼 덩치가 큰 놈을 봤다.
“입기야 단단히 입기는 했지만…….”
“안에 보호구는?”
“잘 챙겨 입었습니다. 사시미 여러 개 들어와도 끄떡없습니다.”
곰처럼 덩치 큰 놈은 배를 툭툭 쳤다.
“그래! 옛날 전화부 책만큼 좋은 게 없지. 그래도 얼굴은 항상 조심해라. 몸이 새털처럼 가볍고 비호처럼 날렵하다.”
“알, 알고 있습니다.”
덩치 큰 조폭은 최은성의 발차기가 떠올랐는지 말을 더듬으며 몸까지 부르르 떨었다.
“그럼 가자.”
“하지만…….”
“언제까지 재래시장 조폭 할래?”
“그것도 그렇지만…….”
“오늘은 너, 다음은 진우, 그다음 날은 명태다. 이렇게 돌아가면 뭔가 보여도 보일 거다.”
조폭 두목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알겠습니다.”
“몰카로 숨겨 놓은 디지털카메라는 잘 챙겼지?”
이번에는 옆에 작은 키의 조폭이 조폭 두목에게 작은 가방을 보였다.
“영등포 테크노마트에서 산 거라 잘 찍힐 겁니다.”
“확실히 찍어야 한다. 괜히 못 찍으면 그냥 씹만 주는 거다.”
“예. 형님!”
“태권의 숭고한 희생을 무효로 만들지 마라.”
숭고한 희생?
“예. 재창 형님!”
그의 이름이 재창인 모양이다.
재래시장 조폭은 뭔가 일을 꾸미는 것 같았다.
“그래! 가자.”
조폭 두목과 4명의 조폭은 무슨 굳은 결심이라도 한 듯 힘껏 걸어 나갔다. 그리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은성의 식당이다.
쫘르륵! 쾅!
“여기 그 어린놈의 새끼 있어?”
조폭 하나가 벌컥 문을 열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할머니들뿐이다. 아직 가게 문을 열 때가 안 돼서 손님이 없었다.
“누구 말하나?”
마산댁 할머니가 조폭들을 빤히 봤다.
“여기서 일하는 그 어린놈 있잖소.”
덩치 큰 조폭이 마산댁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 이리 늙었어도 아직 귀는 안 먹었다.”
보통 때면 소리를 지르는 사내한테 더 크게 소리를 지를 마산댁 할머니지만, 오늘따라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나긋나긋함에도 뼈는 꼭 있는 마산댁 할머니다.
“있습니까? 없습니까? 묻는 말에나 대답하십시오.”
“개시도 안 했는데 뭔 개똥 같은 것들이 왔노?”
“개똥요?”
다시 덩치 큰 조폭이 마산댁을 노려봤다. 하지만 마산댁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원래 이렇게 식당이 잘 되면 이상한 파리들이 낀다는 것을 마산댁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온 것들 역시 그런 거라고 생각을 했다.
보통 조폭은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 바로 반응을 하는 놈들이 있다. 그건 양아치라는 것을 마산댁 할머니는 잘 알고 있었다. 그에 비교해 이들은 존댓말까지 쓰면서 뭔가 참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마산댁 할머니였다.
‘눈깔은 선해서 뭐 하는 기고, 저것들.’
마산댁 할머니는 다시 조폭들을 봤다.
“됐다. 할머니, 일하는 젊은 애 어디에 갔습니까?”
조폭 두목의 말은 더 부드러웠다. 괜히 깽판이라도 치면 몇 대만 맞고 돌아갈 것을 수십 대 맞고 병신이 되어서 돌아갈 수 있다고 판단한 조폭 두목이었다.
“없는데.”
“어디 갔습니까?”
“당연히 일하러 갔지. 우리 집 채소 사 오는 거는 다 애기 사장 몫이다.”
“사장요?”
조폭 두목이 물었다.
“와? 몰랐나? 우리 사장인데.”
마산댁 할머니의 말에 조폭 사장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린놈의 실력이 출중한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데 이곳 사장이라는 것은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드르륵, 척!
“너희들 뭐냐?”
난 식당 안으로 들어서며 조폭들을 노려봤다. 저번에 내게 당한 재래시장 조폭들이다.
“왔네. 어린놈의 새끼!”
조폭들이 나를 봤다.
순간 식당 안에 긴장된 분위기가 조성됐다. 마산댁 할머니의 눈빛도 떨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조폭들의 눈빛이 더 떨렸다.
딱 눈빛만 봐도 잔뜩 긴장한 눈빛이 역력했다. 그래도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는지 목청만은 쩌렁쩌렁했다.
‘겁을 먹었네!’
원래 겁먹은 개가 크게 짖는 법이다. 두렵지 않거나 앞에 놈을 물 용기가 있는 개는 작게 으르릉거리다가 번개같이 물고 만다. 저렇게 짖는 법이 없다.
“왜 왔냐?”
“한판 다시 하자.”
“뭘 다시 해!”
“우리도 조폭인데 어린놈한테 당하고 그냥은 가오 상해서 못 있겠다. 다시 하자.”
조폭 두목이 날 노려보며 소리쳤다.
“다시 하기는 뭘 해?”
“다시 붙자고.”
“뭐 하는 거고 애기 사장!”
마산댁 할머니가 내게 물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이것들 나가면 소금이나 주세요. 밖에 소금이라도 뿌리게요.”
“아까운 소금은 와?”
“재수 없잖아요. 개시 전에.”
내 말에 마산댁 할머니는 조폭들과 나를 번갈아 봤다.
“개시 전에 온 손님 쫓으면 하루 장사 망친다.”
“예?”
“부정 안 타게 소금 뿌릴 게 아이고 밥집이면 부정 안 타게 하려면 밥은 먹여 보내야제.”
“할머니!”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아이가.”
“그렇기는 하죠.”
“먹고 쫓아라. 애기 사장. 알겠제?”
마산댁 할머니는 내게 그렇게 하라는 눈치를 보냈다.
“할머니. 저 녀석들 조폭인데요.”
“조폭은 밥 안 먹나? 저런 흉한 것들은 더 잘 먹여서 보내야 한데이.”
뭐 듣고 보니 틀린 말도 아니다. 개시 전부터 저런 것들이 왔으니 오늘 장사는 분명 부정 타서 망칠 거다. 그러니 뭐라도 먹여서 보내는 거다. 말로 듣고 가면 그냥 보내고, 계속 개시 전에 깽판을 치면 때려서 보내고 그러면 된다.
“밥은 먹고 가라.”
역시 할머니들이 가게를 운영하니 난 마치 바지사장 같았다.
그리고 정이 술술 넘쳤다.
“뭐?”
조폭 역시 지금 이 순간이 황당한 것 같았다.
“귀에 못 박았냐? 밥 먹으라고.”
난 인상을 찡그렸다. 원래 하고 싶은 말은 귀에 좆 박았냐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할머니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밥 먹으라고. 밥! 밥 먹고 뭐든 하자.”
내 말에 조폭들은 조폭 두목의 눈치를 봤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찾아가는 곳에서 밥 같은 것을 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여기는 밥부터 먹으라니 뭔가 이상했다.
“그래, 먹자! 먹고 하자.”
조폭 두목은 테이블에 탁하고 앉았다.
그리고 서빙 담당 할머니가 내어 오는 우거지 국밥을 받아들고 잠시 멍하니 우거지 국밥을 봤다. 물론 다른 조폭도 마찬가지였다.
“뭐해? 먹자!”
조폭 두목의 말에 일제히 조폭들이 수저를 들었다.
“맛있게 먹겠습니다.”
정말 황당한 시추에이션이다. 난 가만히 조폭들을 봤다. 거칠고 막 가기만 했던 조폭들이 고분고분하게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사람은 마산댁 할머니처럼 다루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어디 태어날 때부터 조폭이라고 소리치는 놈은 없지.’
그런 생각이 드니 조폭이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난 이제부터 부릴 사람이 많아야 한다. 지금 내가 부리고 있는 사람은 모두 나처럼 청소년이다.
물론 생긴 건 소도적 같은 놈이지만 그래도 민짜다. 진태 그리고 형성, 또 철우 그런 애들은 내가 부리기에 조금 불편하다.
하지만 저들은 어디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주식 거래소든 무기명 채권 브로커든 다 의심 없이 만날 후 있다.
딱 내가 부리기 좋은 놈인 거다.
‘통제만 할 수 있으면 자력갱생도 되겠다.’
난 소년원 건물에 떡 하니 붙어 있는 4글자가 떠올렸다.
자력갱생!
이보다 좋은 말은 없다.
‘김 회장님 선물도 있고.’
난 그 생각까지 나자 저들을 내 밑에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저들을 완전히 굴복시켜야 한다.
‘그런데 왜 왔지? 맞으려고 왔나?’
난 문득 그런 생각이 났다.
꺼억!
“잘 먹었습니다.”
조폭 두목이 담담하게 말하며 일어섰다. 그리고 나머지 조폭들도 같이 일어섰다.
“밖에서 좀 보자!”
조폭 두목이 날 보며 작게 말했다.
“밖에서 왜?”
“할머니들 놀라시지 않게 조용히 밖에서 보자. 빚진 건 갚아야지.”
저놈 고집 있다.
“그래라.”
나와 조폭들은 그렇게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식당에서 조금 떨어진 공터에서 마주 섰다. 무슨 삼류 영화도 아니고 노려보는 게 촌스럽다.
“진짜 그냥 안 갈 거야?”
“그냥 갈 거면 왜 왔겠어?”
말은 당당히 했지만, 눈치가 조금 이상했다.
“참. 꼭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그냥 시간 없으니까 한꺼번에 다 덤벼!”
“싫다. 오늘은, 아니, 우리도 일대일 한다.”
참 조폭이 다구리 없이 일대일을 하겠다니.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정말 며칠 전에 내게 맞아서 뇌가 없어졌다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그래라. 두목인 너냐?”
“아니.”
조폭 두목은 뒤로 스윽 물러났다. 그리고 정말 마지못해서 나온다는 듯 조폭 하나가 앞으로 나왔다. 곰처럼 덩치가 큰 놈이 옷까지 두껍게 입어서인지 정말 둔해 보였다.
“나다. 오늘 한번 잘 놀아 보자.”
“맞고 울지나 마라.”
난 피식 웃었다. 저렇게 곰처럼 둔한 놈은 상대하기가 편하다. 그래 모처럼 몸 한번 푸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