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61화
“맞아요.”
“예. 그렇다고 해 두겠습니다.”
정말 눈썰미 하나는 타고난 인물이 분명했다.
“이준성 씨라고 했죠?”
“예. 그렇습니다. 성함이?”
“최은성입니다.”
“하여튼 연락 한 번 주십시오. 하하하!”
난 점점 더 남자에게 호감이 갔다.
“일 하나 마무리하고 연락드리죠.”
“그럼 전화번호라도.”
남자는 집요했다. 수정은 조금 전 자신에게 연락하라고 한번 말한 게 전부였던 남자가 내게 집요하게 매달리는 모습에 한마디로 빈정이 상한 것 같다.
“꼭 드려야 합니까?”
“연락 주신다고 하셨으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정말 전화번호를 알려 주지 않으면 계속 쫓아다닐 것 같았다.
난 남자를 한 번 봤다. 20대 중반 기생오라비처럼 생겼어도 사람 보는 눈이 있는 저 남자. 난 저 남자에게 호감이 갔다.
그래서 휴대전화를 꺼내 남자에게 건넸다.
내 행동에 남자는 씩 웃었다. 그리고 역시 자신의 눈은 확실하다는 눈빛을 보였다.
“정말 대단히 반항적이시네요. 숨기고 있는 눈동자가 매섭습니다. 사연이 많으신가 보네요.”
이준성의 말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그만하시죠.”
“죄송합니다. 워낙 눈매가 반항적이라서…….”
“왜요? 왜 제가 반항적인데요?”
“이렇게 저한테 휴대전화를 툭 주신 분은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공손히 전화번호를 불러 주는 게 전부였습니다. 처음입니다. 찍으려면 찍고 말려면 말라. 하하하! 정말 눈빛하고 행동이 마음에 듭니다. 좋아요.”
별것이 다 좋아 보이는 모양이다.
“알겠습니다. 이제 저희 가도 됩니까?”
난 수정을 힐끗 봤다. 이미 골이 나 있는 표정이다.
“예. 꼭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명동에서 난 연예 기획사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그 남자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랑 같이 일하면 대한민국 연예계가 바뀐다.’
난 미래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저 남자는 사람을 보는 눈이 있다. 둘이서 손을 잡으면 대박 연예 기획사가 탄생하는 거다.
물론 내가 소녀시대나 기타 등등 대박급 연예인들이 어디서 코를 흘리고 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 스타 연예인들이 될 예비 스타는 저 남자가 찾아오면 된다. 난 그냥 내가 본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노래 가사 몇 개를 툭툭 저 남자에게 던져만 주면 된다.
연예계는 추세다.
이 대한민국에서 미래 추세를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다.
하지만 그건 나중 문제다.
지금은 잔뜩 감정이 상한 수정을 어떻게 하면 달래 줄까 하는 게 문제였다. 골이 잔뜩 난 것이 영 오래 갈 것 같다.
“왜 그렇게 얼굴이 부어 있어?”
“좋냐?”
수정은 바로 시비다. 역시 서울대를 가도 쌈닭 기질은 못 버린 것 같다.
“뭐가?”
“그렇게 왕자님 대접받아서.”
역시 수정은 속 좁은 여자가 분명했다. 그리고 자신만 길거리 캐스팅을 받았으면 내게 자랑을 할 건데 그걸 하지 못해 심통이 나 있었다.
그리고 길가래 캐스팅의 강도도 자신보다 내가 더 강하니 은근슬쩍 화가 난 것이 틀림없다.
“하하하! 왕자는 무슨! 전 마님의 마당쇠입니다.”
난 큰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그것도 사극풍으로.
내 외침에 사람들이 모두 수정과 날 봤다. 수정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왜 그래? 쪽팔리게.”
“마님!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
다시 사극풍으로 말을 했다.
“야! 은성! 너 장난칠래? 사람들 다 보잖아.”
“그럼 화 푸시는 겁니다.”
“그래. 장난 그만해!”
수정은 힐끗힐끗 사람들을 봤다. 물론 나 역시 사람들을 봤다. 그중에는 연인들도 있었다.
남자들은 저 만고의 남자들의 역적 같은 새끼라는 눈빛을 쏘았다. 그리고 여자들은 수정이 부럽다는 눈빛을 잠시 보냈다가 옆에 팔짱을 끼고 있는 남자들을 째려봤다.
아마 나처럼 잘생긴 조각미남이 저렇게 무릎까지 꿇고 화가 풀리라고 개그를 하는 게 부러운 모양이다.
수정은 창피하다면서도 표정이 밝아졌다.
역시 여자 친구의 기분이 상해서 풀어 줄 때는 쪽팔린 거 다 무시하고 반쯤 미친 척하는 게 좋다. 그럼 기분이 상한 여자도 웃는다.
“알았어. 알았어. 그만해. 나 배고프니까. 밥 먹자.”
“정말?”
“그래.”
수정은 기분 좋은 눈으로 나를 흘깃 바라보며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명동 데이트는 끝이 났다. 즐거운 데이트이기도 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무거운 데이트이기도 했다.
그 무거운 마음에는 내 친구 창권이 있었다.
‘이 형이 우리 곰돌이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 주지.’
난 내일 당장 중앙대 원무과로 달려갈 결심을 했다. 역시 돈이 있어서 좋다. 그리고 창권이 마음 편하게 대학을 다닐 수 있도록 창권의 가정을 어떻게든 돌보겠다고 결심을 했다.
‘세 할머니 식당 2호점이 딱 좋겠군. 그건 그렇고 어떤 놈들이지?’
바드득!
내가 직접 관여된 일은 아니지만, 드디어 흑막의 신의 데뷔가 다가오고 있었다.
‘첫 데뷔가 되겠군.’
***
재창건설 사무실.
김재창은 내 지시를 받고 그 결과에 대해 보고를 하고 있었다. 내지시니 신속하게 처리를 알아본 것 같다.
물론 그 신속함은 자금력이 동원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사실 난 김재창에게 재창건설 바지사장에 맞게 활동비를 지급했다. 화천 땅 투기를 한 일로 내 수중에는 110억이 들어왔었다. 그 중 50억을 이용해 사설 보육원을 세웠다. 물론 호중도 아직 미성년자이기에 바지 보육원장을 뒀지만 말이다.
그래서 남은 돈이 60억이었고, 김재창에게 내가 2억의 활동비를 지급했다. 그러니 바로 이런 정보를 찾아온 것이다.
“구파발 뜨악새라고요? 참 별호 하나 이상하네요.”
“숨은 놈들이 모두 다 뜨악하다고 붙여진 별호랍니다. 그 바닥에서는 전설적인 사람이랍니다.”
“그럼, 일은 확실하겠군요.”
“예. 가격이 좀 높아 그렇지 확실합니다.”
“돈은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이미 난 갑부 축에 든다. 그리고 이제 곧 더 엄청난 부자가 될 것이다. 화천의 땅도 처음에 산 땅 중에 50퍼센트가량이 남았고, 연구소부터 가공 공장 건설을 시작할 것이니 곧 공사비가 들어올 거다.
‘500억짜리 공사니 최소 100억은 남겠지. 원래 300억이면 떡을 칠 공사라고 했지.’
난 또 한 번 김용팔 사장에게 돈을 뜯어낸 거였다.
이번 공사만 시작하면 바로 순순히 100억이 들어온다. 공사가 끝이 나면 다시 100억이 들어온다. 그럼 200억이 되는 거고, 그 돈을 다시 재투자하고 또 내 세력을 확장하는 데 쓸 거다. 그러니 난 점점 더 강해질 수 있다.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분양 사기꾼 놈들을 찾아서 뭘 하실 생각입니까?”
“놈들 때문에 내 친구가 힘들어하네요. 전 절대 그런 거 못 봅니다.”
물론 창권 때문에 이번 일을 하겠다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5%도 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이건 연습 게임이고 오프닝 게임이다.
최 회장과 그 주변 인물을 깨기 위한 오프닝 게임.
“친구시라고요?”
“예. 그런 애가 있습니다. 곰돌이라고 제가 처음 사귄 친구입니다. 분양 사기를 당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집이 풍비박산이 난 것 같고요.”
“복수해 주실 생각입니까?”
김재창의 물음에 난 피식 웃었다.
“복수라는 말 함부로 쓰는 거 아닙니다. 복수는 제 모든 것을 걸고 하는 게 복수입니다.”
난 그렇게 말하고 최 회장과 최상혁의 얼굴을 떠올렸다.
“죄송합니다. 그럼?”
“응징이라고 해 두죠.”
난 그렇게 말하고 살기를 뿜어냈다. 드디어 흑막의 신이 되겠다고 한 내가 앞으로 한 발자국 전진한 거였다.
“알겠습니다. 보스.”
“그리고 사기 잘 치는 전문 사기꾼 몇 명 정도 섭외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김재창은 무슨 이유인지 몰라 날 빤히 봤다.
“사기는 사기로 갚아 줘야 눈물이 쏙 날 겁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사기에는 사기인 거다.
난 최대한 놈들의 탐욕을 부추길 거다. 그리고 그 탐욕이 극점에 닫았을 때 크게 추락시킬 거다. 물론 최 회장에게 할 내 복수도 같다.
‘바닥까지 추락하는 기분이 어떤지 알려 주마!’
바드득!
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알겠습니다. 꾼들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놈들도 찾겠습니다.”
난 이미 김재창에게 창권의 부모가 어떻게 사기를 당했는지 알려 줬다.
“알겠습니다.”
김재창은 일어섰다.
그리고 나도 일어섰다. 이제 창권의 등록금 마감까지 5시간 남았다.
‘이제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 볼까.’
난 그렇게 생각하고 중앙대 원무과로 향했다.
중앙대 원무과로 들어서는 순간, 난 내 친구 창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통사정하는 모습이 측은하기까지 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창권은 원무과 직원에게 사정을 했다. 하지만 직원은 귀찮다는 눈빛을 유지하며 사무적으로 창권을 대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은데 기회는 공평해야 하잖아. 기다리는 후보들이 너무 많아.”
“조금만요. 조금만 부탁드립니다.”
“어쩔 수 없어. 학생! 사정은 딱하지만 규정이라는 게 있어서.”
원무과 직원은 차갑게 돌아섰다. 그리고 창권은 푹 고개를 숙였다.
뚝!
한 방울의 눈물이 바닥에 떨어졌다. 난 분명 떨어지는 눈물을 봤다. 그것도 잠시, 창권은 다시 돌아섰던 아저씨의 팔을 잡고 통사정을 하고 있었다.
어쩜 창권처럼 멍청한 애도 없을 거다. 여기 와서 사정을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창권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라 이렇게 멍청하게 애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멍청해도 내 친구는 친구다.
저건 내가 돌보지 않았기에 벌어진 일이다.
“휴우~.”
난 한숨이 절로 나왔다.
‘고생이라고는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놈인데…….’
등록금 마감 날 창권은 어떻게든 입학을 하기 위해 애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창권의 말을 들어 줄 것 같지 않았다. 중앙대 원무과의 입장에서는 기다려 줄 형편이 아니었다. 창권이 등록금을 내지 못하면 대기 합격자가 자연히 합격을 하는 거다.
그러니 어떤 면에서 중앙대 원무과는 모든 이에게 동등한 규칙을 적용하고 있는 거다.
저렇게 창권이 통사정을 하고 있으니 이제 키다리 아저씨가 되기는 다 틀렸다. 그냥 의리파 형님이 내 적성에 맞다.
“창권아!”
난 나직이 창권을 불렀다. 창권은 온 신경이 빌고 비는데 집중했는지 내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창권아!”
난 다시 창권을 불렀다. 그제야 창권이 고개를 돌려 날 봤다.
“은, 은성아!”
창권은 조금 놀란 것 같다. 갑작스럽게 내가 나타났으니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이리 와!”
난 마치 큰 형이 아우를 부르듯 손짓을 하며 불렀다.
“괜찮아. 그냥 이리 와. 왜 쪽팔리게 거기서 울고 있어.”
내 말에 원무과 직원들이 힐끗 날 봤다.
“은, 은성아!”
창권은 날 보자 꾹꾹 눌렀던 서러움이 폭발하는 모양이다. 곰돌이 푸 같은 창권의 눈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