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78화
재창건설 사장실.
나와 재창, 그리고 뜨악새가 앉아 있었다.
이미 난 이번 사기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철원에 땅을 사놨다. 물론 그 땅은 농경지다.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땅이지만 그 땅을 이용해서 장 꼰대 일파를 끝장낼 생각을 했다.
그런데 장 꼰대가 스스로 지금 철원으로 왔다. 어쩌면 이건 하늘이 나를 돕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부지는 얼마나 매입을 했지?”
“5만 평 정도 매입을 했습니다.”
김재창이 대답을 했다.
“우리가 매입을 한 것은 비밀로 붙였겠지?”
“물론입니다.”
“등기 이전은?”
“아직 하지 않았습니다. 계약서만 체결한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계약을 한 거다.
“그럼 놈들이 그 땅을 사게 만들어야겠지.”
난 씩 웃었다. 사기는 상식이라는 최 사부의 말이 떠올랐다. 난 상식선에서 접근을 할 생각이다. 그리고 내가 가진 인맥을 총 동원해 볼 생각이다.
‘김용팔 회장께서 한 번만 방문을 해 주시면 되겠군. 은밀하게.’
이제 최 사부만 자신의 팀을 만들어 오면 되는 거다. 모든 무대는 내가 만들어 줘도 그 무대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할 사람은 최 사부와 그의 팀이다.
한마디로 난 멍석만 깔아 주는 거다.
장 꼰대의 더러운 돈을 탈탈 털어 파멸에 빠트릴 명석만 깔아 주면 되는 거다.
‘이제 시작이다. 내 오프닝 게임이 시작되는 거다.’
난 어금니를 깨물었다.
난 바로 김용팔 회장을 찾아갔다.
이미 김용팔 회장은 청솔제약을 인수하고 본격적으로 제약 사업과 건강 음료 사업을 시작한다는 공식 기자회견을 했다.
처음 재계의 반응은 또 김용팔 회장이 청솔제약을 인수해서 단기 차익을 노린다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대대적인 생명 공학 연구소 부지를 매입하고 생산 공장 부지까지 매입하고 더불어 청솔제약의 사옥까지 화천으로 이전하자 엄청난 이슈가 됐다.
또한 화천군은 대대적인 지지 의사를 밝히며 군청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하겠다고 공표를 했다. 화천군의 입장에서는 가만히 앉아 있는데 대박을 친 거나 다름없었다.
지자체 자립도가 형편없었던 화천군 입장에서는 청솔제약이라는 중견 회사가 자신의 소재지로 이전하는 것 하나만으로 큰 이익이 되었다.
거기다 청솔제약의 뒤에는 김 엔 동방 투자 회사가 있으니 그 파급 효과는 더 큰 것이다.
그리고 화천군에 더 힘을 실어 주는 것은 신흥 건설사인 재창건설 역시 본사 사옥을 화천군으로 이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화천군수에게 통보를 했기에 화천군수는 차기 군수 선거에 자신감까지 보였다.
그에 반해 철원군과 양구군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화천군이 그렇게 발전하는데, 그 옆에 있는 군들이 배가 아픈 것은 당연했다.
난 처음 김용팔 회장을 만나러 갔을 때처럼 빌딩 로비를 통과했다. 그런데 안내 데스크의 안내 여직원이 바뀌어 있었다. 물론 근무 시간이 다르니 그럴 수 있을 거다.
‘설마 잘렸나?’
난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난 새로운 여직원이 서 있는 안내 데스크에 섰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고객님!”
여직원은 철저하게 교육을 받았는지 환한 웃음으로 날 맞이했다. 웃는 얼굴이 보기에 좋았다. 하지만 저 웃는 웃음으로 내 속을 뒤집을지도 모른다.
“회장님을 뵙고 싶어서 왔는데요.”
“회, 회장님 말씀이십니까?”
살짝 말을 더듬는다. 저런 것은 저 여자가 날 알거나 신입 사원이라는 거다.
“예. 김용팔 회장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미팅 약속이 되어 있습니까?”
역시 똑같다. 내가 그렇게 난리를 쳤었는데도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여직원은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정확하게 수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여기까지 불만은 없다. 단지 저번처럼 전화 한 번 안 해 보고 날 잡상인 취급해서 경비를 부르지 않으면 난 저 여직원에게 앞으로 친절하게 대해 줄 생각이다.
그런데 내 앞에 서 있는 여직원의 눈치가 이상하다.
‘또 경비를 부르려고 그러나?’
난 여직원을 힐끗 봤다.
“미팅 약속이 되어 있으십니까?”
“아니요. 계신 것만 알고 왔어요.”
“그러면 회장님을 접견하시기는 힘드신 것 같습니다.”
여자는 웃으며 공손하게 말했다.
“비서실에 전화 한 번 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직접 비서실에 연락을 하셔서 미팅을 잡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전화 한 번 해 달라니까요.”
“죄송합니다. 로비에서 고객님처럼 부탁하시는 분들이 많으셔서 금지된 사항입니다.”
아마 그럴 것이다.
최고의 투자 회사인 김 엔 동방이니 나처럼 막무가내로 와서 연락해 달라고 생떼를 쓰는 사람이 많을 거다. 그래도 이 안내 여직원은 경비는 안 불렀다.
“제가 직접 연락을 해야 한다고요?”
“예.”
“그래도 한 번만 전화를 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자꾸 소란을 피우시면 저희는 어쩔 수 없이…….”
이번 안내 여직원도 저번과 다를 게 없었다. 난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그때 익숙한 얼굴의 안내 여직원이 왔다.
“무슨 일이지, 김여진 씨?”
선배 여직원이 김여진이라는 이름의 여직원에게 물었다.
“고객님께서 다짜고짜 회장님에게 연락을 해 달라고 하셔서 처리 중입니다.”
“우선 비서실에 연락해야죠.”
그래도 전 안내 여직원은 달라진 것 같았다.
“저번에도 그냥 연락을 했다가 비서실에서 혼이 났어요. 자꾸 쓸데없는 사람들에 관해서 연락을 한다고요.”
“그래요. 그럼 경비를 불러요.”
내가 알고 있는 여직원은 그렇게 말하고 힐끗 나를 봤다. 그리고 바로 그 여직원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날 잊겠는가. 아마 내가 가고 나서 호되게 당했을 거다.
“김여진 씨, 어서 비서실에 연락을 해요.”
“예?”
“어서요.”
“하지만 비서실에서는…….”
김여진의 말에 저번에 나를 상대했던 여직원이 도끼눈이 되어 김여진을 봤다.
“당신 때문에 나 잘리면 책임질 거야?”
“예?”
“어서 전화해요!”
“예. 선배님!”
김여진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했고, 선배 여직원은 최대한 공손하고 밝은 웃음을 하고 날 봤다.
“오셨습니까? 고객님!”
“안녕하세요. 저 알죠?”
“물론입니다. 제가 어떻게 고객님을 모르겠습니까?”
역시 웃는 얼굴이지만 눈에는 미움이 가득했다. 정말 내 깽판에 호되게 당한 모양이다.
“그냥 올라가도 되죠?”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저번에는 제가 좀 죄송했어요.”
난 솔직히 꽤 미안했다.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른다. 아마 갑자기 힘을 얻어서 거만해져서 그런 경거망동을 했던 것 같다.
내 갑작스러운 사과에 여직원은 멍해졌다. 아마 저 여자의 기억에는 내가 우주 최고 개싸가지로 정의되어 있을 거다.
난 정중히 짧은 묵례로 사과를 했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사과를 하는 게 옳다.
왜?
난 아직 젊으니까. 또 언제든 내가 뭔가를 잘못할 수 있는 거니까. 그때마다 고집을 부리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내가 아무리 엄청난 힘이 있어도 더는 발전이 없을 거다.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수양과 수련이라는 것을 난 요즘 깨우치고 있다.
“아, 아닙니다. 제가 그때 조금 무례했습니다. 바로 경비를 부른 거 죄송합니다.”
여직원 역시 내게 사과를 했다.
그리고 거짓 없게 밝게 웃었다. 거짓 없는 웃음을 한 여자는 무척이나 예뻐 보였다. 역시 여자는 어떤 웃음을 짓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모양이다.
난 그렇게 내가 저지른 경거망동을 사과하고 김용팔 회장실로 올라갔다.
* * *
“항상 연락을 하지 않고 오는구먼.”
김용팔 회장은 그렇게 말했지만 무척이나 즐거운 표정으로 날 반겼다. 난 김용팔 회장을 봤다. 백발과 백미의 김용팔 회장이었으나, 이미 백발 중에서 검은 머리카락이 상당히 보였다. 그리고 백미 속에서도 검은 눈썹이 꽤 보였다.
“젊어지셨네요.”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나? 내가 이 젊음을 얻기 위해 투자한 돈이 수백억이라네.”
김용팔 회장의 말에 뼈가 있었다. 뭐 틀린 말도 아니다. 지금 화천에 건축하고 있는 생명 공학 연구소 및 기타 공사만 해도 500억이 넘는 공사다.
대한민국에서 지금 화천에 짓고 있는 생명 공학 연구소보다 더 좋은 시설과 장비, 그리고 인력이 근무하는 곳은 없을 거다.
“하하하! 그런가요?”
“그래 무슨 일인가? 알다시피 공사 진행은 나보다 자네가 더 잘 알고 있을 건데.”
이 말 역시 뼈가 있는 말이다.
재창건설을 두고 하는 말일 거다.
아전인수!
난 생명 공학 연구소 설립으로 상당한 돈을 수중에 넣었다. 그것을 비꼬는 거다.
“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뒤끝이 상당하시네요.”
김용팔 회장을 보며 웃었다.
“어디 자네만 하려고.”
김용팔 회장은 아마 내가 처음 방문을 했을 때 부린 꼬장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
“아 그거요? 오늘 사과했어요. 하하하!”
“그런가?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지. 하지만 재창건설 건은 내 입장에서는 썩 유쾌하지 않은 조치였네. 남의 장단에 놀아나는 건 기분 좋지 않지.”
틀린 말도 아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김용팔 회장이다. 어린 내게 놀아나는 것이 달갑지는 않을 거다.
“죄송합니다.”
“그런 춤사위는 한 번이면 족하네.”
이건 통보다. 하지만 김용팔 회장은 내 장단에 한 번 더 놀아나야 한다.
“예. 하지만 한 번 더 춤을 춰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내 말에 김용팔 회장은 인상을 찡그렸다.
“으음.”
역시 불쾌한 모양이다. 하지만 어쩔 수는 없을 거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은 언제나 나고 앞으로도 나일 거다.
“그래, 뭔가?”
“생명 공학 연구소 부지를 변경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내 말에 김용팔 회장의 눈이 커졌다.
“뭐야? 사업이 장난인 줄 아나?”
김용팔 회장은 처음으로 내게 소리를 질렀다.
당연한 반응이다. 이미 생명 공학 연구소의 터파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갑자기 생명 공학 연구소 부지를 변경하겠다고 하니 분노한 거다.
“젊은 사람이 돈 맛을 너무 빨리 알아 버린 건가? 돈의 마력에 빠질 정도로는 안 보였는데……. 어쩔 수 없는 건가?”
김용팔 회장은 내가 재창건설로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는 것을 꼬집는 것 같았다.
“돈 좋죠.”
난 웃었다. 내 웃음에 김용팔 회장은 더욱 날 노려봤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건가?”
“제가 어떤 사람이기를 바라십니까?”
난 김용팔 회장에게 질문을 했다. 이번 질문으로 난 김 회장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해 볼 거다. 김용팔 회장의 금전적 입장에서도 생명 공학 연구소 부지 변경은 큰 이익이 될 수도 있을 거다. 그런데 분노하는 모습을 보고 김용팔 회장에게 돈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최소한 좋은 파트너가 될 거라고 봤네.”
김용팔 회장은 솔직했다.
“아마 그렇게 될 겁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표리부동하게 움직이려는 건가? 겨우 몇 십억의 이익 때문에 건설 부지 변경을 하자는 건가?”
“그렇게 소문만 나게 하시면 됩니다.”
“뭐? 소문만 낸다?”
김용팔 회장은 더 인상을 찡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