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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60화 (60/210)

흑막의 신! 60화

난 모처럼 수정과 명동에서 데이트했다.

서울대 의대생과 고등학교 중퇴, 검정고시 준비생과의 데이트지만 알 사람은 없다.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자격지심일 거다.

수정 역시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다. 그러니 내 팔짱을 끼고 저리도 좋다고 웃는 거다. 그러고 보니 수정은 참 신기한 애다.

내 과거를 다 알 건데 나를 평범한 사람으로 대해 준다. 수정 같은 시선으로 사람들을 본다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많은 전과자가 자력갱생을 할 수 있을 거다. 그런 면에서 난 운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는 놈이다.

“와! 사람 많다.”

초저녁의 명동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호호호! 그러네.”

“정말 이 많은 사람 다 어디서 왔을까?”

“호호호! 별것이 다 궁금하다.”

“그런가! 하하하!”

수정은 내 팔짱을 끼고 웃으며 걸었다. 남자들은 그런 마음일 거다. 정말 누가 봐도 예쁜 여자가 옆에 팔짱을 끼면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할 거다.

그게 자신감이다.

그래서 남자는 어찌 되었든 아름다운 여자를 데리고 다니려고 한다.

“좋다.”

난 흥한 내 기분에 추임새를 넣었다.

“뭐가 좋아?”

“어깨가 으쓱해서.”

“고마운 줄이나 알아. 호호호!”

수정이 농담을 했다.

그래, 고맙다!

내 폭주를 막고 있는 게 수정일지도 모른다. 그날 내가 양로원을 가지 않았다면 수정을 만나지 못했을 거다.

내가 그렇게 화살처럼 쏟아지던 비를 맞으면 돌아섰던 운동장에서 수정과 창권만 나를 위해 울어 줬다.

그게 친구이며 정인일 거다.

‘창권은 뭐하지?’

난 창권의 소식이 궁금했다. 수능이 끝나고 몇 번 연락이 되었다가 연락이 끊겼다. 관심을 가져야 했는데 이런저런 일로 연락을 하지 못했다.

그 자체가 미안함이다.

“창권이 뭐 하는지 알아?”

내 물음에 수정은 날 빤히 봤다.

“창권이?”

“응. 요즘 도통 연락이 안 되네.”

내 말에 수정은 내 눈치를 봤다. 분명 저런 눈빛은 뭔가 할 말이 있는데 차마 말을 못 하는 그런 눈빛이다.

“그게…….”

“아는 거 있어?”

“응.”

표정이 시무룩하다. 분명 안 좋은 일이다.

“무슨 일이길래 왈가닥 수정 씨가 내 눈치를 봐? 뭐야?”

“그게……. 창권이 일해.”

“일?”

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창권의 집은 대한민국 중산층이다. 그리고 아들 하나쯤은 충분히 대학을 보낼 수 있을 정도의 가정 형편이다. 그런데 일을 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응. 창권이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셨대.”

“사기?”

난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도 들은 이야기인데, 상가 분양권 사기를 당하셨는데 모아 놓은 돈 다 날리시고 빚까지 지셨다고 들었어.”

“분양권 사기?”

“응. 그래서 창권이 건축과 합격해 놓고 대학도 못갈 판이야. 내일이 아마 입학금 마감일 거야.”

수정은 마치 자기 일처럼 침울해졌다. 하지만 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이 순간, 피가 거꾸로 솟았다.

‘난 아직 개새끼다.’

어금니가 절로 깨물어졌다. 날 위해 울어 준 벗이 그렇게 힘들어하고 있는데 나는 그 쓸데없는 돈을 벌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정말 이건 아니다.

“혹시 대학교가 어딘 줄 알아?”

“중앙대.”

수정은 짧게 말했다.

‘중앙대……. 그래. 아직 안 늦었어.’

오늘 수정을 만난 것은 참 잘한 일이다. 수정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난 창권의 꿈을 지켜주지 못 할 뻔했다. 그리고 창권 역시 자신에게 관심도 없는 나를 원망했을 거다.

‘우리 곰돌이 꿈은 내가 키워 준다.’

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친구와 친구의 가정을 불행으로 몰아넣은 놈들을 도저히 용서되지 않았다.

지금 내 뒤에 재창과 권태가 날 따라오고 있다. 물론 수정은 모른다.

“나 화장실 좀.”

“화장실?”

“응. 여기 있어. 금방 갔다 올게.”

길을 걷다가 화장실을 찾는 것 보니 무척이나 급한 모양이다.

“알았어.”

내 짧은 대답에 수정은 정말 급한지 쇼핑몰 건물이 있는 빌딩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수정이 멀어지고 나서 난 바로 재창을 봤다.

재창은 내 눈빛을 확인하고 바로 달려와서 옆에 섰다. 물론 약간 떨어진 거리였다.

“사람 잘 찾고 뒷조사 잘하는 흥신소 하나 알아봐요.”

“흥신소 말씀입니까?”

“예. 정말 일 잘하는 분들로 찾아봐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음…….”

난 한숨을 쉬었다.

“정말 무슨 일 있으십니까? 보스 표정이 어두우십니다.”

김재창은 내 눈치를 살폈다.

“내 친구가 운답니다. 날 위해 유일하게 울어 준 놈입니다.”

난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을 떠올렸다. 오직 그 자식만이 억울하게 퇴학당한 나를 위해 울어 줬다. 그런데 난 창권에게 해 준 것이 없다. 아니, 한참을 잊고 살았다.

친구인데 그러면 안 되는 거다.

“그놈들 가만히 둘 수 없어요.”

“예?”

“연습 게임이라고 해 두죠. 앞으로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는 연습 게임.”

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최 회장과의 일전은 거대한 전쟁이 될지도 모른다.

돈과 두뇌 싸움.

바로 실전으로 들어가기 전에 연습 게임도 필요한 법이다.

“저는 무슨 말씀이신지…….”

“그런 것이 있습니다. 오프닝 게임이라고 해 두죠. 곧 메인 게임이 있을 테니까요.”

이 순간 김재창은 아무 말도 없이 날 물끄러미 봤다.

“최대한 빠르게. 알겠죠?”

“알겠습니다. 보스.”

그리고 멀리 수정이 볼일을 다 봤는지 내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수정의 앞을 막아서서 이야기를 거는 남자가 내 눈에 포착이 됐다.

‘휴우~.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되겠네.’

난 어이가 없어 빠른 걸음으로 수정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안녕하십니까? 놀라지 마세요.”

남자는 정중하게 수정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신데요.”

수정의 말에 남자는 안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수정에게 내밀었다.

“저는 MG 연예 기획사에서 일하고 있는 이준성 대리입니다.”

“그런데요?”

“혹시 학생입니까?”

“그런데요. 왜요?”

“실례가 안 된다면 다니시는 학교가…….”

남자는 수정의 눈치를 봤다.

“서울대 의대 다닐 건데요.”

수정의 말에 남자의 눈이 커졌다. 마치 길거리에서 보석을 주운 그런 표정이다.

“정말 서울대라고요?”

서울대는 말 그대로 서울대다. 그냥 서울대라고 하면 아무리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다시 보게 되는데 수정처럼 예쁜 여자애가 서울대를 다닌다고 하니 저렇게 눈이 커지는 걸 거다.

“그런데 왜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시 배우가 되실 생각 없으세요?”

“생각 안 해 봤는데요.”

난 수정과 남자의 대화를 뒤에서 듣고 있었다. 한마디로 지금 수정은 길거리 캐스팅을 당한 거다.

“그럼 한번 해 보시고 연락 주세요. 여기 명함 받으시고요.”

“수정아 뭐야?”

난 둘의 대화가 끝났다고 생각하고 수정을 불렀다.

“연예 기획사에서 나오신 분이라는데?”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수정의 목에는 힘이 가득 들어 있었고, 눈빛에는 허영심이 가득해 보였다. 역시 수정도 여자였다.

“연예 기획사?”

“응.”

난 남자를 힐끗 봤다. 잘 차려입은 것이 기생오라비 같아 보였다. 그런데 남자의 눈이 빛났다.

이유를 알 수는 없으나 무척이나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저런 눈빛을 보인다.

“어쩐지 오늘 이상하게 제가 명동에 나오고 싶더라고요. 하하하!”

남자는 다시 양복 재킷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내게 건넸다.

“예?”

“정말 선남선녀시네요.”

그건 말을 안 해도 안다. 난 잘생긴 남자다. 아니 청년이다. 그리고 수정도 꽤 예쁜 처녀다. 정말 처녀일지는……. 아니, 확실히 처녀일 거다. 내 여자이니 말이다.

“그래서요?”

“연락 한번 꼭 주십시오. 정말 이런 조각미남, 처음 봅니다.”

수정보다 나를 볼 때의 눈빛이 더 빛났다.

남자도 자신에게 잘났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적개심을 푸는 법이다.

“혹시 남학생도 서울대 다니십니까?”

수정이 서울대를 다닌다는 말에 그럴까 싶어서 물어보는 걸 거다. 조금 전까지 그래도 꽤 호감이 가던 인상이 순간 비호감으로 변해 버렸다.

학력이 뭐라고……. 젠장!

“저 서울대 안 다니는데요.”

“그럼 어느 대학 다니십니까?”

“검정고시 준비합니다.”

난 당당히 말했고 남자는 수정과 나를 번갈아 봤다. 수정의 인물이 다른 여자만큼 평범했다면 내가 수정이를 따라다니는 거라고 생각을 할 거다. 하지만 수정이도 빼어난 미모에 언제부터인가 글래머의 몸매였다. 그러니 저런 눈빛으로 수정을 보는 거다.

“아, 아 그러십니까? 하여튼 연, 연락 한 번 주십시오.”

“관심 없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꼭 한 번 연락 주십시오. 정말 우리 회사 사활을 걸고 크게 밀어 드리겠습니다.”

“사활까지 거실 필요가 있을까요?”

“있지요. 저는 제 눈을 믿습니다. 충분히 대중들에게 크게 관심을 끌 수 있는 얼굴이십니다. 여자들에게는 조각미남으로, 또 남자들에게는 제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저돌적인 야성미에 분명 관심을 끌게 될 겁니다.”

“점쟁이세요?”

“연예계에서 일하다 보면 될 사람과 안 될 사람 정도는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세요?”

그렇게 눈이 좋은 사람이 길거리 캐스팅을 하고 다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 저는 저를 믿습니다.”

“많이 믿으세요.”

“꼭 한 번만 연락을 주십시오. 아니, 실례가 안 된다면 전화번호를 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시간이 나실 때 전화를 해 주시면 제가 달려가겠습니다.”

수정보다 내게 더 집요하게 말하는 남자를 보고 수정은 살짝 삐진 것 같았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저렇게 간곡하게 말하니 난 그렇게 대답을 했다.

“꼭 연락 주십시오.”

이제 남자에게 수정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그런데 왜 저를 그렇게 좋게 보신 거죠?”

난 그게 궁금했다. 검정고시 준비생이라면 고등학교나 중학교 중퇴생이라는 것을 짐작할 거다. 그런데 남자는 집요하게 내게 달라붙었다. 난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게 궁금하세요?”

“예. 궁금해지네요. 저 같은 얼굴은 흔합니다.”

“처음에는 조각미남이라 한 번 카메라 테스트를 받아 보라고 말씀드린 건데 이야기를 짧게 해 보니 눈에 원망, 반항, 서러움 같은 게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난 속으로 많이 놀랐다.

눈을 보고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무슨 일을 하든 최고의 경지에 있는 사람일 거다. 그리고 배우를 캐스팅하는 직업을 가진 연예 기획사 직원이라면 저 사람은 분명 엄청난 일을 저지를 사람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 보셨네요.”

난 씩 웃었다.

“과연 그럴까요. 꼭 연락 한번 주십시오. 계약하지 않아도 술 한잔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참. 미성년이시라 술은 못 하시겠네요.”

역시 남자의 눈은 정확했다. 난 내 나이를 말하지 않았는데 단번에 내가 아직은 미성년자라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저 22살입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남자가 나를 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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