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97화
강원도 가평에 위치한 장 꼰대가 소유한 복지 시설.
장 꼰대와 최 사부, 그리고 최 사부의 뒤에 졸졸 따라다니는 나는 장 꼰대의 설명을 들으며 복지 시설을 둘러보고 있었다. 물론 장 꼰대는 판매자의 입장이고 최 사부는 구매자로 만난 거였다.
저렇게 최 사부가 직접 나서도 될지 의문이었으나 최 사부는 무척이나 여유가 있어 보였다.
“이쪽입니다. 이쪽!”
이 둘을 연결해 준 공인중개사가 어떻게든 최 사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헤헤거렸다.
“둘러보시면 알겠지만 이만한 곳도 없습니다.”
공인중개사의 말에 장 꼰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도 주변을 둘러봤다. 지금은 복지 시설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었지만 잘만 개조를 하면 충분히 대형 펜션으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어 보였고, 스키장이나 골프장으로 개조를 해도 돈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돈이 목적인 사람들의 관점이다.
내게는 이곳이 가장 완벽한 복지 시설 자리로 보였다. 그리고 난 힐끗 장 꼰대를 봤다.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지만 부동산을 보는 면에서는 정말 탁월한 눈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군요. 외곽 지역이지만 나쁘지는 않군요.”
최 사부는 공인중개사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시다시피 복지 시설도 요즘은 사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공인중개사의 말에 최 사부도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 그래요?”
“어떻게 사업이 되죠?”
난 이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물론 최 사부가 이미 내게 모든 것을 설명해 줬다.
공인중개사가 날 빤히 봤다.
아마 그의 눈에는 내가 최 사부의 아들쯤으로 보일 거다. 장 꼰대 역시 날 힐끗 봤다.
“어른들 이야기하는데 끼어든 거 아니다.”
“예. 아버지.”
난 최 사부의 아들 행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말을 잘 듣는 아들이군요.”
장 꼰대가 날 보며 최 사부에게 말했다.
“하하하! 이놈한테 물려줄 겁니다. 늦게 본 자식이라 참 많이 남겨 주고 싶습니다.”
“증여세도 없죠. 복지 시설은.”
“오호! 그렇게 되는 겁니까?”
최 사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입니다. 표면상 비영리 시설이잖습니까? 실상은 아주 다르지만.”
장 꼰대는 자신이 보유한 복지 시설의 가격을 더 올려 받기 위해 포장을 하는 듯했다.
“전 그런 거 잘 모릅니다. 입지가 좋고 평수가 넓어 오래 두면 땅값이 오를 거라는 것밖에 모르겠습니다.”
최 사부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을 했다. 하지만 그런 최 사부를 장 꼰대가 유심히 관찰하는 것 같았다.
“하하하! 그러십니까?”
장 꼰대는 최 사부를 힐끗 보며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아마 최 사부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을 하는 것은 플러스알파에 대한 로열티를 주기 싫어서일 거다.
“이제 둘러보실 만큼 둘러보셨으니 사무실에 들어가셔서 계약을 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음. 그러죠.”
최 사부도 흔쾌히 알았노라 대답을 했다.
난 여전히 5층으로 된 흰색 건물과 주변 풍경을 지켜봤다. 5층 건물은 웅장하다고 표현할 만큼 컸다. 마치 정신병원처럼 흰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3층부터는 철망으로 창문이 박혀 있었다.
그런데 그때 내 눈에 3층 유리창에 매달려서 애처롭게 아래를 보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남자와 내 눈빛이 마주쳤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창문에 매달려 있던 남자는 간병인에게 끌려 창문에서 사라졌다.
‘눈빛이 애처롭다.’
난 문뜩 그런 생각을 했다.
“들어가자.”
멍하니 내가 건문을 보고 있을 때 최 사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예?”
“뭐 이상한 거라고 있니?”
“아, 아니에요.”
“춥다. 들어가자.”
“예.”
“예. 들어가셔서 마저 이야기를 마무리하시죠.”
공인중개사가 사무실 안으로 안내를 했다.
그리고 나와 최 사부 그리고 장 꼰대가 장 꼰대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가 앉자마자 장 꼰대가 본론을 꺼냈다.
물론 비싸게 이 복지 시설을 비싸게 팔기 위한 떡밥을 던지는 걸 거다.
“만 평 부지에 건물만 5층짜리입니다.”
“그런가요?”
처음 왔을 때는 입이 쩍 벌어지며 놀라워하던 최 사부는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시큰둥하다는 투로 일관했다. 이제 깎으려는 사람과 올려 받으려는 사람의 신경전이 펼치지는 거였다. 난 그 모습이 재미있기까지 했다.
“생각보다 이곳은 알짜인 땅입니다. 80억은 좀 너무 후려치시는 것 같습니다.”
장 꼰대가 본색을 드러냈다.
“너무 외지고 개발 조건도 나쁘고 복지 시설까지 있네. 우리가 생각을 잘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최 사부는 인상을 찡그렸다. 최 사부가 인상을 찡그리자 장 꼰대는 최 사부를 뚫어지게 봤다.
“꾼들끼리 왜 이러십니까?”
“꾼이요?”
“아니십니까?”
장 꼰대는 최 사부를 노려봤다. 난 사실 그 눈빛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최 사부는 무척이나 여유로웠다.
“무슨 꾼요?”
“사설 복지 시설이 매물로 나왔다는 것을 알고 사시는 분은 이 복지 시설이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는지 다 알고 사시는 분일 겁니다. 아니었습니까? 최 사부.”
장 꼰대가 뚫어지게 최 사부를 봤다. 난 내심 놀랐지만 침착한 척을 했다.
“아셨네요. 하하하!”
“사진으로만 몇 번 봤는데 실물이 더 잘생기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은퇴를 하셨다고 들었는데 노후는 복지사업이십니까?”
“이게 이름값도 하고 내세울 명분도 생기고, 누가 압니까? 바람만 잘 타면 금배지라도 달지.”
“역시 최 사부님답습니다. 역시 갑이시네요. 갑.”
“그렇습니까?”
“솔직하게 그렇잖습니까? 3살 이하는 두당 보육비가 65만 원이 나옵니다. 한 가정에서 한 명의 애를 키우면 한 달 보육비가 65만 원 이상 들어가겠지만 여기 있는 애들이 도합 22명입니다. 그럼 1,430만 원입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이익이 많이 남죠.”
마치 장 꼰대는 아이들을 가축에 비유해서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이것만 봐도 원래 천성이 악인인 놈이 분명할 거다.
“꼭 대형 사육장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최 사부는 인상을 찡그렸다.
“좋은 일 하면서 돈도 벌자는 겁니다. 최 사부님! 다 아시고 오신 거 아닙니까? 돈 버는 일입니다.”
“그런가요?”
“예. 그리고 19세 미만의 고아들의 양육비로 두당 50만 원씩 나옵니다. 시설은 충분하고 아이들을 최대한 받게 되면 300명까지 가능합니다. 그럼 얼마인지 딱 계산이 나오지 않습니까?”
“너무 산술적이군요. 그리고 너무 계산적이시고. 복지 시설 하시는 분이 너무…….”
최 사부의 말에 장 꼰대는 최 사부를 노려봤다.
“제가 누군지 모릅니까? 왜 이러십니까? 모르시고 오셨습니까?”
“우리, 밑장 까고 이야기하자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럼 자세하게 알려드리죠. 여기 계신 노인들만 해도 꽤 됩니다. 최소 한 분 당 30만 원 이상의 이익이 발생합니다.”
“그런가요?”
“예. 인건비는 거의 자원봉사자들로 충당을 하면 됩니다. 관리 직원 몇 명만 고용을 하면 충분히 이 큰 시설이 유지됩니다. 그리고…….”
장 꼰대가 힐끗 날 봤다.
“괜찮습니다. 대충 다 알고 왔으니까요.”
“그리고 지체장애인들도 제법 있습니다. 작은 일이지만 그들에게 일을 주면 상당하게 남습니다. 이 정도면 최고의 사업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 꼰대는 복지 시설을 사업체라고까지 말했다. 어쩜 이곳은 장 꼰대의 마지막 보루이면서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지금 내가 차지하려는 거다.
물론 내 소유가 되면 확 달라질 거다.
난 돈이 목적이 아니니까.
“많이 배워야겠군요?”
최 사부는 장 꼰대를 봤다.
“각종 노하우는 다 전수해 드리겠습니다. 그 대신 80억은 무리입니다. 최 사부님! 같은 업종 사람끼리 좋은 마무리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얼마를 원하십니까?”
“100억 주십시오.”
“100억이라고요?”
최 사부는 눈이 커졌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이 시설이 그 정도 가치가 안 된다고 보십니까?”
“그건 아니지만 너무 큰 액수라…….”
결국 20억의 차이다.
하지만 평생 20억이 아니라 2억도 못 만져 보고 죽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너무 쉽게 장 꼰대는 20억을 더 달라고 했다.
“으음.”
최 사부는 살짝 신음을 했다.
“결정하십시오.”
“90억 드리겠습니다. 그 대신 안전하게 현금으로 드리겠습니다.”
최 사부의 말에 장 꼰대는 인상을 찡그렸다.
“현금요?”
“왜 그러십니까? 자료가 남으면 서로 좋을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왜요?”
“현금에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예?”
“아닙니다.”
난 장 꼰대를 보고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아마 그 안 좋은 기억이라는 것은 내게 죽도록 맞고 50억과 함께 자동차가 불태워진 일을 뜻하는 걸 거다.
이렇게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을 보고도 놀라는 법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최 사부가 고민을 하는 장 꼰대를 봤다.
난 현금으로 받겠다고 하면 그 돈을 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무력으로 날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래! 현금으로 받아라. 그럼 내가 활활 태워 줄 테니까.’
난 어금니를 와작 깨물었다.
“그냥 대량 입금 계좌로 받겠습니다.”
“그러시겠습니까?”
최 사부는 장 꼰대를 빤히 봤다.
“예. 현금은 가지고 이동하기도 불편하고, 90억이면 사과 박스로 수십 박스인데, 좀 그렇습니다.”
“아, 그러세요.”
최 사부도 씩 웃었다.
아마 최 사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다. 그래서 웃는 거다.
그렇게 난 최 사부와 함께 장 꼰대의 히든카드라고 할 수 있는 복지 시설을 구입했다. 물론 이곳에 들어간 돈은 대부분이 장 꼰대와 미숙이 땅을 사기 위해 낸 대금이다. 결국 난 돈 한 푼 내지 않고 이 큰 시설의 주인이 된 거다.
난 이 시설을 보면서 나만의 사업을 구상했다.
‘충분해! 충분히 이 시대의 엘리트를 키울 수 있는 곳이야!’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장 꼰대와 최 사부는 계약서를 체결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문득 잊고 있던 게 생각났다.
‘가만. 2011년이면 가평에 고속전철이 들어오지?’
이건 나도 잊고 있었던 일이다. 경춘선 고속전철이 2011년 개통이 된다. 그럼 이곳 땅값은 몇 배나 더 뛰게 될 거다.
결국 나와 최 사부는 장 꼰대가 대박으로 가는 것을 철저하게 막은 거였다. 그리고 그 대신 절망으로 향하는 고속전철의 표를 끊어 주고 있는 거였다.
난 힐끗 장 꼰대를 봤다.
장 꼰대는 이번에 마련한 자금으로 철원에서 자신의 인생의 사활을 걸겠다는 눈빛처럼 보였다.
‘모든 것을 걸어 봐라. 올인! 넌 끝난 거야.’
난 마음속으로 장 꼰대의 절망의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그렇게 가평 일은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난 장 꼰대와 헤어지고 나서 호중에게 전화를 했다.
“나다.”
-압니다. 무게 좀 그만 잡으십시오.
“건방?”
-죄송합니다. 사부!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가평으로 와라. 새 희망 복지 시설이 있다.”
-예. 무엇을 하면 됩니까?
“권태랑 너랑 형성이랑 해서 이곳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인수인계를 받고, 무슨 문제가 없는지 조사를 해라.”
-무슨 문제라시면?
“이곳에 고용되어 있는 직원들을 그대로 써야 할지 아니면 정리를 해야 할지 알아보라는 거다. 난 정리를 했으면 좋겠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부정 비리를 찾아보겠습니다.
“요즘 너 문자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