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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69화 (69/210)

흑막의 신! 69화

무도가로서 한 길을 걸어간 최배달은 전설 같은 일화를 남긴 최강의 파이터였지만 대중의 가슴을 흔들어 놓기에 부족함이 없는 훌륭한 언변가이기도 했다. 나는 그를 기억한다. 그리고 그가 한 말 역시 기억한다. 비술의 전승자로 스스로 모신 스승이 없었기에 최배달을 스승이라 생각을 했다.

그 능력에 따른 소양과 수양을 찾기에는 내가 부족했기에 나는 정신적 스승을 찾았다.

그리고 찾은 분이 바로 최배달이다.

내 정신적 스승인 그가 한 말 중에 나를 채찍질하고 돌아보게 하는 단 한마디가 있다. 그것을 뜨악새에게 해 줄 거다.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고 힘없는 정의는 무능이다. 그럼 당신의 재능은 무엇입니까?”

내 뜬금없는 질문에 뜨악새의 눈빛이 떨렸다.

“뭐라고 했소?”

“나는 힘이 있습니다. 항상 내 힘이 폭력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럼 당신은 무엇이 되기를 바랍니까? 이것만 답하고 가시면 됩니다.”

난 호중을 봤다.

“충분히 섭섭지 않게 후사해 드려라.”

“예. 사부!”

감동을 받으라고 말한 사람은 가만히 날 보고 있는데 뒤에 있던 호중이 감동을 받은 모양이다. 한 번도 자기 입으로 스스로 사부라고 하지 않던 호중이 내게 사부라 말했다.

“내가 뭘 하면 됩니까?”

“이유를 찾으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럼요?”

“이제 이유를 찾아보렵니다.”

이제 설득 아닌 설득이 되었다. 난 그렇게 다시 사람을 얻었다.

“무엇을 해야 할 것 같습니까?”

내 질문에 뜨악새는 피식 웃었다.

“결자해지니 제가 떨거지들을 정리하죠.”

“그 일에 동참해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전설의 뜨악새가 없는 상태에서 사기를 치고 사칭을 했던 놈들을 모두 응징할 참이다. 그리고 내 돈 500만 원을 먹고 도망간 놈도 반드시 응징을 할 거다.

“얼마나 남았지?”

난 호중에게 물었다.

“10분 남았습니다.”

뜨악새가 나간 지 딱 2시간 하고도 50분이 흘렀다.

“역시 무리인가?”

“아직 10분이 남았습니다.”

“그렇지. 마지막까지 끝나기 전까지 끝난 게 아니지.”

인생을 돌려 본 사람만이 안다. 끝이라고 말하기 전에 절대 끝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뜨악새가 남자 하나를 끌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이놈입니까?”

나 역시 김재창이 말했기에 뜨악새라고 알고 있었지 얼굴은 몰랐다. 난 김재창을 봤다.

“맞습니까?”

“예. 저놈입니다. 어떻게 전화번호 하나랑 인상착의 정도로 찾을 수 있는 거죠?”

김제창이 도리어 뜨악새에게 물었다.

“전설은 그냥 전설이 아닙니다.”

“그, 그런가요?”

김재창과 뜨악새가 대화를 나눌 동안 뜨악새에게 잡혀 온 남자는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왜, 왜 이러십니까?”

역시 구린 놈이 먼저 말을 꺼내는 법이다.

“몰라서 묻나?”

“모, 모릅니다.”

“전화는 왜 안 받았지?”

“전화가 고장이 났습니다. 그래서 못 받은 겁니다.”

남자의 말에 난 피식 웃을 뿐이다.

저런 거짓말이 통할 거라고 생각을 하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선 원금부터 돌려줘.”

“원, 원금이라니요?”

“착수금 500만 원.”

난 남자를 노려봤다. 살기를 담긴 눈빛에 쫄지 않을 남자는 없을 거다.

“드,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작권료 지급해.”

“예? 그,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전설의 뜨악새를 사칭했으니 다른 것은 몰라도 돈을 내야지.”

난 진짜 뜨악새를 봤다.

“하, 하지만 누가 뜨악새라는 겁니까?”

남자의 질문에 난 힐끗 뜨악새를 봤다. 뜨악새의 눈빛은 아직 밝히지 말라는 눈빛이었다.

“그야 당연히 널 3시간 만에 잡은 나지.”

“잡, 잡은 건 저 남자이지 않습니까?”

“내가 보낸 거야. 줄 거야? 말 거야?”

“얼, 얼마입니까?”

“따블!”

“예?”

남자는 눈이 커졌다. 착수금으로 난 500을 말했다. 하지만 남자는 500만 원의 따블인 천을 생각한 모양이다. 이래서 사람은 듣는 것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는 법이다.

“못 주겠나?”

“지, 지금 당장 없습니다.”

“그럼 언제 줄 거지?”

“내일 바로 드리겠습니다.”

역시 살기를 뿜어내는 눈빛에 주눅이 든 것이 분명했다.

“좋아. 그리고 경고하는데, 실력이 없으면 함부로 남을 사칭하지 마. 사칭도 어느 정도 실력이 있어야 하는 거야.”

“알, 알겠습니다.”

난 호중을 봤다.

“정중히 보내 드려.”

호중은 내 말뜻을 정확히 알 거다. 호중은 남자의 뒷덜미를 끌고 나갔다. 우선 500만 원을 회수하고 바로 매타작을 시작할 거다.

입으로 대가리로 사기를 치는 놈은 몸이 고생해야 한다. 손발이 고생을 하면 머리가 안 돌아가니 머리를 조지는 것이 아니라 머리가 안 돌아가게 손발을 조지면 되는 거다.

난 뜨악새를 봤다.

“역시 대단하군요. 어떻게 찾았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난 이미 운전기사들을 이용했을 거라는 판단을 했다. 그 판단이 맞는다면 나 역시 훗날의 뜨악새가 될 소질이 있을 거다.

“제 영업 비밀을 알려 달리시는군요.”

뜨악새는 씩 웃었다.

“택시 아닙니까? 그리고 택시 안에 설치된 블랙박스!”

내 말에 뜨악새는 놀라 눈이 커졌다.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대한민국에 택시가 한 3만 대 정도 있다는 소리를 얼핏 들었습니다. 모두 다 아시는 분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각각의 지역별 지부장쯤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반쯤은 적중하셨습니다.”

“그럼 반은 뭐죠?”

“그건 제 영업 비밀입니다. 이제 뭘 하면 되죠?”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하셔야 할 일은 영등포 상가 분양 사기단을 찾는 겁니다. 그리고 그놈들을 완벽하게 사기를 칠 꾼들 역시 섭외해 오는 것입니다.”

“사기는 사기로 친다?”

뜨악새는 날 보며 씩 웃었다.

“물론이죠. 그게 제 방식입니다.”

“알겠습니다. 일주일 정도 걸릴 겁니다.”

뜨악새 역시 일주일을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제 드디어 행동 개시가 되는 거다. 그놈들을 잡고 난 내가 구상했던 사업을 확장시킬 거다. 그리고 한 발 더 복수를 향해 달려갈 거다.

* * *

난 뜨악새에게 상가 분양 사기를 친 놈들을 찾으라고 지시를 하고 호중과 함께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진태와 형성을 보기 위해 나섰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곳은 경기도 파주에 있는 폐교 뒷산.

참 멀리도 데려다 놓았다는 생각에 난 살짝 짜증이 났다.

“그냥 옆방에 있는 나무 상자에 집어넣으면 이렇게 번거롭지 않고 좋지 않나?”

“나무 상자요? 그게 나무 상자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십니까?”

호중은 인상을 구겼다.

“아닌가?”

“그건 죽어서나 들어가는 관이었습니다. 관!”

호중은 그때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죽지 않았는데 관에 들어가야 하는 느낌, 그리고 관에 들어가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정말 땅에라도 묻을 것 같은 못질.

탕탕!

은성이 못질을 했을 때 소름이 돋은 것을 생각하면 자신이 왜 은성과 같이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죽어야 다시 태어나지.”

“그건 사부님 생각이시고요. 사부께서는 관에 들어가 보셨어요? 안 들어가 보셨으면 말을 마세요.”

“난 관 같은 것도 없었어.”

난 옛 기억이 떠올라 치를 떨었다.

“예?”

“진한 흙냄새가 어떤 줄 알아?”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부님!”

호중은 내 말에 놀라 눈이 커졌다.

“촌스럽게 사부는 무슨.”

난 피식 웃었다. 이제 드디어 호중이 날 사부로 받아들인 거다.

“그런 게 있다.”

내가 겪은 극한의 공포를 말해 줄 필요는 없다.

“하여튼 전 그때만 생각하면 치가 떨립니다. 전 제 사제들에게 저처럼 똑같은 공포를 주기 싫습니다.”

누가 들으면 호중이 참 사제를 위해 주는 것처럼 들릴 거다.

“6미터나 땅을 파서 집어넣은 건 좋은 기억이고?”

정말 어이가 없다.

산 채로 생매장을 당했던 나, 그리고 산 채로 관에 못질을 해서 가둬진 호중, 그리고 땅을 파서 집어던진 진태와 호중. 어쩌면 우리들의 삶 자체가 죽음과 관련된 것으로 연결되었는지도 모른다.

죽음에서 회생한 사람들, 훗날 사람들은 우리를 테러리스트라고 쓰고 영웅이라 읽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선 힘을 키우고 개인적인 복수를 마무리해야 한다.

내가 생각에 빠져 있는데 호중이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진한 흙냄새가 떠올라서.”

“뭔가 있군요.”

“있지. 하여튼 너도 나만큼 모질다.”

내 말에 호중은 피식 웃었다.

“그래도 최소한 몸은 움직이고 별도 달도 봅니다.”

“그 대신 한없이 춥지. 이 겨울에 산에 구덩이를 파서 넣는 놈은 너뿐일 거다.”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사부님의 유일한 제자라서 그런가 봅니다.”

“진태 녀석, 잘 견디고 있으려나?”

난 사실 조금은 걱정이 됐다.

진태는 거구다. 그런데 하루에 감자와 고구마 하나씩, 그리고 생수 한 통으로 허기를 견딘다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진태처럼 거구가 배가 고프면 이성을 잃게 된다.

“오늘이 6일째인데 그럭저럭 잘 견딥니다. 역시 매에는 장사 없습니다.”

호중의 말에 난 호중을 째려봤다.

“아예 묵사발을 내서 밀어 넣은 거야?”

“예. 사부님처럼.”

역시 호중의 말에 뼈가 있다. 그때 휘리릭 뭔가 빠른 게 어두운 숲 옆으로 지나갔다.

“뭐지?”

난 어두운 물체가 사라진 곳을 집중했다.

“뭐 말씀이십니까?”

“저기 빠르게 뭔가 지나갔다.”

“야생동물이겠죠. 들고양이나 유기견 같은 걸 겁니다.”

“그런가? 조금 덩치가 컸는데…….”

난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 * *

쾅! 쾅!

컹컹! 그르윽 컹컹! 왈왈!

철망 안에 갇힌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 댔다. 그리고 철망을 수리하는 남자들의 손에는 묵직한 쇠몽둥이와 망치가 들려 있었다.

이곳은 개들을 식용으로 키우는 견사였다. 물론 철망 안에 갇힌 개들은 모두 대형 견종 중에서도 근수가 많이 나가는 도사견들이 대부분이었다.

보통 보신탕집에 쓰이는 식용 개들은 도사견이 주류를 이룬다. 먹이는 것에 비해 성장 속도가 다른 개들에 비해 월등하기 때문이다.

사실 도사견을 애완견으로 키우는 사람을 별로 없을 거다. 도사견은 거의 대부분 식용견이나 투견으로 키워진다.

이곳 역시 마찬가지였다.

멍청하게 살만 찐 놈들은 작은 철망에 몇 마리씩 집어넣어 사육됐다. 사육이라기보다는 감금되었다는 게 맞을 거다.

여기저기 개똥과 털이 난무했고, 그것들 때문에 악취가 진동을 했다. 그리고 조금 더 덩치가 크고 날랜 놈들은 다른 쪽 견사에서 투견으로 길러졌다.

물론 투견으로 길러진다고 해서 식용으로 길러지는 놈들보다 환경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독기를 품게 하기 위해 모진 매질이 이어졌고, 투기를 높이기 위해서 굶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런 견사에 있는 모든 종류의 개들은 불안할 거다. 이 견사는 총 3개의 사육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식용견으로 키워지는 도사견 견사와 투견용 도사견 견사, 그리고 애완용으로 팔기 위해 무한 교배를 하는 애원용 견사로 구분되었다.

물론 애완용 견사라고 해서 청결하거나 안락해 보이지는 않았다. 작은 철망에 갇힌 모견들 옆에 더럽게 방치된 새끼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물론 보살핌 같은 것은 없다. 눈이 떠지고 젖을 며칠 먹이고 나면 바로 온라인 애견 샵으로 팔리는 거다.

한마디로 묻지 마 판매!

애완견의 종류를 불문하고 두 당 3만 원에 팔려 나가는 새끼들이다. 그렇게 관리되지 않은 새끼들을 인터넷 애견 상점들은 가정에서 태어난 개라고 거짓말을 해서 10배가 넘는 돈을 받고 파는 거다.

그러니 어미젖을 얼마 먹지 못하고 더러운 환경에서 태어난 새끼들은 얼마 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견사도 그런 종류의 견사인 거다.

컹컹! 크르럭! 낑낑!

개들은 저마다 짖고 낑낑거렸다.

“시끄러 이놈들아!”

쾅쾅!

철망을 수리하던 남자가 인상을 찡그리며 다시 철망을 힘껏 쇠몽둥이로 후려쳤다. 남자에게 개는 그냥 돈이 되는 물건에 불과한 것 같다. 애정 따위는 애초에도 없을 거다.

오늘도 모란시장에는 개들이 도살을 당하고 있다. 또 그 도살된 개들의 피를 핥는 유기견들이 돌아다닌다. 참담한 현실인 거다.

컹컹! 왈왈! 컹컹!

사람의 위협적인 행동에 개들 역시 날카롭고 거대한 이빨을 보이며 짖었다. 입에선 침을 질질 흘리며 눈에는 살기가 서린다.

철망 안에 갇혀 있는 개들은 역시 도사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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