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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99화 (99/210)

흑막의 신! 99화

“그래. 이제 대박이야! 저 늙은이 주변에만 서 있으면 떨어지는 게 황금이고 버려지는 게 수표 쪼가리라는 소리도 있어.”

“정말 우리가 성공한 거예요?”

미숙은 환하게 웃으며 장 꼰대를 봤다.

“오늘 발표를 하겠지. 그럼 땅 값은 뛰고, 뛰고, 미친 년 널뛰듯 뛰는 거야.”

“호호호! 그렇게 뛰면 좋죠.”

“두고 봐. 우리도 이제 정계 인사가 될 테니까.”

장 꼰대는 야무진 꿈을 꾸고 있었다.

그리고 김용팔 회장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물론 미숙도 장 꼰대의 팔을 잡고 따라갔다.

사실 장 꼰대는 김용팔 회장을 만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옆에 최 사부가 있는 것을 보고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한국은 몇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라니까.’

최 사부가 왜 김용팔 회장 옆에 있는지 궁금해 하는 것보다 최 사부를 통해 김용팔 회장과 안면식을 가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장 꼰대였다.

정말 사기로 똘똘 뭉친 그 촉이 사라진 것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최 원장님!”

자신이 복지 시설을 팔아넘겨서일까? 장 꼰대는 최 사부를 최 원장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최 사부의 옆에 있는 나도 보고 웃었다.

“오! 최 원장님 아드님도 오셨군.”

웃는 얼굴이라 당장은 침질을 하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저 웃음이 장 꼰대가 웃는 마지막 현생의 웃음이 될 거라 난 확신한다.

“오? 여기는 무슨 일이십니까?”

최 사부는 살짝 놀란 척을 했다. 정말 연기력 하나는 청룡 영화제 남우 주연 감이 분명했다.

“저도 이곳에 투자를 좀 하려고 왔습니다.”

“투자요?”

최 사부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예. 왜 그러십니까?”

“어디에 투자를 하시겠다는 건지?”

최 사부의 말에 장 꼰대는 김용팔 회장과 최 사부를 힐끗 보며 자신도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하하! 여기까지 와서 속이실 겁니까? 저 다 알고 있습니다.”

“제가 속이기는 뭘 속였다는 겁니까? 하하하! 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 예. 그렇죠. 그럼요. 마지막까지 프로젝트는 뚜껑이 열릴 때까지 보안이 생명이죠.”

장 꼰대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지만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장 꼰대가 힐끗 김용팔 회장을 봤다.

“처음 뵙는 분인데 소개 좀 시켜 주십시오. 최 원장님!”

장 꼰대의 목적은 최 사부와 시시콜콜한 농담을 하는 게 아니었다. 김 회장과 안면을 트는 거였다.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 두면 나중에 혹시 사기를 칠 때 도움이 될까 해서 다가온 거였다. 그리고 자신도 사업가의 길을 갈 때 도움이 될 것 같아 온 것이기도 했다.

“아! 옆에 계신 분이요?”

“그렇습니다.”

장 꼰대가 다시 웃었다.

“나눔 복지센터 위원장이신 김용팔 회장님이십니다.”

최 사부는 김용팔 회장을 김 엔 동방 회장이 아닌 나눔 복지센터 위원장이라고 소개를 했다.

“예?”

김용팔 회장의 새로운 직함은 바로 나눔 복지센터 위원장이다. 물론 가평에 있는 복지 시설이 1호고, 지금 이곳에 현판식을 하는 철원이 2호다.

“아, 아닙니다.”

장 꼰대는 알지 못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저는 장철웅이라고 합니다.”

장 꼰대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김용팔 회장이 누군가의 손을 함부로 잡아 주는 사람은 분명 아니었다.

“그런가?”

하대와 함께 장 꼰대를 위아래로 내려 봤다.

“그, 그렇습니다.”

“사람은 말일세. 몸에서 풍기는 기품이라는 것이 있지.”

김용팔 회장은 힐끗 나를 봤다.

“몸에서 빛과 향기가 나는 사람이 있고.”

그리고 다시 최 사부를 봤다.

“약간 어둡지만 뭔가에 정통한 기품이 느껴지는 사람도 있고.”

“그렇습니까? 그럼 저, 저는…….”

장 꼰대의 물음에 김용팔 회장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자네는 이상하게 눈물 냄새가 나. 그것도 남의 눈물 냄새가. 이상하지 않나? 나는 오늘 자네를 처음 보는데.”

김용팔 회장의 말에 장 꼰대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데 말이야. 최 원장하고 자네하고 비슷하지만 달라.”

“예?”

“최 원장은 남의 눈물 냄새도 나지만 자기 울음소리도 느껴진단 말이야. 그런데 자네는 그게 없어.”

김용팔 회장의 말에 장 꼰대는 최 사부를 봤다. 최 사부는 김용팔 회장의 말에 살짝 놀랐다가 자신을 보고 있는 장 꼰대를 보며 승자의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난 사실 김용팔 회장에게 최 사부의 과거를 말해 준 적이 없다. 물론 장 꼰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느 면에 통달하거나 우뚝 선 사람은 정말 자신만의 촉이라는 것이 있나 보다.

“왜, 왜 웃습니까? 최 원장님!”

“하하하! 아닙니다. 현판식을 하면 다 알 겁니다.”

“예? 뭘, 뭘 안다는 겁니까?”

“보면 아시겠죠.”

최 사부의 말에 장 꼰대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났다.

-이제 현판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안내 방송이 울렸다. 이 자리에 철원 군수 그리고 군청 관계자들, 그리고 일부 국회의원이 참석을 했다. 물론 대부분은 장 꼰대에게 사기를 당한 사람들이 초대를 받았다.

물론 이들을 찾아내고 이곳까지 오게 만든 것은 뜨악새다.

옆에 서 있는 김용팔 회장이 살짝 내게 물었다.

“무슨 현판식인가?”

“철원 나눔 복지센터 현판식입니다.”

“아직 건물도 짓지 않고서 무슨 현판식을 한다는 거야?”

“마음으로는 이미 다 지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원하는 게 또 하나 있습니다.”

“그래?”

“예. 재미있는 것을 보시게 되실 겁니다.”

난 약간 초조해진 장 꼰대를 보며 웃었다.

드디어 사무실 개소식과 현판식이 거행됐다. 내 첫 응징을 기념하는 행사가 될 것이며 나와 같이 함께 힘써 일할 일꾼을 양성하는 아카데미가 될 곳이다.

드디어 나만의 역사적인 순간이, 그리고 장 꼰대와 그 일파의 절망적인 순간이 도래했다.

잘생긴 사회자가 단상 옆에 섰다. 마이크 소리가 요란하게 한 번 들렸다. 귀를 찢는 마이크 소리는 이제 곧 장 꼰대의 마음을 찢어발기는 응징의 축가가 될 것이다.

나에게는 축가이고 장 꼰대에게는 장송곡이 될 거다.

나와 최 사부, 그리고 김용팔 회장과 철원 군수가 단상 상석에 앉았다. 그리고 몇몇 들러리 국회의원들이 배석을 했다.

요즘 국회의원들 하는 일이 저런 들러리가 거의 전부일 거다. 이런 곳에 와서 얼굴이나 내밀고 있으니 IMF를 맞고 카드대란이 일어나고 차후에 미국한테 굴욕적인 자유 무역 협정에 서명을 하게 되는 거다.

배우고 익히지 않는 것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것들. 나는 보기만 해도 역겹다. 하지만 나를 빛내 줄 자리이니 난 그들에게 웃어 줄 거다.

난 단상에서 장 꼰대를 봤다.

조금 전과 다르게 초조한 눈빛이 역력했다. 탐욕의 눈꺼풀이 벗겨지니 슬슬 촉이 되살아나는 걸 거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장 꼰대가 가진 모든 것을 내가 가졌다. 이제 장 꼰대는 스스로 무너지는 거다.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고 했다.

좋은 머리로 사람들을 울게 만든 것은 그 좋은 머리 때문에 울게 되는 거다.

“우선 배석해 주신 분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관료적인 절차다. 우리나라에 이런 관료적인 절차만 조금 없어져도 300만 농민들이 힘들어 하지는 않을 것이다.

“먼전 김 엔 동방의 대표이신 김용팔 회장님이십니다.”

사회자의 소개에 김용팔 회장은 잠시 일어나 짧게 허리를 숙여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철원 군수님이십니다.”

철원 군수가 소개되자 옆에 들러리를 왔던 국회의원들의 표정이 밝지 않다. 뭐 특권 의식이라고 할까?

군수보다 지들이 높다는 거다.

이곳은 분명 철원이다. 철원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군수일 건데 지들보다 먼저 소개되는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그리고 앞으로 철원 나눔 복지센터를 운영해 주실 이사장이신 최필도 이사장님이십니다.”

이번에도 국회의원은 얼굴에 똥을 씹는 표정을 했다. 그리고 조금씩 국회의원은 뒤로 밀렸다. 참 웃기다.

난 이 순서가 무척이나 재미가 있었다.

“으음.”

장 꼰대는 최 사부가 소개될 때부터 신음 소리를 연발했다. 표정은 이미 굳어져 있었다.

“왜요?”

눈치가 빠른 미숙이 장 꼰대에게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표정은 아무것도가 아니잖아요.”

미숙도 장 꼰대의 눈치를 보고 뭔가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다.”

“예?”

“그, 그런 게 있어.”

장 꼰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아마 지금 장 꼰대는 속으로 대충 감을 잡고 있을 거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색을 하지 않고 있었다.

슬슬 불안해질 때부터 장 꼰대의 촉은 살아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의 촉이 살아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이번에는 철원 나눔 복지센터를 건축해 주실 건설사 사장이신 김재창 사장님을 소개합니다.”

듣도 보도 못한 김재창 사장에게까지 국회의원들이 밀리지 국회의원은 당을 떠나 수군거렸다. 저렇게 자기들 원할 때만 뭉치는 족속들이 국회의원이다.

“그리고…….”

사회자는 힐끗 웅성거리는 국회의원과 나를 번갈아 힐끗 봤다.

“그리고 많은 국회의원들이 참석하셨습니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국회의원은 총 7명이다. 그냥 그 모두를 다 싸잡아 많은 국회의원으로 정리를 해 버린 사회자였다.

물론 내가 시킨 일이다.

고소하고 시원하고 후련하다. 국회의원들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이곳에 온 목적은 잊어버리고 마치 모욕을 당한 것처럼 어금니를 깨물고 있었다.

‘밥벌레들!’

난 속으로 국회의원들을 짧게 정의를 했다.

“이제 철원 군수님의 철원 나눔 복지센터 건설에 대한 축사가 있으시겠습니다.”

사회자의 소개에 철원 군수가 일어섰다.

다부진 모습이었다.

철원 군수가 단상 마이크 앞에 섰다. 그리고 장중을 쭉 둘러봤다.

“저는 처음 나눔 복지센터 이사장이신 최필도 사장님께서 찾아오셨을 때 놀랐던 때를 떠올립니다. 최필도 사장이 처음 저를 찾아왔을 때 저에게 땅을 달라고 하더군요. 하하하! 전 불한당인 줄 알았습니다.”

군수의 농담에 단상 위의 사람들이 웃었고 국회의원들도 마지못해 웃었다. 하지만 장 꼰대와 장 꼰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웃지 않았다. 장 꼰대는 불안한 마음 때문에 웃지 못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장 꼰대를 노려보느라 웃지 않았다.

“그러니까. 저에게 군청 소유인 임야를 내놓으라고 당당히 말하는 겁니다. 참 그때만 생각해도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냐 생각을 했습니다.”

철원 군수의 축사가 이어지면서 장 꼰대는 인상을 찡그렸다.

“임, 임야?”

“왜 그래요?”

“군수가 임야라고 했어.”

“그런데요?”

장 꼰대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었다.

맨 처음 자신이 수확이 끝난 들판에서 김용팔 회장과 청솔제약 사장, 그리고 재창건설 사장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임야, 임야라고…….”

장 꼰대는 드넓게 펼쳐진 농토 뒤에 병풍처럼 둘러져 있던 야산을 떠올렸다. 뭔가 큰 시설이 들어서기에는 공사비가 많이 보이는 야산이지만 충분히 개발을 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어렵지도 않을 것 같은 임야였다.

‘거기는 군청 소유가 아닌데…….’

장 꼰대는 연설을 하고 있는 군수를 봤다.

“그래서 제가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임야에 철원 나눔 복지 시설을 건설한다고 했습니다. 말이 안 되는 소리죠. 전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냐고 거절을 하려고 했습니다.”

철원 군수가 최 사부를 한 번 보며 웃었다.

“그런데 왜 자기가 지으려는 시설이 나눔 복지센터인 줄 아냐고 물었습니다. 전 그 답을 듣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습니다.”

철원 군수는 다시 한 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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