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80화
“어이없겠지만 무보수랍니다.”
“무보수? 하하하! 정말?”
“예. 그냥 취직만 시켜 주는 겁니다.”
최 사부는 대목을 봤다.
“할래? 말래?”
“빵 원이라?”
“그래! 빵 원이다.”
최 사부는 다부지게 말했다.
“해야죠. 하하하! 손가락 찍는 공사판보다야 괜찮겠죠.”
“물론이지.”
최 사부의 말에 대목은 망치를 집어던졌다.
“갑시다. 역시 꿈하고 현실하고는 안 맞나 봅니다.”
“당연하지. 아무리 봐도 넌 절 짓고 중이나 할 팔자는 아니다.”
“예. 고기랑 여자가 자꾸 생각나서 못질이 안 됩니다. 하하하!”
최 사부는 그렇게 사람들을 섭외했다.
“뭉치는?”
최 사부가 물었다.
“뭉치야 뭉치 휘두르느라 정신이 없죠.”
대목이 씩 웃었다.
“뭉치 사기 안 끊었어?”
최 사부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놈은 사기는 끊어도 계집 후리는 건 못 끊을 겁니다.”
“새끼! 제비 아니라고 할까 봐! 좆나 휘두르고 다니나 보군.”
“예.”
“걔도 데리고 와.”
“예.”
“이제 시작이다.”
“하하하! 아우! 옛날 생각난다. 킥킥킥!”
최 사부의 옆으로 꽃집과 대목이 나란히 걸었다. 마치 옛날에 본 영웅본색과 같은 분위기다.
바람이 불고 그 바람을 맞으면 최 사부의 머리카락이 날렸다.
정말 화려한 복귀인 거다.
이제 은성의 편이 된 최 사부의 복귀식이 시작되고 있었다.
같은 시간 김재창과 김용팔 회장은 철원으로 달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건가?”
“제가 어떻게 제 보스의 의중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은성 군을 보스라고 부르는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난 자네 보스한테 많은 기대를 걸었는데 지금은 약간 실망이네.”
“그 실망, 금세 회복되실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나?”
“물론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제 보스는 돈 때문에 움직이는 분은 아닙니다.”
“자네가 알고 있는 은성은 돈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그럼 뭐로 움직이지?”
“그것을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김재창을 김용팔 회장이 빤히 봤다.
“어깨가 쫙 벌어지고 눈매가 매서운 것을 보니 조폭 같군.”
“그랬습니다.”
김재창은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재창건설 사장이군.”
“예. 그렇습니다.”
“난 말일세. 자네 보스를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괴팍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 철원에 가서 내가 뭘 하면 되는 거지?”
“그냥 식사나 한 번 하시고 철새들 노는 거 잠깐 보시면 됩니다.”
“그런 일을 하려고 날 철원까지 데리고 가는 건가? 그것도 저 많은 차량들과 함께?”
“번잡하십니까?”
“그렇지. 뒤따르는 차가 열 대도 넘는군.”
“저 차 중에 청솔제약 사장님도 계십니다.”
김재창의 말에 김용팔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청솔제약 사장도 포섭을 했다는 건가?”
“제 보스께서 하셨습니다.”
“그렇겠지. 청솔까지 움직인다면 뭔가 크게 보여 줄 모양이군.”
“그런 것 같습니다.”
“내 허락 없이 청솔까지 움직인 것은 좀 괘씸하군.”
청솔제약 사장은 김재창처럼 김용팔 회장의 바지 사장이다. 그런데 바지 사장이 허락도 받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 못마땅한 김 회장이었다.
“결국은 최종 보스는 제 보스이지 않습니까.”
어쩜 김재창의 말이 진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재창의 말을 들은 김용팔 회장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게 되는 건가?”
“예. 회장님께서는 이제 삶을 정리하시는 단계시지만 제 보스께서는 미래를 준비하시는 분이지 않습니까?”
“전직 조폭치고는 말을 잘하는군.”
“주제넘었다면 죄송합니다.”
“아니. 틀린 말도 아니지. 내 딸과 같이 미래를 준비할 사람이니까.”
김용팔 회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김용팔 회장은 이번 움직임이 그저 은성의 사리사욕만 채우는 일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다.
“팀은 다 짜셨습니까?”
앞에 앉아 있는 최 사부를 보며 물었다. 아마 이렇게 온 것은 내 물음대로 팀 구성을 끝냈기 때문일 거다.
“예. 다 짰습니다.”
“예상은 하셨겠지만 손에 쥘 돈은 없을 겁니다.”
내 말에 최 사부도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상한 일입니다.”
“그 대신 좋은 직장을 제공해 드리죠.”
“그것 역시 예상했습니다.”
역시 사기의 전설이라 불리던 사람답게 상황 파악이 무척이나 잘 되는 것 같았다.
“그럼 제가 뭘 해야 합니까?”
“우선은 핸섬 보이라는 놈이 있습니다. 그놈을 꼼짝 못하게 잡아 둘 건수가 필요합니다.”
“핸섬 보이요?”
“장 꼰대의 수족입니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 자세하게 보지 못했는데 뜨악새도 합류해 있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뜨악새도 제 휘하에 있기로 했습니다.”
“완벽한 팀이 되겠군요.”
최 사부는 씩 웃었다.
“그런가요?”
“뜨악새를 움직여서 핸섬 보이의 먼지를 좀 털어 오라고 해 주십시오. 워낙 먼지가 많은 놈이라 탈탈 털 것도 없을 겁니다. 툭툭 건드리기만 해도 솔솔 나올 겁니다.”
“핸섬 보이를 이용하실 생각이십니까?”
“원래 자기 수족한테 당해야 많이 아픈 법입니다.”
맞는 말이다. 아는 놈에게 당해야 한다. 그래야 더 아픈 법이다. 그리고 완벽하게 당한다.
“그렇죠.”
난 뜨악새를 봤다.
“며칠 걸리겠습니까?”
“3일이면 됩니다. 제가 최 사부의 말처럼 툭툭 털어 오겠습니다. 툭툭!”
“준비해 주세요.”
난 다시 최 사부를 봤다.
“그리고 더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준비하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최 사부는 날 보며 씩 웃었다.
“예?”
“이미 소문을 내시고 계시다고 판단됩니다.”
난 최 사부에게 정보를 흘린 적이 없다. 하지만 최 사부는 정확하게 내가 하는 일을 파악하고 있었다. 역시 전설이란 이름은 아무에게나 붙는 게 아닌가 보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장 꼰대가 제일 잘하는 거로 후려쳐야 크게 당하는 법이니까요. 이건 땅 짚고 헤엄치기보다 더 쉽군요.”
“그러니 장 꼰대라는 놈이 제기할 수 없을 만큼 타격을 줘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전 한번 문 먹잇감은 탈탈 터는 버릇이 있습니다. 절대 제기하지 못할 겁니다.”
“좋은 버릇이네요.”
난 최 사부를 보며 씩 웃었다.
“그럼 내일쯤이면 땅값이 꽤 오르겠군요.”
“아마도.”
“그놈이 제일 잘하는 기획 부동산으로 끝장을 내겠습니다. 그럼 이제 가짜 청솔제약 사장하고 가짜 김용팔 회장 동생이 움직이면 되는 거군요.”
역시 최 사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난 최 사부의 이야기를 듣고 씩 웃었다.
“왜 웃으십니까?”
“죄송합니다. 가짜를 어디에 쓰겠습니까?”
“예? 무슨 말씀이신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최 사부의 말에 뜨악새도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진짜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진, 진짜라고요?”
“그렇습니다. 청솔제약 진짜 사장하고 김용팔 회장, 그리고 재창건설 사장까지 지금 철원으로 나들이 가셨습니다.”
뜨악새의 말에 최 사부는 눈이 커졌다.
“그, 그게 사실입니까? 어떻게 그들을 움직일 수 있으십니까?”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예?”
“전 흑막의 신이 되겠다고. 이번은 오프닝입니다. 연습이라는 거죠. 제 본 게임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난 최 회장과 그 일파를 떠올렸다. 아마 재력으로 따지면 최 회장 역시 지하 경제의 큰손답게 김용팔 회장과 비슷할 거다. 그러니 아직 내가 그들을 상대할 정도는 아닌 것이다. 그러니 차분하게 이렇게 연습 게임을 하면서 그들을 철저하게 응징하고 무너뜨릴 시나리오를 짜야 하는 거였다.
“흑, 흑막의 신!”
“그렇습니다. 저의 칼이 되어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저는 신의 칼입니다.”
최 사부가 짧게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을 움직이신 겁니까?”
최 사부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치다.
“여기가 재창건설 사장실이라는 것을 잊으셨습니까.”
“그, 그건 알지만…….”
“모두 다 저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내 말에 최 사부는 날 빤히 봤다.
“하,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잔뜩 긴장한 날 빤히 봤다.
“예. 성심껏 대답을 해 드리죠.”
“혹시 정부 소속이십니까?”
내가 엄청난 것을 자꾸 만들어 내고 있으니 정부 기관 소속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최 사부다.
“예? 하하하! 무슨 말씀이세요.”
“그렇지 않고서는 그 거물들을 어떻게 쉽게 움직일 수 있는지 이유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런가요? 하지만 김용팔 회장이 이 부실한 정부가 움직이라고 해서 움직일 분은 아닙니다. 전 현 정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아니 전 이 대한민국의 정부를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가진 자들의 방패이니까요.”
“그, 그럼 누구십니까?”
최 사부는 다시 내게 병실에 있을 때처럼 똑같이 물었다.
“전 테러리스트입니다. 저번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흑막의 신이라고.”
“테, 테러리스트라…….”
저번에도 들은 이야기지만 최 사부는 믿어지지 않는 눈치다.
“예. 법이 너무 부실합니다. 그리고 법은 강한 자의 편입니다. 전 그 법까지 응징할 겁니다. 그리고 약한 사람의 편에 설 생각입니다. 법을 넘어서는 저만의 법으로 악을 응징할 겁니다. 그 처음이 장 꼰대입니다. 그 다음은…….”
난 최 회장과 최상혁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뜨악새가 조사했던 내용은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최 회장의 힘보다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김용팔 회장과 비슷한 정도였다.
김용팔 회장이 양지에서 회사를 인수하며 부를 축척했다면 최 회장은 음지에서 서민들의 고혈을 빨아 부를 축적했다. 결국 부를 축적한 것은 동일했고 그 부의 양이 얼마인지 알 수도 없다.
파악이 되지 않는다.
그게 진정 무서운 거다.
최 사부는 날 빤히 봤다.
“그럼 전 깔아 놓은 멍석에 춤만 추면 되겠군요.”
“그게 제일 중요하죠. 배우가 명연기를 선보여야 빛이 나는 법입니다.”
“그렇죠. 보시는 분들이 감동할 수 있도록 명연기를 펼쳐 보이겠습니다.”
* * *
장 꼰대는 미숙과 함께 체어맨을 타고 미리 점찍어 놓은 농지를 보기 위해 들판에 섰다. 근사하게 차려입은 것이 누가 봐도 기업가처럼 보였다. 그리고 미숙은 그의 비서처럼 보였다.
지금은 겨울이다.
수확을 마친 농토는 철새들만 보였고 장 꼰대는 그 철새들을 보고 있었다.
“이 땅이 좋겠네.”
“정하셨어요?”
“이 정도는 돼야 사기가 되지. 사기는 상식이야!”
“기획 부동산의 달인이시니 오죽 좋은 땅이겠어요.”
“이번에는 약간 달라.”
“예?”
“기획 부동산은 맹지를 사서 찢어발기는 게 핵심이지만 이번에는 찢어진 것을 하나로 뭉치는 게 중요해.”
“그게 무슨 소리인데요?”
“돈이 철철 넘치는 놈 한 놈만 조지는 거지.”
“한 놈요?”
“그래! 한 놈. 서울에는 돈이 철철 넘치는 놈 무지 많지.”
장 꼰대는 씩 웃었다.
“들판에 철새들이 많군. 딱 우리 같네.”
“우리랑 같다고요?”
“우리도 여기 잠깐 머물고 가잖아. 저놈들처럼. 주워 먹을 거 다 주워 먹고.”
“호호호! 그러네요. 그런데 논에 아직 사람이 있네요.”
미숙은 철새들만 있던 들판에서 사람을 발견했다.
“그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