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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53화 (53/210)

흑막의 신! 53화

-쫓겠습니다.

나이 차이는 겨우 한 살 차이가 나지만 내가 거둔 제자라 그런지 스승의 생각을 잘 이해했다.

“쫓아. 뭘 하는지 보다가 돈을 들고 튀려고 하면 회수해 와.”

-알겠습니다.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검은 물체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물론 호중이다. 그리고 호중은 은밀히 김재창의 뒤를 밟을 것이다.

난 다시 씩 웃었다.

“욕심을 내지 않고 시험에 통과하면 많은 것을 얻게 될 거야.”

난 이렇게 하나둘 사람을 모았다.

그리고 자살한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제 겨우 찾았네!’

역시 찾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든 찾게 되나 보다.

“은혜는 백 배, 원수는 천 배다.”

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청솔제약을 사면 1억이 3억 5천으로 는다. 이래서 돈 있는 놈이 돈 버는 거네.’

기분이 좋으면서도 찜찜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돈이 있는 놈이 돈을 번다.

이래서 죽어도 재벌이고 태어난 이유만으로 재벌인 거다. 물론 그게 부러운 것은 아니다. 내 새 삶의 은인인 자살한 할머니와 제초제를 마신 아들은 돈이 없어 죽은 거고.

이 대한민국은 그렇게 빈부의 격차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젠장! 돈 벌고 기분이 찝찝한 건 처음이네.’

* * *

은성의 지시를 받은 김재창은 가방을 꼭 쥐고 있었다. 그리고 힐끗힐끗 옆에서 따르는 놈들을 봤다. 역시 거금이 생기자 딴 마음이 살짝 드나 보다.

“형, 형님!”

권태가 재창을 불렀다.

“왜?”

재창의 목소리도 떨렸다.

“정, 정말 1억입니까?”

권태도 내가 재창에게 돈 가방을 건넬 때 옆에 있었다.

“1억이겠지. 너도 봤잖아.”

“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권태의 물음은 마치 돈을 들고 어디론가 잠적을 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는 듯했다. 권태의 말에 재창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뭘 말하는 거야?”

“꼭 발차기를 배울 필요는 없잖습니까?”

“뭐?”

재창은 권태를 노려봤다.

“권태 말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저희가 그 어린놈에게 의리를 지킬 필요는 없잖습니까?”

이게 바로 인간의 마음이고 견물생심이라는 거다.

물론 지금 은성의 수제자인 호중이 그들의 뒤를 은밀히 쫓고 있었다.

“의리를 이제는 지켜야 해!”

재창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예?”

“누가 널 믿고 1억을 맡기면 어떻게 할래?”

“예?”

“의리 따위는 지킬 필요 없다고 들고 잠적을 할래?”

재창의 말에 나머지 조폭들은 인상을 찡그렸다. 사실 재창의 밑에 있지만 저런 면이 꼭 좋지만은 않은 조폭들이었다.

“그럼 정말 시키는 대로 할 생각입니까?”

“반드시.”

“형님!”

권태가 다시 나직이 재창을 불렀다.

“1억은 절대 적은 돈 아닙니다.”

맞는 말이다.

“그래! 적은 돈은 아니지. 하지만 무한하게 많은 돈도 아니다. 난 이상하게 보스한테 뭔가 느껴지는 게 있다.”

“보스요?”

“스스로 보스라고 했고 능력을 보여 줬다. 우리 같은 조폭에게 1억 쉽게 툭툭 던져 줄 정도면 뭔가 큰 게 있다. 어린데 크다. 난 그렇게 느껴진다.”

재창은 싸움 실력은 조금 떨어졌지만, 머리는 있는 듯했다.

“있기는 뭐가 있습니까? 아직 어린놈이라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러는 겁니다.”

짝!

재창이 권태의 뺨을 후려쳤다.

“보스다.”

“형, 형님!”

“우릴 누가 사람대접해 준 적 있었냐?”

“예?”

“오늘 먹은 국밥 참 맛있었다.”

재창은 씩 웃었다. 그리고 나머지 조폭들도 더는 말을 하지 못했다.

“젠장! 국밥값이 1억입니다. 젠장!”

“그러냐?”

“그럼 아닙니까? 현대증권 여기 아닙니까?”

권태가 높은 빌딩을 올려봤다.

“맞네. 들어가자.”

재창 일행이 증권사로 들어갔고 호중 역시 그들의 뒤를 은밀히 밟았다.

“역시 은성 형님은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니까.”

호중은 씩 웃었다.

“제자가 돼라. 제자만 돼라.”

호중은 재창과 나머지 조폭들이 은성의 제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그럼 서열상으로 자기 밑이 되는 거다.

그럼 부릴 것들이 많아지는 거고, 이렇게 은밀히 은성의 그림자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재창은 1억을 가지고 청솔제약의 주식을 샀다. 아무리 담담하고 조신하게 움직여도 조폭의 진한 향기가 느껴지는 법이다.

현대증권사 직원들은 재창이 들어서자 바로 긴장을 했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탁!

“주식 좀 사려고요.”

재창은 정중하게 말했다.

“주식이라고 하셨습니까? 주식 거래 통장은 개설하셨습니까?”

“그런 거 없는데.”

재창은 아직 주식 같은 것은 산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못 산다는 겁니까?”

작게 말했지만 밀려오는 조폭의 향기에 증권사 직원은 더욱 긴장했다.

“없으면 개설하면 되죠. 좋습니다. 어느 회사 주식을 사시려는 겁니까?”

“청솔제약 1억입니다.”

1억이면 개미투자자 중에서도 작은 덩치는 아니다.

그렇게 재창은 우여곡절을 많이 겪고 주식을 샀다.

주당 2만5천 원. 1억이니 4천 주다.

재창은 주식 거래 통장을 받고 증권사 직원에게 물었다.

“이제 된 겁니까?”

“예. 다 됐습니다.”

“가자!”

재창은 돌아서서 문을 닫고 나가려 했다. 그때 잔뜩 긴장했던 증권사 직원 하나가 재창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이죽거렸다.

“요즘에는 개나 소나 다 주식에 투자한다더니 딱 봐도 조폭들이 주식을 다하네. 조폭도 요즘 노후 걱정하나?”

이죽거리는 증권사 직원에게 조금 전까지 재창의 상담을 담당한 직원이 인상을 찡그렸다.

“들리겠다. 그래도 우리 고객이신데.”

“참 돈이 좋다. 좋은 대학 나와서 증권사 취직했더니 이제는 양아치 노후 자금 만들어 주고.”

역시 꼭 회사나 어떤 단체라도 저런 것들이 있다.

벌컥!

쾅!

급하게 문이 열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죽거렸던 증권사 직원을 재창이 노려봤다. 물론 뒤에는 권태를 비롯한 3명의 조폭의 눈이 불타고 있었다.

저벅! 저벅!

재창이 발소리를 내며 지금까지 이죽거렸던 증권사 직원에게 걸어갔다.

꿀꺽!

증권사 직원은 긴장했는지 마른침을 삼켰다.

“제가 조폭으로 보이십니까?”

“아, 아닙니다. 고객님!”

“저 조폭 아닙니다.”

“예. 아니십니다.”

“저희 정말 조폭 아닙니다. 저희는 세 할머니 식당 직원입니다.”

재창은 뚫어지게 증권사 직원을 보며 나직이 말했다. 물론 그 말투에는 살기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자신을 상담했던 증권사 직원을 봤다.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일 하시는 분이시면 조직 관리 좀 잘하세요. 이게 뭡니까? 양아치 집단도 아니고 뒤에서 이죽거리고.”

재창의 말에 힘이 실렸다. 그리고 재창을 상담했던 증권사 직원은 얼굴을 붉혔다.

“죄송합니다.”

재창은 다시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재창을 상담했던 증권사 직원이 아직도 덜덜 떨고 있는 증권사 후배 직원을 노려봤다.

“이 대리! 당장 시말서 써 와! 내가 듣다, 듣는다. 고객께 저런 소리나 들어야겠어!”

“알, 알겠습니다. 과, 과장님!”

이죽거림 한번으로 시말서까지 쓰는 저 이 대리는 오늘 일진이 사나우면서도 조상이 도운 것이 분명할 거다. 조폭을 그렇게 씹고 무사한 것을 봐서는 분명 조상이 도운 게 맞다.

* * *

“여기 있습니다.”

재창은 주식 거래 통장을 조심스럽게 내게 내밀었다.

“일을 잘 처리하셨네요.”

“처리라고 할 게 있겠습니까? 어려운 일도 아니고.”

“어려운 일이죠. 1억 들고 쉽게 돌아올 사람은 몇 없어요.”

난 재창을 보고 웃었다.

“그, 그럼 시험이셨습니까?”

“기분 나쁘세요?”

“아닙니다. 당연한 조치셨습니다. 그런데 발차기는…….”

재창은 아직 내 발차기 기술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20㎏ 이상씩 빼면 바로 전수해 드리죠.”

“알겠습니다. 바로 살 빼겠습니다.”

재창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리고 저 시골에 좀 내려와야겠어요.”

“제가 모실까요?”

“비서는 납니다. 나! 재창 형!”

익숙한 목소리에 재창이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뒤에는 산만 한 진태가 서서 자신을 보고 웃고 있었다.

“진, 진태야!”

“남의 밥그릇을 서로 건들기 없기입니다. 하하하!”

난 재창을 봤다.

“우선 살부터 빼세요. 정말 중요한 일이 있으니.”

난 진태와 나머지 전직 조폭들을 봤다. 이제 저들을 전직 조폭이라고 불러야 할 거다.

“알겠습니다.”

이렇게 난 내가 부릴 동료들을 4명이나 얻었다.

‘이제 시골로 간다.’

그동안 미루었던 일을 난 이제 할 거다. 그래야 어깨를 누르는 짐 하나를 내려놓을 수 있다.

난 바로 식당은 마산댁 할머니에게 맡기고 재창과 나머지 직원(?)들까지 맡기고 진태와 함께 시골로 내려갔다.

***

나는 진태가 이미 파악해 놓은 자살한 할머니와 제초제를 먹은 아들이 있는 시골로 내려왔다. 그러고 보니 내 기억도 이미 이곳을 알고 있었다. 내가 보건의로 근무를 했던 곳이다.

이곳의 첫 기억은 행복이었고 두 번째 기억은 무료함이며 마지막 1년의 기억은 지옥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지옥…….”

나도 모르게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산 자의 지옥.

나의 지옥.

그런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아직도 그 기억들이 생생하군.”

내게 그런 지옥의 기억이 없었다면, 또 죽음이 없었다면 그리고 무덤을 뚫고 나오는 부활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내 수중에는 20억이 있다.’

밑천이다.

내가 계획한 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최소의 자금이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김용팔 회장과 엄청난 계약.

그 계약이 실행에 옮겨진다면 나는 이 세상에 우뚝 설 수 있다.

‘평범함으로 나를 숨기고 사악함으로 나를 표현할 것이다.’

악은 악으로 응징해야 한다.

법은 이미 이 세상의 악인을 통제할 수 없다. 그러니 누군가가 나타나야 하는 거다. 그 누군가가 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지금도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한다.

무덤을 뚫고 나왔으니 내 삶 자체는 지옥에 산다고 할 것이다.

‘이 지옥을 내가 경영할 것이다.’

이것이 내 꿈이자 미래다. 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내리자마자 주위를 쭉 둘러봤다.

시골 버스정류장이라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여기저기 시멘트 포장이 벗겨진 곳에는 움푹 파인 구덩이 안에 흙탕물이 고여 있었다.

그리고 바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여기저기 걸려 있는 현수막들이다.

눈부시게 파랗게 차가운 하늘 그 하늘 아래 농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 주는 현수막을 보고 난 눈살을 찌푸렸다.

‘그랬었어.’

난 내 기억을 더듬어 들어갔다. 농촌의 현실은 참담하다. 젊은 사람 하나 없고 노인들이 지키는 시골.

마을 청년회장이 60대이니 말 다 한 거다. 그리고 난 다시 하늘 아래 펄럭이는 현수막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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