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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72화 (72/210)

흑막의 신! 72화

“그놈들의 주 종목이 뭡니까?”

사기꾼에게도 주 종목이 있는 법이다.

“이번 학자금 대출 사기는 그냥 알바 같은 거고 놈들의 주 종목은 분양 사기나 토지 거래 사기입니다.”

“기획 부동산 같은 거군요.”

창권의 부모님이 당한 그 사기인 거다.

“그렇습니다.”

뜨악새의 말에 난 번뜩 머리에 스치는 게 있었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땅이 바로 강원도 화천이다. 김 엔 동방에서 추진하고 있는 생명 공학 연구소 설립과 공장 건설 그리고 아파트까지 가장 많이 땅값이 오르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물론 그곳 땅값을 올린 건 나다.

‘사기는 탐욕을 먹고 자란다.’

난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도 우선 판을 한 번 짜 봅시다.”

“예?”

뜨악새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무슨 말인지 몰라 날 빤히 봤다.

난 이렇게 오프닝 게임을 시작하겠다고 공표를 했다. 이건 연습이다. 이번 연습을 성공적으로 끝낸다면 난 바로 최 회장을 목표로 삼을 준비를 할 거다.

‘자금도 확보가 되고 있고 또 내 힘도 커지고 있다. 최 회장 일파를 응징하고 이 세상의 악을 응징할 거다.’

난 그런 생각을 하며 어금니를 꽉 깨물며 나를 보고 있는 사람들을 봤다.

“화천에 좋은 땅이 있지요. 우리 재창건설이 가지고 있는 땅이요.”

“예. 있습니다.”

김재창이 짧게 말했다.

“그 땅에 사옥을 짓지 않고 다른 곳에 짓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난 뜨악새를 보며 씩 웃었다. 아마 뜨악새 말고는 내가 말하는 이야기의 참뜻을 모를 거다. 그리고 뜨악새 역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뜨악새가 나를 보며 말했다.

“뭐죠?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겁니까?”

“사기도 그럴싸해야 한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가요?”

난 뜨악새를 빤히 봤다.

“보스라고 불리시는 분은 아무리 나이를 많이 잡아도 20대로 보이고, 뒤에 있는 비서도 20대 초반, 그리고 건설사 사장님께서는 조폭의 향기가 물씬 풍기십니다. 물론 나머지 직원 역시 아직 민간인처럼 보이지 않고요.

역시 전설은 그냥 전설이 아닌 모양이다. 뜨악새는 우리와 합류하면서 우리에 대해 조사를 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봐도 김재창은 아직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 있다. 내가 컨트롤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난 그래서 유능한 사기꾼을 섭외하라고 지시를 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모든 섭외는 뜨악새가 할 것이다.

내가 꾸민 계획이라고 해도 뜨악새가 준비한 사람으로 해야 완벽해진다.

“그렇게 보이십니까?”

“예. 죄송하지만 저도 알아본 것이 있어서…….”

뜨악새는 김재창과 나머지들을 쭉 둘러봤다.

“그럼 저에 대해서도 알아보셨나요?”

“1년 전까지의 근황은 파악했습니다. 하지만 그 전이 오리무중이더군요.”

아마 그럴 거다.

나의 1년 전 이전의 근황까지 파악할 수 있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다. 귀신이지.

“그렇습니까?”

“예. 그래서 파악하는 김에 꼭 알고 싶으신 것도 좀 알아 왔습니다.”

“제가 알고 싶은 거요?”

“예. 박은진의 근황과 그 아비 놈의 행적을 추적해 봤습니다.”

뜨악새의 말에 난 어금니가 절로 깨물어졌다.

“그, 그런가요?”

“예. 궁금해 하실 것 같아서.”

뜨악새는 내 눈치를 봤다.

나의 행적을 찾다가 내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까지 찾아낸 뜨악새였다. 다소 괘씸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뭐라고 할 만한 일도 아니었다.

“지금은 잠시 접어 둘 생각입니다.”

지금은 내 개인적 복수보다 그 사기꾼 놈들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기꾼을 응징하는 일과 최 회장 일파를 응징하는 일이 다른 일처럼 보이지만 난 오프닝 게임과 메인 게임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내 수중에 돈이 들어오고 있고, 또 호중이 데리고 온 앵벌이 조직의 아이들이 내 세력이 되어 주기 위해 무럭무럭 크며 수련과 학습을 반복하고 있기는 하지만 내 적에 비해 난 아직도 그 힘이 미약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최 회장이 내 목표의 최종이 아니니까.’

뼈를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존재들이지만 내 목표의 끝은 분명 최 회장이 아니었다. 나는 흑막의 신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나약한 법으로 또 악인들의 편에 서서 그자들의 도구가 되는 법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고자 한다.

그러고 보니 요즘 법을 집행하는 존재들은 너무나 부패해 있었다.

공권력에 관한 안 좋은 사건들이 난무하고 있는 게 요즘 사회다. 항상 공정하고 냉정해야 할 검사들부터 썩고 또 썩어 있었다. 그리고 경찰들도 썩어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 경찰 놈까지.’

난 나중에서야 나를 동정한다고 생각했던 윤 경장까지 그들과 한패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취조실에서도 그의 눈빛을 보고 의심하는 일에 그치긴 했지만 말이다.

‘지금은 잠시 묻어 둔다.’

난 더 힘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가 실전에서 얼마나 잘 일을 처리하는지 연습을 해 봐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결심하고 행동에 옮기려는 것이 바로 내 친구 창권의 가족을 풍비박산 낸 상가 분양 사기꾼들의 응징이었다.

‘오프닝 게임부터 완벽하게 처리해 보자.’

난 그런 생각을 하며 뜨악새를 봤다.

“다음에 듣도록 하죠.”

내 말에 뜨악새는 날 잠시 물끄러미 봤다. 자신이 찾아온 것에 대해 내가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관심은 있다. 하지만 지금은 잠시 접어 둬야 할 때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아지고 싶습니다. 다음에 듣겠습니다. 저는 이제 예전의 제가 아닙니다. 흥분할 것도 없고 흥분해서도 안 됩니다. 내 감정이 뜨겁게 달아오르면 실수를 하게 됩니다. 전 이제 아주 차갑게 식을 겁니다. 얼음처럼 차갑게 또 단단하게 변할 겁니다. 그러니 지금은 듣지 않겠습니다.”

“얼음처럼 차갑고 단단하게…….”

“난 흑막의 신이니까요.”

내 말에 뜨악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게임을 잘 끝내고 나서…….’

바드득!

“알겠습니다.”

“그 대신 알고 계신 분들 좀 섭외를 해 주세요.”

“사기를 아주 예술적으로 치는 사람들 말하시는 겁니까?”

“악을 악으로 정리하는 것이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필요할 때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내 말에 뜨악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상에는 절대 악은 없다. 그리고 절대 선도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최소한 상도덕 정도는 있는 악인이라면 난 기꺼이 손을 잡을 수 있다. 모든 것을 이용할 것이다. 최소한 내 주변 사람들과 힘없는 사람들의 고혈을 빠는 놈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조금은 덜 악한 것들과 난 과감하게 손을 잡을 것이다.

그래서 난 스스로 나를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한다. 그러니 흑막의 신이다.

어쩌면 나는 지금 사설 고아원에서 테러리스트를 양성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썩어 버린 사회는 그들을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할 거다.

이 사회가 가진 자의 편에 서 있는 지금 나와 그들은 이 사회에 존재하지 말아야 할 자들이니 말이다.

이것은 어쩌면 저항일 것이다.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자들의 저항!

내가 아니라도 언젠가는 나타날 존재들이다.

내가 아니라도 말이다.

“예. 알겠습니다. 마포에 최 사부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최 사부요?”

“예. 제법 큰 건들만 사기를 치는 사람인데 사기 하나는 예술입니다.”

“그럼 그 사람을 데리고 오세요.”

“찾는 것은 제가 할 수 있지만 데리고 오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예? 왜죠?”

“성격이 지랄 같습니다.”

뜨악새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성격이 지랄이라?”

“예.”

“좋습니다. 제가 가 보죠. 어디에 있습니까?”

“원자력 병원에 있습니다.”

“원자력 병원요? 어디 아픕니까?”

“딸이 아픕니다.”

“딸이라고요?”

“예. 루게릭병 말기라고 들었습니다.”

“루게릭병이라고요?”

“예. 근육하고 뼈가 굳는 병이라고 하던데…….”

“스티븐 호킹 박사가 걸린 병이죠.”

내 뜬금없는 설명에 뜨악새는 날 빤히 봤다.

“그렇습니까?”

“예.”

내 설명에 나머지 사람들은 입이 딱 벌어졌고 뜨악새는 날 빤히 봤다. 마치 날 관찰하는 것 같아 보였다.

이건 실수다.

“꼭 의사 같으십니다.”

“가족 중에 병을 앓는 사람이 있어서 좀 압니다.”

“고아라고 전 알고 있습니다.”

뜨악새의 직업병이 도진 듯했다. 이럴 때는 바로 제지를 해 줘야 한다.

“거기까지 하죠.”

“기분 나쁘셨습니까?”

“좋지는 않았네요.”

“죄송합니다.”

“최 사부 이야기나 하죠.”

“알겠습니다. 그 루게릭병 때문에 우리 일에 합류를 할지 모르겠습니다. 딸 사랑이 지극 정성입니다. 늦게 본 자식이라 더한 것 같습니다.”

“딸의 나이가 몇 살인데요?”

“14살입니다.”

“14살요?”

난 잠시 놀랐다. 14살이 루게릭병에 걸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루게릭병 자체도 희귀병인데 14살 소녀가 걸린다는 것은 더더욱 희귀한 일이었다.

“14살입니다. 최 사부가 거의 40에 낳은 딸이랍니다.”

“그럼 딸 사랑이 남다르겠네요.”

“예. 그리고 성격도 괴짜고 좀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기 기술 하나는 최고입니다.”

“그럼 최고를 섭외해야죠.

난 최 사부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자신이 있다. 루게릭병이 희귀병에 거의 불치병이지만 내게는 비술이 있다. 굳어지는 사지는 풀어 주면 되고, 사멸하는 운동 신경 세포를 활성화시키면 된다.

‘비술과 영약을 같이 쓰면 가능할 거야!’

난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중아!”

“예.”

호중은 짧게 대답을 했다.

“넌 그놈들 동태를 잘 감시를 해.”

“알겠습니다. 진태랑 형성이도 실전에 투입시키겠습니다.”

“첫 데뷔인가?”

“그렇게 됩니다.”

“놈들이 어디서 뭘 하는지 잘 파악해 둬.”

“알겠습니다.”

“놈들이 움직이는 것을 알아야 일이 쉬워진다.”

“예.”

난 뜨악새를 봤다.

“이제 저와 같이 갑시다. 원자력 병원!”

난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섰다.

* * *

허름한 창고.

창고 중앙에는 테이블이 놓여 있고 한창 포커 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금 포커를 치는 인간들은 모두 창권의 가족들에게 상가 분양 사기를 쳤던 그 사기꾼들이었다. 물론 최근에는 학자금 대출 사기를 친 놈들이기도 했다.

웃고 떠들고 술 마시는 것들이 사람 같아 보이지 않는다.

“자 이제 패들이 어떻게 되나 확인 좀 해 볼까요? 킥킥킥! 내 패 확인하실 분은 100 넣고 보세요.”

누가 봐도 선하게 생긴 중년의 남자가 입에 담배를 꼬나물고 이죽거렸다.

“김 대표! 뭘 들었는데 그렇게 자신만만해?”

“포커 들었습니다. 하하하!”

“정말?”

“궁금하면 확인해 보시라니까요. 장 꼰대.”

“아직 내 차례 아니야!”

장 꼰대라고 불린 남자가 옆에 있는 젊은 남자를 봤다.

“벌써 내 차례인가? 좋습니다. 레이스 100 더. 이제 장 꼰대 받아 봐요.”

핸섬하게 생겨 여자 꽤나 후렸을 것 같은 젊은 남자가 테이블 위에 돈 다발을 툭 던졌다. 딱 봐도 제비 같아 보였고 그자의 주 종목은 화류계 여자 등쳐 먹는 거였다. 21세기 정 없고 삭막한 세상에서 여자 마음 후려서 등쳐 먹는 놈이라니 아마 힘도 무척이나 좋을 거다.

장 꼰대!

아마 이 사기단의 두목쯤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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