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의 신-92화 (92/210)

흑막의 신! 92화

“아니. 그래도 몸이 무기인 게 얼마나 좋아! 몸이 짐인 것보다야 좋은 거잖아.”

“남자가 입을 여는 거에는 여자의 몸만 한 게 없죠. 호호호!”

미숙은 확실히 자신의 몸을 무기처럼 사용했다.

“그래서 뭐라는데?”

“평당 70만 원이 마지노선이라네요.”

“평, 평당 70?”

“왜 그렇게 놀라세요?”

“지금 안 놀라게 생겼어? 3배가 넘는 돈이야.”

핸섬 보이는 놀란 척을 했다.

“3배를 투자해서 수십 배를 벌 예정인데 재창건설은 당연히 그렇게 할 거예요.”

“그런가?”

“원래 부동산 불패잖아요.”

“그런데 정말 평당 70만 원에 살까? 난 아직도 그게 의심스러워.”

“왜, 추워요?”

춥다는 의미는 겁을 먹었냐는 사기꾼들의 은어다.

“춥지! 이렇게 덩어리가 큰 걸 보고 안 추우면 호구인 거지.”

핸섬 보이의 말에 미숙이 야릇하게 핸섬 보이를 봤다.

평상시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핸섬 보이였다.

“그래도 재창건설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에요. 화천에서 번 돈이 얼마인데.”

“그래 맞아. 대박 건설사이니 아마도 그 정도는 주겠지.”

이제 핸섬 보이도 미숙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연구소나 사옥 아파트가 들어서면 땅값이 더 올라가겠지. 그래, 맞아. 추위 탈 거 없어.”

“그럴까요?”

“아무리 작게 잡아도 3만 5천 평이 커 보이지만 아파트 몇 동 짓고 나면 끝이야.”

추위를 이겨 낸 핸섬 보이는 이제 더욱 이번 일이 돈이 된다는 생각을 미숙에게 말했다. 물론 이 역시 완벽하게 짜인 각본 중 하나였다.

“그렇죠.”

“컵에 물을 따르다가 다 차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그리고 이제 자신에게 주어진 각본을 연기할 차례였다. 그 각본은 바로 미숙의 것을 탈탈 터는 거였다.

핸섬 보이는 유리컵에 물을 따르며 미숙에게 물었다.

“어떻게 되는데요?”

“넘치지. 이렇게.”

졸졸졸!

핸섬 보이의 말처럼 유리컵은 가득 차서 테이블에 물이 흘렀다.

“부동산도 마찬가지지.”

“그럴까요?”

“물론 3배를 주고 시작을 하면 나머지는 더 오르게 되어 있어. 재창건설은 아파트 지어서 돈 벌고 땅 투기해서 돈 벌고 그러는 거지. 그래 맞아. 70도 아깝지 않을 거야.”

핸섬 보이는 씩 웃었다. 그리고 힐끗 미숙을 봤다. 미숙의 눈도 이제 점점 더 탐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럼 우리는?”

미숙이 야릇한 눈빛으로 핸섬 보이를 봤다.

“우리?”

“우리는 어떻게 할 거냐고요?”

미숙이 천천히 핸섬 보이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애무하듯 주물렀다. 뇌쇄적인 눈빛과 함께 펼쳐지는 부드러운 손놀림.

돌부처도 살살 녹을 것 같은 기술이었다. 하지만 핸섬 보이의 몸은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핸섬 보이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으음.”

“왜 그래요?”

미숙이 핸섬 보이를 봤다.

“우리 이야기나 계속하자고.”

“무슨 이야기요? 난 이게 좋은데!”

미숙이 야릇하게 웃었다.

“나중에.”

“호호호! 핸섬 보이 당신이 여자를 마다할 때가 있네요.”

물론 평상시였다면 여자에게 환장한 핸섬 보이는 미숙을 마다하지 않았을 거다.

“왜? 내가 매력이 없나?”

미숙의 말에 핸섬 보이가 미숙을 잠시 봤다.

“왜 그렇게 봐요?”

“장 꼰대 밑에서 비위를 맞추면서 생기지도 않는 오르가즘으로 가짜 소리를 지르고.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

핸섬 보이는 미숙을 자극했다. 그리고 그의 의도대로 미숙은 자극을 받은 눈빛을 보였다.

“무슨 소리예요?”

“무슨 소리인지 너도 알잖아. 그래서 이 방에 온 거고. 여자가 이놈 저놈 정액 받아먹으면 몸이 망가지는 건 나보다 네가 더 잘 알잖아.”

“그래서요?”

미숙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일이 이상하게 잘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미숙이었다.

“지금이 역전의 순간이라고 난 봐.”

“역전의 순간이라고요?”

핸섬 보이의 말에 눈빛이 빛나는 미숙이다.

사기꾼. 마약쟁이 이런 것들에게 의리 따위는 없는 거다. 장 꼰대와 김 대표, 그리고 핸섬 보이는 미숙과 박 도장을 빼고 자기끼리 먹기로 담합을 했다. 그런데 지금 핸섬 보이는 그런 장 꼰대를 배신하려고 했다. 물론 만약이라도 미숙과 공모를 해서 성공이라도 한다면 미숙에게 다시 사기를 치겠지만 말이다.

“무슨 방법이 있어요?”

미숙이 어깨를 주무르다 핸섬 보이 앞에 찰싹 달라붙어 앉았다.

“왜 이래?”

“원래 나 이러잖아. 호호호!”

“일, 일 이야기하자.”

“호호호! 알았어요. 오늘 엄청 냉정하네.”

“대박이 눈앞에 있어. 당연히 냉정해야지.”

“그래. 방법은 있나요? 장 꼰대 속이는 거 쉽지 않아요.”

“속일 필요가 있나?”

“뭐라고요?”

다 알면서도 미숙은 모른 척했다. 이 순간 핸섬 보이에게 어수룩하게 보여야 하는 미숙이었다.

“땅 가진 놈이 임자지.”

“땅 가진 년도 임자고요. 호호호!”

“하하하. 그래. 말이 통하네.”

“자금은 있어요?”

미숙의 물음에 핸섬 보이는 씩 웃었다.

“우리가 언제 돈 있어서 사기 쳤나?”

“그럼요?”

“전주만 있으면 되는 거죠.”

“누구를 전주 시킬 건데요?”

“너 빌딩 있고 나 상가 있잖아.”

핸섬 보이의 말에 미숙이 인상을 찡그렸다. 미숙이 가지고 있는 빌딩은 자신의 노후 자금과 같은 거였다. 그리고 돌도 지나지 않은 자신의 딸에게 물려 줄 유일한 유산이었다. 단 한 번도 건드려 보지 않는, 말 그대로 노후의 안락함을 위한 자금이었다.

“그게 왜요?”

“그거 담보 잡아서 급전 당기면 못해도 70억은 된다.”

“그렇기는 하죠. 하지만 그건 끝까지 건들지 않으려고 준비해 둔 거예요.”

미숙의 말에 핸섬 보이는 피식 웃었다.

“안락한 노후 자금을 위해?”

“그럼요. 늙어서 박카스 아줌마는 할 수 없잖아요. 제가 가족이 있어요, 자식이 있어요, 번듯한 남편이 있어요? 믿는 건 그 빌딩 하나라고요.”

물론 이 역시 거짓말이다.

그리고 미숙이 가지고 있다는 그 빌딩도 사기를 쳐서 장만한 거였다. 물론 빌딩을 빼앗긴 사람은 최 사부의 제자였던 꽃집 남자였다.

“이번 일만 잘되면 빌딩에, 남편에, 그리고 현금으로 백 억 이상 가지고 있는 준재벌이 되는 거야.”

핸섬 보이는 미숙의 탐욕을 자극했다.

“남편이요?”

미숙의 질문에 핸섬 보이는 씩 웃었다.

“어떻게 하자는 건데요?”

“우선 알 박기를 하는 거야! 그리고 3만 5천 평 주변의 땅을 사는 거지.”

핸섬 보이의 말에 미숙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주변에? 그게 언제 개발이 될지 알고요?”

“재창건설이야. 그리고 김용팔 회장이고. 그곳에 연구소랑 사원 아파트가 들어서면 철원 지역 땅값은 그냥 오르게 되어 있어. 따지고 보면 철원 서울에서 얼마 안 멀어.”

“정말 그럴까요?”

“장사 하루 이틀 해?”

“그건 아니죠. 난 그냥 우리가 3만 5천 평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장 꼰대를 우리가 어떻게 이겨?”

핸섬 보이의 말에 미숙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장 꼰대는 아마 우릴 끼워 주지도 않을 거야.”

핸섬 보이의 말에 미숙의 눈이 커졌다.

“뭐요? 내가 그 새끼 밑에서 얼마나 헐떡거렸는데 날 쏙 뺀다는 거예요?”

“우리 내기할까?”

“으음.”

미숙은 긍정의 신음을 했다. 물론 이미 알고 있는 일이지만 말이다.

“미숙이!”

“왜요?”

약간 목소리가 앙칼지다.

“땅 짚고 헤엄쳐 봤어?”

“무슨 소리예요?”

“지금 그거 하자고. 하하하!”

핸섬 보이는 그렇게 미숙도 깡통의 길로 인도하고 있었다.

‘일이 술술 풀리네. 호호호! 이번만 잘되면 이 바닥도 쫑이다. 쫑!’

물론 미숙은 지금 은퇴를 해도 충분히 먹고 살 능력이 있었다.

꽃집 남자에게서 사기 친 신길동 빌딩이 있으니 말이다.

“그럼 돈 구해와야겠네?”

“그래야지.”

“혹시 사채 하는 것들 아는 사람 있어요?”

이걸 핸섬 보이가 노린 거고, 또 최 사부가 지시한 거였다.

“아는 사람이 있지.”

“사채면 이자가 엄청 많을 건데…….”

“한 방이면 끝이야 끝!”

“호호호! 그렇죠.”

탐욕이 이렇게 사기꾼의 눈도 멀게 만들고 있었다.

“아는 사람 어디에 있죠?”

“서울!”

“가요. 서울!”

미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당장?”

핸섬 보이는 최 사부가 지시한 대로 일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조금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럼요. 따지고 보면 철원에서 서울은 금방이잖아요.”

“그렇지.”

“가요. 자금이 있어야지 땅을 사죠.”

그렇게 핸섬 보이와 미숙은 장 꼰대의 눈을 피해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최 사부가 고용한 배우(?)에게 꽃집 남자로부터 사기를 쳐서 얻은 빌딩을 담보 잡히고 40억의 급전을 뽑았다.

“개 같은 년! 80억짜리 빌딩을 담보로 40억으로 후려치네.”

돈을 빌려서 나오는 미숙이 오만 인상을 썼다.

“이번 일만 잘되면 지금 담보로 맡긴 빌딩 10개도 더 산다.”

“그러니까 이런 개 같은 짓을 하는 거죠.”

“잘해 보자고.”

“오늘 기분도 좋은데 한 번 줄까?”

미숙이 핸섬 보이에게 야릇한 눈빛으로 말했다.

“가자! 장 꼰대가 우리 서울 온 거 알면 이상하게 생각을 할 거야.”

“어떻게든 돈 구해 오라고 한 건 장 꼰대예요.”

“그렇기는 해도 우리가 구한 자금이 좀 많잖아.”

둘이 합쳐서 60억이었다. 지금 철원이라는 작은 군청 소재지에 자그마치 200억 가까운 현금이 몰려오고 있었다.

* * *

재창건설 사무실.

“아예 활활 태우셨더군요.”

최 사부는 나를 보며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야 할 것 같아서요. 대충 하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버를 좀 한 거지요.”

내 말에 최 사부는 씩 웃었다.

“잘하셨습니다. 마포 불곰의 저택이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장 꼰대가 조폭이라도 끌고 간 건가요?”

“그래야죠. 그래야 제 계획대로 되는 겁니다.”

“내 깽판도 그럼 최 사부의 계획에 들어 있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최 사부는 그렇다고 대답을 하면 내가 이용당했다는 생각을 할까 죄송하다는 말로 마무리를 했다.

“그렇군요. 저 역시 영화배우가 된 거네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래도 호러 액션 하나 잘 찍었어요. 이제 어떻게 하면 되죠?”

내 물음에 최 사부가 날 빤히 봤다.

“어떻게 하면 될 것 같습니까?”

“저를 가르치려고 하시는 겁니까?”

이건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진정 내가 악을 응징하는 테러리스트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알아 둬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부하에게 부림을 당하는 캡틴은 보기가 썩 좋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그럼 캡틴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하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게 최선책이다. 괜히 아는 척을 하면 망신만 당하는 법이다.

부하에게 모르는 것을 시인하고 자문을 구하는 것도 진정한 리더가 갖춰야 할 하나의 모습일 거다.

“예. 제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경청하죠.”

순간 재창건설 사장실 분위기가 정말 진지해졌다. 이건 최 사부가 가지고 있는 사기 기술을 전수해 주는 거나 다름없다.

“모든 물건은 사고팔고 하면서 가격이 오르는 법입니다.”

“그건 상식이죠.”

내 말에 최 사부는 날 보며 피식 웃었다.

“또 잊으셨군요.”

“예?”

“사기는 상식입니다.”

난 최 사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잊지 않겠습니다.”

어쩜 최 사부의 말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상식으로 통한다. 그것을 넘어서는 순간 비상식이 되고 파멸로 달리는 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