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73화
선하게 생긴 것이 어느 학교 선생님 같아 보였다. 물론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어느 고등학교 선생이라고 장 꼰대는 소개했다. 사람들은 선생님이라고 하면 으레 순진하다고 믿는다. 아마 그것을 이용하려는 것 같았다.
“그럼 200 받고 400 더.”
선생님처럼 생겼지만 배팅을 하는 것은 어느 전쟁터의 전사처럼 무섭게 했다.
“돈으로 조지려는 거예요?”
예쁘장하다. 이 사기단에 유일한 여자로 전직 꽃뱀이다.
“넌 몸으로 조지잖아.”
“호호호! 그런가? 좋네. 다 털리면 몸으로 때우지 뭐.”
그 찰나의 순간 장 꼰대와 핸섬한 남자가 서로의 패를 바꾼다.
“뭐해요. 배팅하지 않고. 자꾸 보려면 돈 내고 봐요.”
꽃뱀은 그렇게 말하며 웃고 다른 남자 둘은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패에 집중을 한다.
“얼마라고요? 장 꼰대?”
“넌 그냥 600 받든지 죽든지 하면 돼.”
장 꼰대가 씩 웃었다.
“그냥 죽을 수는 없죠. 원래 내 주특기가 죽은 거 살리는 거잖아요. 호호호! 600 받습니다.”
이제 포커를 치는 남자는 하나가 남았다. 남자는 힐끗 장 꼰대를 보다가 마지못해 600만 원을 배팅했다.
그 마지막 남자가 배팅이 끝나자마자 무슨 생각을 했는지 불끈 배팅을 했다.
“600 받고 600 더.”
“콜!”
장 꼰대는 짧게 콜을 땄다. 그러고 나자 핸섬하게 생긴 남자와 꽃뱀이 다이를 선언했다. 이제 남은 것은 꽃뱀의 가슴에 잠시 넋이 나갔던 두 남자다.
“왜 이렇게 판을 키워요?”
남자 하나가 엄살을 부리듯 투덜거렸다.
“받을 거야? 말 거야? 포커가 무슨 바둑이냐? 그렇게 장고를 하게.”
장 꼰대가 놀리듯 말했고 남자는 장 꼰대를 잠시 보다가 뭐에 홀린 듯 돈 뭉치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좋습니다. 사기 쳐서 번 돈, 다시 사기 당하지는 않겠지. 콜!”
콜이라는 말과 함께 꽃뱀과 핸섬 보이가 씩 웃었다. 물론 장 꼰대 역시 씩 웃었다.
“박 도장은 어떻게 할 거야?”
박 도장. 그는 위조문서 전문 사기범이었다. 그 역시 조금 전 꽃뱀의 가슴에 빠져 있던 남자였다. 박 도장은 장 꼰대를 잠시 보고 씩 웃었다.
“전 다이.”
뭔가 낌새를 챈 거다.
“그럼 오픈해 볼까? 휠체어, 패 까 봐.”
장 꼰대의 레이스를 받은 사람이 휠체어인 모양이다.
“A풀입니다.”
휠체어라 불린 남자가 장 꼰대를 보며 씩 웃고 자신의 패를 오픈했다.
“오! 그래도 좋은 거 잡았네. 풀 하우스면 배팅을 할 때는 2포커보다 무섭지. 킥킥킥!”
“예?”
“하지만 까 보면 좆도 아니지.”
장 꼰대가 테이블에 마치 휠체어를 놀리듯 카드를 한 장, 한 장 오픈을 했다. 처음은 스페이스 2다.
그 순간 휠체어의 인상이 굳어졌다. 그 다음은 하트 2고 그 다음은 다이아 1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이 클로버 2다. 장 꼰대의 패는 2포커인 거다.
“뭐야?”
“보면 모르시나? 2포커지.”
“씨발!”
휠체어는 핸섬 보이를 노려봤다.
“너 아까 2스페이드 가지고 있었잖아!”
“내가? 언제요?”
“씨발! 여기서도 사기를 치는 거야! 같은 편끼리 이래도 되는 거야?”
휠체어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킥킥거리고 웃었다.
장 꼰대는 돈을 쓸어 담으며 입을 열었다.
“여기는 사기 안 친다고 누가 그랬어? 그리고 영원히 같은 편이 어디에 있나? 사기는 원래 치고 받는 거야.”
“장 꼰대! 이러깁니까?”
휠체어의 말에 장 꼰대가 휠체어를 뚫어지게 봤다.
“사기꾼이 망가질 때가 언제인 줄 알아?”
“예?”
“자만할 때야. 그리고 방심할 때. 수업료 비싸게 낸 줄 알아. 킥킥킥! 혹시 알아? 너 많이 털렸다고 미숙이가 한 번 대 줄지. 한번 달라고 해 봐. 주기만 하면 아예 홍콩 간다. 하하하!”
장 꼰대의 말에 휠체어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화가 치밀었지만 사기꾼이 사기를 당했으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야! 미숙이 너도 한 패지?”
“호호호! 당연하지. 휠체어 오빠 빼고 다 한통속이지.”
“젠장! 세상에 믿을 연놈 하나도 없군.”
“그게 인생이야! 킥킥킥!”
장 꼰대는 돈을 가방에 넣고 휠체어의 어깨를 툭툭 쳤다.
“두고 봅시다.”
“하하하! 나 장 꼰대야! 너한테 당할 거면 은퇴한다.”
“알겠습니다. 제가 언젠가는 은퇴시켜 드리죠.”
“푼돈에 흥분하지 말고 술이나 한잔 합시다.”
핸섬 보이가 약간 험악해지는 분위기를 바꾸려 했다.
“젠장! 오늘 2,000만 원짜리 소주 마시네.”
“호호호! 제가 따라 주면 아깝지 않을 거예요.”
미숙이라는 꽃뱀의 말에 휠체어는 인상을 찡그렸다.
“술만 따르지 말고 몸도 좀 나한테 따라 봐. 요즘에 남자 그리울 거잖아.”
이왕 사기를 당한 거니 돌려 달라 말하기도 쪽팔렸는지 휠체어는 미숙이라는 꽃뱀에게 추근거렸다.
“호호호! 줄까? 말까?”
미숙은 휠체어를 놀렸다.
“주면 먹고 안 주면 줄 때까지 조르고.”
“호호호. 조른다고 주나. 주게 만들어야 주지. 나, 몸으로 먹고 사는 년이라고 해도 아무한테나 안 준다.”
“내가 아무개야?”
“그럼 죽고 못 사는 님인가?”
“한번 주라. 한 번만 주라.”
휠체어가 능글맞게 졸랐다.
“줄까?”
미숙의 말에 휠체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호호호! 다 줘도 휠체어는 안 준다.”
“뭐? 왜? 다 줘도 나만 안 줘?”
“재밌잖아.”
“뭐가 재미있나?”
“달라고 조르는 게. 호호호! 자꾸 조르면 아예 안 준다.”
질퍽한 농담이 이어졌다.
“그나저나 요즘 일이 없어서 큰일이다. 이제 슬슬 움직일 때도 됐는데.”
장 꼰대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담뱃불에 비친 장 꼰대의 얼굴이 악마처럼 변했다.
“푼돈만 벌어들이니 금방 바닥이 나는 겁니다. 이제 슬슬 새 판 짜야죠.”
핸섬 보이가 장 꼰대를 보며 말했다.
“기획 부동산 사기가 돈이 되기는 한데…….”
“마땅한 게 있습니까?”
“넌 뉴스도 안 보냐?”
“예?”
“뭐 있어요? 장 꼰대 아저씨!”
미숙도 관심을 가졌다.
“사기꾼들은 뉴스, 경제, 정치까지 두루두루 살펴봐야 하는 거야. 몇 번을 말하냐.”
“보라고 하셔서 보고 있습니다.”
선하게 생긴 중년의 남자가 장 꼰대를 봤다.
“그래. 어떤 감이 오데?”
“정치판 개판이고 재벌 새끼들은 우리보다 더하고 그럽디다. 성질이 나서 모니터 부술 뻔했습니다.”
선하게 생긴 중년의 남자의 입이 거칠다.
“그러니 너희들은 큰 사기 못 쳐서 대박을 못 치는 거야. 사기도 한 철이다. 마빡에 빨간 줄 가면 사기 치기 힘들어.”
“그렇죠.”
나머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기꾼한테 전과는 쥐약이야! 쥐약. 짭새들이 동종 범죄자들만 탈탈 털어서 안 걸리려고 해도 결국 딸려 들어가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한 건 크게 하고 미국으로 튀어야죠. 안 그래요? 장 꼰대 아저씨.”
“그러다 짭새들에게 달려 들어가는 거야. 실속 있게 안 걸리게 치는 거야.”
장 꼰대는 씩 웃었다.
“예?”
“호호호! 장 꼰대 아저씨! 무슨 감 잡으셨구나? 줄게 나도 끼워줘요.”
미숙이 일어나 장 꼰대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썅년! 몸이 무기냐?”
“때로는.”
미숙은 환하게 웃었다.
“좋아. 우선 미숙이 년 접수하고.”
“끼워 주는 거죠?”
“그래. 접수했다니까.”
“뭡니까? 장 꼰대 선생님!”
사람들이 자꾸 궁금한 얼굴로 장 꼰대에게 물었고 장 꼰대는 쭉 한 번 둘러봤다.
“궁금하지?”
“예. 장 꼰대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저희들은 언제나 콜입니다.”
“저도 콜입니다.”
“화천에 김 엔 동방에서 생명 공학 연구소 건립한다는 거 뉴스에 나왔다. 연구소에서 개발된 물질을 상품화 할 공장부터 직원 사옥까지 거의 화천군 땅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른다.”
“그런데요?”
장 꼰대를 모든 사람들이 쳐다봤다.
“꼭 화천에만 생명 공학 공장과 사옥하고 직원 아파트가 건설되라는 법이 없잖아.”
장 꼰대는 씩 웃었다.
“어디가 좋겠습니까?”
이미 운을 뗀 장 꼰대에 의해 사기 판이 짜이고 있었다.
“하하하! 내가 김용팔 사촌 동생 한 번 하지 뭐.”
“그럼 전 뭐합니까?”
선하게 생긴 중년의 남자가 물었다.
“우리 대표께서는 청솔제약 김 이사 하셔야지.”
“알겠습니다. 제가 원래 이사 체질입니다. 하하하.”
“어디냐고요?”
“철원 좋다. 화천하고 붙어 있고 땅값도 싸고. 생명 공학 제2 연구소는 우리가 철원에 짓는다.”
“호호호! 철마도 달리고 싶다는 그 철원?”
미숙이 야릇한 눈빛으로 장 꼰대를 봤다.
“물론이지. 오늘 밤에는 내가 달리고. 킥킥킥!”
장 꼰대는 음흉한 눈으로 미숙을 봤다.
“호호호! 뭐 밤에 달릴 필요 있나? 지금도 내 몸은 뜨거운데.”
미숙이 장 꼰대의 무릎 위에 찰싹 달라붙어 앉았다.
“지금?”
“술 마시면 남자는 잘 못 느끼잖아.”
“하하하! 날 완전히 호구로 보내?”
장 꼰대가 미숙을 빤히 봤다.
“가요. 이왕 주기로 했으니 화끈하게.”
“술판은 어쩌고?”
박 도장이 미숙에게 물었다.
“지금 술이 문제야? 인생 꽃 피게 생겼는데.”
“그래, 그럼 볼까? 작업 전에 꽃집에 물 한 번 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하하하! 회춘하시겠수.”
휠체어가 장 꼰대를 보며 이죽거렸다.
“내가 먹고 너도 설거지 정도는 하게 해 주지.”
장 꼰대의 말에 미숙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내가 아무나 주는 갈보인 줄 알아요?”
“싫음 빠져.”
장 꼰대의 말에 미숙이 장 꼰대와 휠체어를 봤다.
“좋아요. 호호호! 꽃에 벌 한 마리만 앉으라는 법도 없죠.”
미숙의 말에 휠체어도 입이 쩍 벌어져 침을 질질 흘렸다.
“어서어서 가셔서 꽃 문을 활짝 여시고 물 주십시오. 장 꼰대! 앞으로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휠체어가 좋다고 킥킥거리며 말했다.
“충성?”
“예. 장 꼰대! 장 꼰대께서 하시는 일이면 탈이 없죠. 그러니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야! 휠체어.”
“예. 장 꼰대.”
“어디서 사기를 쳐! 하하하!”
“사기요?”
“그래. 사기! 하여튼 이챠!”
장 꼰대는 무릎 위에 앉아 있는 미숙을 안고 일어났다.
“항상 그랬듯 설거지는 네 담당이다.”
“감사합니다. 땡큐!”
* * *
원자력 병원 진료실.
신경과 전문의가 한 손에 고무망치를 들고 아이의 무릎을 때린다. 아이는 멍하니 의사만 보고 있다. 그 뒤에 있는 중년의 남자는 아이의 표정과 움직이지 않는 무릎을 보고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은 반사 신경 체크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아이는 고무망치의 충격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창백한 얼굴에 살이라고는 하나 없는 아이, 그 아이를 볼 때마다 중년의 남자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아프지 않지?”
의사는 아이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예. 안 아파요.”
“나으려고 해서 안 아픈 거야.”
“정말요?”
“재활 치료 받으면 금방 낫겠다.”
말은 그렇게 한 의사였지만 표정이 어두웠다. 그리고 최 사부를 볼 때는 더욱 표정이 어두워졌다.
“저 그럼 재활 치료 받으러 갈래요.”
“그, 그래! 아버지랑 같이 가라.”
의사가 최 사부 옆에 있던 간호사를 봤다.
“김 간호사, 아이 데리고 나가서 재활 치료실로 데려다 주세요.”
“알겠습니다. 선생님!”
아이가 탄 휠체어는 그렇게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힘없이 최 사부가 툭 자리에 앉았다.
“어, 어떻습니까?”
“으음. 이제 곧 호흡 곤란이 올 것 같습니다.”
“호, 호흡 곤란이라고요?”
“예. 지금 모든 신경이 마비된 것 같습니다. 곧 폐의 호흡 기관의 수축으로 인해 산소 호흡기 없이는 생존할 수 없을 때가 올 것 같습니다.”
“산소 호흡기만 달면 살 수는 있는 겁니까?”
원래 절망을 맛본 사람은 그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 법이다. 최 사부는 자신의 딸이 살아만 있기를 소망했다.
“그것도 한시적입니다.”
“그, 그럼.”
“폐 기관이 완전 수축이 되어 사망할 수 있습니다.”
말을 하는 의사도 무척이나 곤혹스러운 듯했다. 병에 걸린 아이가 너무나 어렸기 때문에 의사도 가슴이 아픈 모양이다.
“방, 방법이 없습니까? 어떻게든 살릴 방법이 없습니까?”
“릴루텍 정을 투약해야 할 것 같습니다.”
“릴루텍 정이라고요?”
“예. 생명 연장을 조금은 시켜 주는 약입니다.”
“으음.”
의사의 말에 최 사부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다 내 죄인 거다. 내 죄를 내 딸이 받는 거다.’
최 사부의 감은 눈에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