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62화
“울지 마! 인마.”
난 창권을 향해 걸어갔고 창권의 입술은 다시 파르르 떨렸다. 또 울려는 거다. 눈에 눈물이 가득해 보인다. 한번 터진 눈물에 울지 말라고 하면 더 울게 되는 법이다.
“은, 은성아아아앙!”
다시 창권은 울음이 터졌다. 마음이 착잡하다. 바로 도와주고 보듬어 줘야 했는데 내 할 일만 찾아 돌아다닌 게 미안해졌다. 그때 원무과 여직원이 나와 창권에게 걸어왔다.
“소란 피울 거면 나가 주시겠습니까?”
정중하게 말을 했지만 난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당신은 동생 없어?”
조금 전까지 사무적인 존댓말을 하던 여직원이 날 째려봤다. 20대 중반의 여자. 어쩜 그 여자는 오늘 재수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뭐라고요?”
“더 재수 없게 존댓말 쓰지 말까?”
“뭐야?”
드디어 여자도 말을 깠다.
“대학 등록금이 없어서 서럽게 울잖아. 그런데 그런 애한테 소란 피울 거면 나가 달라고? 넌 가슴 같은 건 없냐?”
내 반말에 여자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리고 날 노려봤다. 주먹을 꼭 쥐는 것을 봐서 날 한 대 후려칠 기세다.
“그만해요. 미스 정.”
나이 지긋한 중년의 직원이 여자를 말렸다. 그리고 내게로 와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해가 되기는 하는데 우리도 어쩔 수 없네. 우리 여직원이 실수를 했네. 용서하게.”
역시 나이는 그냥 드시는 게 아니다.
“저 역시 죄송합니다.”
나 역시 사과를 했다. 그리고 다시 여직원을 보며 한소리 했다.
“그렇게 가슴이 없으니 아직도 미스 소리 들으시는 거예요.”
난 뒤끝이 하늘처럼 길다. 난 노처녀의 염장을 확 질렀다. 그리고 여자는 다시 날 째려봤다. 하지만 중년의 원무과 직원 때문에 마지못해서 돌아서야 했다.
난 그렇게 여직원에게 한 번 이죽거리고 창권을 봤다.
“뚝! 애냐 울게.”
“그, 그게…….”
“알아. 알고 왔으니까. 그만 울어.”
창권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난 창권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 나서 중앙대 원무과 직원을 봤다. 조금 전 내게 나이랑은 상관없이 정중히 사과를 했던 그 직원이 내 앞에 섰다.
“입학 등록금 내려고 왔습니다.”
내 말에 원무과 직원이 날 봤다.
“무슨 과지요? 그리고 이름은요?”
“건축과 박창권입니다.”
난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100만 원짜리 수표 4장을 꺼냈다.
“은행에서 해 주면 더 좋은데…….”
“여기서는 안 됩니까?”
“아니. 안 되는 건 아니고.”
“그럼 받으세요. 시간 얼마 없잖아요.”
난 시계를 봤다. 이제 2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박창권이라는 학생이 저 학생인가요?”
중년 원무과 직원은 창권을 보며 내게 물었다.
“예. 제 친구입니다.”
“다행이네요. 참 다행입니다.”
중년의 원무과 직원은 마치 자신의 일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다행이라고 몇 번을 거듭해서 말했다. 역시 아무리 사무적으로 일을 처리해도 남이 힘든 것은 마음이 쓰이는 게 우리나라 사람의 성품인 모양이다.
그리고 원무과 직원은 창권의 입학 등록금을 수납 받고 영수증을 내줬다. 난 아무렇지 않게 돌아서 창권을 봤다.
창권은 여전히 울먹이고 있었고 얼마나 서러웠는지 어깨까지 들썩였다.
“넌 공부만 해. 나머지는 이 형이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가자! 밥 먹자.”
아마 창권은 초조한 마음에 한 끼도 먹지 못했을 거다. 시간이 흘러 입학금 마감 시간이 다가올수록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을 거다.
나도 그랬다.
내게 장학금을 지원해 준 이름 모를 독지가가 없었다면 나 역시 창권처럼 그랬을 거다. 어쩜 난 내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빚을 갚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때 그분은 누굴까?’
난 문득 그날이 떠올랐다. 하지만 내가 찾을 수는 없을 거다.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니 찾지 않는 것도 어찌 보면 예의라고 생각한다. 난 이렇게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 되는 거다. 그리고 더 많이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먹을래?”
난 오랜만에 창권의 어깨에 어깨동무를 했다.
“아무거나.”
“새끼야! 그렇게 말하는 것이 사 주는 사람한테 제일 어려워.”
“그럼 난…….”
원래 창권은 덩치에 맞게 꽃등심 같은 것을 좋아한다. 집이 폭삭 망했으니 요즘 고기는 구경도 못했을 거다.
“꽃등심 먹자. 할 이야기도 있고.”
“할 이야기?”
“있지.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
“알았어.”
* * *
지글지글 고기가 익고 있다. 창권은 세상 서러움 다 짊어지고 갔던 표정은 간데없고 꽃등심이 익기만을 아이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너 아주 눈이 반짝반짝 거린다. 울다가 웃으면 거기 털 난다는 거 알고 있냐?”
내 농담에 창권은 날 빤히 봤다.
“웃지는 않았거든? 그리고 고기 구경을 2달 만에 해서 그런 거야.”
“2달?”
난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했다. 보통 그렇다. 남자친구끼리 너희 집 그렇게 힘들다면서 사기 당해서 어쩌냐 이러면 자존심이 팍 상하게 된다. 그럼 도와주면서도 도와주는 척을 하게 되는 거다.
원래 친구끼리는 그런 거 없다. 그냥 홀딱 벗고 도와주는 게 친구다.
“응. 일이 좀 그렇게 됐어. 대충 너도 들었지?”
오히려 창권이 먼저 말을 꺼냈다. 내가 모든 일을 알지 않고서 어떻게 중앙대 원무과에 왔겠는가.
“수정한테 조금 들었어.”
“조금?”
“그래.”
“나도 너 수정이랑 사귄다는 소리 들었다. 사귈 줄 알았어.”
창권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모르고 있는 게 더 있어? 친구잖아. 있으면 말해 봐.”
난 다 알면서도 창권에게 물었다. 다 알고 왔으니 말해라보다 이게 훨씬 좋은 방식이다. 내 물음에 창권은 잠시 망설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친구라는 말이 창권의 마음을 흔들어 놨다.
“우리 친구잖아. 원래 진짜 친구는 어려울 때 빛이 나는 법이다.”
“은, 은성아.”
“그래. 말해 봐.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도울게.”
“그게…….”
“그게 뭐?”
“그게…….”
이제 창권은 부모님이 상가 분양 사기를 당한 것을 이야기할 거다. 그 이야기 전에 자신이 취직을 한 이야기도 할 거고, 너무 힘들었다는 이야기도 할 게 분명하다. 자신의 입으로 내게 말하고 나면 자존심은 덜 상할 거다.
“아버지가 나쁜 새끼들한테 사기 당하셔서 집이 망했어.”
드디어 창권이 말했다.
“고기 다 익었다. 우선 먹고 이야기하자.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창권은 침울한 표정이었다가 다시 표정이 밝아졌다. 역시 다 먹자고 사는 거다.
지글지글 고기가 익었다.
꽃등심!
그날 창권은 혼자서 꽃등심 7인분을 먹어 치웠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 주절거렸다. 물론 이미 내가 다 아는 이야기다.
“그래서 내가 요즘 미칠 것 같아.”
“대학 등록금은 해결됐잖아.”
“그래, 고마워.”
이제 내가 본론을 이야기할 차례다.
“창권아!”
“응.”
“넌 공부만 해라. 이 형이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고마워! 그런데 무슨 돈이 있어서 나를 도와준 거야?”
“돈이 있으니까 도와주는 거고 도울 일이 있으니까 돕는 거지.”
“도울 일?”
난 창권을 빤히 봤다. 그리고 창권은 내가 빤히 보자 왜 그러는가 해서 내 눈빛을 피했다.
“왜 그래? 부끄럽게 그렇게 빤히 봐?”
“너, 내가 오늘부로 샀다.”
“뭐? 날 사?”
창권의 눈이 커졌다.
“그래. 내가 너 등록금 다 지원해 줄 거야. 그러니 넌 공부만 하면 돼. 그리고 넌 졸업하고 나서 내가 들어가라는 건설사 들어가면 돼.”
내 말에 창권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이해가 안 된다고 해도 내가 김재창을 시켜서 재창건설을 인수했다는 이야기를 해 줄 필요는 없다.
“무슨 소리야 그건?”
“말 그대로다. 이왕 건축과 들어갔으니 졸업하기 전에 건축기사 자격증 따고 각종 건축 공모전에 입상하고, 네 스펙을 빵빵하게 만들어서 내가 들어가라는 건설사 들어가면 돼.”
“그, 그게 쉬워? 땅 파면 나오는 거니?”
“땅 파면 안 나오지만 책 파면 나온다.”
“그걸 농담이라고 하지?”
“안 된다고 생각할 때 안 되는 거야. 된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면 돼. 그리고 넌 재능 있어.”
창찬은 원래 고래도 춤추게 하는 법이다. 창권은 내 말에 강한 의지를 불태웠다.
“네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되는 거야?”
“물론이지. 나중에 유명해졌다고 배신하면 알아서 해.”
난 창권을 잠시 째려보다가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웃었다.
“그런 일 없어. 우리…….”
“그래. 우리 친구잖아.”
난 다시 창권을 봤다.
원래 창권은 미니어처 같은 것을 잘 만들었다. 정말 건축에는 재능이 있는 놈이다. 그런 놈을 이렇게 싼 가격으로 스카우트 하는 건 내게 이득일지 모른다.
“그리고 집 사정은 어때?”
내 물음에 창권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휴우~. 말이 아니다. 아버지께서는 빚쟁이들 때문에 집에 못 오시고 어머니는 누우셨어. 여동생은 학원도 못 다니고 있는 형편이라 날라리 되기 일보 직전이다.”
그것 역시 이미 파악돼 있다. 단지 창권은 아직도 창피했는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약간 낮춰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지금 날라리가 되기 일보 직전인 창권의 여동생을 호중이 잡으러 출동한 상태였다. 창권의 여동생은 한 달째 가출 중이었다.
이 모든 것이 사람 억장 무너지게 만드는 분양 사기범 때문일 거다.
“우선 그럼 집부터 안정이 되어야겠네.”
내 말에 창권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게 말이 쉽지 쫄딱 망한 집을 어떻게 안정을 시키나.”
창권은 다시 긴 한숨을 쉬었다.
“그럼 우선 집 나간 동생부터 잡아들이고 보자.”
내 말에 창권은 날 빤히 봤다.
“알, 알고 있었어?”
“응. 수정이가 며칠 전에 봤다네. 이상한 애들이랑 어울리는 거.”
난 다시 수정이 핑계를 했다. 뭐든 말하기 곤란할 때 없는 사람 핑계를 둘러대는 것이 좋다. 이래서 뒷담화가 생기고 호박씨 까는 일이 생기는 거다.
“아주 나쁜 년들이랑 어울려서 큰일이야.”
창권은 다시 한숨을 쉬었다. 저러다 아직 타다 남은 숯이 다 꺼질 판이다.
“기다려. 곧 올 거야.”
“곧? 뭐가 오는데?”
“집 나가신 여동생분.”
난 창권을 보며 씩 웃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