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94화
“어떻게 하는지 알지?”
최 사부의 말에 딱 봐도 농사꾼같이 생긴 남자가 피식 웃었다.
“배우 생활 하루 이틀입니까?”
“초짜도 아니니까 잘할 거라고 믿어.”
“출연료나 잘 챙겨 주십시오. 하하하!”
최 사부는 철원에 오자마자 내가 준비한 것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놀라움도 잠시. 이렇게 배우들을 배치하며 일일이 지시를 했다.
난 사실 원래 땅 주인이었던 이곳 사람들의 집까지 모두 빌려 놨다. 물론 진짜 땅 주인이었던 사람들은 내가 비행기를 태워서 제주도 단체 여행을 떠나보낸 상태였다.
한마디로 이 마을에 살던 땅의 원 주인들은 지금 아무도 없다. 마을 사람들이 통째로 여행을 떠난 거고, 그곳에 최 사부의 사기 세트장을 내가 미리 만들어 놓은 거였다.
그렇게 이 마을 전체가 사기를 위한 세트장이 되었고 지나가는 개새끼 한 마리도 다 사기를 위한 설정이 되어 버린 거였다.
“장 꼰대야! 장 꼰대. 수술할 사람이 장 꼰대라고. 그러니 긴장을 해.”
“저희도 최 사부의 배우들입니다. 어디 가도 뒤지는 연기력 아닌 거 아시잖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말투가 영 그러네.”
최 사부의 말에 최 사부와 이야기를 하던 중년의 남자가 씩 웃었다.
“제가 그랬드래요?”
“그래. 그래야지. 하여튼 이 마을이 개발된다는 것은 이미 소문이 쫙 난 상태야.”
“그야 잘 알지요.”
“그럼 어떻게 해야겠어?”
“끝까지 배를 튕겨야지요. 장사 하루 이틀 하는 거 아니잖아요.”
“맞아. 그렇게 하는 거야!”
최 사부는 이런저런 지시를 하고 나서 날 봤다.
“소질이 출중하십니다. 스케일도 크시고.”
“예?”
“이런 것을 준비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와서 일일이 준비해야 할 줄 알았는데 수고를 덜었습니다. 캡틴!”
물론 이 모든 준비를 한 것은 나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사기꾼 기질이 충만하다.
지지지직! 지지지직!
모토로라 무전기에서 지지직 소리가 났다.
-목표 떴다. 5분 후에 도착한다. 그리고 복부인들은 10분 후에 출발한다.
최 사부가 무전기를 받고 씩 웃었다.
“호구들이 오신단다. 준비들 해.”
최 사부는 그렇게 말하고 날 봤다. 아마 이 대한민국에서 장 꼰대를 호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나와 최 사부뿐일 것이다. 그만큼 나와 최 사부는 이번 일에 자신이 있었다.
“저희도 들어가시죠.”
최 사부는 신고 있던 신발까지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나 역시 마찬가지다. 방 안에 들어가 있으면 밖에서 하는 소리를 다 들을 수가 있다.
“신발까지 숨기실 필요 있나요?”
“숨겨서 나쁠 것은 없죠. 그리고 이런 신발을 신는 시골 사람은 없죠.”
최 사부는 날 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자마자 장롱에서 이불을 꺼내 폈다. 그리고 입고 있던 양복을 벗어 장롱에 걸고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고 누웠다.
“이건 또 뭡니까?”
“앉아서 듣는 것보다 누워서 듣는 게 더 편하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철두철미하게 행동을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나다.
“그럼 전 어떻게 하면 됩니까?”
“캡틴이야 그냥 TV나 보시면 됩니다. 캡틴께서 다 준비해 놓으신 세트장에서 배우들이 이제 명연기를 할 겁니다.”
“그렇군요. 하하하!”
멍멍멍! 멍멍멍!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드디어 호구들이 온 거다. 장 꼰대는 이곳이 덫인 줄도 모르고 당당히 들어서는 것 같았다.
“계십니까? 누구 없습니까?”
휠체어가 집주인을 부르는 것 같았다. 드디어 본 막이 올랐다.
“누구 없습니까?”
휠체어가 다시 주인을 찾았다. 그러자 부엌에서 남자 하나가 소주 한 병과 묵은지를 꺼내 나왔다.
“누구드래요?”
방 안에서 듣고 있는 나는 정말 이 마을 주민과 싱크율 100퍼센트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조금 전 최 사부와 이야기를 할 때는 분명 저 남자는 서울말을 썼다. 그런데 장 꼰대를 만나는 순간 강원도 사투리로 변해 있었다.
“여기 주인이십니까?”
“그런데 무슨 일이드래요?”
장 꼰대는 힐끗 남자를 살폈다. 허름한 장화를 신고 있었고 흙이 묻어 있었다. 또 손톱에는 조금 전까지 일을 하고 왔는지 흙이 끼여 있는 것이 장 꼰대의 눈에 들어왔다.
“왜 그렇게 사람을 보드래요?”
“아, 아닙니다.”
“혹시 저희들에게 땅 파실 생각 없으십니까?”
장 꼰대는 대놓고 물었고, 최 사부의 배우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왜 이렇게 요즘 땅 사겠다는 사람이 많더래요? 어제도 왔더래요. 우리 동내가 개발이 되긴 되나 보네. 이렇게 사람들이 마이 모이는 것을 보니.”
남자의 말에 장 꼰대는 인상을 찡그렸다.
“여자였습니까?”
“그렇더래요.”
남자의 말에 장 꼰대는 미숙을 떠올렸다.
“키가 165센티미터 정도 되고 눈이 크고 호리호리한 여자였습니까?”
장 꼰대의 물음에 남자는 장 꼰대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대청마루에 앉았다.
“아닙니까?”
“아니드래요? 저기 오네요.”
남자는 소주를 오봉에 따라 들이키며 손가락으로 집 마당으로 들어오는 여자 둘을 가리켰다. 남자가 가리킨 여자를 보고 장 꼰대는 인상을 찡그렸다.
“호호호! 사장님 결정했어요?”
“땅 파먹고 사는 게 사장은 무슨 사장이드래요. 나는 사장 소리 사모님한테 처음 듣는 거래요.”
남자는 인상을 찡그렸다.
“이제 땅 파시고 사장 하시면 되죠. 호호호!”
딱 봐도 복부인 스타일의 여자다. 최 사부는 그렇게 상식선에 벗어나지 않는 사람들을 캐스팅했다. 난 살짝 열린 문으로 숨을 죽이며 밖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복부인 여자가 힐끗 장 꼰대를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저 사람 누구예요?”
“저분도 저한테 땅 팔라네요.”
“예?”
남자의 말에 복부인처럼 생긴 여자가 장 꼰대를 노려봤다.
장 꼰대 역시 정보가 샌 것 같다는 생각에 어금니를 꽉 깨물며 여자를 노려봤다. 그리고 재창건설 운전기사를 떠올렸다.
‘그놈이 나한테 오기 전에 동네방네 다 떠벌린 모양이군. 젠장!’
“남의 판에 초를 치실 건가요?”
복부인 여자가 장 꼰대를 보며 물었다. 사납게 째려보는 것이 금방이라도 언성을 높이며 싸울 것 같았다.
“누구 판인지는 끝나 봐야 알죠. 먼저 이야기하세요.”
장 꼰대는 살짝 뒤로 물러나 남자가 앉아 있는 대청마루에 앉아서 남자가 마시던 오봉에 소주를 따라 한 사발 들이켰다.
“한 잔 드릴까요?”
“하하하! 좋죠.”
장 꼰대는 깡소주 사발을 들이켰다. 물론 이 소주도 장 꼰대가 아주 조금은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기 위해 준비한 소품이었다.
“술도 주거니 받거나 하고 마셔야죠. 캭! 깡 소주 오랜만이네.”
장 꼰대는 묵은지를 쭉 찢어서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말씀들 나누세요. 난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거니까.”
장 꼰대는 복부인을 보며 씩 웃었다.
‘시발 새끼! 우리 말고 여기저기에 다 흘리고 다녔군. 젠장!’
장 꼰대는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자신을 찾아왔던 재창건설 사장 차 기사였던 놈을 욕했다. 이렇게 일이 착착 진행됐다.
장 꼰대는 복부인과 주인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런 면에서 관록이 보였다. 사기도 이래서 아무나 치는 것이 아닌 거다.
분명 장 꼰대는 초조하고 급할 거다. 하지만 기다릴 줄도 알았다. 난 온통 장 꼰대가 어떻게 나올지에 대해 집중했다.
그리고 힐끗 최 사부를 봤다. 최 사부는 아예 잠을 자는 것 같다. 난 최 사부를 보고 웃었다. 지금 저기 태평하게 잠을 자는 최 사부가 어쩜 장 꼰대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은 확실했다.
‘대단한 배포네.’
난 다시 장 꼰대에게 집중했다.
“여기 땅값이 평당 15만이던데.”
복부인은 이곳 땅값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 올랐더래요? 예전에는 한 5만 원 정도 하는 것 같았는데. 올해 초에 오르고 한두 달 전에 급하게 오르고 그랬더래요. 오르면 뭐하드래요. 살 사람도 없는데.”
“호호호! 제가 사려고 왔잖아요.”
“서울 사람이 이런 농지를 사서 뭐하시게요? 하여튼 오르긴 많이 올랐더래요.”
주인 남자는 마치 남의 이야기하는 듯했다. 딱 봐도 땅을 팔 마음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많이 올랐죠. 호호호! 거기다가 내가 딱 5만 원 더 얹어서 줄게. 나한테 팔아요. 그러면 작년에 비해서 4배 더 오른 거네요. 저한테 땅 팔면 벤츠에 삽 넣고 다닐 수 있겠네요. 호호호!”
“5만 원이나요?”
주인 남자는 살짝 눈이 커졌다.
“원래 내 꿈이 이런 곳에서 전원주택 지어서 사는 거라서 꼭 사고 싶네요.”
복부인의 말에 장 꼰대는 아무 말 없이 오봉에 다시 소주를 따라서 마셨다. 역시 여유롭다. 하지만 뒤에 있는 김 대표와 휠체어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장 선생님!”
“왜?”
“어떻게 좀 해 보세요.”
“뭘 어떻게 해?”
“저러다가 저 여자한테 팔겠어요. 조금 전에 눈 커지는 거 봤죠?”
“뭘 그렇게 급해?”
“그래도 어떻게 해 보셔야죠. 여기까지 왔는데 허탕 칠 수는 없잖아요.”
가만히 있던 김 대표도 나섰다.
“답답하면 가서 소주나 좀 더 사와.”
장 꼰대는 휠체어에게 술이나 더 사오라고 했다.
“하지만…….”
“원래 남의 흥정 깨는 거 아니다. 기다렸다가 우리도 흥정하면 되는 거야.”
장 꼰대의 말에 주인 남자는 힐끗 장 꼰대를 봤고, 복부인 여자는 장 꼰대를 노려봤다.
“말은 흥정 안 깬다면서 지금 깨고 있네요.”
“거절하지 못할 만큼을 제시하면 되는 거 아닌가?”
“뭐라고요? 이 사람이?”
“어서 어서 흥정이나 하세요. 난 그동안 소주나 마실 테니까.”
장 꼰대가 휠체어를 봤다.
“뭐해? 어서 소주나 더 사오지 않고.”
“알겠습니다.”
휠체어는 마지못해 대답을 하고 사라졌다.
“그럼 그쪽은 더 주시는 거드래요?”
주인 남자가 장 꼰대를 봤다.
“우선 저 여자분이랑 이야기 마저 하십시오.”
장 꼰대는 여유를 부렸다.
“그래요. 저랑 먼저 이야기를 해요.”
여자가 다급한 듯 말했다.
“알았드래요.”
주인 남자는 다시 복부인을 봤다.
“5만 원이면 2천 평이고 1억을 더 드리는 거예요.”
“1억이나요?”
다시 주인 남자의 눈이 커졌다.
“꼭 여기서 농사짓고 사실 필요는 없잖아요.”
“그렇기는 하죠.”
주인 남자도 복부인 여자의 말에 귀가 솔깃한 것 같았다.
“이사비하고 이것저것 빼면 그것도 얼마 안 되지.”
“뭐라고 하셨더래요?”
살짝 장 꼰대가 끼어들었다.
“그렇다는 겁니다. 철원 말고 화천도 땅값이 다섯 배는 올랐고 양구도 꽤나 올랐고, 어디서 땅을 사서 다시 농사를 하겠어요?”
지금 이 남자가 살고 있는 곳은 농지에 붙어 있는 농가 주택이다. 땅을 팔면 당연히 이사까지 해야 하는 거였다.
“이봐요.”
복부인이 장 꼰대를 노려봤다.
“왜요?”
“자꾸 훼방 놓으실 거예요?”
“흥정도 또박또박 하라고.”
“뭐요?”
“무슨 정보를 듣고 왔는지 모르겠는데. 배는 불러야지. 그래야 상도덕이 있는 거지. 촌에 산다고 촌사람이라고 무시하면 안 되지. 어디서 사기 아닌 사기를 치려고 해?”
장 꼰대가 복부인 여자를 노려봤다.
사기 아닌 사기?
평생 사기를 치며 산 장 꼰대의 입에서 나올 소리는 분명 아니었다.
“배, 배라고 했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