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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67화 (67/210)

흑막의 신! 67화

“왜 그러니?”

“미칠 것 같아서. 미쳐 버릴 것 같아서. 아아악! 가만히 있으면 미친다고.”

박지은은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호중은 박지은이 살짝 이해가 됐다. 자신도 그랬다. 뭔가 부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미칠 것 같은 때가 있었다.

어쩌면 지금 박지은이 그럴 때일 거다. 할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을 이제는 하지 못했다. 사실 박지은에게 그건 중요치 않았다. 온 집안이 망가진 것이 미칠 것 같았고, 산송장처럼 누워 버린 엄마를 보면 더욱 미칠 것 같았다.

“미친다고 미쳐지니?”

호중이 담담히 박지은에게 물었다. 그러면서 호중은 예전 자신을 떠올렸다. 자신도 미치고 싶어 미친 짓을 했지만 끝내 미치지 못했던 때를 떠올렸다.

“뭐?”

“미치고 싶다고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못 미친다고.”

“개 같은 소리 집어치워.”

“절대 미치고 싶어서 미치는 거 아니더라. 그냥 지랄 발광만 하는 거지. 절대 미치고 싶다고 못 미쳐.”

호중의 담담한 말에 박지은은 호중을 빤히 봤다.

“너 내가 또 사고 치면 또 나타날 거지.”

“호중이다. 너가 아니고.”

“하여튼.”

“아마도 또 나타나겠지.”

이제 호중은 은성의 명령에 의해 박지은을 감시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났다. 이제는 괜히 박지은을 지켜 주고 싶어졌다. 예전의 자신처럼 돌이킬 수 없는 전과자라는 과거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사고 안 치면?”

“아마도 안 나타나겠지.”

“그럼 계속 사고 쳐야겠네.”

“뭐?”

호중은 순간 황당했다.

“자꾸 보니 정 들어서. 나 배고파! 밥 먹자. 돈도 벌었잖아.”

박지은이 호중을 보며 씩 웃었다.

‘그럼 내가 오늘 오랑캐가 된 거지. 이거 완전 브레인이네.’

호중은 박지은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나 따라다니느라 힘들었을 건데 뭐 사줄까?”

“비싼 거!”

호중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벼룩의 간을 빼먹을 오빠가 여기 또 있네. 호호호! 가자! 내가 오늘 한 턱 쏜다.”

박지은은 호중의 팔짱을 끼었다.

“왜 이래?”

“이래야 내가 도망을 못 치지.”

“역시 넌 타고난 꼴통이다.”

“이제 아셨어?”

* * *

난 재창건설 사장실에 앉아 있었다. 물론 김재창의 자리다. 책상 위에 명패는 사장 김재창이라고 적혀 있지만 내가 앉아 있다.

“뭐? 러브호텔?”

-그렇습니다.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아이인 것 같습니다.

“환경이 갑자기 변해서 그런 것 같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친동생이라고 생각하고 잘 돌봐.”

-예. 그런데 정말 머리가 좋은 것 같습니다.

“머리가 좋아?”

-그렇습니다. 보스!

“왜?”

-혹시 이이제이라는 말 아십니까?

“알지. 오랑캐로 오랑캐를 막는다는 뜻인데 왜?”

-아! 아시는군요?

“그런데 왜?”

-제가 오랑캐가 되었습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그런 게 있습니다. 하여튼 별일은 없었습니다.

“잘해라!”

-예. 사부!

어느 순간부터 호중은 내게 반말을 하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진태와 형성을 수련시키라고 지시한 후부터였다.

‘사형 대접을 받고 싶은 모양이군.’

때지고 보면 호중이 내 수제자고 나머지 진태와 형성은 서열로 따지면 바로 호중의 아래가 되는 거였다.

그래서 진태와 형성에게 대접을 받으려고 저러는 걸 거다.

“그런데 진태랑 형성이 수련은 어떻게 되어 가지?”

-아직 실전에 투입되기는 조금 무리입니다.

“뭐하고 있는데?”

-지금 굶기고 있습니다.

“굶겨?”

-예. 그 덩치로 절대 비술 수련 안 된다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어떻게 굶기냐고 묻는 거지.”

-제 방식대로 하고 있습니다.

“어떤 방식인데?”

-땅을 파서 묻었습니다.

순간 은성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장 좋은 방법일 겁니다.

호중은 그렇게 말했다.

“알았다. 나중에 보도록 하지.”

-예. 사부.

***

호중은 진태와 형성을 떠올리며 씩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사실 지금 진태와 형성이 있는 곳에 와 있는 호중이다.

호중의 손에는 작은 봉지에 군고구마 2개가 들려져 있었다.

“배고프냐? 고구마 있는데 먹을래?”

호중의 말에 진태와 형성은 눈만 껌벅였다. 그런데 그 시선들의 각도가 아주 아래에 있었다. 사실 호중은 포클레인으로 구덩이를 아주 깊게 팠다.

이곳은 몇 년 전에 폐교가 된 학교 뒷산이고 누구 하나 찾는 사람이 없는 곳이다.

아마 6미터는 땅을 판 것 같다. 그리고 그 안에 진태와 형성을 가뒀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을 빼기 전까지는 못 나온다고 경고를 했다.

정말 무섭고 어처구니없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 효과는 확실했다. 살을 빼지 않고서는 절대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을 진태와 형성은 직감했다. 물론 호중 역시 어떤 핑계를 말해도 꺼내 줄 생각은 없었다.

지금은 1월. 뼈까지 시려 오는 계절이다. 춥고 배고프면 살은 쏙쏙 빠지는 법이다. 그리고 해가 지고 나면 더 추워지니 얼어 죽기 싫으면 움직여야 했고, 그럼 살이 쏙쏙 빠지는 법이다. 그래도 정말 얼어 죽지는 말라고 핫팩 하나씩은 던져 주는 호중이었다. 물론 그게 전부였다. 이건 정말 극한의 살 빼기일 거다.

느슨하게 마음을 먹으면 얼어 죽는다. 밤에 잠이 들어도 얼어 죽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니 죽기 살기로 움직여야 하고, 죽기 살기로 살을 빼야 한다. 살을 빼야 호중이 은성에게 배운 비술 경공을 진태와 형성에게 가르쳐 줄 수가 있다.

하지만 구덩이 속에 갇힌 진태와 형성은 욕이 나올 판이었다. 이건 어쩜 철저한 감금일 거다. 하지만 살만 빼면 보장된 미래가 있다는 것을 진태와 형성은 알고 있었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이 정도는 경험해 봐야 한다는 나이 어린 사형의 말에 진태와 형성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렇게 가둔 지가 벌써 5일째다.

곰 같은 진태는 제법 많이 홀쭉해졌다. 살은 빼기 싫어도 알아서 빠졌다.

“예. 배고픕니다. 사형.”

진태는 호중에게 사형이라고 불렀다. 나이는 분명 진태가 2살이나 많았다. 물론 형성도 마찬가지다.

사형!

참 삼류 중국 영화도 아니고 은성은 호중에게 사부라는 것을 강조했고, 호중 역시 진태와 형성에게 사형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역시 그 스승에 그 제자다.

“사형! 먹을 것 좀 주십시오.”

형성 역시 호중에게 애원을 했다.

“고구마 두 개면 되겠냐?”

“주시면 감사히 먹겠습니다.”

진태의 말에 호중은 주먹 정도 크기의 고구마 두 개를 파 놓은 6미터 정도 되는 구덩이에 던져 줬다. 마치 큰 인심이라도 쓰는 표정과 함께.

“이거 먹고 살 어서어서 빼라.”

“예. 죽기 싫어서도 빼겠습니다. 사형!”

“혹시 노파심에서 말하는 건데 올라오면 죽는다. 저번에 맞은 게 덜 아팠으면 올라와도 된다.”

사실 지태와 형성이 이 구덩이에 들어오기 전에 죽도록 맞았다. 싸워서 이기면 사형 시켜 준다는 말에 나이가 더 많은 진태와 형성이 한꺼번에 덤볐지만 보기 좋게 죽을 만큼 맞고 이 구덩이에 들어왔다.

“그래. 죽기 싫으면 빼라. 어디 죽을 각오하지 않고 되는 일이 있더냐?”

어린놈의 입에서 참 바른 말만 나온다.

“예.”

“사부님이 너희들 돼지에서 사람 만들어 놓으라고 하셨다.”

사부는 물론 은성일 거다. 호중은 모든 핑계를 은성에게 돌렸다. 이래서 뒷담화가 있는 법이다. 이것 역시 아마 은연중에 은성에게 배운 걸 거다.

“사람이 되겠습니다.”

“오늘은 물 안 주십니까?”

형성의 물음에 호중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깜빡했다. 내일 보자.”

호중의 말에 진태와 형성은 절망했다. 내일 보자는 말은 24시간 후를 말한다. 그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목이 타들어 갈 거고, 그것만큼 큰 고통도 없을 거다. 그리고 지금 자신들의 입에 넣고 있는 것은 고구마다.

정말 물기 하나 없는 거고 먹고 나면 목이 메여올 게 분명했다.

사실 진태와 형성은 물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호중의 말에 의도된 행동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어떻게든 괴롭히겠다는 마음.

군대를 다녀오지는 않았지만 군대식 갈굼을 당하는 생각마저 드는 둘이다.

“사, 사형!”

형성이 호중을 불렀다.

“왜?”

“내, 내일은 꼭 제발 부탁드립니다.”

“뭘?”

“내일은 꼭 잊어 먹지 마시고 생수 좀 부탁드립니다. 저희 정말 물 먹고 싶습니다.”

정말 군기가 바짝 든 진태와 형성이다. 물론 그런 군기가 잡히기 전까지 진태와 형성은 호중에게 죽을 만큼 맞았다.

호중은 은성처럼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진태와 형성에게 여실히 보여 줬다. 그리고 힘과 능력으로 진태와 형성을 굴복시켰다.

그리고 이렇게 5미터 구덩이에 가둔 거다.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고, 나왔다가는 맞아 죽을 것 같아서 나오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내일 호중이 생수를 잊어 먹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진태와 형성은 살을 뺐다. 아마 보름이 지나면 살이 쪽 빠지고 영양실조도 걸릴 게 분명하다.

그래도 결국 살은 빼는 거고, 그렇게 살을 빼고 나면 경공 비술을 익힐 수 있는 거다.

물론 호중도 은성에게 비슷하게 당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호중은 가로 1미터 세로 2미터가 되는 관에 눕고 은성이 밖에서 못을 박았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였다.

호중은 힐끗 진태와 형성을 봤다.

진태와 형성은 던져 준 고구마가 금덩이라도 되는 듯 조심스럽게 잡고 조금씩 먹고 있었다.

‘그래도 너희들은 몸이라도 자유롭게 움직이는 거야.’

호중은 인상을 찡그렸다.

‘난 몸도 꼼짝하지 못했어.’

그때만 생각하며 아직도 치가 떨리는 호중이었다. 청출어람이라고 했던가. 호중은 은성보다 더 살벌한 방법을 택한 거였다. 물론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차이는 있을 거다.

“둘이 같이 있으니까 무섭지는 않지?”

“안 무섭습니다.”

이곳은 폐교가 보이는 뒷산 공터다. 사실 진태와 형성은 조금 무섭기는 했다.

“깡도 좀 키우는 거다. 격투에서 깡만큼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법이 없다. 저놈 죽이겠다는 마음으로, 나도 죽겠다는 마음으로 덤비는 거다. 그럼 자신보다 강한 적도 꺾는 법이다. 결사항쟁 이 말은 사부님께서 자력갱생만큼 좋아하시는 말씀이시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진태와 형성은 원래 은성의 친구였다. 그런데 이제는 하늘같은 사부가 된 거다. 그리고 은성도 그것을 호중에게 은근히 강조했다.

“그런데 자꾸 밤에 이상한 것들이 웁니다.”

“이상한 것들?”

“예. 늑대 울음소리 비슷한 게 들립니다.”

진태가 호중을 보며 말했다.

“요즘 늑대가 어디에 있냐?”

“하지만 이상한 게 자꾸 웁니다. 조금 있으면 울 겁니다.”

진태의 말에 호중은 깜빡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참! 이 근처에 도사견 사육장 있더라. 육견으로 쓰는 것들이라 아주 크기가 엄청나더라.”

“도, 도사견이라고요?”

“응. 송아지만 한 게 이빨이 아휴, 물리면 작살나겠더라. 하여튼 내일 보자.”

호중의 말에 진태와 형성은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리고 호중은 돌아서서 산을 유유히 내려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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