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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85화 (85/210)

흑막의 신! 85화

“그것도 따지고 보면 돈독한 우애지요.”

미숙의 말에 장 꼰대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자신의 힘을 맛보고도 만족하지 못한 것 같은 미숙의 모습에 자존심이 살짝 상하는 장 꼰대였다.

그런 장 꼰대를 미숙이 보며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밀고 당기는 것이 중요하지. 팬티 벗으라면 벗는 년은 매력이 없어.’

이 순간 미숙이 진정 다시 노리는 것은 박 도장이 아닌 장 꼰대였다. 며칠 전 장 꼰대에게 거하게 한 번 줬기에 자신을 너무 쉽게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미숙은 이렇게 박 도장을 이용해서 장 꼰대와 밀고 당기기를 하는 거였다.

“미숙! 너 회의 끝나고 좀 보자.”

“왜요?”

“따로 할 말이 있어.”

물론 그 말은 입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말이 분명할 거다.

“호호호! 요즘 자꾸 따로 보자시네.”

“하여튼 따로 보자.”

“알았어요. 호호호!”

어쩌면 이 순간 진정한 사기꾼들의 지존은 미숙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미숙의 밑밥 던지기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하시던 이야기나 계속 하시죠. 전 듣고도 도통 모르겠습니다. 장 꼰대!”

휠체어가 한없이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장 꼰대에게 물었다.

“우리도 이제 사기 치지 말고 사업 하자고. 사업! 대박 아이템이 생겼어.”

“무슨 사업 말입니까?”

“투자 사업. 부동산 투자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 여기 기획 부동산으로 땅 사서 갈기갈기 찢어서 먹으려고 온 거 아닙니까?”

김 대표의 물음에 장 꼰대는 김 대표를 봤다.

“이제 사기 인생 마무리하고 사업가로 변해 보자고.”

“그러니까요. 왜 여기 땅을 사냐고요?”

“여기가 대박 날 자리니까.”

장 꼰대가 지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는 농지 아닙니까? 왜, 농사나 지으시려고요?”

휠체어는 장 꼰대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농사는 무슨 개뿔! 믿어지지 않겠지만 여기가 대박 날 자리다.”

“왜 대박이 난다는 건데요?”

미숙도 장 꼰대를 봤다. 미숙의 질문에 장 꼰대는 한심하다는 듯 미숙을 째려봤다.

“넌 어제 나랑 같이 봐 놓고서 이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냐?”

“제가 같이 뭘 봤는데요?”

미숙은 백치미 같은 모습을 한없이 보였다. 사실 미숙은 꽃뱀 출신이다. 핸섬 보이와는 쌍벽을 이룬다고 해야 할 정도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영악한 머리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백치미를 부각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역시 사기꾼은 사기꾼이다.

“김용팔 회장.”

장 꼰대의 말에 김 대표의 눈이 커졌다.

“김용팔 회장이라고요? 그 사람이랑 이 땅이랑 관계가 있단 말입니까?”

“그래! 김 엔 동방 김용팔 회장. 그 늙은이가 어제 딱 이 땅을 보고 갔다는 거야.”

“이 철원 촌구석에 왜요?”

“왜긴. 김용팔 회장이 지금 뭐하고 있어?”

장 꼰대는 한심하다는 듯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휠체어의 대답에 장 꼰대는 답답해했다.

“너희들은 신문도 안 보냐?”

그 말에 답한 건 김 대표였다.

“청솔제약 인수하고 생명 공학 연구소 설립한다고 화천에 땅 사서 짓고 있잖아요.”

“그렇지. 역시 말이 통하는 것은 김 대표뿐이군.”

“하하하! 그렇습니까? 이거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습니다.”

“잘 들어. 그런데 그게 꼭 화천에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거야.”

“그게 뭐요?”

미숙은 분위기를 깨겠다는 듯 초를 쳤다.

“생명 공학 연구 단지!”

장 꼰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하!”

“이해가 안 되면 가서 커피나 더 타 가지고 와. 젠장! 이래서 신은 공평하다니까. 저 쌍판에 저런 뇌를 줬으니 공평하지. 젠장!”

“뭐라고요?”

“싫으면 빠지라고 했지?”

장 꼰대가 미숙을 노려봤다.

“알았어요. 입 닥치고 있을게요.”

“그래. 넌 입 닥치고 옷 벗고 있을 때가 제일 보기가 좋으니까 며칠 전처럼 입 꾹 다물고 내가 시키는 것만 해.”

장 꼰대의 말에 휠체어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박 도장은 재미있다는 듯 킥킥거렸고 미숙의 옆에 있던 김 대표가 슬쩍 미숙의 허벅지를 만지겠다고 손을 뻗었다.

“돈 내!”

“뭐?”

“만지려면 돈 내라고.”

“여자냐?”

김 대표가 인상을 찡그렸다.

“왜? 이 세상 모든 여자는 다 여자야! 세상에서 제일 먼저 생긴 직업이 뭔 줄 알아?”

이야기가 어느 순간 삼천포로 빠졌다.

“무슨 또 개 같은 소리를 하려고 그래?”

장 꼰대가 버럭 소리를 질렀고, 그 순간 미숙이 고개를 숙이며 인상을 쓰고 힐끗 휠체어를 보며 그런 표정은 보이지 말라고 눈치를 줬다.

“죄송해요. 갑자기 욱해서.”

“그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해 봐라. 세상에서 제일 먼저 생긴 직업이 뭐냐?”

“첫 번째가 도둑놈, 두 번째는 여자, 세 번째는 사기꾼.”

“왜?”

“누가 그렇게 알려 줬어요.”

“정말 그렇게 직업이 생긴 거야?”

휠체어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응. 우선 원시인들은 남의 것을 훔쳐서 먹고 그 훔친 것을 얻어먹기 위해 여자들은 가랑이를 벌렸고 가랑이를 벌린 년들을 등쳐먹으려고 사기꾼이 나왔다네.”

“하하하! 정답이네. 정답!”

박 도장이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미숙의 말에 장 꼰대가 피식 웃었다. 듣고 보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렇기는 하네.”

“그러니까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은 다 여자죠. 한 놈한테 몸 주고 얻어먹느냐? 여러 놈에게 주고 혼자 먹느냐? 이 차이잖아요.”

“야! 넌 여자면서 어떻게 여성 비하적인 발언만 골라서 하냐?”

“고고한 척하는 년들이 재수 없어서. 어떤 년이든 남자 좆 빨아먹고 사는 거잖아. 그런데 도도한 척하면서 사는 것이 재수 없어서.”

“잡소리는 그만하고. 집중 좀 하자. 집중! 요즘 하도 작업을 안 해서 집중력이 흐트러진 거야?”

“죄송합니다. 장 꼰대!”

김 대표가 담담한 표정으로 사과를 했다.

“이제부터 사업 이야기만 하자.”

“예.”

휠체어도 짧게 대답을 했다.

“하여튼 이 땅을 사야 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빚이라도 끌어와서 사야 해! 알겠어? 우리 인생 마지막 기회라면 기회다.”

“여기가 철원이야?”

“그래서요?”

미숙이 궁금하다는 듯 장 꼰대에게 물었고 나머지도 장 꼰대를 보고 있었다.

“철원이라고 철원! 화천에서 매입한 땅 바로 옆이고. 뭐 감잡히는 거 없어?”

“설마 이 땅에다가 뭘 짓는다는 건가요? 그 김용팔 회장이라는 늙은이가?”

휠체어의 말에 그제야 장 꼰대는 표정이 밝아졌다.

“그렇지. 그래! 바로 그거야.”

“에이, 어떻게 장담을 해요?”

휠체어의 말에 장 꼰대는 휠체어를 노려봤다.

“내가 장담하지. 됐냐? 나 장 꼰대야!”

사기꾼의 세상에서 쌍벽을 이루는 사람이 바로 장 꼰대와 최 사부였다. 그러니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나올 수 있는 거였다.

“아휴! 내가 자금력만 충분해도 너희들이랑 같이 안 하는 건데! 젠장!”

“에이 왜 그러세요. 호호호! 그래도 항상 같이 했는데.”

미숙이 이번에는 장 꼰대의 말에 관심이 있다는 듯 말했다.

몸으로 먹고 사는 꽃뱀처럼 보이지만 이들 중에서 장 꼰대 다음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인물이 바로 미숙일 거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잖아요.”

여전히 휠체어는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부정적인 말을 했다.

“뭐가 혹시야! 어제 김용팔 회장하고 청솔제약 사장, 그리고 재창건설 사장까지 땅 보고 갔다. 3개월 안에 매입 들어간다고 했어. 그 대단한 위인들이 이 철원까지 와서 산채 비빔밥만 먹고 갔겠어? 안 그래?”

“그렇죠. 호호호! 맞아요. 장 꼰대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나도 이제 감 잡았어요. 호호호!”

“그래서요? 어쩌자는 겁니까?”

휠체어가 다시 물었다. 이제는 휠체어의 눈에도 탐욕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도 이건 분명 대박이었다.

“우리가 먼저 매입을 하는 거지.”

장 꼰대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여기 평당 얼만데요?”

미숙이 장 꼰대에게 물었다. 장 꼰대는 지도 위에 지적도를 펴서 사람들에게 보여 줬다. 원래 기획 부동산이 전문인 장 꼰대였기에 이런 방면에는 전문가였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가 모두 총 3만5천 평.”

“3만5천 평이라고요?”

사람들은 놀라 눈이 커졌다. 땅 덩어리가 자신들이 해 먹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컸다.

“그래 3만5천 평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 공장하고 제반 시설이 충분히 들어서지.”

“그런데 왜 여기에 짓는 거래요?”

휠체어가 다시 의구심이 들어서 장 꼰대를 봤다.

“그게 중요한가?”

“꼭 그렇지는 않지만…….”

철컥!

그때 핸섬 보이가 기획 부동산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늦었습니다.”

“뭐야 넌? 단독 플레이 할 거면 꺼져!”

장 꼰대가 소리를 질렀다.

“죄송합니다.”

“죄송? 야! 개새끼야. 언제부터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로 입을 싹 닦았어?”

장 꼰대가 소리를 질렀지만 핸섬 보이는 장 꼰대를 보며 씩 웃었다.

“뭐야? 웃어? 이 새끼가!”

장 꼰대는 금방이라도 핸섬 보이에게 달려가 따귀를 때릴 것 같았다.

“잠깐만요.”

“어? 그런데 누구야?”

장 꼰대는 뒤에 있는 덩치 큰 남자를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제가 이 사람 데리고 오다가 늦었습니다.”

“무슨 소리야?”

장 꼰대는 핸섬 보이의 뒤에 있는 남자를 봤다. 덩치가 큰 것이 마치 조폭 같아 보였다. 사기꾼들은 눈이 좋다. 그리고 풍기는 분위기를 잘 감지한다.

“누굴 것 같습니까?”

“조폭 같은데?”

장 꼰대는 남자를 뚫어지게 보다가 핸섬 보이를 봤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뭐?”

“이분은 재창건설 사장 운전기사입니다.”

핸섬 보이의 말에 장 꼰대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재창건설 사장?”

“예. 원래 제가 엮던 년 사촌 동생입니다.”

“그래서?”

장 꼰대는 핸섬 보이를 봤다. 지금 핸섬 보이의 뒤에 있는 남자는 바로 최 사부가 자기 판에 짜 놓은 배우였다. 물론 전직 조폭 출신이기도 했다. 이제 최 사부의 영화가 드디어 시작되는 거였다.

“제 말 좀 들어 보십시오. 원래 건설사라는 게 다 조폭들 끼고 하는 회사이잖습니까?”

“재창건설도 그렇다?”

“예. 재창건설 김재창 사장은 원래 영등포 시장에서 놀던 조폭이랍니다.”

“그런데?”

“김용팔 회장이 스카우트를 했답니다. 바지 사장으로.”

“그래서? 뭘 말하려는 건데?”

“나머지는 이 사람한테 들으십시오.”

핸섬 보이는 조폭처럼 생긴 남자를 보며 웃었다.

“말하기 전에 3억 주는 걸로 했잖습니까?”

“3억?”

장 꼰대는 기가 막혔다.

“예. 3억입니다. 팔자를 한 번에 고칠 수 있는 정본데 3억은 주셔야 합니다.”

“팔자를 고칠 수 있는 정보?”

장 꼰대는 그렇게 말하고 등 뒤로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지적도를 접으라는 신호를 했고, 장 꼰대의 신호를 눈치챈 김 대표가 조금 전까지 보고 있던 지적도를 말아 넣었다.

“그럼요. 이런 고급 정보는 3억은 받아야 합니다.”

“들어 보지도 않고 어떻게 값을 측정해요. 호호호! 우선 커피나 한 잔 하면서 이야기하죠.”

약간 험악한 분위기를 미숙이 웃음으로 풀었다.

“그래! 차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하지.”

“그럽시다.”

조폭 같이 생긴 남자는 지도가 펼쳐진 테이블 앞의 의자에 척하고 앉았다. 그리고 힐끗 펼쳐진 지도를 보고 살짝 인상을 찡그렸고 그 모습을 장 꼰대는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미숙이 커피를 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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