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57화
“돈 좀 벌어야지.”
난 진태를 보며 씩 웃었다.
“이런 시골구석 땅을 사서 어떻게 돈을 버나?”
진태의 반응은 당연했다. 진태는 아무것도 모르니 말이다.
‘주식 판 돈 3억 5천에 가지고 있는 돈까지 하면 20억이다.’
난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20억이면 이 근방의 땅을 거의 다 살 수 있다. 내가 할머니의 땅을 30만 원 정도에 사 주면 이곳의 땅값은 미친 척하고 뛰게 될 거다.
“너니까 못 벌지. 하지만 난 벌어.”
난 그렇게 말하고 김용팔 회장의 얼굴을 떠올렸다. 돈은 그의 주머니에서 나올 거다. 난 이 주변의 땅을 내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 사놓기만 하면 된다.
저벅! 저벅!
그때 자살한 할머니의 아들이 밭으로 걸어왔다.
단 하루만인데 혈색이 도는 것이 치료가 잘 된 것 같았다. 남자는 폐비닐을 걷고 있었다. 겨울철에 폐비닐을 걷는다는 것은 여름에 농사를 짓겠다는 의미다.
새로운 의욕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저기요.”
난 남자에게 다가갔다.
“뭐지?”
편안해진 얼굴이 보기에 좋았다. 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다른 사람들을 경계하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무시하는 눈빛으로, 또 괄시하는 눈빛으로 사람들이 일관했을 거다. 그러니 저렇게 방어적인 눈빛을 보이는 걸 거다.
“이런 밭에는 뭐 심나요?”
“뭐? 이런 밭?”
내 질문의 뜻을 몰라 남자는 날 빤히 봤다.
“그냥 궁금해서요. 산 밑에 밭에는 뭘 심는지 갑자기 궁금해져서요.”
내 말에 남자는 피식 웃었다.
“아직 안 심어봐서 모르겠네.”
“예?”
“한 번도 이 밭에 내가 직접 뭘 심어본 적이 없거든. 어머니만 고생하면서 심으셨지.”
사실 난 다 묻는 이유가 있다.
“산 아래라 과수원이라도 하면 딱 좋겠네요. 잎이 떨어져서 썩으면 거름도 되고 좋잖아요. 하하하!”
“과수원? 하하하! 그렇긴 하네.”
남자도 내 말에 일리가 있는지 밭을 쭉 둘러봤다. 내가 남자에게 과수를 심으라고 한 것은 다 토지보상을 받을 때 과수까지 같이 받으라고 한 말이다.
과수는 10년 이상 생산될 양을 계산해서 보상을 받는다. 그럼 그 보상액이 땅값보다 많을 수 있다.
“사과나무를 심으면 딱 좋겠네.”
난 그렇게 말을 흘리고 돌아섰다.
“사과? 화천에 사과?”
사과하면 대구다. 그리고 지금은 화천사람 누구도 사과를 심지 않는다. 뭐 내년에 사과가 모두 죽어도 상관이 없다. 올해 농사로 10년 치 보상을 받을 테니 말이다.
‘돈복이 있으면 과수를 심겠지.’
이제 남자가 심든 말든 그건 남자 운이다. 난 그냥 그 사람에게 운으로 가는 길을 살짝 열어주면 그만인 거다.
‘무기명 채권도 좀 정리를 해야겠군. 그리고 식당에서 번 것도 이곳에 다투자는 것을 해야겠어.’
‘두 배로 주고 사면 다 팔려고 할 거야.’
이건 땅 투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피해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니, 딱 한 명 있다. 어쩔 수 없이 30만 원에 땅을 사야 하는 김용팔 회장!
그가 손해를 보는 유일한 사람일 거다. 하지만 그는 내게 많은 것을 얻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역시 앞으로 많은 것을 얻을 것이다.
어쩜 오늘의 손해는 내일을 위한 재투자로 생각하면 될 거다.
‘운이 좋으면 100억쯤 들어오겠군.’
난 나도 모르게 씩 웃었다. 그리고 3시간 후 김재창이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묵직한 가방을 들고 이곳으로 도착했다.
“이 근방에 있는 땅을 다 사라고요.”
난 화천 군청에 가서 온라인 토지 대장을 봤다. 요즘 인터넷이 발전해서 토지 대장을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내 말에 김재창은 잠시 놀라는 것 같았다.
“평당 5만 원이니 10만 원 정도까지 생각하시고 매입을 하세요.”
할머니의 땅은 겨우 만 원이지만 다른 곳의 땅값은 5만 원 정도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제 겨우 19살인 내가 땅을 매입하라는 지시를 하자 잠시 당황스러운 김재창이 날 봤다.
“왜 그러세요? 궁금한 것이라도 있나요?”
“아닙니다. 바로 매입에 들어가겠습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난 좋아요.”
“알겠습니다. 보스!”
김재창은 짧게 목례를 하고 사라졌다.
“너 정말 뭐한데?”
“땅 투기!”
“땅 투기?”
진태는 아직도 무슨 일인지 몰라 고개를 기우뚱거렸다. 그리고 김재창은 빠르게 자살한 할머니 주변의 땅을 매입해 들어갔다. 역시 배나 주고 땅을 산다고 하니 너 나 할 것 없이 팔았다. 난 혹시나 자살했던 할머니의 아들도 땅을 팔지 않을까 해서 살폈지만, 그는 땅을 팔지 않았다.
평생 땅만 파먹고 사신 할머니이니 목숨은 내놓아도 땅은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적중했다.
‘운이 있으시네.’
어쩜 할머니와 그 아들은 운이 좋은 사람일지 모른다.
* * *
“언니, 나 선불 좀 땡 겨줘.”
“선불?”
“그래. 선불!”
“어디에 쓰게.”
처음 허연 허벅지를 보였던 다방 레지가 도끼눈을 해서 남자와 같이 있던 어린 레지를 노려봤다.
“그건 왜 물어? 내가 선불을 당겨서 쓰겠다는데.”
“너 요즘 하고 다니는 꼴이 하도 수상해서.”
언니라고 불리는 다방 마담이 눈을 흘겼다.
“수상하기는 뭐가 수상해?”
“너 그 새끼 가져다주려고 그러지?”
어린 레지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건 알 거 없잖아. 많이 달라는 것도 아니고 딱 300만 원만 해줘.”
“미친년!”
“싫어? 그럼 난 선불 당겨주는 다른 다방으로 옮긴다.”
이건 협박일 거다. 사실 이런 촌구석에 이만한 다방 오봉도 없다.
“알았어. 이년아! 협박은 쯧쯧! 딱 보니 네년도 편히 늙어 죽을 팔자는 아닌 모양이다. 이년아 정신을 차리려. 미친년들은 다 너처럼 몸 주고 정 주고 돈까지 가져다가 받치는 거다. 이 골빈 년아!”
여자의 악담에 어린 레지는 인상을 찡그렸다.
“악담 좀 그만하고. 어서 돈이나 주셔.”
“은행 가서 찾아와야지.”
여자는 인상을 찡그리며 일어섰다. 그리고 어린 레지는 바로 휴대전화로 전화를 했다.
“오빠, 나!”
-무슨 일이야?
“밭에 사과나무 심는다며?”
-그럴 참인데 왜?
“내가 투자할게.”
어린 레지는 남자에게 돈을 주기 위해 선급금을 당겨 쓰는 거였다.
정말 이 둘은 뭔가 있는 것 같았다. 추운 바람이 부는 둑에 앉아있을 때부터 이 둘은 뭔가 자신들의 아픔을 서로 감싸주는 그런 존재였을지 모른다.
그렇게 5일 정도가 지났고 김재창은 자살한 할머니의 밭 주변의 땅을 모두 다 매입했다.
물론 땅의 명의는 모두 김재창의 이름으로 했다.
김재창을 아직 완벽하게 믿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내가 전면에 나서기는 싫었다.
‘배신하면 죽음이지.’
이미 난 호중의 아이들에게 김재창을 감시하게 시켰다.
앵벌이 아이들은 거리를 제외하는 존재들이다. 그러니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리고 호중에게 지시해 아주 조금 가장 기초적이고 또 기초적인 비술 경공을 수련시켰다.
그러니 쫓고 도망치는 것은 문제가 없을 거다.
‘내 세력이 점점 커진다. 100억만 들어오면.’
난 순간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100억만 들어오면 난 바로 사설 보육원 같은 곳을 하나 차릴 것이다. 물론 겉으로 보이에는 사설 보육원이지만 그 내막은 나를 위해 움직여줄 요원들을 양성하는 곳이 될 거다.
그래서 난 지금 이 땅 투기를 하는 거다.
‘눈 가리고 야옹이지만.’
또 아무리 김용팔 회장에게 눈 가리고 야옹을 할 거지만 내 명의로 된 땅을 10배가 넘는 돈으로 되팔기는 좀 낯간지러웠다.
“이제 됐네.”
난 씩 웃으며 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당연히 내가 전화를 하는 곳은 김용팔 회장이다.
따르릉! 따르릉!
딸칵!
-무슨 일인가? 최은성군.
김용팔 회장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밝았다. 내가 제시한 비전 때문에 하루하루 살맛이 나는 김용팔 사장 같았다. 그리고 내가 제시한 비전은 자기 아들에게 줄 유산 같은 것이니 더욱 의욕이 넘치는 것 같았다.
“목소리가 좋으시네요.”
-하하하! 그렇게 들렸나?
“예. 좋은 일 있으십니까?”
-내가 자네를 만난 게 좋은 일이지. 하하하! 사실 검은 머리가 나기 시작했어.
“정말이세요.”
-그렇다네. 정말 자네가 준 그 생명수는 신비의 영약이야. 참! 무슨 일로 전화를 한 건가?
난 영약을 달인 물이 탈모에도 효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탈모만 해결하는 약만 개발해도 비아그라 이상의 효과를 낼 것이다. 남성의 고민은 성 기능과 탈모이니 말이다.
둘 중 하나만 잡아도 세계 최고의 일류 기업이 될 수 있고 또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거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두 가지를 다 잡게 되면?
당연히 경기 끝이다.
‘최 회장! 너는 내가 3년 안에 돈으로 조져준다.’
돈이 곧 힘인 존재는 돈으로 승부해서 처참하게 무너뜨려 줘야 한다. 그래서 절규하게 될 것이고 또 절망하게 된다.
‘그냥 죽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지. 복수는 죽지 못해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진정한 복수다. 하루하루 죽고 싶어 미칠 것 같은 것이 진정한 복수지.’
난 그런 생각을 하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회장님!”
“왜 그런가? 은성 군.”
“제가 부탁드린 것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미 연구진은 다 확보를 했어. 그러니 걱정하지 말게. 최고들만 모았어.
“비밀이 유지되어야 하는 일이라는 거 아시죠.”
난 당연한 것을 김용팔 회장에게 말했다.
-당연한 거지. 이제 연구소 용지만 확보하면 되네.
지금 한 말이 내가 듣고 싶은 소리다.
“연구실 용지는 지금 제가 보고 있어요.”
-자네가?
“예. 아무래도 제가 제일 많이 알고 잘 아는 약초니 딱 맞는 땅을 제가 찾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렇기는 하군. 그래. 알아본 부지는 어디에 있는가?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선수는 선수가 하는 짓을 알아보는 법이다.
“강원도 화천입니다.”
-강원도 화천?
“예. 딱 좋은 곳입니다. 내려오셔서 계약만 하시면 됩니다.”
-하하하! 계약하라고 전화를 했군.
“예. 평당 30만 원 하는 것 같습니다.”
-30만 원?
“예.”
-자네 땅인가?
역시 김용팔 회장은 화천지역의 땅값에 대해 알고 있는 듯했다. 강원도 오지 땅값이 아무리 높게 형성이 된다고 해도 화천처럼 접경지대는 비싸 봐야 20만 원인데 내가 30만 원을 부르니 바로 내 땅이냐고 묻는 거였다.
“아닙니다. 하지만 꼭 그렇게 주고 구매할 생각입니다.”
-궤변이군. 하여튼 몇 평이나 되지?
“연구실 용지만 500평입니다. 이곳에 가공 공장부터 직원기숙사, 그리고 수련원까지 하면 주변을 모두 다 사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항상 자네는 일을 크게 만드는군.
이젠 그걸 내 장기로 승화시킬 것이다.
예전에는 최대한 평범하게 살려고 했지만, 이제는 적이 생겼으니 일은 크게 만들어 볼 참이다.
“그렇습니까?”
-알았네. 내가 바로 조치를 하지. 울며 겨자 먹기라는 말이 딱 이럴 때 쓰는 말이군.
“고맙습니다.”
난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