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63화
같은 시간.
호중은 건설사가 부도가 났는지 건설이 중단된 아파트 공사장에 들어서고 있었다. 호중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이런 곳을 10군데도 더 뒤졌고, 비행 청소년들과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8번은 싸움질을 했다.
“그냥 박지은 이름만 주고 어떻게 찾아!”
호중은 은성을 떠올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정말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도 아니고, 호중은 이틀 동안 이런 곳을 수도 없이 뒤졌다. 그렇게 몇 다리를 건너서 끝내 이곳까지 오게 된 거고 이곳에는 확실히 박지은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호중이었다.
“그래도 한국 참 좁네! 찾으려고 마음만 먹으니 찾게 되네.”
잔뜩 인상을 찡그린 호중은 문득 지금 자신이 뭐하는 짓인가 하고 한숨을 쉬었다.
“참! 예전이나 지금이나 삐뚤어진 것들은 다 이런 음침한 곳을 좋아한다니까.”
호중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5층쯤 되어 보이는 콘크리트 벽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저기네.”
원래 예나 지금이나 불량 청소년들은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이런 곳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휘익!
퍽!
쨍그랑!
“아이 썅! 놀래라. 대가리 구멍이 날 뻔했네.”
호중은 5층 콘크리트 구조물에서 아무렇지 않게 던져져 자신의 옆에서 깨어진 소주병 파편을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운이 없어 머리에 맞았다면 바로 골로 갈 뻔했던 순간이었다. 정말 옛말 틀린 게 하나도 없다. 무심히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는다고, 호중은 5층에서 무심히 던진 소주병에 죽을 뻔했다.
“이 썅년들이 미쳐 가지고.”
호중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주변을 살폈다. 여기저기 삼겹살이라도 구워먹었는지 부탄가스통이 난무했다. 물론 이런 곳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지는 않았을 거다.
이 부탄가스의 용도는 환각용이 분명하다. 돈 없는 비행 청소년들이 본드를 불고 부탄가스를 빨았다.
“아주 미친년들이 가지가지 했네.”
호중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비어 있는 아파트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대략 5층 정도의 높이에 이르자 콘크리트 구조로 된 폐아파트 한쪽 모퉁이에서 장작불을 피워 놓고 일곱 명쯤 되어 보이는 여자애들이 소주를 마시고 있는 것이 보였다.
호중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술에 취해 있는 여자애들을 봤다. 그리고 여자애들도 겁 없이 이곳까지 올라온 호중을 봤다.
“너 뭐야?”
호중을 발견한 여자애 하나가 호중을 향해 소리쳤다. 호중은 잠시 그 여자애를 째려보다가 나머지 여자애들을 쭉 둘러봤다.
“조금 전에 밖으로 소주병 던진 년 누구야?”
“뭐?”
“누가 소주병 던졌냐고? 이 미친년들아!”
호중은 조금 전 일이 생각이 났는지 소리를 질렀다.
호중이 소리를 지르자 어이가 없다는 듯 6명의 여자애들이 일어섰다. 역시 이런 곳에서 노는 애들이라 바로 전투 준비에 돌입을 했다.
그리고 한 여자애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고 있었다. 물론 술에 취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왜. 소주병 던진 년 찾으면 업어 가시려고?”
역시 말하는 투가 지랄 같다. 저렇게 바른말 고운 말 안 쓰는 것을 보면 세종대왕께서 울 판이다.
나랏말이 듕귁에 달했는데.
“근수 많이 나가는 너냐?”
호중의 말에 순간 6명의 여자애들은 삐딱하게 서서 호중을 포위했다. 정말 겁이 없다 못해 부탄가스 처마시고 미쳐 버린 년들이 분명했다.
“좆 달았다고 좆도 겁 없네. 여기서 맞아 뒤지면 약도 없어. 저기서 떨어지면 그냥 사고사다. 씨방새야!”
덩치가 커서 절대 나중에 결혼하면 신랑이 결혼 행진 때 업고 나가지 못할 만큼의 돼지 같은 년이 침을 탁 뱉으며 이죽거렸다.
“너냐?”
호중은 여자애를 노려봤다.
“그래 나다.”
그와 동시에 여자애는 호중이 서 있는 앞으로 마시다 만 소주병을 던졌다.
쨍그랑!
이런 행동은 호중이 쫄라고 한 행동이다. 딱 봐도 놀아봤고 쌈질 좀 해 본 년들이 분명했다. 하지만 호중도 놀만큼 놀았고, 소년원 다녀올 만큼 다녀온 전직 불량 청소년 일진이었다. 물론 지금은 은성의 첫 제자로 이렇게 사람 찾는 일, 사람 감시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그래도 ‘아, 과거는 그리워라’ 할 정도의 시절이 있었다.
“너라고? 넌 뒤졌다. 이년아!”
“누가 뒤지는지 보자고. 넌 다구리 당해서 지면 좆도 없어질 줄 알아.”
덩치 큰 년이 호중에게 각목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쉬웅!
움직임을 보아하니 패싸움 좀 해 본 년이 분명했다. 호중은 가볍게 피했다.
“난 쌍년들이라고 안 봐 준다.”
“너나 봐 달라고 하지 마세요.”
여자들이 다시 덤벼들려고 했다. 그때 호중이 뒤로 살짝 물러섰다.
“여기 박지은이 누구야?”
호중에게는 이게 중요했다. 만약 박지은이 여기에 없으면 그냥 갈 생각도 한 호중이다.
달밤의 체조도 한 두 번이지, 오늘 밤에만 8번이나 쌈질을 한 호중이다.
호중의 말에 여자 둘이 힐끗 한 여자애를 봤다. 술에 취한 듯 멍하니 앉아 있는 여자애였다. 호중은 그 순간 직감적으로 그 애가 바로 박지은일 것이라 생각했다.
“너, 박지은이야?”
호중이 술에 취해 멍한 애에게 물었다.
“아는 새끼야?”
“몰라요?”
“몰라? 그런데 저 새끼가 너 어떻게 알아?”
“그것도 몰라요.”
박지은은 확실히 술에 취해 있는 것 같았다. 혀가 꼬부라진 게 꼴불견이다. 역시 여자는 남자보다 술에 취하면 더 꼴 보기 싫다.
“그럼 확인됐고.”
호중은 씩 웃었다. 사실 호중은 은성의 명령에 의해 박지은이라는 여자애를 찾는 중이었다. 그래서 이런 우범 지역을 한없이 돌고 돌았다.
“넌 나서지 마라. 이 오라버니가 빡 돌면 물불을 안 가리는 성격이거든.”
“아주 지랄하네. 저 미친 새끼가.”
다시 그 말과 함께 여자애들이 덤벼들었다.
하지만 물론 은성의 첫 제자인 호중을 이길 수는 없었다. 호중 역시 은성에게 비술 경공과 비술 외공의 초급을 배웠기에 남달리 몸이 빨랐고, 그 빠른 몸은 여실히 이런 싸움에서 발휘가 됐다. 역시 싸움에는 몸부터 빨라야 한다.
퍽퍼퍽!
정말 모질게도 패는 호중이었다.
“앙!”
“아악!”
퍼퍽! 쾅쾅! 퍽퍽!
“아아악!”
정말 호중은 여자애라고 봐주는 법이 없었다. 그래도 여자라고 얼굴은 안 때렸다. 그렇게 딱 20초 만에 모든 상황이 종료됐다.
“차렷해! 이년들아.”
호중이 소리를 지르자 피를 질질 흘리던 년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며 바로 차렷했다.
“꿇어! 뒤지기 전에.”
호중이 소리를 질렀고 조금 전까지 기세등등했던 여자애가 입술을 꼭 깨물고 호중을 노려봤다.
호중이 소리를 질렀고 그 소리에 주눅이 든 여자애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손들어, 이년들아! 초등학교 실업계 나왔냐? 무릎 꿇으면 손드는 거 몰라?”
호중의 말에 여자애들이 일제히 손을 들었다.
그리고 호중은 한 손에 들고 있던 치마를 빼앗아서 휙 하니 소주병을 집어던지듯 5층 아래로 집어 던졌다.
“너희들 경고하는데, 저기 박지은이 한 번만 더 꼬드겨서 집 나가게 하면 너희들 다 뒤진다.”
“우리가 안 꼬셨거든, ……든요.”
여자애가 호중에게 반말을 했다가 호중이 째려보자 존댓말로 바꿨다.
“하여튼 박지은이 학교 안 나가면 너희들 책임. 집 나가도 너희들 책임! 지나가다가 차에 치여서 죽어도 다 너희들 책임이고, 번개 맞아서 죽어도 너희들 책임이야. 알았어?”
이건 순 억지다.
“어떻게 번개에 맞아 죽어도 우리 책임이에요?”
“이제부터는 너희들 책임이야! 그러니까 절대 어울리지 말라고.”
“저년이 온 거라고. 우린 원래 우리끼리 논다고.”
여자애 하나가 억울하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하여튼 간에 박지은이랑 이런 곳에서 노닥거리는 것들은 다 내 손에 육즙이 될 줄 알아.”
호중은 그렇게 설교를 하고 나이 많은 오빠처럼 자신의 손으로 머리를 한 대씩 때렸다.
“아이고 참! 누가 데리고 갈지……. 데리고 가는 놈들은 앞날이 불쌍타. 불쌍해!”
“그쪽은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역시 눈치를 보면서도 꼬박꼬박 할말 다 하는 여자 양아치였다.
호중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가 아직도 술에 살짝 취해 있는 박지은을 봤다.
“집에 가자. 오빠가 기다린다.”
“오빠? 무슨 오빠?”
역시 술에 취해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호중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술에 취한 박지은을 번쩍 들어 어깨에 올렸다.
“왜 이래? 놔!”
짝!
호중은 왼손으로 힘껏 엉덩이를 때렸다.
“조용히 있어라. 나도 이러기 싫다.”
“놓으라니까. 왜 쪽팔리게 둘러메고 지랄이야!
술에 취해도 쪽팔리는 것은 아는 모양이다.
짝!
“가만히 있어라. 이 오빠도 오늘 영 기분이 안 좋거든.”
“지랄하지 말고 어서 내려놓으라니까!”
짝! 짝!
“아파! 아프다고. 네 엉덩이야? 계속 때리게. 변태 새끼야 내려놔!”
호중은 오늘 별소리를 다 듣는구나 싶었다.
“그러니 가만히 있어라. 이챠!”
호중은 자세를 고쳐 잡고 아직도 무릎을 꿇고 있는 6명의 소녀를 노려봤다.
“술 처먹으려면 곱게 처먹어!”
호중의 말에는 가시가 있었다.
소주병 하나가 자신의 앞에 떨어진 그 화풀이를 지금 한 거였다.
“다시 경고한다. 이 애랑 100미터 이내에 있는 년들은 그게 우연이라도 뒤진다.”
호중이 살기를 뿜어냈다.
“…….”
“알았어?”
호중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예.”
역시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매에는 장사 없다.
호중은 그렇게 창권의 여동생인 박지은을 찾아서 은성 앞에 데려다 놨다.
술에 취한 박지은을 보고 창권은 놀라 기겁을 해 눈이 커졌다.
“지, 지은아!”
“어디서 찾았어?”
내 물음에 호중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어디서 찾았겠습니까? 저런 애들 노는 곳에서 찾았지.”
“그게 어딘데?”
“부도나서 공사가 중단된 아파트 공사장에서 찾았습니다.”
“수고했다.”
“아닙니다. 뭐 제가 하는 일이 다 이런 일이죠.”
호중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난 호중을 힐끗 봤다.
“불만 있나?”
“없죠. 있으면 또 수련한다고 죽도록 맞으려고요.”
호중의 말에 난 피식 웃었다.
“꽁한 새끼! 좋다. 너도 원 없이 한 번 때려봐라.”
“예?”
“진태하고 형성이 네가 가르쳐 봐라.”
내 말에 호중은 바로 표정이 밝아졌다. 이제 유일한 제자 신세를 벗어나는 거였다.
“정말이십니까?”
“물론이지. 너만큼은 하게 만들어야 한다.”
“물론이죠. 제가 아주 잘 수련시켜 놓겠습니다.”
“그래. 가 봐.”
내 말에 호중은 모처럼 스승에 대한 예절을 다 해서 묵례를 했다. 그리고 돌아서는 어깨가 무척이나 가볍게 보였다.
아마 호중은 한없이 이를 갈고 있을 거다. 그리고 진태와 형성의 앞날은 어둡기만 했다.
‘원 없이 풀겠군.’
난 호중이 할 일이 뭔지 알기에 진태와 형성이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난 놀란 얼굴의 창권을 봤다. 그리고 술에 취해 해롱해롱하는 박지은도 봤다. 창권은 술에 취한 자신의 동생을 보고 울먹였다.
역시 눈물이 많은 창권이다. 저렇게 감수성이 풍부하니 아름다운 건축을 할 수 있는 재목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