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77화
“아니라니까.”
진태의 말에 마지못해 종업원은 방 키를 내밀었다. 키를 받고 돈을 낸 진태는 종업원을 째려봤다.
“안에 캔 커피 있지?”
사실 캔 커피 몇 개 구하려고 이 난리를 치는 진태였다.
“예? 무슨 캔 커피요?”
“없어? 냉장고에 뭐 있는데?”
“저희는 박카스랑 생수 넣어 놓는데요.”
“박, 박카스?”
“예. 자양 강장제 모르세요?”
“씨발!”
진태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물론 뒤에 있는 형성도 마치 좆 됐다는 표정으로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진태가 아니었다.
“혹, 혹시 커피 믹스 같은 거 없어요?”
말까지 고분고분해진 진태다.
“저 카페인 싫어해서 안 마시는데요.”
종업원의 말에 진태는 휴 하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내놔.”
“뭘요?”
종업원은 진태를 빤히 봤다. 그리고 진태는 들고 있던 키를 툭하고 종업원에게 던졌다.
“이런 좆같은 모텔에서 안 잔다고. 돈 돌려달라고.”
“예?”
조금 전까지 방 달라고 생떼를 쓰던 놈이 이제 환불을 요구하니 어이가 없는 종업원이었다. 아마 종업원을 모를 거다.
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뭔지를.
“이제 어쩌냐? 정말 시내까지 다녀와야 하는 거 아냐?”
“야! 아까 여기까지 들어오는데 차로 20분 걸렸어.”
“그러게.”
진태의 말에 형성은 인상을 찡그렸다. 차로 20분이면 보통 사람은 2시간 이상 걸어야 하는 거리다. 호중에게 익힌 비술 경공을 써도 아직 초보인 형성과 진태는 20분 이상 걸릴 거리였다.
“어서 돈 달라고!”
진태는 형성에게 말하고 종업원에게 소리쳤다. 종업원은 뭐 저런 게 다 있냐는 눈으로 마지못해 돈을 내줬다.
“이제 어쩌냐? 그냥 가면 지랄하시겠지?”
“못 들었어? 에티오피아까지 가서라도 아이스커피 구해 오라는 거.”
“그러니까. 어떻게 하냐고?”
“생각하고 있잖아. 기다려 봐.”
그때 다시 진태의 경험이 떠올랐다. 진태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씩 웃었다.
그리고 진태는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했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114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가까운 다방이요.”
“다방 말씀이십니까? 아무 곳이나 안내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예.”
진태는 114에 전화를 해서 다방을 안내 받았다. 그리고 바로 전화를 했다.
뚜뚜뚜!
밤 11시가 넘어서인지 전화를 받는 곳이 없었다.
진태와 형성이 계속 카운터 앞에서 전화를 하자 종업원은 호기심이 생겼는지 둘을 쳐다봤다.
“뭐하시는 겁니까? 남의 업소 카운터 앞에서!”
“전화하잖아요.”
“이 시간에 다방 여는 곳 없습니다.”
종업원은 진태의 염장을 질렀다.
“다방 없으면 우리 좆 되거든요.”
진태가 종업원을 노려보며 말했다.
“제가 이 시간에 문 여는 다방 아는데. 아가씨도 죽이고.”
종업원은 마치 진태를 놀리는 듯 오른손으로 반납 받은 키를 흔들었다.
“뭐요? 안다고요?”
“그럼요. 알죠. 러브호텔 종업원이 티켓 다방을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참고로 5만 원입니다.”
조금 전까지는 방 값이 4만 원이었다. 그런데 지금 종업원은 5만 원을 달라고 했다. 그것도 마치 진태를 놀리는 것 같은 표정과 함께.
“정말 알죠?”
“물론입니다.”
“전화해요. 반드시 캔 커피 가지고 오던가 아니면 아이스커피 만들어서 오라고 해요.”
진태는 종업원이 흔드는 키를 낚아챘다.
“아가씨는 두 명?”
“방 하나에서 난교하는 것도 아니고…….”
종업원은 다시 키를 흔들었다. 방 두 개를 잡으면 알려 주겠다는 무한 눈빛과 함께.
“워낙 여기가 멀어서 잘 안 오려고 해서요.”
종업원의 말에 진태는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형성은 야릇한 기대감에 차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전화할까요? 말까요? 확실히 캔 커피든 아이스커피든 가지고 올 겁니다.”
이제는 정말 종업원이 진태를 놀리는 것 같았다.
“으음! 두, 두 명.”
진태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진태와 형성은 각자의 모텔 룸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방음이 꽝인지 여자들의 괴성과 신음 소리가 난무했다.
“왜 대한민국 러브호텔은 방음이 안 되는 거야!”
진태는 확 짜증이 밀려왔다.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거 몸이나 후련하게 풀자는 생각을 했다.
“예쁜 게 와야 할 텐데.”
하지만 진태와 형성에게는 이 러브호텔이 궁합이 안 맞는 모양이다. 진태의 방에 들어온 여자는 딱 봐도 40살은 되어 보였고, 형성은 그나마 30대 초반의 비교적 젊어 보이는 여자였다.
진태는 그저 길게 한숨만 쉬었다.
“커, 커피 가지고 왔어요?”
“그럼요. 호호호!”
“그, 그건 다행이네.”
진태는 인상을 찡그렸다.
“씻으셨어요?”
여자가 물었다. 물론 씻기는 벌써 씻었다. 하지만 쭈글쭈글한 주름을 보니 그게 쪼그라들어 버린 진태였다.
“커, 커피나 놓고 가요.”
진태의 말에 여자는 진태를 빤히 봤다.
“해도 10만 원, 안 해도 10만 원인데…….”
“뭐라고요?”
진태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
***
병실.
최 사부의 딸인 태희는 산소 호흡기 없이 편히 잠들어 있고, 최 사부는 그저 말없이 나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난 지친 기색으로 병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뜨악새는 여전히 병실 밖에 있었고 내가 이룬 기적을 보고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직 들어오라고 하지 않았기에 그저 복도에만 서 있는 거였다.
역시 기공으로 내 순한 기를 타인에게 주입하는 것은 상당한 데미지가 있는 시술이다.
‘가급적이면 자제를 해야겠어.’
아직도 머리가 핑 도는 것이 과도하게 헌혈은 한 것처럼 힘들었다. 어쩜 수혈이나 기를 타인에게 주입하는 거나 별 차이가 없을 거다.
혈액은 혈관을 통해 몸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거고, 기는 혈맥을 통해 몸에 무형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니 그 기능이 일맥상통한다.
그러니 과도하게 헌혈을 하거나 기를 타인에게 주입하면 지금 나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거다. 역시 뭐든 과도하게 남에게 주면 부작용이 생기는 거다.
‘참 헌혈을 하면 초코파이라도 주는데…….’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하여튼 이런 저런 잡생각을 하며 멍히 앉아 있었다.
한동안의 침묵과 같은 시간이 흘렀다.
최 사부는 자신과 자신의 딸에게 일어난 기적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혹시나 태희의 상태가 악화될까 태희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태희에게 호흡 곤란 같은 것은 없을 것이다.
지금 태희는 폐 기능 하나만은 다른 건강한 사람 누구보다 비술에 의해 강화되어 있으니 말이다. 최 사부가 태희을 보다 날 봤다.
내 널브러진 모습에 걱정이 되는 눈치다.
“괜찮으십니까?”
“약간 힘이 드네요.”
“기적을 만드셔서 그런 겁니까?”
난 최 사부를 빤히 봤다. 이럴 때는 거짓말을 약간 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것만 기억하십시오.”
“예? 제가 뭘 기억해야 합니까?”
최 사부는 날 빤히 봤다.
“제가 최 사부님 딸을 구하기 위해 제 생명의 일부분을 사용했다는 것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내 말에 최 사부는 놀라 눈이 커졌다. 딱 봐도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으나 지금 이 순간 믿지 않을 수도 없을 거다.
“쿨럭! 쿨럭!”
난 약간의 액션까지 취해 줬다.
“으음. 못 믿으시는 겁니까?”
“아, 아닙니다.”
“믿고 안 믿고는 중요하지 않지만 최 사부의 따님은 저 때문에 살아난 것은 확실합니다.”
이건 최 사부에게 부담을 주려고 일부러 한 소리다.
“명심하겠습니다.”
지금 최 사부의 표정은 내가 시키는 일이면 뭐든 할 것 같았다.
“하나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말씀하십시오.”
“제가 태희를 고쳐 줬다는 것은 비밀이어야 합니다.”
내 말에 최 사부도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믿을 것인가? 염력과 같은 힘으로 몇 번 몸을 누르고 나니 아이의 상태가 호전됐다. 이건 의학적으로 절대 설명이 되는 게 아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비밀은 꼭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예. 며칠 안에 작업을 시작할 겁니다. 그동안 아이를 돌보고 연락하면 그때 오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제가 가기 전까지 팀을 꾸려서 가겠습니다. 그런데 제 상대가 누굽니까?”
최 사부는 이제 우리 편이다.
“장 꼰대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내 말에 최 사부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장 꼰대라고 하셨습니까?”
“아는 사람입니까?”
“소문은 들었습니다. 더럽게 사기를 친다고.”
“예. 너무 더럽게 해 먹고 있습니다. 정리를 좀 해 줘야 할 것 같습니다.”
“혹시 원한이라도 엮인 관계입니까?”
“아니라고 말 할 수는 없죠. 제 소중한 사람들을 아주 힘들게 했으니 원한 관계라고 정의하는 게 좋겠군요.”
“소중한 사람이라고 하시면 누구를 지칭하는 겁니까?”
이것저것 질문이 많아지는 최 사부였다.
“제 옆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의 가족을 의미합니다.”
내 말에 최 사부는 날 빤히 봤다. 내 한 마디 한 마디가 놀랍기만 한 모양이다.
“제가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최 사부는 나와 자신의 호칭 관계를 정리하려는 듯했다. 이미 상하의 관계는 정리가 된 상태다.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저를 캡틴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보스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 캡틴!”
최 사부는 앞으로 날 캡틴으로 정의할 모양이다.
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휘청!
난 현기증이 느껴졌다. 내가 휘청거리자 최 사부가 나를 부축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질 겁니다.”
“가시려는 겁니까?”
“준비해야 할 게 많지 않습니까?”
난 최 사부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병실을 나섰다.
뜨악새는 내 창백한 얼굴에 조금은 놀란 것 같았다.
“괜찮으십니까?”
“조금 힘드네요. 제가 한 일에 놀라셨습니까?”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앞으로 놀라실 일이 많으실 겁니다. 참. 준비하라고 지시한 일은 어떻게 되었답니까?”
“김재창 사장이 땅은 다 매입했다고 했습니다.”
“빠르게 움직였네요. 가죠. 가서 이야기하죠.”
난 뜨악새의 부축을 받고 재창건설 사옥으로 향했다.
난 그렇게 최 사부의 딸을 치료해 주고 최 사부를 얻었다. 그리고 최 사부의 딸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서는 최 사부의 딸의 상태가 호전된 것을 보고 병원 자체가 들썩였다.
원래 루게릭병은 병세가 호전되거나 치료되는 경우는 절대 없었다. 그런데 루게릭병이 생기고 나서 처음으로 자연적으로 치료가 되고 있는 것이 병원에서는 놀라운 듯했다.
“폐 기능이 기적처럼 향상되었습니다.”
최 사부에게 절망을 말하던 의사가 이제 기적을 말하고 있다.
“그, 그렇습니까?”
최 사부 역시 의사의 말을 통해 자신의 딸의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것을 들으니 더욱 마음이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예.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건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의료계에 보고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속적으로 태희의 상태를 확인해서 관찰을 하면 루게릭병 치료제를 만드는 일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의사는 자신 앞에 닥친 기적을 보며 호들갑까지 떨었다.
“제 딸을 관찰 대상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최 사부는 태희를 이용해 임상 실험과 관찰을 하려는 의사의 의지를 바로 꺾어 버렸다.
“하지만 루게릭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많은 환자들을 생각해 주십시오.”
“우리 태희를 관찰해도 밝혀 낼 수 있는 것은 없을 겁니다.”
“예?”
의사는 최 사부를 빤히 봤다.
“현대 의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게 기적이지 않습니까?”
최 사부는 그렇게 말하고 은성을 떠올렸다. 이제 자신은 은성과 운명을 같이 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기적은 아무나 만드는 게 아닙니다.”
최 사부는 의사를 보며 씩 웃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