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54화
그러고 보니 2005년은 한창 국제결혼 붐이 농촌에 몰아치고 있을 때였다. 많은 농촌 총각들이 저런 현수막을 보고 국제결혼을 위해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짧게는 3일, 길게는 5일 만에 말이 안 통하는 어린 외국인 신부를 데리고 왔다.
일종의 매매혼!
그건 농촌에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놨다. 그렇게 돈으로 데리고 온 신부들은 대부분이 농촌에 정착하지 못하고 통장이나 패물을 들고 도망을 쳤다.
그런 붐이 일어난 후 농촌에서 달라진 것은 피부가 약간 검고 외모가 다른 아이들이 엄마 없이 할머니의 손에 커 가는 모습이었다.
결국, 농촌 노총각들은 농촌 홀아비로 바뀐 거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세상은 점점 지옥으로 변하고 있다.
힘없고 능력 없는 자들이 고통에 겨워하는 지옥으로 변하고 있는 거다.
난 그런 일들을 참 많이 봐 왔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버려진 남자들은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져 살 것이다.
난 그런 생각을 하며 버스정류장을 벗어나 읍내로 나왔다.
‘저쯤에 목욕탕이 있었지.’
내 기억대로 버스정류장 앞엔 긴 목욕탕 굴뚝이 보였고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오봉들 목욕 가방 들고 들락거리던 게 눈에 선하네.’
시골에서 유일한 젊은 여자들은 오봉이나 단란주점이나 룸의 호스티스들이다. 그들에게서 지옥 같은 봄날의 분 냄새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뭔 생각을 하는 거야?”
내 회상을 깨운 것은 진태다.
“아무 생각도 안 해!”
“내가 시골, 시골 소리는 들어 봤지만, 이런 시골은 처음 본다. 여기가 네 고향이냐?”
진태의 물음에 난 피식 웃었다.
“아니. 기억에서 지워 버리고 싶은 곳?”
“그런데 왜?”
진태는 내가 처음 뜬금없는 지시를 한 것이 아직도 궁금한 모양이다.
“빚진 게 있거든.”
“빚? 너 빚지고 사냐?”
“그래. 갚고 넘어가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그것을 이제는 빚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시간은 돌려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을 기준으로 해서 내 미래의 그 일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다. 그러니 빚이다.
할머니에게 진 빚.
그 빚을 갚기 위해 기억하기도 싫은 내 기억 속의 지옥으로 다시 온 거다.
“그런데 애들은?”
난 진태와 아이들을 이곳에 내려보냈다.
“다시 서울로 올려보냈다.”
“무슨 일 있나?”
난 진태를 봤다.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니고, 형성이 아버지가 몹시 아프시잖아.”
이건 처음 듣는 소리다.
“많이 아파?”
“간암 말기잖아. 몰랐어?”
난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형성이 좀 불쌍하다. 즙!”
“왜?”
“원래 형성이, 그 새끼가 범생이였거든. 돈이 없어서 그렇지 제법 공부도 하고 운동도 잘하고 그랬다.”
“몰랐네. 정말!”
난 인상을 찡그렸다. 난 내 주변도 살피지 않은 못난 놈일지도 모른다. 거두기로 했으면 살폈어야 했다.
물론 얼마 전까지는 그들을 살필 여력이 없었지만 말이다.
최근까지 와서야 호중의 밑에 있는 앵벌이 아이들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공부를 시키고 있다. 또 무술 수련도 시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내게 충성할 수 있게 세뇌도 시키고 있다.
‘내가 아프리카에서 소년병에게 총을 쥐여 주는 반군 대장과 다를 것이 없겠지.’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찡그려졌다.
“정말 안 좋은 기억이 있나 보다?”
“응. 안 좋아. 이곳은 다시 오고 싶지 않아.”
“그럼 그 빚 빨리 갚아야겠네.”
“그렇지. 최대한 빨리.”
빚을 갚고 내 사업을 시작할 거다. 물론 그 사업도 김용팔 회장의 뒤에 서서 나를 숨기고 조정을 할 거다. 또 김재창을 전면에 세워 볼 참이다. 그러면서 나는 철저하게 숨을 것이다.
난 흑막의 신이 될 것이니 말이다.
그때 목욕탕 입구에서 딱 봐도 동네 다방 오봉처럼 보이는 여자 셋이 나왔다. 아마 이 시골에서 젊다고 자부할 수 있는 유일한 여자들일 거다.
진태도 다방 오봉을 힐끗 봤다. 그리고 나도 여자들을 봤다. 저 세 명의 여자 중 한 명은 내 기억에 있는 여자였다.
정말 이곳에 오니 많은 기억이 떠오른다.
사실 난 내 기억에 있는 저 여자와 예전에 길게 한 번 잔 적이 있다. 물론 그때 역시 약에 취해 있었고, 모든 정신이 자극적인 것에 집중이 되어 있을 때다.
‘그때는 30대 중반이었는데…….’
10년의 세월을 돌려 내가 돌아왔으니 저 여자도 이제는 20대 중반일 거다. 그러고 보니 저 여자 참 오랫동안 이곳에 머문 거였다.
질기게, 아주 질기게 이곳에서 버틴 거다. 지금 보니 참 반반하다. 30대였을 때도 묘한 매력이 있었는데 지금은 오봉으로 썩기에는 아까운 여자처럼 보였다.
“아는 여자야?”
내가 여자를 유심히 보자 진태가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일이 잘되면…….’
난 다시 피식 웃고 말았다.
“언니는 무슨 화장을 그렇게 빨리해?”
꽤나 나이가 들어 보이지만, 화장을 떡칠한 탓에 그나마 농염하게 보이는 다방 레지가 예전에 내가 알고 있던 그 여자에게 물었다.
“뭔 소리야?”
“목욕탕 나오면서 바로 화장하는 여자는 언니뿐일 거라고. 피부도 숨을 좀 쉬어야지. 안 그래? 그러다가 피부 노화 빨리 와.”
“이게 다 고객 관리다. 이년아!”
“무슨 고객 관리?”
“우리야 몸 팔아먹고 사는 년들인데. 꾸미고 다녀야지.”
“이 정도면 풋풋하고 싱싱하지.”
내가 아는 여자의 말에 언니라는 여자가 피식 웃었다.
“이년아! 세월 금방 간다. 네년도 내 나이 먹어 봐라. 안 칠하면 못 다닌다.”
“그래도 우리가 여기서는 갑이잖아.”
“갑은 무슨 얼어 죽을 갑. 네년은 평생 여기서 썩을 년이다. 두고 봐라. 나처럼 죽을 때까지 팬티만 벗고 살 년이야! 그렇게 정신 못 차려서 어떻게 하니?”
“악담해라. 악담을!”
“내가 틀린 말 했냐?”
“평생 이렇게 조용한 곳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오봉으로?”
“언니!”
내가 아는 여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귀청 떨어져, 이년아! 하여튼 화장 안 한 모습 대놓고 보여 주면 매상 떨어져.”
“이 아침에 누가 본다고.”
언니라는 오봉의 말에 내가 알고 있는 여자가 나와 진태를 턱으로 힐끗 가리켰다. 그리고 어려 보이는 다방 오봉도 나와 진태를 봤다.
“에이, 아직 어린 애들이잖아.”
“어린 것들은 좆 없냐.”
“언니도 별 이상한 농담을 다 해. 저런 건 좆이 아니라 고추라고 하는 거야.”
“원래 고추가 몸에 더 좋아. 맛나겠네.”
언니라는 다방 오봉이 나와 진태를 보며 입맛을 다시는 것 같았다.
‘꼴에 몸에 좋은 건 알아서.’
그저 피식 웃음만 나오는 순간이다. 그러고 보니 난 귀가 참 밝아졌다. 눈도 좋아졌고, 이 모든 것이 비술을 수련한 후부터 달라진 증상이었다.
“하여튼 못 보던 것들이네. 맛나겠다.”
“언니도 참 애들보고 못 하는 소리가 없어.”
내가 아는 여자가 힐끗 나를 봤다.
“저기 곰 같은 놈은 힘이 좋겠고, 그 옆에 있는 잘생긴 동생은 테크닉이 좋겠네.”
“언니도 참! 호호호!”
“내기할까?”
“왜, 공짜로 주게?”
“저 정도면 못 줄 것도 없지. 몸보신인데.”
“몸보신?”
“딱 봐도 저 곰 같이 등치 좋은 놈은 총각이다.”
“총각?”
내가 알고 있는 여자가 진태를 봤다.
“그래. 총각은 몸에 좋지. 호호호!”
역시 직업은 못 속인다고 음담패설이 끝이 없었다.
“다 저런 애들이 나중에 우리 손님이 되는 거야. 그러니 꾸미고 다녀야지.”
“저것들이 크면 언니는 안 늙나?”
“이년이!”
언니인 오봉이 내가 아는 여자를 보며 눈을 흘겼다.
“내가 늙는 만큼 너도 늙는다.”
“그치! 나도 늙지. 늙기 전에 시집가야 하는데…….”
“아이고, 꿈도 아무지셔라! 왜, 여기서 홀아비 하나 잡아서 시집가려고?”
“못 갈 것도 없지.”
“아서라, 스푼으로 커피 젓던 년은 밥주걱으로 밥 못 뒤집는다.”
“에이, 그런 게 어디에 있어?”
“내가 왜 시집을 두 번이나 갔겠냐? 다 경험에서 나오는 거니까 잘 들어.”
“자랑이다. 시집 두 번이나 갔다 온 게.”
“한 번도 못 간 네년보다야 능력 있는 거지.”
“저것들 계속 우리만 보네.”
“호호호! 내가 아직 안 죽었다는 거지.”
“나도. 호호호!”
내가 아는 여자는 내가 옛 추억을 떠올리는 동안 내가 자신들에게 관심이 있는 듯 보고 있다고 착각을 하는 모양이다.
그래!
저렇게 이 추운 겨울에 허연 허벅지를 다 들어내 놓고 있느니 지나가는 남자들은 모두 다 힐끗 볼 것이다.
아마 이 동네 늙은 총각들은 다 저기 여자들을 모두 한 번쯤은 안고 잤을 거다. 난 이런저런 생각이 났다.
하지만 옛 추억도 여기까지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자살한 할머니와 제초제를 먹은 아들 때문이다. 아마 10년의 세월을 돌렸으니 제초제를 먹은 아들은 20대 중반일 거다.
“어디야?”
“뭐?”
“내가 알아보라고 한 집!”
“이 읍내에서 버스라도 한 시간은 더 들어가야 해.”
벌써 늦은 오후다.
지금 버스를 타고 들어가 봐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럼 우선 여관부터 잡자.”
“벌써 내가 잡아놨지.”
진태는 날 보며 씩 웃었다. 난 진태가 잡아놓은 여관에 들어갔다. 딱 봐도 허름한 것이 방음 같은 것은 애초에 고려도 하지 않고 지은 게 분명할 거다.
“오늘 밤에 편히 자기는 틀렸군.”
난 옛 기억을 떠올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뭐? 왜?”
“여기 여관이 두 개다.”
“그런데?”
“밤에 되면 다 알아.”
“뭘 안다는 거야?”
“밥이나 먹자.”
난 피식 웃었다.
“난 술이 좋은데.”
“술?”
“졸업도 했는데 술 좀 마셔야지.”
그러고 보니 진태는 21살이다. 난 곧 20이고. 그리고 진태가 바른 생활 고등학생도 아니었고 놀 만큼 돌고 여자 만질 만큼 만져 본 놈이다. 그러니 밥보다 술이다.
“그럼 넌 졸업하기 전에 술 안 마셨냐?”
난 피식 진태를 보며 웃었다.
“그때는 눈치 보고 마셨고 지금은 대놓고 마시는 거지. 하하하! 내가 봐 둔 곳이 있는 데 가서 한잔하자.”
아마 진태가 이곳에 머물면서 자주 다녔던 술집이 있는 모양이다.
“술은 무슨 얼어 죽을 쑬.”
“은성아아아!”
산 같은 덩치에 술 먹자고 애교를 떠는 것이 무섭기까지 했다.
“에이 참!”
“은성아아아아!”
진태는 몸까지 털었다.
“알았어. 적당히 한 잔이다.”
그렇게 난 진태와 함께 단란주점 간판 앞에 섰다.
“단란?”
“여긴 다 이래.”
어린놈의 새끼가 벌써 여자 끼고 술 처먹으려고 한다. 하지만 진태의 말은 사실이다. 구멍가게 포장마차 말고는 이 시골은 다 이런 곳뿐이다.
포장마차에서 내가 소주를 마시면 사람들이 째려볼 거다. 어린놈이 술 마시고 있다고. 그러니 조용히 한잔하기에는 단란만 한 장소가 없다.
역시 진태는 저 덩치에 놀 건 다 놀아 본 놈이다.
“들어가자.”
그때 단란주점에서 남자 하나가 웨이터들에게 팔짱이 끼여 끌려 나왔다.
“너한테는 술 안 판다니까.”
“왜 안 팔아!”
“지랄병이면 집에 가서 해. 저번에 얼마나 놀란 줄 알아!”
웨이터가 그렇게 말하고 팔짱을 낀 남자를 길바닥에 힘껏 밀었다.
쿵!
“으윽!”
“다신 여기 오지 마.”
웨이터들은 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한번 째려보고 다시 단란주점으로 들어갔다.
“씨발 놈들! 나 돈 있다고.”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난 단란주점으로 들어가기 전에 남자를 봤다.
‘그, 그 남자다!’
진태 역시 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보고 날 봤다.
“그 사람이야!”
내게 작게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