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95화
“난 딱 배를 드립니다.”
“배면, 배면 2, 2천 평이니까 6억이드래요.”
“이 집에 이사비까지 포함해서 6억은 드려야죠.”
장 꼰대는 복부인을 보며 씩 웃었다.
“6, 6억이라고요?”
주인 남자는 놀라 소주를 들이키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소주는 장 꼰대가 다 마신 상태였다.
“쩝쩝! 술, 술이 없네.”
“금방 가지고 올 겁니다. 흥정 대충 끝난 것 같은데 나랑 술이나 마시죠.”
“정, 정말 6억 주는 거래요?”
“예. 6억 드립니다.”
장 꼰대는 주인 남자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복부인은 장 꼰대를 잡아먹을 것 같은 눈빛으로 노려봤다.
난 정말 주인 남자와 복부인 역할을 한 여자가 연기를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배우해도 되겠네.’
난 씩 웃었다.
“더 쳐야지.”
최 사부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나직이 말했다.
“정말 이 사람 못 쓰겠네.”
복부인으로 분한 여자가 장 꼰대를 노려봤다.
“왜? 더 불러 보시게?”
“못 부를 것도 없죠.”
장 꼰대는 6억을 자신이 부르면 물러날 줄 알았다. 그런데 여자가 더 부를 것 같은 눈빛을 보이자 속으로는 뜨끔했으나 표정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자자! 싸우시지 말고 한 잔 하드래요.”
땅주인으로 분한 남자가 장 꼰대에게 술을 권하는 것 같았다.
“그러죠.”
장 꼰대는 고봉으로 된 술을 들이켰다.
“난 그럼 7억 드리죠.”
“7, 7억요? 정, 정말 7억 주시는 거래요?”
땅주인으로 분한 남자는 기겁해 숨이 턱 막히는 듯 말했다.
* * *
시골집 평상.
“젠장! 무슨 경매도 아니고. 좋습니다. 난 8억에 이사 비용까지 해서 2천 더 드립니다. 나는 그게 내가 가진 거 전부라서 더는 못 드립니다. 이봐요. 복부인 마나님! 더 치세요. 난 그럼 뒤질 테니까.”
장 꼰대는 복부인을 무섭게 내려 봤다.
“당신 미쳤어?”
“왜 미쳐? 당신 아는 이야기 나도 알고, 내가 아는 이야기 당신도 알지 않나?”
“씨발!”
복부인이 무섭게 장 꼰대를 노려봤다.
“뒤질 건가?”
“누가?”
“정말 8억에 2천 더 주는 거래요?”
“드, 드리죠. 드려야죠.”
장 꼰대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이러다가 자금이 바닥이 나겠어. 젠장!’
이렇게 장 꼰대는 자신이 목표로 한 땅 중 2천 평을 손에 넣는 듯했다. 장 꼰대는 지금 아무것도 모를 거다. 자신이 땅을 사면 살수록 손해는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것을.
‘늪이다. 네놈이 빠져 죽을 늪!’
난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때 최 사부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살짝 내게 속삭였다.
“아직 한 방 더 남았습니다.”
“예?”
“그냥 물러나면 복부인이 아니죠.”
최 사부는 내게 작게 속삭이면 웃었다.
“호호호! 어디서 굴러먹었는지 모르겠는데 싸가지가 없네.”
복부인 여자는 장 꼰대를 노려봤다.
“뭐라고?”
“돈 많다 이거지?”
“있을 만큼 있지.”
“좋아.”
복부인은 주인 남자를 봤다.
“난 거기다가 이사비 1억 더 붙여서 줄 테니까. 나한테 파세요.”
주인 남자는 여자의 말에 눈이 더욱 커졌다.
“정, 정말이드래요?”
어쩜 이게 정말 현실이면 저 주인 남자는 로또를 맞은 셈이다.
“돈질 하겠다는 거네.”
“원래 돈질이 내 주특기야.”
복부인과 장 꼰대는 서로를 노려봤다.
“하하하! 그래, 돈질. 나도 좀 하지.”
장 꼰대는 남자를 봤다.
“소주 값으로 1억 더 내지. 됐습니까?”
그때 휠체어가 소주를 사들고 들어섰다.
“여기 있습니다.”
“소, 소주 값으로 1억 더 주시는 거드래요? 확실하드래요?”
“예. 10억입니다. 됐습니까?”
장 꼰대는 자신 있게 오봉을 남자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복부인 여자는 장 꼰대를 보며 씩씩거렸다. 저런 씩씩거림은 포기를 의미한다는 것을 장 꼰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한잔 쭉 드시고 저희 사무실에 가서 계약금하고 잔금까지 모두 받아서 가십시오.”
“오, 오늘 다 주는 거드래요?”
이보다 더 파격적인 조건은 없을 거다.
“물론입니다.”
장 꼰대는 복부인을 보며 씩 웃었다.
겉으로 보이는 승리.
하지만 그건 장 꼰대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완전한 패배의 전초였다.
지금 장 꼰대는 웃고 있었다. 하지만 머릿속은 완벽하게 복잡했다.
‘시발! 겨우 1/15을 먹었는데 10억이나 드네. 젠장! 정말 이곳이 대박 땅이 되는 건 확실해. 저렇게 파리가 끼는 것을 봐서.’
장 꼰대는 머릿속으로 성질을 부리면서도 이곳이 대박이 될 것을 확신했다.
같은 시간, 미숙도 장 꼰대가 목표로 한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그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곳을 조심스럽게 매입해 들어갔고, 미숙 역시 이번 일로 자신의 인생이 완벽하게 변할 거라고 확신했다.
나와 최 사부, 그리고 호중은 새롭게 마련한 공인중개소 사무실에 앉아 다음 행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장 꼰대가 매입한 양이 얼마죠?”
난 최 사부를 봤다.
“지금까지 매입한 땅은 60퍼센트 정도 됩니다.”
“금액으로는 얼마나 됩니까?”
“92억입니다.”
“아마 시세보다 6배가 훨씬 넘는 것 같은데요?”
내 물음에 최 사부는 씩 웃었다.
“예. 맞습니다.”
“역시 탐욕이 무섭군요.”
난 인상을 찡그렸다.
“아마 최초 50억을 잃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매달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최 사부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 여자는요?”
“그년도 마찬가지입니다. 핸섬 보이야 우리가 주는 돈으로 땅을 매입하니 손해는 없겠지만 미숙이 년은 30억 정도는 꼴아박은 것 같습니다.”
예전 미숙에게 사기를 당했던 꽃집 남자가 이빨을 갈며 말했다.
“그럼 둘이 가지고 있는 자금이 얼마 정도 남았죠?”
“장 꼰대 쪽이 40억 정도, 미숙은 20억 정도 예상됩니다.”
꽃집 남자가 내게 보고를 하듯 말했다.
“아직도 한창 남았군요.”
“아닙니다. 그 이상일 겁니다.”
최 사부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예?”
“아무리 적게 잡아도 아직 장 꼰대의 수중에는 100억 정도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미숙도 50억 이상은 있을 겁니다.”
최 사부의 말에 난 눈이 커졌다.
“그들이 사기꾼입니까? 재벌입니까?”
“기업형 사기꾼이라고 해 두죠.”
“아무리 그래도 아직도 그렇게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내 말에 최 사부가 피식 웃었다.
“제가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그만큼 이상이 남은 것은 확실합니다.”
“무슨 근거로요?”
“민족성이죠.”
“민족성요?”
최 사부의 말이 난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국 사람은 말입니다. 절대 올인이 없습니다.”
“그것 무슨 말씀이세요?”
“한국 사람은 무엇을 하든 처음에 모든 것을 걸지 않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호주머니를 차고 꺼내 놓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걸 누군가는 절약 정신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또 쪼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요?”
“도박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내놓고 도박을 하는 한국 사람은 없습니다. 얼마 중에 얼마 또 얼마 중에 얼마 이런 식으로 도박을 하죠.”
“그렇다고요?”
나도 최 사부의 말이 이제야 살짝 이해가 됐다.
“예. 보통 이것만 잃으면 그만한다, 이것만 잃으면 손 턴다, 이런 마음으로 뭐든 합니다. 이익보다 손해를 봤을 때를 먼저 염두에 두고 움직인다는 말입니다.”
“결국 그런 사람은 다 잃게 되죠.”
최 사부는 날 보며 웃었다. 아마 나처럼 이해력 빠르고 눈치 빠른 제자도 없었을 거다.
“그렇습니다. 한 번 크게 배팅해 보지도 못하고 가랑비에 옷이 젖듯 다 잃게 되는 겁니다.”
“그럼 장 꼰대도 아직 숨기고 있는 히든카드가 있다는 건가요?”
최 사부가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은 바로 이걸 거다.
“물론입니다.”
“지금까지 혼자 여자도 없이 자기 새끼도 없이 살았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으음.”
난 최 사부를 빤히 봤다.
“그럼?”
“기다려 보면 알 겁니다.”
그러고 보니 며칠째 뜨악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부동산 공인중개소 사무실에 잘 차려 입은 뜨악새가 손님인 척하며 들어왔다.
그리고 최 사부는 누군가 보고 있다는 듯 뜨악새를 정중히 맞이했다.
“매물 좋은 거 있어요?”
“요즘 이곳이 대박 날 자리라고 난리가 났습니다.”
“오 그래요? 이런 촌구석에 그것도 군사 접경 지역이 무슨 대박이 난다고 난리입니까?”
뜨악새의 물음에 최 사부는 뜨악새에게 우선 자리를 권했다.
“우선 앉으십시오.”
“그러죠.”
뜨악새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살짝 눈인사를 했다.
“어디 다녀오시는 겁니까?”
난 뜨악새에게 물었다.
“최 사부께서 부탁한 것이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부탁요?”
“예. 장 꼰대의 히든카드가 뭔지 알아보라고 제가 시켰습니다.”
“으음.”
난 최 사부와 뜨악새를 번갈아 봤다.
“왜 그러십니까?”
뜨악새는 내게 이렇게 물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최 사부는 내게 자신들이 뭘 잘못했는지 바로 파악을 하고 정중히 사과를 했다.
“한 번은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그제야 뜨악새도 무슨 이유인지 알았다는 듯 어금니를 깨물었다.
“저 역시 두 번 다시는 캡틴의 지시가 없는 일에는 움직이지 않겠습니다.”
“아닙니다. 움직일 때는 움직여야 할 겁니다. 하지만 보고가 우선입니다. 특히 다른 분들이 부탁을 하는 일은 더욱 저에게 보고를 해야 할 겁니다.”
“저희들 못 믿으시는 겁니까?”
최 사부가 나를 보며 물었다.
“믿습니다.”
“그런데 왜?”
“믿기 때문에 두렵습니다. 믿기에 그대들이 잘못을 하면 제 분노가 하늘을 찌를 것 같아 두렵습니다. 배신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당할 때 가장 아픈 법입니다.”
내 말에 최 사부는 과연 저 어린 내가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눈빛을 보였다.
“알겠습니다.”
최 사부는 짧게 말했다.
질책은 이 정도까지 하면 된다. 이제는 뜨악새가 알아온 것에 대해 보고를 들어야 할 때다.
“그래. 장 꼰대의 히든카드가 뭡니까?”
“놀라지 마십시오.”
“예? 제가 놀랄 만큼 엄청난 겁니까?”
“그렇습니다.”
“뭐죠? 이제 놀랄 준비가 됐으니 말해 보세요.”
“장 꼰대가 때로는 장 선생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뜨악새는 그렇게 말하고 품에서 사진 몇 장을 꺼냈다.
“이, 이게 뭡니까?”
“장 꼰대가 운영하는 아동 및 청소년 복지 시설 부지입니다. 또 자식이 없는 노인들도 같이 돌보는 시설입니다. 특히 복지 시설에서 도움을 받는 노인들 중 자식이 없는 분들이 많습니다.”
“예?”
난 뜨악새의 말에 눈이 커졌다. 사기꾼과 복지 시설은 매치가 잘 되지 않았다.
“저도 놀랐습니다.”
“설마 장 꼰대가 사기 친 돈으로 불우한 청소년이나 아동을 돕는다는 말을 하시는 것은 아니겠죠.”
“결국 같은 겁니다.”
뜨악새의 말에 난 인상을 찡그렸다.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