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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71화 (71/210)

흑막의 신! 71화

“기어 올라와.”

“그래도 돼? 은성아!”

진태가 나를 은성이라고 부르자 호중이 진태를 노려봤다.

“뭐라고?”

“잘, 잘못했습니다. 사형!”

이 순간 난 서열 관계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진태와 형성, 그리고 호중까지 친구다. 하지만 이 험한 세상에는 친구 이상의 것도 필요한 법이다.

“진태야!”

“응……. 아니, 예.”

진태는 호중의 눈치를 보며 내게 존댓말을 했다.

“거기 안에 있을 때까지가 우린 친구다.”

“그럼?”

진태가 날 봤다.

“그 구덩이에서 나오면 우린 친구이면서도 사제의 관계이고 명령적 관계가 된다.”

내 말에 진태가 약간 심각해졌다.

이미 진태 역시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니 조금은 당황스러워진 거다.

“네가 결정해라. 네가 친구로 남겠다면 난 너를 도와줄 거다.”

“친구로 남지 않고 널 따르면?”

진태는 호중이 노려보는 상태에서도 내게 반말을 했다. 이 구덩이 안에서는 여전히 내가 친구라고 했으니 반말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한 모양이다.

“날 따르면 너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 줄게.”

내 말에 진태가 날 뚫어지게 봤다. 그리고 무슨 결심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세상, 참 멋진 세상이어야 한다.”

“물론이지.”

“좋습니다. 따르죠.”

진태가 짧게 묵례를 했다. 그리고 형성도 마찬가지로 묵례를 했다.

“올라와라!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내 명령에 진태와 호중은 맨손으로 구덩이를 기어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난 진태의 손을 잡아 줬다.

“내게 와 줘서 고맙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진태가 달라졌다. 껄렁껄렁한 양아치 일진은 이제 없었다. 역시 극한의 순간까지 몰려 본 경험이 그를 변하게 한 거다. 물론 호중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내 핸드폰이 울렸고 난 핸드폰을 받았다.

-찾았습니다.

뜨악새다.

뜨악새에게 찾으라고 지시를 한 지 딱 3일 만에 찾은 거였다. 역시 전설은 괜히 전설이 아니었다.

“무슨 짓을 하고 있습니까?”

-사기꾼 놈들이 뭘 하겠습니까? 사기 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학자금 대출 사기네요. 하여튼 머리는 좋은 놈들입니다.

“학자금 대출 사기요?”

-그렇습니다. 여기도 거의 끝물인 것 같습니다. 나머지는 다 사무실에서 보고를 드리죠.

“예.”

난 짧게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드디어 창권의 가정을 황폐하게 만든 놈들을 찾았다. 이제 응징만이 남은 거다.

“학자금 대출 사기? 가지가지 하는 놈들이군.”

***

재창건설 사장 사무실에 나와 김재창 그리고 뜨악새와 호중이 모여 앉았다. 물론 이유는 뜨악새의 보고를 받기 위함이다.

역시 전설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 사람 찾는 일에는 뜨악새를 따라올 자가 없는 것 같았다.

내가 누구누구를 찾아달라고 하니 바로 찾아온 뜨악새이니 말이다.

“그놈들이 학자금 대출 사기를 하고 있다고요?”

내 물음에 뜨악새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진 몇 장을 내게 보여 줬다. 그 사진 속에는 사기꾼들의 얼굴과 사기를 치는 현장이 찍혀 있었다.

“이 사진부터 보시죠.”

“대학교 앞에서 뭘 하는 겁니까?”

“제가 말씀드린 학자금 대출 사기의 판을 까는 겁니다.”

“대출금 사기의 판이라고요?”

“예.”

“어떻게 그런 사기를 치죠?”

원래 학자금 대출이라는 것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거다. 하지만 그 이자율이 그렇게 싼 대출은 결코 아니었기에 상당히 학생들에게 부담이 되는 대출이기도 했다.

졸업을 하고 바로 취직도 하기 전인 사회 초년병들에게 빚쟁이부터 시작하게 만드는 학자금 대출 시스템은 분명 문제가 있는 거였다.

‘한 6년 정도 후면 반값 등록금 시위로 이 대한민국이 난리가 날 건데.’

난 내 기억을 더듬어 봤다. 하지만 이때는 그런 것도 없었다. 그저 대학이 내라는 대로 등록금을 내야 했다. 그래서 옛날 말에 대학은 상아탑이 아니라 우골탑이라는 소리도 있었다.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뜨악새의 말에 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간단한 방법에 대학생들이 사기를 당한다고요? 아무리 요즘에 개나 소나 다 대학을 간다고 해도 대학생은 고학력입니다.”

“예. 하지만 세상 물정을 모르는 풋내기이기도 합니다. 딱 부모의 통제에서 벗어난 시기라 겁이 없어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뜨악새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렇군요.”

“그렇습니다. 원래 사기는 탐욕과 불안감을 먹고 크는 법이니까요.”

“설명을 해 보세요. 놈들이 어떻게 사기를 치는지 알아야 놈들을 응징을 하죠.”

“놈들은 생각 이상으로 머리가 좋은 녀석들입니다. 힘으로 응징하지 않으면 쉽게 걸릴 놈들이 아닐 것 같습니다.”

뜨악새는 내게 사기로 놈을 응징하지 말고 바로 힘으로 응징하자고 말했다.

그만큼 놈들이 교활하다는 거다. 하지만 뜨악새가 말한 사기의 정의는 놈들에게도 해당될 말일 거다.

“사기는 탐욕을 먹고 자란다면서요. 놈들만큼 탐욕스러운 것들도 없겠죠.”

난 씩 웃었다. 내 웃음에 뜨악새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놈들의 수법부터 듣죠.”

“수법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우선 대학교 정문 앞에 현수막 하나를 걸고 거리 영업을 합니다. 물론 학자금 대출 영업 개시 홍보입니다.”

“현수막을 걸고 거리 영업이라고요?”

“예. 대충 예를 들면 농협 산하에 있는 농협 캐피탈이라고 한다든지. 국민 은행 산하에 있는 국민 캐피탈이라는 현수막을 걸고 거리 영업을 시작하는 겁니다.”

“금융권의 이름을 판다는 거군요.”

“물론 그것도 사기죠.”

“그래서요?”

“돈이 궁한 학생들이 모여들 거고, 그들이 대출에 대해 문의를 하면 통장 하나를 만들어 오라고 합니다.”

“물론 농협이나 국민 은행 같은 거겠죠.”

난 대충 이해가 됐다.

“그렇습니다. 대충 감이 잡히실 겁니다. 놈들에게 어디 통장을 만들어 오든 상관은 없습니다.”

난 번뜩 머리에 스치는 게 있었다.

“신용 대출을 이용하는 거군요.”

“물론입니다. 소액 신용 대출을 노린 학자금 대출 사기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김재창이 영문을 몰라 물었다.

“1금융권 은행도 300만 원 이하 신용 대출은 그렇게 어렵지 않게 학생이라고 해도 받을 수 있어. 2금융권인 새마을금고 같은 곳은 더 대출이 쉽고. 그것을 학자금 대출이라고 사기 치고 이용하는 거야.”

내 말에 김재창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하지만 지금 김재창이 이해가 되고 안 되고 여부가 중요하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해했다는 거다.

‘사기의 영역은 무한하군.’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계속하세요.”

난 뜨악새를 보며 말했다.

“우선 통장을 만들어 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대출을 위해서 여러 가지 개인 정보들을 기록하게 합니다. 그리고 대출이 되고 나면 돈을 가지고 튀는 거지.”

정말 간단한 거다.

“그런데 어떻게 돈을 가지고 튈 수 있는 겁니까? 개인 통장으로 들어가잖습니까?”

다시 김재창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뜨악새에게 물었다.

그게 바로 기술인 거다.

“학생들이 찾기 전에 찾는 거지.”

“어떻게요?”

김재창은 다시 물었다.

“바로 개인 정보를 이용하는 거야. 물론 내부 공모자가 있어야겠지.”

난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뜨악새는 내 추론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주로 대출이 이루어진 곳은 새마을금고입니다.”

“결국 통장은 1금융권에서 만들고, 불법 대출은 새마을금고에서 했군.”

“예. 새마을금고는 이자와 원금만 회수하면 되니까요. 결정적인 공모자는 없지만 암묵적인 공모자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뜨악새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가 평범한 학자금 대출입니다.”

“그럼요?”

“지진이 일어나고 나서 여진이 있는 것처럼 이놈들은 2타까지 치더군요.”

“2타요?”

“예.”

뜨악새 역시 놈들의 교활함에 인상을 찡그렸다.

“대출을 받으면 신용이 떨어진다는 것을 우려하는 학생들에게 사기에 사기를 또 친 겁니다.”

이번에는 나도 궁금했다.

“어떻게요?”

“한국금융신원거래원이라는 것을 만든 겁니다.”

“그런 거 없잖아요.”

“물론 없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있는 것처럼 위장을 해서 있다고 믿게 만들었습니다.”

난 뜨악새의 말이 조금씩 이해가 됐다.

대출을 받으려고 하는 학생에게 그곳이 있는지 없는지 중요하지는 않다. 의심이 많은 학생이라고 해도 직접 가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냥 전화를 걸어 보는 게 전부다.

그럼 1588로 시작하거나 1577이든 070이든 이런 번호로 된 곳에 전화를 해 볼 거다.

그럼 당연히 전화를 받은 안내원은 그곳이 어디든 한국금융신원거래원이라고 말할 거고, 그 말을 들은 학생은 정말 정부 기관처럼 믿게 되는 거다.

거기까지만 성공하면 일이 쉬워질 거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 보지 않은 학생보다 전화를 건 학생들이 더 사기를 당할 게 분명할 거다.

“그래서요?”

“대출 받은 기록을 삭제하기 위해서는 수수료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일정 금액을 또 사기를 친다?”

“그렇습니다. 대출 기록을 삭제할 돈까지 지불한 학생은 안심을 할 겁니다. 그렇게 거의 마무리가 되어 가는 겁니다.”

“그렇겠네요.”

“그럼 이제 선이자를 요구하는 겁니다.”

“선이자?”

“예. 신용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1개월이든 3개월이든 선이자 얼마를 입금시키면 바로 대출금이 지급된다고 말하는 겁니다.”

난 뜨악새의 말에 인상이 절로 찡그려졌다.

“그런 방법으로 속은 애들이 있다는 겁니까?”

호중이 뜨악새에게 물었다.

“있으니 하는 거죠.”

“에이 말도 안 돼. 누가 속아요. 나도 안 속겠다.”

호중은 피식 웃었다. 하지만 분명 속는 학생들이 있다.

“계속 설명해도 되겠습니까?”

뜨악새가 날 봤다.

“계속 하세요.”

“예. 그리고 돈을 미리 지불한 학생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이자를 주게 되는 겁니다. 최소 10만 원에서 30만 원까지 써서 대출 기록까지 삭제를 했는데 그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겁니다.”

“선이자를 입금하지 않으면 대출이 안 된다고 말하겠지요.”

내 말에 뜨악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럼 결국 사기당한 학생들은 대출 여부 삭제 비용만 날렸다고 생각을 해서 선이자를 넣는 겁니다.”

“거기서 또 50만 원 정도가 나가겠군.”

“예. 그렇게 받고 나서 사라지는 겁니다.”

“그럼 결국 학생들은 대출한 기록만 남고 빚만 남는 거군.”

“그렇습니다. 최소 500에서 1,000만 원까지 빚이 생기는 겁니다. 그런 학생들이 수십 명이 넘습니다.”

“결국 사기를 당한 것을 알고 신고를 해도 돈은 못 찾겠지?”

“놈들이 쓰는 통장이 모두 대포 통장이니 절대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자기들이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을 하겠지.”

“아마도 그럴 겁니다.”

“우리가 놈들을 그냥 잡아서 신고를 하면 돈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 역시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기꾼을 잡아도 돈은 증발한다?”

“예.”

“그럼 결국 우리도 사기를 쳐야 한다는 거군요. 역시 내 생각대로 사기에는 사기로 응징해야겠군요.”

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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