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76화
“제가 잘 감시하고 있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제 옆에 있습니다.”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혹하는 마음에 건드리면 도가니를 뽑아 버린다.
이건 경고이면서도 위협이다. 은성은 창권의 동생인 박지은이 자신의 동생처럼 느껴졌고, 그런 동생 옆에서 감시 이외의 것을 할지도 모르는 호중이 불안했다.
“으음. 저나 좀 보호해 주십시오. 아시잖습니까.”
호중은 힐끗 옆 좌석에 앉아 있는 박지은을 보고 말했다.
-하여튼 그렇다는 거다.
“예.”
호중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사실 진태와 형성은 그들을 감시하는 것이 죽을 맛이었다. 물론 그들을 감시하는 게 죽을 맛이라기보다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는 게 죽을 맛이었다.
“난 아이스커피!”
물론 호중은 아니었다. 호중이 데리고 온 계집애 때문이다.
그 계집애는 박지은이다.
“아, 아이스커피요?”
진태는 계집애의 말을 듣고 말까지 더듬었다. 지금은 11시다. 철원 같은 촌 동네는 밤 10시 이후면 거의 문을 닫는다.
서울처럼 편의점이 있는 것도 아니니 밤 11시에 아이스커피를 먹겠다는 것은 생떼를 쓰는 거였다.
“응. 나 아이스커피!”
여자는 짧게 말했다.
“지금 이 밤에 그런 거 없습니다. 다른 것을 드세요.”
진태는 호중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사형이 호중이 데리고 온 계집애였기에 저렇게 눈치를 보는 거다.
“난 죽어도 아이스커피!”
“추운데 무슨 아이스커피입니까?”
진태는 눈을 한 번 흘겼다. 살이 많이 빠졌다고는 해도 근골이 그대로이기에 상당히 험악하게 보였다.
“추울 때 먹는 아이스커피가 제맛이지. 헤헤헤.”
이건 확실한 생떼다.
“사다 줘.”
호중은 짧게 말했다. 진태와 형성에게 호중의 말은 곧 법이기에 진태는 인상을 찡그렸고 호중이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소리로 입 모양으로만 저런 싸가지 없는 계집애는 어디서 데리고 왔고 또 어디서 아이스커피를 구하냐고 형성을 보며 투덜거렸다.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안 들리는 것 아니다.”
뜨끔!
호중의 말에 진태는 눈만 깜박였다.
“저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공간에는 파장이라는 게 있어.”
“예?”
“비술을 중급 이상 수련하면 소리가 아닌 파장도 감지할 수 있는 법이지.”
호중의 말에 진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형인 호중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전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호중은 오리발을 내밀었다.
“그래? 그럼 저런 싸가지 없는 계집애는 어디서 데리고 왔고 또 어디서 아이스커피를 구하냐? 는 지나기는 귀신이 씨불이고 간 거지?”
호중의 말에 진태는 다시 한 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순간 저런 싸가지 없는 계집애가 된 박지은은 진태를 째려봤다.
“뭐라고요? 나 갈래!”
여자가 삐지면 막무가내다.
“나 간다니까. 차 돌려! 차 돌려요.”
호중 옆에 앉아 있던 지은은 생떼를 섰다. 그 모습에 호중은 인상을 찡그렸고 진태와 형성은 겁을 먹었다.
“나 간다니까. 가. 어서 가자고.”
사실 호중은 박지은이 또 무슨 꼴통 짓을 할까 불안해서 데리고 온 거였다. 그런데 꼴통 박지은의 비위를 맞추는 게 장난이 아니었고, 끝내 진태의 몇 마디가 이런 상황을 만들어 놓은 거였다.
“어서 가서 아이스커피 사와.”
“예.”
겁을 먹은 진태는 빠르고 짧게 대답을 했다.
“이 철원에 아이스커피가 없으면 에티오피아까지 날아가서 사와. 못 구해 오면 너희들…….
원래 점점점이 무서운 법이다.
진태와 형성은 바로 차에서 내렸다.
여기는 철원 시내에서도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러브호텔이다. 원래 도심을 벗어나서 있는 러브호텔이라는 곳이 다 그렇다. 딱 남의 눈을 피하기 좋은 곳에 세워져 있다.
물론 러브호텔을 찾는 사람들 역시 다른 사람 눈을 피하는 것을 좋아하니 그 입맛에 맞춘 거다.
“바로 구해 오겠습니다.”
“구해 오지 못하면 알아서 해라.”
“예.”
호중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에 박지은은 진태와 형성을 보며 혀를 날름 내밀었다. 지금은 밤 11시고 이곳은 철원이다. 1월이 넘어가서 2월 바로 앞이기에 추위는 장난이 아니었다.
또 철원 지역은 바람이 많이 불어 체감 온도는 거의 영하 20도에 가까웠다.
이런 날씨에 아이스커피를 먹겠다는 박지은이 참 어이가 없다.
이제 차에는 호중과 박지은만 남았다.
“추워 죽겠는데 아이스커피는 무슨 아이스커피?”
“추우니까.”
“뭐?”
“이 추운 날에 저 곰 같은 오빠랑 늑대 같이 생긴 오빠랑 어디서 아이스커피를 구하겠어?”
“무슨 소리야?”
호중은 빤히 박지은을 봤다. 하지만 박지은은 더는 말하지 않고 웃을 뿐이다. 그리고 지은은 말로 하지 않고 이유를 몸으로 호중에게 보여 줬다.
박지은이 호중의 팔에 팔짱을 꼈다.
“누구누구는 좋겠다. 저런 러브호텔 안에서 따뜻하게 있고. 어떤 년은 카 히터 하나에 의지해서 벌벌 떨고.”
아마 누구누구는 장 꼰대와 들어간 김미숙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따듯한 룸에서 자고 싶다고.”
“뭐?”
“호호호! 말이 그렇다고. 누가 오빠 잡아먹는데?”
박지은의 말에 호중은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렇게 박지은과 호중 사이에 야릇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너, 설마 나랑 같이 있으려고 이상한 거 시킨 거야?”
“감이 툭 하고 떨어져야 감 떨어지는 줄 아니 참…….”
“뭐?”
“가만히 좀 있어 춥다.”
박지은은 호중의 파카 안에 자신의 하얀 손을 쑥 집어넣었다. 순간 차가운 손길이 느껴졌다가 다시 따뜻한 느낌이 감돌았다.
쿵쾅! 쿵쾅!
호중의 가슴이 뛴다. 지금 당장 덮쳐도 가만히 있을 것 같은 박지은이 호중의 어깨에 기대어 불이 켜진 러브호텔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누굴 미행하는 거야?”
“나쁜 놈들.”
“아까 들어간 것은 년, 놈들이잖아.”
이 러브호텔에 들어간 것은 장 꼰대와 김미숙이었다. 나머지 휠체어와 김 대표, 그리고 핸섬 보이는 다른 곳에서 투숙을 했다. 우선 호중은 장 꼰대가 이 사기단의 두목이기에 저들을 감시하고 있는 거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패를 나눠서 모두 다를 감시할 생각이었다.
“그놈들이 대빵이다.”
“대빵? 무슨 대빵!”
박지은은 관심을 보였다.
“사기단 대빵.”
호중의 말에 박지은은 살짝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사기단? 설, 설마 우리 집 엉망으로 만든 그 상가 분양 사기단?”
박지은의 물음에 호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건 그렇다는 뜻이다.
“아야!”
호중은 지은을 봤다. 지은의 눈에는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은성께서 저놈들을 아주 작살내실 거다.”
호중의 말에 박지은은 여전히 러브호텔을 노려보고 있었다.
“불이라도 확 질러 버릴까?”
“뭐?”
“그럼 저기 안에 있는 놈들 전부 타 죽을 거 아냐.”
역시 박지은은 꼴통이다.
“누가 질러? 내가 아님 네가?”
“당연히 우리지.”
박지은은 차갑게 말했다.
“아서라. 이유도 모르고 죽으면 복수가 안 된다고 하셨다.”
“누가?”
“은성 님께서.”
“그게 누군데?”
“마이 캡틴이자 사부님이시지.”
호중은 그렇게 짧게 말했다. 그 마이 캡틴이라는 말을 들은 박지은은 은성의 얼굴을 떠올렸다. 반쯤 술에 취해 본 기억이 가물거렸다.
“정말이다.”
“뭐가?”
“꼭 복수해 주는 거.”
박지은은 어금니를 깨물며 호중에게 말했다.
“마음먹으신 것은 꼭 하시니까. 저놈들은 이제 끝났어.”
호중 역시 러브호텔을 노려봤다.
차 밖으로 나온 진태와 형성은 죽을 맛이었다.
쉬이이잉!
어둡고 높은 산골짜기를 타고 내려 쐬는 칼바람은 진태의 뺨을 사정없이 때렸다.
“으으으으 춥다.”
“씨발! 저거 어디서 굴러먹다가 온 쌍년이냐?”
형성은 바르르 떨다가 차를 힐끗 보고 욕지거리를 했다.
“들린다잖아. 파장으로.”
진태는 힐끗 차를 보며 말했다.
“파장은 무슨 얼어 죽을. 이 바람에 파장이 깨져도 여러 번은 깨졌겠다. 그나저나 어디서 아이스커피를 구하냐?”
형성은 인상을 찡그렸다.
“씨발! 이러다가 시내까지 뛰어갔다 와야 하는 거 아냐?”
사실 시내에 뛰어 간다고 해도 이미 상가들은 모두 불이 꺼져 있을 거다.
그저 답답한 형성이었다. 그때 진태는 머리에 스치는 게 있었다.
“따라와. 아이스커피? 내가 구해 주지.”
“뭐?”
형성은 진태를 봤다. 진태는 이미 러브호텔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어디 가는데?”
“너는 존나 땀 빼면 뭐가 생각이 나?”
“그야 시원한 맥주지.”
“그 다음은?”
“아이스커피?”
“그래. 떡 치고 나서 알콜 아니면 카페인이지.”
진태가 씩 웃었다.
“저기 들어가서 구하자고?”
“그럼 철원 시내까지 이 추운데 뛸래?”
“그, 그건 아니지만…….”
“따라와. 분명히 있어. 캔 커피!”
진태는 씩 웃었다.
모든 행동과 생각은 경험에서 나오는 법이다. 예전 은성과 시골에 내려갔을 때 진태는 다방 여성과 질퍽하게 땀을 빼고 나서 캔 커피를 마셨던 생각이 났다.
‘땀 빼고 나면 알콜 아니면 카페인이지.’
진태는 그런 생각을 하며 러브호텔 카운터로 들어갔다.
진태와 형성이 카운터 앞에 서자 카운터를 보는 종업원이 인상을 찡그리며 진태가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는 이반들은 안 받습니다.”
진태와 형성은 종업원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예?”
진태와 형성이 동성애자가 아니니 이반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거다.
“동성애자들은 안 받는다는 말입니다.”
순간 진태와 형성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고 보니 딱 봐도 그런 형국이다. 지금은 11시가 훌쩍 넘은 밤이고 이곳은 러브호텔이다.
이런 곳에 남자 둘이 나란히 들어오니 다들 그렇게 보는 거다.
“으음.”
진태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 거 아니거든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방도 없습니다.”
“내가 들어오면서 불 꺼진 방 무지 많은 거 봤거든?”
진태는 종업원을 노려봤다. 사실 진태는 투숙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기가 발동하는 진태였다.
“예약이 된 방입니다.”
종업원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이죽거렸다.
“아하! 예약까지 하면서 떡을 치네. 여긴.”
진태의 말에 종업원이 인상을 찡그렸다. 뭐 저런 개새끼가 다 있냐는 눈빛과 함께.
“진태야 왜 그래! 우린 그냥…….”
“가만히 있어. 기분 좆같잖아.”
형성도 진태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캔 커피 두어 개만 구해서 나가면 그만인데 진태가 너무 오버를 하는 것 같았다.
“방 줘요. 추워 죽겠거든.”
“방 없습니다.”
진태가 종업원을 노려봤다.
“방 안 주면 확 불 질러 버린다.”
“예?”
진태는 마치 위협이라도 하는 듯 오른손으로 라이터를 켜서 딸칵거렸다.
“이, 이 사람이…….”
“존나 추워서 그런 거니까 방 달라고.”
역시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진태다. 아마 진태는 그동안 박지은에게 폭발하지 못했던 화를 러브호텔 종업원에게 푸는 것 같았다.
종업원은 진태를 빤히 봤다. 정말 방을 안 주면 불을 지를 눈빛이었다.
“정, 정말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