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55화
“술은 다 마셨네.”
“뭐?”
“따라가 보자.”
내 말에 진태는 인상을 찡그렸고 바닥에 쓰러진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상을 한 번 찡그리며 자신을 보고 있는 우리를 노려봤다.
“뭘 봐! 이 새끼들아!”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남자는 나와 진태에게 시비를 걸었다. 보통 이럴 때면 그냥 넘기지 않는 진태다. 진태가 앞으로 나서려고 할 때 난 진태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참아! 참아야 할 사람이다.”
진태 역시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체! 병신 같은 새끼들!”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걸었다. 그리고 나와 진태는 그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거리를 두고 그를 따랐다.
남자가 이번에 들어간 곳은 다방이었다. 나와 진태 역시 다방에 들어갔다.
이 다방은 목욕탕 앞에서 봤던 그 오봉들이 있는 다방이다. 나 역시 그때 미쳐 있을 때 이곳에 자주 들려 회포를 풀었다.
좋지 않은 기억은 잊는 게 좋은데 그런 기억일수록 더 생생히 머릿속에 남는 법이다. 남자가 다방에 들어서자 나이든 오봉이 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나와 진태가 들어서자 내가 알고 있는 여자가 그럼 그렇지 하면서 씩 웃었다.
“언니, 쟤들?”
“이게 다 화장의 효과야! 호호호!”
“그냥 커피 마시려고 온 거겠지.”
“하여튼! 넌 저 지랄병에 가 보고 난 삼삼하게 어린 것들한테 가련다. 오늘 총각 먹고 몸보신 좀 하려나? 호호호!”
내가 알고 있는 여자가 엉덩이를 흔들며 우리가 앉은 테이블로 걸어왔고 어린 오봉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남자에게로 갔다.
“괜찮아요?”
“갈까?”
단란주점에서 난폭한 모습을 보였던 남자는 다방 안에 들어와서는 무척이나 순해 보였다. 저런 경우는 딱 한 가지다. 지금 앞에 서 있는 여자가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는 걸 거다.
“아프신데 쉬셔야죠.”
“괜찮아.”
“뭐 드릴까요?”
너무나 사무적으로 대하는 어린 오봉이다. 하지만 아주 약간은 남자를 걱정하는 것 같기도 했다.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커피 줘.”
“커피는 너무 자극적이시잖아요. 녹차 드세요.”
“같이 마실래?”
“그래야겠죠. 직업이니까.”
시골 다방은 보통 오봉과 같이 차를 마신다. 그리고 물론 오봉이 마신 찻값도 손님이 계산한다. 그래서 매상을 올리는 거다. 물론 대부분의 매상은 티켓으로 올린다.
난 남자와 여자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리고 남자의 눈빛에 집중했다.
‘좋아하나?’
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좋아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언제 다시 발작할지도 모르는 중증 간질 환자인데.
저 남자의 간질은 난치성이다. 치료 시기를 놓쳐서 치료할 방법도 없다.
그때 언니라고 불린 여자가 허연 허벅지를 내놓고 내 옆에 착하고 달라붙어 앉았다. 엉덩이가 내 엉덩이에 밀착됐다.
“뭐 드실래요?”
다방이니 오봉이 어디를 앉든 그건 오봉 마음이다.
“난 커피! 은성아 넌 뭐 마실래?”
여자는 내게 물었지만, 대답은 진태가 했다.
“난 녹차!”
“그럼 난?”
여자가 웃는다.
“드시고 싶은 것을 드세요.”
난 힐끗 여자를 보며 말했다. 역시 이런 시골 다방은 이렇게 매상을 올린다.
“난 그럼 딸기 주스 마셔도 되나?
역시 오봉의 직업 정신이 투철한 여자다.
“드세요.”
난 짧게 말하고 다시 남자와 내가 알고 있는 어린 오봉에 집중했다.
“호호호! 미스 현 불러줄까?”
내가 자꾸 다른 테이블을 보자 여자가 웃으며 물었다. 아마 자신보다 젊은 미스 현이라는 여자에게 내가 관심이 있다고 생각을 한 모양이다.
“아니요. 전 그냥 됐어요.”
난 관심 없는 듯 말했다.
“호호호! 그래요. 조금만 기다려요. 내가 녹차 맛이 나게 타 올 테니까.”
여자는 내게 살짝 윙크했다.
이래서 어디를 가든 잘난 사람이 대접을 받는 모양이다. 여자는 그냥 진태를 무시했다.
“뭐야? 난 그냥 없는 사람 취급이네.”
“너 거울 안 보냐?”
“무슨 거울? 그리고 남자가 무슨 거울을 보냐?”
“그치! 곰은 거울 안 보지.”
“뭐야?”
“그렇다는 거다.”
사실 진태 같은 스타일은 힘 좋아하는 아줌마들이 좋아할 스타일이다.
이렇게 직업여성들은 썩 반가워하지 않는 몸집과 얼굴인 거다.
저런 거대한 덩치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아마 직업여성들은 진태의 얼굴보다 몸을 먼저 볼 거다. 그리고 그런 진태의 밑에 깔려서 숨이 막혀 몸부림을 칠 자신을 상상할 거다.
이왕 같은 값이면 나같이 호리호리한 애들 밑에 깔려서 돈 버는 게 좋다는 생각을 할 거다. 물론 때밀이 아저씨들도 진태 같은 애들을 싫어한다.
두당 얼마인 때밀이처럼 진태나 나나 같은 값이고 직업여성에게 나나 진태나 같은 값인 거다. 그러니 당연히 미끈하게 빠진 내가 더 좋은 걸 거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진태에게 해 줄 필요는 없다.
“내가 곰이라고?”
“곰 아니었나?”
난 살짝 진태를 놀렸다.
“뭐야?”
“농담이다. 농담! 커피나 마셔!”
난 그렇게 말하고 다시 녹차 두 잔을 들고 남자의 테이블에 앉은 어린 오봉과 남자의 대화에 집중했다.
‘분명 좋아하는 거야!’
난 그렇게 확신했다. 사람은 눈빛으로도 말한다. 하지만 그 눈빛으로 말하는 것을 두 남녀는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는 불치병인 간질이었고 또 하나는 누구나 돈만 주면 가질 수 있는 오봉이니 말이다.
“이거 마시고 가요.”
“내가 싫나?”
“아프잖아요.”
“너 나랑 나갈래?”
“아프면서 뭘 하려고 그래요?”
어린 오봉의 말에 남자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아마 남자가 간질을 앓고 있다는 것을 대부분 사람이 아는 것 같다. 사실 남자는 무척이나 잘 생겼다. 몸만 건강했다면 저리 살지 않았을 사람일 거다.
하지만 병이 있어서 누구에게도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난 너랑 있고 싶은데…….”
남자의 말에 이번엔 어린 오봉이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서 내게 커피를 가지고 오는 여자를 봤다.
“언니, 나 티켓 나가!”
그러자 이번에는 여자가 인상을 찡그렸다.
“초저녁에 티켓 나가면 난 어떻게 매상을 올려?”
아마 저 어린 오봉이 이 다방에서 에이스인 모양이다.
“매상은 언니가 올려.”
어린 오봉은 나와 진태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힐끗 보고 여자에게 말했다. 아마 한심하게 보일 거다. 이제 겨우 21살인 진태와 그보다 더 어린 내가 이렇게 다방에 앉아있으니 커피 파는 처지에서도 한심하게 보이는 거다.
“하여튼 네년은 그 정 때문에 인생 조질 거다. 두고 봐라.”
여자는 남자를 째려봤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테이블에 커피를 내려놓고 웃으며 앉았다.
“그런데 못 보던 얼굴이네?”
난 자리에서 일어섰다.
“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난 진태에게 말했다. 내가 일어선 이유는 남자와 어린 오봉이 일어섰기 때문이다. 저들이 갈 곳은 뻔하다. 아마 우리가 짐을 푼 모텔이나 아니면 하나 더 있는 여관일 거다.
“어디 가는데?”
진태도 일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진태가 옆에 있으면 내가 기공을 쓰기가 불편하다.
“술 마시자고 그렇게 노래를 불렀으니까. 저 누나랑 술이나 한잔하고 있어.”
그렇게 난 말하고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진태도 일어서려고 했지만, 여자가 진태의 팔을 잡았다.
“그래, 우리 술이나 한잔하자.”
진태는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을 거다. 그리고 여자 역시 꿩 대신 닭이라고 오늘 진태를 물고 늘어질 거다.
난 남자와 어린 오봉의 뒤를 밟았다. 그들이 간 곳은 내가 예상한 모텔이 아니라 시골 하천 둑이었다.
그리고 그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추운 둑에 앉아 서로의 어깨를 의지하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마치 말이 필요 없는 사람들이라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가엽다.
둘 중 하나라도 지금과 달랐다면, 어쩌면 저들은 부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뭐지?’
난 살짝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난 은혜를 갚아야 할 대상을 찾았다. 그와 그의 노모가 나를 알지 못하더라도 난 그들에게 뭔가를 해 줘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니까.
“으으윽!”
그리고 끝내 일이 벌어졌다. 남자가 다시 발작을 시작한 거다. 이 겨울에 하천 뚝방에 앉아 찬바람을 맞고 있으니 발작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할 거다.
간질!
그 남자의 병은 난치성 중증 간질이다.
남자가 발작을 일으키며 바닥에 쓰러져 바르르 떨었고 입에 개 거품까지 물기 시작했다. 난 놀라 남자에게 달려갔다.
때가 된 거다.
은혜를 갚을 때가.
‘비술이면 가능할 거야!’
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하지만 여자는 무척이나 여유롭게 남자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괜찮아요?”
내가 나타나자 여자는 잠시 날 보며 놀라는 것 같았다.
“넌…….”
내가 남자를 만지려고 하자 여자가 내 손을 잡고 제지했다.
“그냥 놔둬!”
“지금 발작을 하잖아요.”
“이러다가 금방 괜찮아져.”
물론 맞는 말이다. 간질로 발작을 하는 사람이 있을 때 마구잡이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 단지 머리나 다른 곳에 부딪힐 수 있으니 주변에 위험한 물건들을 치워주고 혀를 깨물지 않게 해 주면 된다. 그럼 스스로 발작이 멈춘다.
여자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자연스럽게 알게 됐을 거다. 아주 많이 만났을 거고 또 아주 많이 저런 모습을 봤을 테니 말이다.
“으으윽!”
남자의 발작이 계속됐다. 난 어금니를 꽉 깨물고 남자를 지켜봤고 여자는 그저 남자가 발작 때문에 다른 외상을 입지 않게 돌보고 있었다.
‘그래! 우선 치료부터다.’
난 자살한 할머니에게 은혜를 갚는 첫 방법을 저 남자를 치료하는 거라고 마음먹었다.
‘어릴 적에 뇌파에 맞는 향간질약만 잘 복용했어도 이러지 않을 건데.’
난 남자를 봤다.
“그런데 왜 여기에 있어?”
여자는 내게 이유를 물었다.
“그냥.”
난 그리고 다시 남자를 봤다. 그리고 바로 무릎을 꿇고 남자의 손을 잡았다.
“그냥 가만히 놔두라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사람 건들지 마!”
여자가 내게 달려들었다.
마치 성난 암고양이 같다.
“이렇게 둘 수는 없어.”
“그냥 둬! 뭘 안다고 그래.”
“최소한 너보다는 많이 알아!”
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남자에게 집중했다. 간질은 여러 가지 발병원인이 있지만, 뇌파와 간에 특이한 문제가 발생하여 생기는 병이다.
“네가 간질에 대해서 뭘 알아!”
여자가 다시 내게 달려들었고 난 여자를 밀쳐내며 소리를 질렀다.
“어, 어떻게 아, 아는 거야?”
“그건 몰라도 돼! 넌 그냥 가만히 있어.”
내가 다시 소리치자 여자는 입을 꼭 닫았다. 그리고 고통스럽게 전신 발작을 하는 남자를 봤다.
‘약물로 치료할 수 없는 환자다.’
난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수술적 치료다.
간질 환자는 우선 약물로 치료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약물치료로 간질 발작이 조절되지 않을 때는 간질 수술 등의 비약물요법을 고려하게 된다.
간질의 원인이 되는 병리적 변화를 뇌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경우에는 국소 절제술을 통하여 해당 부위를 제거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안전하다.
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정신을 집중했다. 난 이미 암벽 안에 있는 대리석도 볼 수 있는 투시력을 가졌다. 남자의 두개골 안을 보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난 뇌에 발생한 병리적 변화를 찾으려 했다.
‘측두엽에 있으면 치료가 편할 건데.’
항상 바라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 법인가.
남자의 병적인 변화는 측두엽이 아니었다. 그럼 수술적 치료를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이제는 기공을 이용해야 한다. 지인기약문의 기공을 쓸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