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74화
테이블 위에 놓인 통에 작은 구슬을 집어넣는 아이의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겨우 구슬 하나를 들어 올렸지만 금세 테이블에 떨어뜨렸다.
지금은 손의 악력 강화 훈련을 하는 중이다. 하지만 이미 마비가 되어 가는 손가락으로 작은 구슬을 줍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았다.
“계속하면 금방 나아.”
재활 치료사 아가씨의 말에 아이는 약간 비뚤어진 목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다시 구슬을 주우려는 찰나, 아이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허헉! 허헉!”
급하게 숨을 쉬는 아이.
호흡 곤란이 와서인지 겨우 목을 잡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놀란 재활 치료 아가씨는 급하게 비상벨을 울렸고, 아이의 담당 의사와 최 사부가 급하게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의사가 소리를 질렀다.
“아이가 숨을 쉬지 않아요.”
“산소 호흡기! 어서!”
의사는 소리를 질렀고 간호사가 급히 산소 호흡기가 달려 있는 장비를 끌고 달려왔다.
“여기요. 선생님!”
지금은 응급 상황이다. 그래도 다행히 의사의 빠른 조치로 아이는 겨우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서 숨을 쉬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최 사부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모두 다 내 죄다.’
최 사부는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을 자신의 딸이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인과응보!
최 사부 역시 타고난 사기꾼이었으니 말이다.
* * *
원자력 병원 중환자실.
최 사부는 산소마스크를 끼고 잠들어 있는 딸을 보며 마음이 착잡했다. 길게 숨 한 번 제대로 쉬지 못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부모로서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미안하다. 내가 지은 죄를 네가 받는다.”
최 사부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때 병실 문을 열고 의사가 들어왔다. 최 사부는 의사를 보고 애원하듯 매달렸다.
“선생님, 이제 어떻게 합니까? 애가 숨도 제대로 못 쉽니다.”
의사도 환자를 보고 표정이 어두웠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마, 마음의 준비라고요?”
최 사부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산소 호흡기를 제거하면 혼자서는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 근육이 마비되었습니다. 이제 현대 의학으로는 치료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선, 선생님……. 릴루텍 정이라는 약을 먹으면 그래도 좀 좋아질 수도 있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때도 말씀 드렸지만 릴루텍 정은 치료제라기보다 생명을 연장해 주는 효과가 더 큽니다. 약이 생존 기간을 수개월 정도 연장시키는 효과는 있지만, 삶의 질을 개선하거나 근력을 회복시키는 데에는 아직까지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약의 양을 늘려서 투약하면 어떻습니까?”
“쇼크사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정말 방, 방법이 없는 겁니까?”
“예. 죄송합니다.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도 더 이상의 가망은 없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말씀밖에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의사는 그렇게 말하고 침통한 표정으로 돌아섰고, 최 사부는 바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게 다 내 잘못이야! 다 내 잘못!”
* * *
나와 뜨악새가 최 사부의 딸이 입원해 있는 중환자실 문을 열었을 때, 최 사부는 바짝 말라 뼈만 남은 딸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역시 자식의 죽음 앞에 강할 수 있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내, 내가 다 잘못했다. 내가 다른 사람 가슴에 대못을 박아서 이렇게 네가 죄를 받는 거다. 이 아빠가 잘못했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
최 사부의 딸은 아빠의 손을 꼭 잡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운동 신경의 마비되어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는 아이였다.
“내, 내 네 앞에서 약속하마. 다시는, 다시는 이 아빠는 죄 안 짓고 산다. 얼, 얼마나 더 살지 모르겠지만 다시는, 다시는 죄 안 만든다. 조금만 먼, 먼저 가 있어라. 아빠가 금방 갈게.”
최 사부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나와 뜨악새는 뒤에서 최 사부의 말을 듣고 있었다. 난 가슴이 뭉클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동정심에 가슴이 뭉클할 때가 아니었다.
“나가 있으세요.”
난 뜨악새를 보며 작게 속삭였다.
“혼자 설득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혼자 못하면 둘이 해도 어렵습니다.”
내 말에 뜨악새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뜨악새는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난 다시 입을 닫고 최 사부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이를 봤다.
“이 아빠가 아빠 지은 죄 다 갚고 갈 테니까. 너는 조금만 먼저 혼자 가 있어라.”
저게 바로 자력갱생이다.
스스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것.
내가 추구하는 바로 그 자력갱생인 거다.
“아빠는 꼭 약속한다. 다시는 아빠가 사기 안 친다.”
최 사부는 뼈만 남은 딸의 새끼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었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다.
“사기를 쳐야 딸을 살릴 수 있으면 어떻게 할 겁니까?”
내 말에 놀라 최 사부가 등을 돌려 날 봤다.
“뭔 말이야?”
최 사부는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제가 말한 그대로입니다.”
“사기를 치면 내 딸을 살린다고?”
“그렇습니다.”
“누가? 누가 내 딸을 살려 주는데?”
최 사부는 나를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 정말 지금 당장 자신의 딸을 살려 놓지 않으면 죽일 것 같은 눈빛이었다.
“접니다.”
난 최 사부를 봤다. 그리고 최 사부의 눈을 봤다. 아마 지금 최 사부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거다. 그런 부모의 마음을 이용해서 사기를 치는 놈도 무척이나 많다.
생명수니 만병통치약이니 바이오 원적외선 생수니 해서 수십만 원, 수백만 원으로 받으며 사기를 치는 놈들도 있다.
그런 놈들은 정말 악인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만 믿고 치료를 받지 않아 더 악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사람의 목숨을 놓고 사기를 치는 놈들은 악마다.
“사기를 치려면 다른 곳에 가서 해. 나, 최 사부야!”
“당신이 최 사부라 내가 온 겁니다.”
내 말에 최 사부는 날 빤히 봤다.
“뭐? 나라서 왔다?”
“그렇습니다.”
“그럼 지금 내 기분이 어떤 줄 아나?”
최 사부는 날 노려봤다. 딱 눈으로 봐도 날 죽이고 싶은 눈빛이다.
“왜, 절 죽이고 싶습니까? 그럴 능력이 있으십니까? 절 죽이실 수 있으십니까?”
“못할 것 같나? 내 딸이 죽어 가고 있다. 그런데 내 앞에서 사기를 치려는 놈이 있어. 그럼 내가 어떻게 할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아직 아닌 모양이군요. 나중에 올까요? 사기라도 믿어 보고 싶은 마음이 안 생깁니까?”
“뭐, 뭐라고 했어?”
최 사부가 일어섰다. 그때 아이는 겨우 최 사부의 손가락에 걸려 있는 자신의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미세한 꿈틀거림을 최 사부는 느꼈다.
“으음.”
작은 한숨과 함께 최 사부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가, 가 주시오. 난 내 딸을 편하게 보내야 합니다. 아주 조용히…….”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도와주십시오.”
내 담담한 말투에 최 사부는 날 다시 봤다. 조금 전과 다르게 혹시 하는 기대를 담은 눈빛이다.
“정, 정말 살릴 수 있습니까?”
말투부터 바뀌었다.
이래서 불치병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사기꾼들이 많이 모여드는 거다.
“살고 죽고는 전 잘 모릅니다.”
내 말에 최 사부는 역시 하는 눈빛을 하고 피식 웃었다. 하지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 봐야 하는 거다.
“그 대신 고쳐 드리죠. 루게릭병.”
내 말에 최 사부는 눈이 커져 날 봤다.
“정, 정말 고쳐 줄 수 있습니까? 어떻게 고칩니까? 의사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무슨 수로 당신이 내 딸을 고친다는 겁니까?”
기대와 궁금증, 그리고 반항까지 담겨 있는 복합적인 질문이었다. 그 복합적인 질문 뒤에는 만약에 이번에도 사기를 치는 거라면 죽일 수도 있다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뭘 말하는 거요?”
“저랑 거래를 하시겠습니까?”
난 뚫어지게 최 사부를 봤다.
“무엇을 가지고 거래를 하자는 거요?”
“당신을 가지고 거래를 하자는 겁니다.”
“나, 나를?”
“당신 목숨하고 딸 목숨하고 바꾸자는 겁니다. 물론 그 목숨의 생살여탈권은 내게 있는 겁니다.”
내 말에 최 사부는 날 봤다. 그렇게 나를 한참이나 봤다. 그리고 무슨 결심을 했는지 어금니를 꽉 깨물다가 입을 열었다.
“정말 살릴 수 있는 겁니까?”
“누군가의 목숨을 얻으려면 자신의 목숨도 내어 놓아야 하는 법이지요. 제 목숨을 걸죠.”
“당신 목숨을 건다?”
“그렇습니다. 그 대신 살리면 당신 목숨은 제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좋, 좋습니다.”
“계약은 성사되었습니다.”
난 뚫어지게 최 사부를 봤다.
“그렇소.”
난 산소 호흡기를 끼고 있는 아이에게로 천천히 걸어갔다.
사실 루게릭병이 발병하는 원인은 아직 밝혀져 있지 않지만 지금까지 여러 가지 가설들이 제기되고 있다.
나 역시 의사로서 루게릭병에 관한 의학 세미나에 참여해 봤기에 알고 있다.
전체 루게릭병 환자의 약 5~10퍼센트는 가족성 근육 위축 가쪽 경화증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약 20퍼센트의 가족에서 21번 염색체에서 원인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확인되고 있다.
난 예전에 루게릭병 세미나에서 논쟁했던 것이 떠올랐다.
‘돌연변이가 문제다. 그 돌연변이를 잡으면?’
난 문뜩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돌연변이를 지금 내가 찾아서 제거할 방법은 없다.
그런 병을 지금 내가 고치려 하고 있다. 아마 내가 알고 있는 현대 의학으로는 절대 고치지 못하는 병이 바로 루게릭병일 거다. 하지만 내게는 비술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보류인 영약도 있다. 이 3가지를 이용하면 저 아이를 고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내가 저 아이를 고치지 못한다면 난 아마 내 목숨으로 죽어 가는 아이를 둔 부모를 우롱한 죄로 목숨을 내놓아야 할 거다.
‘최소한 회복시킬 수는 있다.’
난 아이에게 비술을 쓸 거다.
비술의 궁극의 진리는 신체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거다.
지금 저 아이의 신체 능력은 바닥이다. 아무리 내가 비술을 써서 아이의 신체 능력을 극점까지 끌어올린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다음에 바로 써야 하는 것이 기로 아이의 혈맥을 열어 주고 내 몸에 있는 기를 아이에게 밀어 주면서 일주천해 주면 아이의 기력은 많이 회복할 거다. 그리고 다시 비술을 써서 2차 비공을 사용하면 아이는 일어나게 될 거다.
물론 단시간에 아이가 건강한 상태로 돌아올 수는 없을 거다.
최소한 저기 거추장스러운 산소 호흡기는 뗄 수 있을 거다. 그리고 휠체어 정도는 타고 움직일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내가 치료를 해 준다면 아이는 목발 정도는 짚고 살아갈 수 있을 거다.
‘완치는 어려워!’
난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난 아이가 덮고 있는 이불을 젖혔다. 아이의 발에는 양말이 신겨 있었다. 난 잠시 양말을 봤고 최 사부는 내게 작게 말했다.
“태희가 추위를 많이 탔습니다.”
“그렇군요.”
최 사부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양말을 신겨 주는 것뿐이었을 거다.
“양말을 벗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