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64화
“지은아! 왜 술을 마셨어. 오빠가 잘못했다. 오빠가 잘못했어.”
“지랄을 해요.”
울먹이는 창권과 다르게 지은은 욕지거리를 했다. 하지만 지은의 눈에도 살짝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난 분명 지은의 눈물을 봤다.
‘완전 수렁 속에서 건진 내 친구의 동생이네.’
난 나도 모르게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이 모든 것이 평화로운 가정을 깬 그 상가 분양 사기꾼 놈들 때문일 거다. 난 그놈들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제 남은 것은 창권의 부모님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거다. 물론 세 할머니 식당 2호점이 될 거다.
이제 세 할머니 식당은 순수하게 맛으로 승부를 하는 식당이 됐다. 물론 천녀지초를 아예 넣지 않는 건 아니다. 예전에 200인분 가마솥에 0.5그램을 넣었다면, 지금은 400인분에 0.2그램 정도 넣는다. 그렇게 아주 미세한 양을 넣어도 효과는 여전했다.
하지만 영약이 무한한 것이 아니기에 쓰면 쓸수록 줄어들고 있었다.
‘최소한 가진 것에 반은 남겨 둔다.’
난 그렇게 다짐을 했다. 그리고 그 남겨진 반으로 종균을 배양할 거다. 성공 확률은 1퍼센트 정도다. 하지만 성공만 하면 세상이 바뀔 만큼 대박이 날 것이라 확신한다.
* * *
가화만사성.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되는 법이다. 창권의 집에도 마찬가지일 거다. 내가 그 지랄 같은 상가 분양 사기를 친 놈들을 응징하겠지만 창권의 집을 어떻게든 안정시키는 것도 중요했다. 가정이 편해야 공부도 되고 하는 일도 되는 법이다.
또 아무리 화목한 가정이라고 해도 경제적으로 궁핍해지면 싸움이 많아지는 법이다. 물론 창권의 집은 아버지가 가출을 한 상태이기에 싸울 일도 없었다. 비행 청소년인 창권의 여동생은 잡아다 놨다.
그럼 이제 먹고 살 수 있게 만들어 주면 된다. 그럼 창권은 내게 도움이 되는 건축가로 성장할 거다. 재창건설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처음에는 페이퍼 컴퍼니로 시작했지만 난 재창건설을 아파트 건설은 물론, 예술적이고 독창적인 건축까지 하는 회사로 키울 거다.
사실 또 건설 회사같이 남는 장사도 없을 거다.
그리고 이 모든 준비는 영약 배양에 실패했을 때를 대비하는 거다.
내가 계획한 사업은 총 3가지로 구분된다. 우선은 성공 확률은 희박하지만 영약 종균 배양에 의한 웰빙 식품 사업, 재창을 앞에 세우고 하는 건설 회사, 그리고 며칠 전에 만났던 이준성을 대표로 하는 연예 엔터테인먼트 사업.
이게 내가 부를 축적할 기본 핵심 사업인 거다. 물론 이준성은 아직 만나지도 않았다. 밥이 잘 되기 위해서는 뜸을 잘 들여야 한다.
오라고 홀랑 가면 값이 떨어지는 법이다. 천천히 느긋하게 뜸을 들이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그리고 요식업으로 세 할머니 식당을 전국적으로 확대해서 새로운 식당 사업도 할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돈 벌 일은 많고 많다.
그리고 지금은 창권의 가정부터 안정화를 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어떻게든 먹고 살게 만들어 줘야 한다.
‘어떻게 자연스럽게 세 할머니 식당 2호점을 맡기지?’
난 고민 아닌 고민을 해야 했다.
아무리 고민을 해도 답이 없다. 이럴 때는 그냥 정면 돌파가 최고다. 난 창권이 살고 있는 집으로 갔다.
원래 좋은 아파트에서 살던 창권이지만 지금은 반 지하 단칸방에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왜?”
창권이 궁금하다는 듯 내게 물었다.
당연히 궁금할 거다.
“우리 식당이 꽤 잘 되거든.”
“뭐? 그런데 왜?”
창권은 여전히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먹고 살 게 많으면 나눠서 먹고 사는 거지.”
“뭐? 그건 무슨 말이야?”
창권은 되물었지만 난 그저 웃을 뿐이다. 저 어린 녀석한테 뭐라고 하겠나.
‘그나저나 뜨악새가 잘하고 있으려나?’
난 김재창이 섭외한 뜨악새라는 흥신소 사장을 떠올렸다. 날 이렇게 분주하게 움직이게 만든 놈들을 그냥 두지는 않을 거다. 할 일도 많아 죽겠는데 일을 더 만들어 주는 놈들은 필히 응징을 해야 한다.
‘뜨악새 사장을 내 하수인으로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사람 찾는 일에는 전설적인 존재라고 재창에게 보고를 받았다. 그럼 사람 감시하는 일에도 탁월한 소질이 있을 거다.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탁월하니 사람을 잘 찾을 거다. 그럼 뜨악새 사장에게 최 회장과 최상혁을 감시하도록 시키면 되는 거다.
문제는 뜨악새 사장이 내 밑으로 오느냐는 거다. 그리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냐는 거다.
난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 봤다.
그것도 도와준 사람에게.
‘그 썅년은 뭐하고 있을까?’
난 박지은까지 떠올렸다. 반드시 절망으로 떨어트려야 할 년이다.
나라는 존재를 거의 잊었을 때, 그리고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 그년을 절망으로 떨어트릴 거다.
‘허영심 없는 여자는 여자도 아니다.’
난 많은 생각을 하며 걸었다.
* * *
“엄마, 일어나 봐요.”
창권이 자신의 엄마를 불렀지만 창권의 어머니는 그대로 몸을 돌려 누워 있었을 뿐이다. 난 쭉 창권이 사는 단칸방을 둘러봤다.
우선 반 지하다. 벽지에는 여기저기 곰팡이가 피어 있어 냄새가 났다. 좁고 허름한 단칸방은 3명이 살기에는 턱없이 작아 보였다.
아직 정리하지 못한 짐들 역시 여기저기 박스째 방치되어 있다. 물론 정리할 공간도 없다. 그냥 창권의 어머니는 지금의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거다.
‘꼴통은 없네.’
창권의 여동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뭐 이런 좁은 방에 있을 턱이 없다. 하지만 호중이 감시를 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큰일은 없을 거다.
난 다시 창권의 어머니를 봤다. 그녀의 돌아누운 등은 무척이나 좁고 힘들어 보였다.
마음의 상처가 큰 모양이다.
아들하고 딸 시집, 장가 잘 보내려고 아끼고 모은 돈, 그리고 대출까지 받아서 장만한 돈을 한 순간에 단 한 푼도 써 보지 못하고 날려 버렸으니 화병이 날 것이다.
그래서 사기를 치는 놈들은, 특히 없는 사람 사기 쳐서 자기 순대 배 불리는 놈은 평생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한다. 그것도 아주 모질게.
“엄마! 내가 말했죠. 내 친구 은성이가 할 말이 있대요.”
창권이 다시 자신의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내 친구 은성이. 엄마가 잘 지내라고 했잖아요. 내 친구 은성이가 왔다고요.”
창권은 길게 한숨까지 쉬었다. 아마 내가 처음 친구를 하자고 했을 때 집에 와서 자신의 엄마에게 무척이나 자랑을 한 모양이다. 창권의 어머니도 창권의 마지막 말에 살짝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창권의 어머니는 미동이 없고, 창권이는 천천히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가 요즘 더 힘드신가 봐. 다음에 오자.”
난 창권을 잠시 봤다. 저 울보의 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이제는 더 이상 울게 만들지 않고 싶다. 내 힘이 닿는 만큼 그러고 싶다.
이제 내가 나서야 한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다.
“어머니! 저, 창권이 친구 은성입니다.”
내가 말을 해도 창권의 어머니는 돌아보지 않았다. 역시 마음의 상처가 큰 것 같다.
“내, 내가 몸이 안 좋아. 다음에 오렴. 으음.”
드디어 창권의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여전히 차가운 벽을 보며 누워 계셨다.
“일어나셔야죠. 힘드셔도 일어나시고, 억울해서 가슴이 무너져도 일어나셔야죠. 창권이랑 지은이 생각하셔서 힘을 내셔야죠.”
어쩜 어린 내가 할 소리는 아닐 거다. 하지만 내 말에 창권의 어머니는 움찔했다.
그리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마나 누워만 계셨는지 산 사람이 산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창백한 것이 마치 모든 희망을 잃은 것 같았다.
“그래야 하는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드디어 입을 여셨다.
창피하신 것일지도 모른다. 아들의 친구가 이렇게 와서 충고 비슷한 것을 하니 어른의 입장에서 창피했을 거다.
“힘드시죠? 모든 거 다 잃으셔서 아무 것도 안 남았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내 말에 창권의 어머니는 아무 말도 못 하셨다.
“어머니 그래도…….”
난 창권을 봤다.
“그래도 창권이하고 지은이가 있잖아요.”
“좋은 대학 입학했는데 대학 등록금도 못 만들어 주고…….”
창권의 어머니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흘렀다.
중년의 눈물.
아들, 딸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어머니의 눈물은 서럽고, 그리고 뜨거웠다.
“은, 은성이가 대학 등록금은 대신 내줬어. 그러니까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창권의 말에 창권의 어머니는 놀라 눈이 커졌다.
“친구가 등록금을 내줬다고?”
“응.”
창권은 짧게 대답하며 날 보며 웃었다.
“고맙네. 정말 고맙네. 흑흑흑!”
다시 우신다. 저게 부모일 거다. 난 부모의 정을 모르고 자랐지만 저게 부모의 마음이라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이제 일어나세요. 제가 도울게요.”
“으음.”
긴 한숨과 함께 창권의 어머니가 날 빤히 봤다. 이제 내가 속 시원하게 말을 하면 된다.
“저희 집 가게가 대박 가게에요. 2호점을 오픈을 하려고 하는데 할머니가 어머니 모시고 오시래요.”
“날?”
“예. 이왕이면 믿고 맡길 수 있는 분이여야 하신데요.”
내가 말하는 할머니는 마산댁 할머니다. 이미 마산댁 할머니한테는 다 말을 해 놓은 상태다. 그때 마산댁 할머니는 날 보며 그저 인상을 찡그릴 뿐이었다.
“애기 사장!”
“예. 할머니.”
“애기 사장은 작은 돈 모아서 부자 되기는 글렀다.”
“예?”
“그렇게 마음이 따뜻해서 어떻게 돈을 모아. 텄다. 텄어. 그렇게 주변 사람 다 돌봐서 언제 돈 모아서 부자 되나?”
말씀은 그렇게 하셨어도 눈빛은 따뜻하셨다.
“부탁드립니다.”
“졸지에 내가 우리 애기 사장 할미가 되네.”
“고맙습니다.”
“종업원은 사장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거지.”
마산댁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작은 돈 모아서 부자 되는 건 텄으니까. 큰돈 만들어서 재벌 돼라.”
“예. 하하하!”
“그런데 음식 솜씨는 좀 있데?”
“도시락이 아주 끝내 줬어요.”
“학교 다닐 때 친구 도시락 좀 빼앗아서 먹었고만. 하하하!”
“전 주는 거 먹었어요.”
“하여튼 오라고 해. 가게야 애기 사장이 오픈해 주는 거지만 음식 맛이야 내가 전수해 줘야지.”
“예. 할머니.”
그렇게 마산댁 할머니와 이야기는 끝낸 상태였다.
***
“내가 무슨 장사를 해 봤다고.”
“이제 하시면 되죠.”
“그래도 손해만 끼치면 어쩌려고.”
“절대 그런 일 없을 거예요. 저희 집 대박 가게에요. 오셔서 음식 비법 전수받으시고 2호점 오픈하시면 되요.”
“그래도 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보다시피 우린 가게 낼 돈도 없어.”
“가게는 저희 할머니가 내주실 거예요. 할머니가 우선은 7 대 3으로 하신데요.”
“7 대 3?”
“예. 할머니가 7이시고요. 어머니께서 3에 해당하는 이익을 가져가게 하신데요. 그리고 점차 장사가 잘된다면 5대 5까지 하신데요.”
“정말 그래도 되나?”
창권의 어머니는 낯선 기적에 믿어지지 않는 눈빛이다. 살면서 가끔은, 아니 한 번쯤은 이런 낯선 기적을 만나는 법일 거다.
이제 창권의 어머니가 용기를 낼 때다.
“지 아비만 돌아와도 좋으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